산행일자 : 2004. 2. 9
소요시간 : 6시간 55분
산행코스 : 호박소휴게소(11:00) - 암릉정상(11:50) – 백운산정상(12:15) – 구룡소폭포(12:45) - 호박소휴게소(13:00) – 호박소(13:26) – 오천평반석(13:47) – 능동산직전봉우리(14:28) – 능선길삼거리(14:47) – 능동산정상(14:48) – 봉우리분지(15:16) – 삼거리표지판1(15:44) – 삼거리표지판2(15:56) – 가마불폭포(16:59) – 얼음골결빙지(17:03) – 매표소(17:15) – 백련사(17:45) – 호박소휴게소(17:55)

백운산. 이름만으로도 그 어떤 기운을 느낄 수 있을 듯.
24번 국도변 철책 사이로 나 있는 들머리.
산의 정기가 이 도로로 인해 끊긴 것은 아닐지.
초입부터 자일을 타고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11:00시.

이내 등줄기에서 습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언제나 그렇듯 산은 잠시동안 입산을 위한 몸풀기를 하게 한다.
하지만 분명 산은 인간을 향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일 터.
특별한 사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언제나 산이 곁에 있음을 안다.
그러면서 산은 원하는 인간에게 항상 길을 열어 주고 거대하고 포근한 품으로 감싸 안는다.
힘들여 땀흘리며 오르는 일은 구도하는 자의 수행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까.

상념에 잠겨 있는 것도 잠시.
거대한 암릉이 눈앞을 막아 서고.
여느 산처럼 공룡능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암반으로 이루어진 단아한 모습의 암릉은 백운산의 이름과도 사뭇 닮아 보인다.

때로는 네발로 기어서 때로는 한가닥 자일에 의지하며 오르내리는 일에 제법 재미를 붙일 즈음 벌써 암릉의 꼭대기에 올라선다.
너른바위는 잠시 쉬어 가기를 권하여 못 이기는 체 배낭을 푼다.

정면에는 오늘 이어서 오를 능동산과 천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지평선처럼 보이고,
얼음골 입구의 고즈녁한 모습도 정겨워 보인다.
정상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길.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오른다. 12시 15분.

표지석이 있는 곳에는 먼저 자리잡은 사람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보낸다.
하지만 상대는 별로 반가운 눈치가 아닌 듯.
이런 무안함…

백운산은 바로 곁의 가지산과 운문산에 가려 다소 소외되고 있기는 할 망정 자신만의 기백을 잃지 않고 굳게 제 위치를 갖추고 있다.
어떤 산이든 탄생과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상석 주변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선점자들은 코펠과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괜한 거부감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서둘러 하산길로 접어든다.

산에 오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유지만 최소한의 예와 매너를 갖추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가급적 산에서는 정해진 곳 외에서 취사를 하지 않는 것도 분명 그 중 하나.

구룡소폭포로 향하는 하산길은 급한 경사와 바위길.
쫒기듯 내리막을 타고 커다란 암반을 구르듯 떨어지는 구룡소폭포에 쉽게 다다른다.
연이어 호박소휴게소 들머리에 서 있는 표지판을 지나친다.(구룡소폭포 : 0.5K, 가지산 : 3.55K)

휴게소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13시 정각.
소요시간 2시간.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제 1구간의 산행을 마친다.

이어 심양교 아래로 이어지는 계곡을 타고 호박소로 향한다.
계곡수는 말그대로 명경지수다.
오로지 낙엽만이 노늬는 물은 자연의 그림을 그대로 다 담아내고 있다.

계곡의 바위길을 뛰어 넘어 호박소.
거대한 암반의 중앙을 무구한 세월과 물로서 오롯히 파내어 흐르는 물을 가둬둔 곳.
물빛이 파랗다 못해 샛초록빛이다.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하다. 13시 26분.

계곡을 건너는 빨간 다릿길.
더운 여름날에는 무수히 많은 발자국들이 이 다리를 넘나들었겠지만 지금은 사람의 흔적조차 없어 쓸쓸한 다리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쇠점골.
계곡을 끼고 가는 길도 지난 여름의 아픈 상처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나무는 쓰러지고 꺽이고 경사진 사면은 깍이 듯 흘러내려 바위길로 변해 있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오천평은 되지 않음직한 오천평반석의 오른쪽에서 희미한 산행로가 보인다. 13시 47분.

산행객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길인 듯 시그널이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길 또한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고.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밋밋한 경사길은 인내를 요하게 하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은 요즘 날씨가 겨울인지를 의심케 한다.
끝없이 오르기만 할 뿐 좀처럼 능선이 나타나지 않아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 시간이 될 즈음 능동산이 올려다 보이는 직전 봉우리에 닿는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듯 가파른 길은 정상까지 어어지나 보다.

산이 아무리 좋은들 이런 산행로만 있는 산이라면 어느 누군들 산을 찾을까.
오르면 분명 자연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는 능선이 있고 가슴 탁 트이는 정상에 이를 수 있음을 알기에 산을 찾는 것을….

더운 김이 입밖으로 쉼없이 넘나들 즈음 능선길로 합류한다.
왼쪽방향으로 1분여 지나 정상에 이른다. 14시 48분.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 2개와 보잘 것 없는 정상표지석.
영남알프스 산군에 있으면서도 자주 거명되지는 못하는 산.
지금은 산 아래 땅굴을 파내어 터널을 만들고 있다.

인간에게 이로울려면 어쩔 수 없이 자연을 해쳐야 되는 것인지.
여기저기 파헤쳐진 잔해들로 가슴이 쓰린다.
오던 길을 잠시 되돌아 나와 천황산으로 이르는 능선길을 잡고 얼음골로 내려 갈 참이다.

평탄한 길은 정상으로 오르던 험난한 고행길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사방이 탁 트인 조망에 눈길마저 시원하다.
지나치는 봉우리 분지에서 금방 타고 내려온 백운산이 그대로 조망된다.

암릉길이 그야말로 아름답다.
가지산에서 구비구비 흘러 내리는 능선 또한 아름답다.

멀리 있던 재약산과 천황산이 점점 더 가까워 지면서 삼거리표지판에 닿는다.(오른쪽 : 얼음골 4.7K)
능선길과 임도를 번갈아 걷는 재미 또한 괜찮다.
제법 넓은 분지가 있고 임도로는 차량도 심심찮게 드나든다.
두번째 삼거리 표지판.(오른쪽 : 얼음골 3.2K) 15시 44분.

계속 직진하여 바로 아래 보이는 쉼터까지 진행해 보기로 한다.
쉼터에서는 얼음골로 하산하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잡풀을 헤쳐 지나쳐 온 갈림길을 찾아 헤멘지 10여분.
급한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하산길로 접어들고….
나뭇가지와 삐죽 튀어 나온 바위 모서리가 하산길에 많은 도움을 준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산행로는 조심스럽지만 지겹지 않아 좋다.

왼쪽으로는 깍아 지른 듯 기암괴석으로 산봉우리 여럿을 만들어 놓고 있다.
사진 속 금강산의 여느 비경과도 비견해 봄직한 산세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가마불폭포 입구를 지나 오래 전에 와 본 적 있는 얼음골 결빙지 앞을 지난다.
한여름에도 얼음을 얼게 하는 곳.
자연의 신비는 범부들에게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매표소앞. 17시 15분.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한창 공사중인 능동터널 현장 앞을 지나 백련사와 호박소를 거쳐 계곡입구로 들어선다.
물길을 건너다 아뿔싸 한쪽 발이 물속으로 풍덩.
내친 김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아리할 정도로 차가운 계곡수로 얼굴을 훔치며 출발지인 호박소휴게소 앞에서 오늘의 여정을 접는다. 17시 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