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비로봉



계획된 산행이 아닌 즉흥적인 산행입니다. 어제(2004/1/15) 업무적으로 공들였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약간의 허탈감 마저...오늘은 하루를 쉬고 재충전 하려고 마음을 잡고 있는데...새벽에 딸 둘이 스키장을 간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시계를 보니 5시...어제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무거운데. 저도 그냥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꾸립니다. 아내 왈 "지금 뭐해?" "보면 몰라, 산에 간다" "어디?" "소백산"하고 집을 나섭니다..

날카로운 눈길이 제 뒤를 찌릅니다.^^


등반일정 : 당일 (2004/01/16 금요일)
등반인원 : 홀로


이동 및 등반코스 :


서울(5:45)-구룡사입구(07:50)-세렴폭포(8:35)-사다리병창길-비로봉(10:30/11:00)-계곡길-구룡사(12:30)-서울(14:30)


★ 서울 집(5:45)-구룡사입구(07:50)


집을 나와 보니 아직도 깜깜한 밤중입니다. 길도 막히지 않아 바로 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영동선을 타고 중앙고속도로를 타기전 문막 휴게소에 잠시 정차...밥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커피 한잔으로 대신합니다.

시간을 보니 이곳에서 소백산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하는데...갈등이다. 어제 늦게까지 술자리로 잠이 부족하여 자꾸 졸립니다. 운전도 자신없고...에라 가까운 치악산으로 변경하자...


★ 구룡사입구(7:55)-세렴폭포(8:35)


큰일 났어요. 정말 큰일났습니다. 아침 먹을 데가 없어요. 점심도 전투 식량(뜨거운 물만 부으면 됨 - 다 아시죠?)을 준비했는데 뜨거운 물도 없어요. 너무 이른 시간에다 평일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어쩌지...

무려 5분(?)을 고민하다 양갱(초소형) 몇개, 쵸코바 몇개를 믿고 그냥 오르기로 했어요. 올라가는데 2시간 내려오는데 1시간...최소한 3시간은 버틸수 있겠지...

구룡사에서 세렴 폭포까지는 길이 아주 좋습니다. 쌍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달려간다. 앗싸~~


★ 세렴폭포(8:35)-사다리병창길-비로봉(10:30)


드디어 계단의 시작입니다. 허기가 느껴지네요. 몸은 계속 물을 요구하는데 물도 0.5리터 물병에 2/3 정도만 남아 있어요. 아껴야지...슬픕니다. 배낭속에는 1리터 날진 수통이 있는데 물론 비어 있습니다. 초입 상점에서 밥먹으면서 뜨거운 물을 채울 요량으로 빈통을 가지고 왔어요. 배고파 죽겠네...



(위) 사다리병창 계단길이 시작됩니다.


1시간여를 올랐나 봅니다. 물론 구룡사 매표소에 차를 주차 시킬때 부터 지금까지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물론 저 빼놓고...그래도 다행인것은 날씨가 매우 온후합니다. 바람도 거의 없고 기온도 그다지 추운것이 아닌거 같고. 몸이 지치니까 땀만 무지하게 납니다. 나중에 느낀거지만 오늘 아침 일어나서 소변보고 산행내내 한번도 안 꺼내고 다시 집에 까지 가서 꺼냈습니다..(뭘..?)

다행히 병창길에는 눈이 별로 없어서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그냥 오르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위) 구간구간 어려운 곳이 있긴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자주 쉬었다 갑니다. 이제 약 30분 정도 남은거 같은데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쉴때마다 초코바 등 행동식을 조금씩 먹었더니 배는 고프지 않은데 아마도 허기가 져서 그런가 봅니다. 애고...


(아래) 오르다 보니 표지판에 재미있는 글이 쓰여있네요.."X물???"



바로 내가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이제 바로 위가 정상이련만 올라가도 낙이 하나도 없네...먹을거도 없고 물도 맘껏 못 마시고...평소에는 과일도 제법 구색맞춰서 가져오곤 했는데 그것도 없다..


★ 비로봉(10:30/11:00)


산에 혼자라는 느낌이 들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아까 올라올때 다리 후들거리고 배고파서 식은땀이 날때는 솔직하게 말해서 "겁났습니다."



(위) 비로봉 올라오는 마지막 계단 - 전망 좋습니다.


근데 막상 정상에 오니 아무도 없이 나 혼자...바람도 적당히 불고 눈도 적당히 있고...시야도 좋아 전망도 좋습니다. 비록 정상주는 없으나 정상 기념 전화로 대신하고 한참을 머무릅니다.



(위) 정상의 돌탑 - 누가 이렇듯 오랜 세월이 걸려 쌓았는지...



(위) 또 다른 돌탑 - 정상에는 총 세개의 돌탑이 있는데...그중의 하나. 각 돌탑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는듯 합니다.



(위) 비로봉 정상석



(위) 정상 전경 - 눈이 생각보다 별로 없네요...



(위) 북쪽을 향해 찍었어요...아름다운 한국의 산하 연봉들...



(위) 정상의 잔설



(위) 비로봉 정상의 필자


★ 비로봉(11:00)-계곡길-구룡사입구(12:30)


이제는 내려갑니다. 혼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또 앉아서 사색(?)에 잠기다 결국에는 30분을 채우고 내려갑니다. 길도 별로 미끄럽지 않아서 아이젠도 안하고 그냥 내려갑니다. 계곡길에는 제법 눈이 있습니다. 도중에 엉덩방아도 찧고 그런 김에 썰매도 씽씽 타며 내려갑니다.



(위) 내려오는 길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산객을 조우합니다. 계곡길로 올라오는 분들인가 봅니다. 총 5분이신데 남자분4명과 여자분 혼자입니다. 남자분들은 무척이나 많은 땀을 흘리십니다만 여자분은 화장도 예쁘게 하신 그 얼굴에는 땅방울의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조심해 올라가세요..."

다시 세렴폭포입니다. 이곳서 부터는 뛰듯이 내려갑니다. 얼른 내려가서 오늘 제일로 고생한 위장을 채워야지요...좋아하는 막초는 운전때문에 못할거 같습니다.


★ 교훈 : 매번 산행시 음식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를 했건만 이번에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터무니 없는 산행을 했습니다. 아침도 안먹은 상태에서 간식, 행동식도 거의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또한 가장 중요한 물조차 0.4리터 밖에 확보가 안된 상황에서 4시간 정도의 산행은 체력 약한 저에게는 커다란 고통으로 돌아왔습니다.

산객님들...먹을거 많이 챙기세요^^


▣ 물안개 - 저의 고향에 다녀오셨군요.여학교 소풍코스로 자주 오르던 치악산 비로봉 잠시 어릴적 추억에 잠겨봅니다.역시 치악산은 멋진 산이지요.
▣ manuel - 다시 읽고 봅니다. 그 원시의 치악을.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친구와의 (82년)추억을 떠올리면서요 ...
▣ 이송면 - 정상의 건설이 이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산행기가 이래서 좋은가 봅니다. 등산로 표지만의 *물..... 웃음이 올라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하하. 정상의 돌탑은 항상 머리속을 어지럽게 합니다. 저 산 꼭지에서 저 정성이라면... 세상에 무언들 못하겠습니까. 쌓은 사람의 심경이 어떤지 궁금해서 항상 머리속이 뱅뱅입니다. 우리나라 에서는 음력을 따지죠? 04년 새해엔 모든일이 다 잘되실 겁니다. 설 지나고 나면.... 힘내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산초스 - 모처럼 산행 하신것 같습니다. 배고프면 산행하기 힘들지요. 꽤 고생하셨습니다. 작년10월 사다리병창 산행기억이 새롭습니다.
▣ 포도사랑 - 산님들 모두 즐거운 설 보내시고 올해도 안전산행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