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석산-운장산 산행기


일자 : 2004. 10. 16
위치 : 전북 진안군 주천면, 부귀면, 정천면, 완주군 동산면
높이 : 연석산 925m,  운장산 1125m
코스 : 연석사-연석산(4.1km)-서봉(7.1km)-운장산(중봉)-동봉(9km)-내처사동(12.5km. 4시간 20분)

 

   관우와의 지리산 당일 산행 계획은 나의 몸살 덕분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이 좋은 가을날이 너무 억울하다. 이 산 저 산을 고르다 산악회를 따라서 운장산을 가기로 결정한다.  아내도 따라 갔으면 좋으련만 요즘 몸이 말이 아니다. 아쉽지만 혼자 배낭을 챙겨 약속 장소로 나간다.  07시 50분에 출발하여 대전시내를 두루 걸치고 금산을 빠져 산행장소에 도착하니 10시 20분.
   차에서 내리자 산님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서먹서먹하게 대열을 이룬 채 바로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등산 실력을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선두 그룹으로 달라붙는다. 선두에는 산악회 총무님과 몇 년 전에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는 분이 선다. 발걸음이 엄청 빠르다. 20여분을 오르자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는데 두 분은 마치 동네 뒷산을 산책하듯 오른다. 그래도 떨어질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요즘 산도 다닌다고 다니고 두 분보다야 나이도 훨씬 젊은 내가 아닌가. 죽을힘을 다해 따라 오르는데 40여분이 지나자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한다. 정말 두 분은 물도 마시고 않고 쉬지도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조금 뒤쪽에서 할아버지가 따라 오신다. 이거 큰일났다. 할아버지에게 마저 추월 당하면 창피스러운데--- 이럴 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열 번만 외치면 힘이 난다고 어느 T.V프로에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닭-도-리!! 닭-도-리!! 열심히 닭도리를 외치며 10여분을 더 올라갔지만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앞사람들은 이제 보이지도 않고 뒤에서는 할아버지가 다 따라왔다. 에라 모르겠다. 내 페이스대로 가야지. 첫 번째 조망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털썩 주저 않는다.   
   첫 번째 조망이 시작되는 지점. 땀을 식히며 가만히 앉아 있자 가느다란 바람이 나뭇잎들을 흔들고 지나간다. 가느다란 바람에 일제히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참 맑고 투명하다. 마치 빗소리 같기도 하고, 누에고치들이 일제히 뽕잎을 갈아먹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 맑고 투명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가슴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저런 아름다움을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산행을 시작하면서 아름다움을 많이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아름다움을 많이 보려고 하고 많이 느끼려고 하고--- 아름다움은 분명 찾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1시간 20분의 오름질 끝에 도착한 연석산.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웅장하다. 가슴이 시원해 옴을 느낀다. 멀리 대둔산의 바위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가야할 운장산이 부드러운 능선을 자랑하며 다가선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마이산과 마이산 주변으로 늘어선 산들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마치 조금 낮은 덕유산에 올라 온 기분이다. 아니 조망은 더 시원한 것 같다. 잠시 조망을 감상하다 바로 서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로 접어든다.
   2.8km의 능선길. 조망이 참 좋다. 산행 길의 좌측으로는 대둔산쪽 산들, 우측으로는 마이산쪽의 산들이 산행 내내 따라오면서, 높고 낮은 산들이 만들어주는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펼쳐준다. 산행을 하다보면 마음의 산과 자연의 산 두 길을 걸으며, 두 산의 풍경이 교묘히 변주됨을 느끼는데, 이 산은 시선이 자꾸만 자연의 산 쪽으로 끌린다. 그만큼 마음의 산쪽으로 시선이 돌려질 여유를 주지 않는다. 
   서봉 바로 밑은 거의 절벽이다. 죽을힘을 다해 오르자 바위와 함께 펼쳐지는 조망이 최고조에 이른다. 연석산에서 본 풍경의 연속이지만 더 높고 더 웅장하고, 몇 개의 바위가 산들과 어울려지자 운치를 한층 더한다.
   단풍철이지만 단풍의 색깔은 별 감흥이 없다. 곳곳의 기암절벽도 없다. 그렇지만 이 산에서는 사방으로 펼쳐지는 산들의 조망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도립이나 군립공원도 아닌 산. 산이 좋아 산을 찾아 온 사람들이 길을 내어 만든 산. 그 산에서 끝없이 펼쳐진 산들을 보고 있노라니 또다시 바다가 생각난다. 아직까지도 바다가 더 좋은 것인가?? 젊은 날에는 분명 산보다는 바다가 좋았었다. 무서우리만큼 푸르른 물색. 끝없이 살아 움직이는 파도소리. 인간의 한계를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수평선. 언제라도 찾아가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빛깔로 너무도 쉽게 자신을 보여주었던 바다. 그 바닷가에 누워 파도 소리에 심장 박동소리를 맞추어 보며, 삶의 일출에서부터 일몰에 대하여 더듬어 보는 일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산은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간단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는 자. 땀 흘리지 않는 자. 자신의 가슴을 쳐서 맑게 씻어내지 않는 자에게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래 시간을 거치고, 오랜 수고를 인내하고, 등짝을 흥건히 적셔 내리는 땀방울이 있어야만 산은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이제 그런 산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일까---아니면 산이 가르쳐주는 저 정직성 앞에서 삶의 진지함을 조금씩은 알아 가고 있는 것일까--- 산행이 조금씩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서봉의 바위 위에서  산들의 능선만큼이나 펼쳐지는 생각들을 간신히 추스려 중봉으로 향한다.  
  서봉과 운장산의 정상인 중봉, 동봉은 높이가 고만고만하다. 약 2km의 능선을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바치고 있다. 서봉에서의 생각들이 계속하여 능선 길을  따라온다. 그럼 산은 왜 오르는 것이지? 어떤 사람들이 오르는 것이지? 가슴속에 털어낼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 그럼 나는 어느 쪽이지? 생각이 풀리지를 않는다. 생각이 풀리지 않는데 길은 어느새 풀어져 비탈길로 내려서고 있다. 아쉽지만 마무리 짓지 못한 생각들을  배낭속에 쑤셔 넣으며  이제 하산길로 접어든다.
   내처사동으로의 하산길. 상당히 가파르다. 조망도 없다. 이쪽으로의 오름질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시간 조금 넘게 비탈길을 내려오자 하산지점에 도착한다. 하산지점에는 다섯 분이 먼저 와서 하산주를 마시고 있다. 막걸리에 생두부, 김치 한 조각. 하산주는 언제 마셔도 맛이 좋다. 땀 흘린 대가일 것이다. 가을이 한창인 운장산을 다시 돌아보며 산에게 물어 본다. 산은 왜 오르는 것인가요???

 

   "내가 오랬냐!! 니가 왔지!! 왜 나한테 물어!!"하신다.
  
 

(서봉의 바위, 측면)
 
 (서봉에서 본 마이산쪽)


 

(연석산에서 본 마이산쪽-가운데 희미하게 마이산이 보인다)
 

(서봉에서 본 연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