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산행기

위치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소재  높이 757미터
2004. 10. 3
   오늘은 화왕산이다. 억새 천지라는 곳이다. 푸른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는 새하얀 억새의 물결이 가슴을 잔뜩 부풀린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금호분기점에서 방향을 틀어 마산방면으로 내달리자 얼마가지 않아 창녕이다. 창녕에 도착하자 창녕읍 뒤쪽으로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는 화왕산이 한눈에 들어와 길 찾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7시 30분. 대전을 출발한지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밥 한줄씩을 먹이고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날씨가 으스스하다. 점퍼를 입히고 자 출발이다!!
   자하곡 매표소에서 화왕산 정상으로 향하는 2코스 등산길.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가파르지도 않고 대부분의 길이 흙으로 되어 있어 등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홍성 용봉산에서 죽을 고생을 하던 집사람도 이제 제법 잘 따라 올라온다.
   30분 정도 오르자 조망이 시작된다. 멀리 우포늪이 보이고 이름 모를 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흡사 홍성의 용봉산에서 보았음직한 바위들이 이곳에서부터는 모습을 드러내고, 제법 재미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산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그런데 표지판은 영 못믿겠다. 처음에 보았을 때 정상까지 1키로, 한참을 걷었는데 정상까지 1.1키로 어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더니 또 한참을 걸었는데 0.8키로, 그런데 조금 올라가니 바로 정상이다. 1시간 30분의 산행.
   정상. 고갯마루를 오르는데 저 앞에서 억새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아!! 은빛의 천지다. 잠시 넋을 잃는다. 이런 세상이 있다니!! 얼른 억새의 물결 속으로 뛰어 든다. 바람 봐라 바람 봐라. 아내가 소리친다. 억새를 보라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보란다. 아 그러고 보니 정말로 억새가 실어 나르는 바람이 보인다. 바람이 만지고 가는 억새의 머리결이 보인다.  무형의 바람이 억새를 만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저것이 바람이구나. 저것이 흔들림이구나. 저 흔들림이 바람을 만나 드디어 하나의 물결을 이루고, 저 바람이 흔들림을 만나 드디어 하나의 황홀한 세상을 만드는구나. 흔들려라 흔들려라 끊임없이 흔들려라------
   구릉에서 정상까지 한바퀴 죽 둘러본 후 이제 억새 숲에 푹 빠져 파전에 막걸리를 들이킨다. 아내 한잔 나 한잔, 아내 반잔 나 두잔. 이제 아내가 완전히 억새 한가운데에 누워 버린다. 정신차리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다.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산에 취했다나---
   보통의 산에 오르면 산밑에 펼쳐지는 조망에 정신을 빼앗기지만 이 산은 정상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긴다. 정상이 빛나는 산. 높은 곳이 아름다운 산. 푸른 창공을 향하여 높디높은 곳에서 몸부림치는 저 순백의 물결을 간직한 화왕산. 훅---하고 바람이 불면 죽---길을 나서는 억새들. 나도 따라서 어디론지 훌쩍 떠나고 싶다.
   정상에서는 억새뿐만이 아니라 억새의 구릉 바로 앞에 펼쳐지는 절벽 또한 장관이다. 밑에서는 감상할 수 없던 바위들이 억새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억새와 절벽을 나누는 저 부드러운 곡선의 경계. 기가 막히다. 절망 같은 저 낭떠러지가 없었다면 억새들 몸부림의 아름다움은 한층 빛을 바랬으리라---
   억새와 갈대를 구별하는 방법 중에 그 몸담음의 높이로 구별하는 법이 있다. 갈대는 낮고 습진 곳에서만 자라고 억새는 높고 바람이 심한 곳에서만 자란다. 아마 그 한계선이 400미터라고 하던가? 갈대는 절대로 높은 곳에서는 살지 못한단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억새는, 저 억새들의 집합체는 마치 우리가 도달 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어떤 정신들의 결정체들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지금 우리는 그 속으로의 여행을 하고---
   산에 취하여 하산 길을 바로 잡지 않고 빙 돌아서 내려온다. 능선을 어느 정도 타다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산을 아예 종주해 버리고 말았다. 그 덕에 모처럼 긴 산행을 하였지만 창하의 불만이 여간이 아니다. 해조는 6시간의 종주를 하여도 끄떡없다. 이제 너도 지리산을 탈 날이 멀지 않았구나 은근히 기대를 해본다.
   귀가 길에는 덤으로 우포늪에 들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철새 몇 마리 구경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우포늪이구나 한다.
   청명한 가을날. 우리 가족 모두는 취하였다. 화왕산 억새 그 진한 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