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칼바위 능선으로 간 까닭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길을 잘못 들어서이다.


설연휴의 마지막 일요일(25일) 딸아이와 산행하기로 하였으나
아침이 되자 딸은 약속을 어기고 혼자 갔다 오란다.
배신감에 섭섭해진 나는 홀로 배낭을 챙겨 떠난다.


산에서 먹으라고 장모님이 큼지막한 배와 과도를 챙겨 주시고
아내는 정상까지 천천히 갔다오라고 한다.
(내가 늦게 오면 늦잠 실컷 잘 것이라는 사실을 숨긴체...)


마치 대장정을 떠나는듯 배웅을 받고
혼자 북한산을 향해 걸으니 웬지 허허롭다.


아카데미하우스방향으로 걷는데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하다.
아카데미하우스 초입에 있는 구름위의 집은 여전하고
수유리가 처가여서 결혼전에 아내와 자주들려 밀어를 속삭이던 곳...


구름에 덮여 아스라한 여름의 북한산을 바라보며 커피마시던
그때가 10년도 훨씬 넘은 그리운 과거가 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앳된 모습의 아가씨,
자신에 차 있던 청년은 온데 간데 없고
누구라도 부정 할 수 없는 아줌마, 아저씨로 변해 있으니....


아내와도 자주 오르던 코스여서 여유롭게 오르고 있었는데
늘 가던 코스라 살짝 벗어난 길로 올랐다.
오르다 보면 다시 만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무리 올라도 낯선 풍경.
계곡은 점점 깊어지고 한참 후에야 다른길임과 예전의 코스와는
만날 수 없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이정표를 잘 보고 올 것을 하는 후회와 함께
미지의 코스를 간다는 설레임이 교차 하고
출발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이렇게 엉뚱한 결과를 낳는 구나라는
교훈을 얻었다.


산행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렇지 않을까?.....


지나온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치면서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하고 살아 왔는지,
세월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눈쌓인 골짜기를 자아를 일깨우며 오른다.


능선이 나타나고 내려가면 정릉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다시 칼바위능선쪽으로 오르니 이름에 걸맞는 바위 절벽이
나타나고 바위틈의 얼음은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지난번 속리산에서 아이젠없이 오르는 것이 진정한 산꾼이라고
농담했다가 일행들에게 눈총을 받았었는데
이 코스는 아이젠 없으면 주검이 냉동보관 될 정도여서
새삼 아이젠의 고마움을 알게 했다.


네발 달린 철조각이 주는 믿음과 행복!!!!!


칼바위 능선 정상에 서니 눈덮인 대동문의 지붕과 동장대,
파란하늘 아래 인수봉이 캘린더의 1월 사진 같다.


무거운 수동 카메라를 꺼내 심도를 깊게 하여
작가라도 되는 양 셔터를 수도 없이 눌러 댄다.


칼바위 능선에서 맞는 매서운 칼바람....
금속에 닿아 손끝에 전해오는 느낌을 차가움인지 뜨거움인지
머릿속에서도 헛갈리는 모양이다.


산성을 향해 우회 하지 않고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산성쪽에 있는 어르신이 서커스구경하는듯
아니면 사고나면 신고라도 하시려는듯 물끄러미 나를 쳐다 보고 계신다.


혀를 끌끌 차시며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하실지도 모를 일.....


위험구간을 다 통과하고 나니 팻말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 추락주의 돌아가시오 "
그 위험한 구간으로 다시 돌아 가란 말인가?


무사히 성에 올라서니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엄습한다.
오래된 돌 위에 새로 쌓인 성곽.
새돌은 네모 반듯하고 뽀얀피부색을 띠고 있으나
내눈엔 규격에 맞지 않고 검버섯처럼 이끼낀 옛돌이 더 정겹다.


길게 늘어선 성곽을 보며
무너진 산성을 복원한 노고에 감사함을 느끼고
대동문으로...


대동문 너른터에 앉아서 장모님이 넣어 주신 배를 꺼내
과도로 껍질을 벗기니 배즙이 손으로 흘러 내려 손이 얼어 터지는 듯 하고
금새 손은 담금질 하기전의 무쇠처럼 빨갛다.


미련한 나는 조금먹다 남겨도 될것을 넣어 주신 장모님 성의를
생각하면서 급하게 다 먹었다.
배즙에 젖은 손은 찬공기와 맞닿아 급냉이 돼려나 보다.
머릿속에선 이런말이 자꾸 되뇌인다.


미련한 놈, 미련한 놈.........


손을 부벼 녹인 후 장갑을 다시끼고 핑계김에 하산.


다시 아카데미하우스 코스로 하산하니
진달래 능선 보다는 사람이 훨씬적고 일찍 서두른 탓에
하산하는 사람 보다는 올라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산길 중간에 늘 들리는 무너미 샘에 가니
동굴안은 햇살을 받아 포근하고 파이프에선 연신 맑은
석간수를 쏟아 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처럼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받아 정화수처럼
돌위에 올리고 동굴을 나왔다.


처음 길을 잘 못 들었던 그곳에 다다르니 이정표가
분명하게 서있었고 방향까지 똑바로 지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 하느라고 이것을 못 보았을까?......


칼바위능선에서 울어대던 까마귀 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무엇에 홀린듯 다녀 온 칼바위 능선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하는 새해의 덕담인듯 하다.


* 겨울의 칼바위 능선은 아이젠 없이는 무리이오니 아이젠 꼭 착용 하시길...*
*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코스 입디다.*

▣ 산초스 - ㅎㅎㅎ 우리가 지난 성탄절날 김현호님과 응봉능선타고 칼바위 정상으로 하산하는데 사실 쬐끔 무섭더군요. 하도 사고가 잘나는 곳이라 ㅋㅋㅋ 경치는 좋긴하더덴...
▣ 최영근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에 칼바위능선.. 대단하시군요. 저는 여름에는 칼바위능선은 즐기지만 겨울에는 그냥 구경만.. ^^~ 글을 잘 쓰시네요.
▣ Sokong - 제가 즐겨 찾던 코스를 길을 잘못 들어 다녀 오셨군요..덕분에 좋은 코스 하나쯤 만들었으니 그 또한 행복이지요..허나 겨울의 칼바위는 조심 또 조심해야죠..언제나 즐산하시길..
▣ 북한산 - 연애시절을 그리워하심은 아직도 그 기분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겠지요. 저는 어제 경선님이 가져가신 배보다도 더큰 배 한개 달랑 넣어가지고 한남정맥 일부구간종주를 했습니다. 오늘 산행기를 대하니 수년전에 눈길 칼바위능선을 지나던 생각이 납니다. 늘 건강하시고 안전한 산행하시길 빕니다.
▣ 이수영 - 칼바위 라고 하니 안봐도 위험한 곳이라 짐작이됩니다. 그래도 위험코스를 통과하셨네요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번 합천 누럭덤을 돌아넘어려다가 겁이나서 포기하였지요. 지금 생각해도 손에 땀이...그리고 장모님이 주신 배를 다 자시느라 수고가 많으셨네요..^^
▣ 김현호 - 권경선님 안녕하세요.. 내용이 무척재미있으면서 운치있습니다 칼바위능선을 산초스님덕분에 구경하게 되었죠 사진배경으론 그만인듯..
▣ 신경수 - 권경선님 복 많이 받으셨는지요 재미있는 산행기 여전하시군요 행복한 날들 힘찬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自卿山人 - 북한산의 칼바위능선을 님의 산행기를 따라 함께 올랐습니다. 저는 진달래능선으로 백운대에 한번 올랐습니다만,정상이 한국의 산중 가장 장 생긴 산이, 북한산이었습니다. 저의 산행기에 첫번째로 글을 남기 신 권경선님, 새해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 san001 - 이번 기회에 좋은 곳 가셨네요. 칼바위정상은 주능선 최고의 전망대죠. 복많이 받으세요.
▣ 永漢 - 주검이 냉동보관 될 정도라....섬뜩합니다. 조심하면서 즐기세요.^^
▣ 김정길 - 인생길 자칫 잘 못 들면 냉동인생으로 무쳐져 살다가 가는 좋은 교훈을 또 주시는 구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