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38

낙엽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 - -

 

 

 


 J형!

 어느덧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길목에 섰습니다. 숱한 아쉬움을 남긴 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연륜(年輪)의 나이테를 또 하나 그어갑니다. 왠지 허전하고 무덤덤한 일상의 여백에 뭔가를 그려 넣고 싶어 땅 끝 두륜산(頭輪山) 품에 안기렵니다. 
 

 남녘의 산자락에는 아직도 끝물 단풍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마음이 설렙니다. 진한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몸부림치는 단풍의 향연은 한마디로 애절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맵시를 다 드러내지 못하고 말라버린 단풍잎은 안쓰러워 연민의 정이 배어듭니다.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면 왠지 서글픔에 젖어듭니다. 물론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그 의미를 되새겨보면 많은 것을 시사(示唆)해주기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무성함을 뽐내던 잎사귀들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산화(散華)하는 그 자태에 환호하고 탄성을 자아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뭔가 찡하니 와 닿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언젠가는 낙엽처럼 떨어질 것이 숙명이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과연 인생의 갈무리기에 우리는 어떤 색깔로 물들려질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혹시라도 자신의 가치를 다 발휘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얼마나 처참하고 억울하겠습니까?
 

 낙엽은 내년에 또 다른 잎새를 움틔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뚱이를 내던집니다.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여정을 달려가면서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떠나가야 진정한 삶을 살았다고 할까요. 그러므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욱 빛나게 갈고 닦는 일상을 꾸려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삶의 이치를 터득하지 못하면 결코 후회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J형!

 항구도시 목포에 둥지를 내린지 어느덧 10개월이 지나갔습니다. 낯선 곳에서 많은 것을 체득했습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뜻하지 않게 한시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는 기회가 주워줘 무척이나 더웠던 올여름 내내 햇볕에 그을리면서 동분서주하다보니 산과의 만남을 게을리 했기에 자주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자신감은 넘쳤지만 다양한 의견들이 봇물처럼 터져 감당하기 쉽지 않아 솔직히 부족함이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연마가 필요함을 실감하고 알찬 시간들로 채워나가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가급적 상궤(常軌)를 벗어나지 않는 처신으로 산적한 현안들을 무사히 마무리 짓고 나니 시원섭섭하기 그지없습니다.
 

 막바지 단풍의 향연이 펼쳐지는 두륜산은 만추의 정취를 물씬 자아내 길손의 마음을 흡족하게 적셔줍니다. 약수(藥水)로 이름난 오소재에서 오심재로 오르는 길목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면서 오르다보니 새삼스럽게 낙엽의 의미를 되새기게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남녘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상에 서니 산자락을 휘감는 시원한 바람과 으악새 노랫소리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와 옹울했던 마음을 시원스레 풀어줍니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형과 함께 오르던 그 때를 떠올리면서 추억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김해봅니다. 
 

 구름다리를 거쳐 진불암까지 내려오는 길은 위험구간이 많아 잡념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너덧 시간을 바동대면서 두륜산자락을 섭렵했습니다. 이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과의 만남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여유로움이라면 기꺼이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