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과 설잠/매월당영정]

               [五歲庵]

                                  -海左集에서-

 

구슬같은 산봉우리 對面하는 것마다 새롭고.

신령스런 하나의 기운이 어리어있네

인간세상의 길이 끊기니 가없는 폭포인데

꽃 속에서 스님은 太古의 봄이 깊었네.

  

東游하며 萬物相과 같음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明知와 一宿하니 이것이 仙人과의 인연이로다.

燈籠밑을 말없이 裵回하노니

暗暗裡에 梅月선생과 精神이 만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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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남쪽줄기 정맥이 내려와서 영흥부에 이르러 분수령이되고,

돌아서 고성에이르러 일만이천봉의 금강산이되고,

진부령에서 협곡을 지나 인제군북쪽 백여리에

바위많은 산이 골립해 있어서 아주 빼어나게 웅장

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설악산이다.

 

동쪽으로는 부상의 일륜을 바라보며,

서쪽으로는 소양강의 근원을 내려다보고

북으로는 통천의 추자령과 거리를 두고,

남으로는 정선의 태백산에 이르는데,

각각 5백여리를 헤아린다.

이는 강원도 도내의 中岳이다.

 

묘고봉은 이름을 봉황대라고 하니 석가부처님의 사리탑이이 있다.

鳳頂이라는 하나의 禪庵이 높다랗게 그 안에 竝立하고 있다.

암자로부터 3리 남짓 내려오면 다시 정신이 일어나

따로 건곤(乾坤)이 열리니, 天眞한 觀音峰이 하늘 위로 높이 솟았는데,

뒤에는 七星의 屛障이 있고, 앞으로는 삼태멀리서 朝賀하니 사자암이 있다.

 

오른쪽은 움크려서 萬景臺가 되니 羅漢峰이요,

왼쪽은 받들어서 天王門이 열리니 연화가 반개한 것과 방불하다.

그가운데 하나의 가느다란 土脈이 나타나니,금모래가 당에 깔리고,

甘露와 같은 샘이 솟는다.

 

신라때 자장법사는 설산에서 구법한 일을 사모하여 선실을 짓고 주석하였는데,

친히 관음보살의 진신을 보고,이름을 걸기를 觀音庵이라고 하였다.

 

고려국 雪頂조사 때는 5세된 조카의 관음보살 염불로

오세동자는 견성득도하였다는  설화가 서려있고,

 

조선 세조때 김시습이 세상을 피하여 머리를 깍고 승복을 입고는

스스로 세상을 오시한 것이 40여년이 된다.

 

고종원년(1864년)에 남호율사가 대장경2부를  해인사에서 인출하여

하나는 오대산 상원사에 소장하고, 한부 50궤짝은 이 암자에 봉안하였다.

 

서기 1888년에, 白下禪師는 암자의 모습이 조잔한 것을 개탄하여

먼저 자신의 재산을 베풀고 경향의 단신에게 모연구재하여

이층전각인 응진전 여섯 칸을 준공하였으며 십륙나한과

사성팔부의 정화등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그리고 대방 24칸과 육각루1개소를  세우려고 

큰  뜻을 세웠으나,

마침 재정이 바낙나서

경기도 양주군 수락산 학도암에 가서

孔方(공방/엽전을말함)을

몰래 주조하였다.

 

그런데 그 범과가 발각되어  몇달

구인을 당하고는 몇달만에

풀려나 방장으로 돌아왔으나

그 여독으로 운명을 마쳤다.

 

아아 ,백하선사라는 분은 곧 불법을 위하여

자신을 망각한 분이라고 하겠으며,

伽籃(가람)의 재건을 위하여

殉敎(순교)한 분이라고 하겠다.

 

인공선사는 그뒤의 일을 계승하여  수년만에 낙성식을 가졌으며,

뒤에 아미타만일회를 창설하셨다.  아침저녁으로 정진하여

정업수련하여 서방의

뜻을 구한 것이 모두 18년이 되었다.

 

명치44년(1911년)7월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사찰령이

반포된후로는 禪宗이 默言하는 집으로

변작되어 서래한 달마의 법으로 참선하는 것이

침투하여 동으로 전하여 태고조사의 觀이 되었다.

 

<오세암사적>-설화산인 무진자 기록

                  [ 설봉 김도윤스님의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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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후로  절터만이 남아있던것을  도윤스님께서

6.25전쟁이 끝난후 60년대에 봉정암과 오세암에서

참선정진하시며 불사를 일으키신다.

 

백담사와 봉정암 과 오세암을 오가시며...

불사를 일으키신지가 어언 40여년이나

되니  내설악 불교성지의

산 증인으로 현재는

영시암의 회주로

계시다.

 

님의 말씀대로 "일궈놓으면 떠난다"

이제 영시암을 일궈놓으시면

어데로 떠나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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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에서 내려오는  어느마루금에 이르니

오세암 스님의 불경소리가 들린다.

여승의 반야심경 독송소리인듯

자꾸 끌려들어간다.

 

경내에 들어서서 공양간앞에 배낭을 내려놓고는

물을 마시러 공양간에 들어서니 아주 깨끗한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쉬고있노라니...보살인듯한  낯이 익은듯한

한 여인이 나타난다. 아주 흰얼굴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한스님이 종무실에 온다.

 

달력을 하나얻고는

오세동자의 얼굴이 보이는 조그만누옥의 암자를

뒤로한채...관음보전에서 등산화 끈을 푼다.

 

그리고는 독경을 하시는 스님의 옆자리로가서

삼배를 올린다. 어제와 오늘의 이 소풍길을 무사히

마무리하게 하여주심을 삼가 인사드립니다...._()_

 

이내 아까보았던 보살이 문가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머뭇하다가  "식구들을 올리고 싶은데요"

아 네~ 카드를 내민다. " 일인 일불사 하세요"

 

<一人一佛> 하지요

그러면 4인4불하는건데,

2년에걸쳐 불사를 하면된다고

이 보살은 일러주며,

소망을 적으란다.

 

나는 왜 선뜻 대답을 했는지

130여년 만에 시공을 뛰어넘는

백하(白下)선사와 나

백하(白霞)가 만나는 날이다.

 

이 緣이 있게 하여주신  설봉스님

아직까지도 나는 영시암의 회주스님을

뵙지못하고 행을 먼져하는 참으로 우연인지는

 

모르나  이날 저녁때 나는 설봉스님으로부터

스님의 편저인 책자를 받는데 이책속에서

130여년전의 백하선사를 만난다.

 

이렇게 아주우연의 연을 이어놓고는

서둘러 하산을 서두른다. 

동행하였던 풍기친구는

서둘러 귀향을 하기위해

내려갔는가 보다.

 

영시암에도착하여 회주스님을

뵈오니 많이 쇠잔해보이신다

아마도 불사하시느라

많이 힘드시는가보다.

 

여러이야기를 나누며

스님으로부터 책한권을 받아들으니

바로 이책에서 백하선사를

만난다.

아까 오세암의 우연한 緣이 이어지는

130년의 時空을 뛰어넘는

緣을 확인한다.

 

영시암 본당 요사에서

2006년08월14일

하현달아래서

白霞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