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끝자락.
석골사 에서
운문산 가는 산길에는
초록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오는 봄을 시샘한 듯
우에 지방에는
며칠 전에도 눈 님이 왔다던데
여기
내 서있는 이곳에는 바람조차 훈풍입니다.
길은 흙먼지에 풀썩이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지만
나는
산 오름이 좋습니다.
깊은 계곡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산 오름이 좋습니다.
산모퉁이를 돌다
갑자기 마주치는 이름 없는
야생화 한 떨기가 나를 신비스럽게 합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득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에 깜짝 놀라는
나도 재미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새끼 다람쥐라도 한 마리 만나면 또, 어떻고요.
그놈이 호기심 어린 눈방울을 굴리며
몇 발자국만 나를 따라와 주어도
나는
참 착한 남자가 되어 버립니다.
시원한 한 줄기 산바람이
땀에 젖은 이 몸뚱이를 식혀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산 오름이 좋습니다.
운문산에서
가지산 가는 길에 시야가 트였습니다.
하나도 같을 것이 없는
하늘과 맞닿은 마루 금들은
그 선이 참이 나도 부드럽습니다.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라 나를 유혹합니다.
저자거리에서 사람의 언어들이 들려옵니다.
고개를 크게 흔들어 도리질을 칩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포근함으로 가슴을 채우겠습니다.
사람의 언어들은 잊어버리겠습니다.
가지산에서
호박소 내리는 길에 마음만 서두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좁은 길옆에 늘어선
산 죽들은 자꾸만 나를 붙잡습니다.
허리를
어깨를 부여잡으며 산에서 살라합니다.
자기들처럼 산에 뿌리를 내리라 합니다.
아,
나도 산 죽이 되고 싶습니다.
밤의 찬이슬을
먹고서도 살 수 있는 자연이 되고 싶습니다.
어둠을 지나가는 한 줄기 산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자연이고 싶습니다.
하늘에 별이 떴습니다.
그 별이 아름답게 가슴에 부딪칩니다.
이 밤에
나는 행복합니다.
.
천황산 오르는 길에
어느 바람에 떨어지고
누구의 발길에 밟혔는지
분홍색 참꽃 한 송이가
화석처럼 바윗돌에 붙어있습니다.
산 오름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아주 세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내가
화석이 되어버린 그 꽃의 영혼을 바람에 날려 보냅니다.
천황산에 오르니 재약산이 눈앞입니다.
가만히 둘러보니
산에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낮은 관목과 억새풀의 천국입니다.
생소하긴 하지만 그 풍광 또한 싫지만은 않습니다.
산정에 서서
깊게 숨을 들이마십니다.
가슴이 시원한 게 기분 또한 아주 좋습니다.
평원을 가로질러 재약산을 갑니다.
억새풀 사이로 여러 갈래 길이 나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든지
종착지는 한곳이기에 그리 가슴 졸일 일도 없습니다.
해도 중천이기에 마음 또한 느긋합니다.
누릴 수 있는 이런 여유가 있다는 게 나를 즐겁게 합니다.
나를 살고싶게 합니다.
재약산은 바위산입니다.
평원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오름이 시작되기에 숨이 찹니다.
오름 속에는 열정이 있습니다.
숨참 속에는 희열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삶에 애착과 삶의 목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을 죽으면서도
매일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나는
산에서 인생을 배워 봅니다.
표충사를 날 머리로 산행을 끝냅니다.
오늘도 하늘엔 별이 떴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별은 간 곳이 없습니다.
한동안은...
그리움만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갰습니다.
                     

                               2006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