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탓으로 산행예정은 펑크가 나고

모처럼 일이 없는 주말을 맞아 육십령에서 영취산으로

또 장안산으로 하여 호남,금북정맥의 들머리를 살펴볼겸 호산산악회의 일원으로

무박산행을 나선다

 

폭설은 아니어도 살짝 스치기만 하였건만

한밤의 대진고속도로는 곳곳에 눈의 흔적이 남아있고

두어시경 덕유산휴게소에는 상당한 눈도 내리고

늘 산행에 나서는 분들의 써포터만 하다가 오랫만에 나서는 새벽산행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버스꽁무니가 두어차례 돌아가는 것을 느끼며 올라선 육십령휴게소

눈은 오는듯 마는듯 하지만 어둠속의 대간은 쌓여있는 눈길의 초입을 보여주며

오늘만큼은 '어서오라'는 인사를 아니하는듯 하다

 

아이젠,스페츠,강도모자까지^^

무장을 하고 렌턴을 켜니 어렵쇼! 불이 안들어온다!ㅠㅠ

총무님이 보고 '내것을 드릴까요?' 허허! 창피스럽기도 하고.. 비상용을 손전등을 비추며

어둠속의 대간길을 든다

 

쌓여있는 눈은 습설이 아니라 푸실푸실한 눈이라서

영 다져지지 않고 아이젠까지 한 발을 자꾸만 미끄러지게 하고

춥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내리는 눈발은 동화속같은 눈길을 가면서도 자꾸만 걱정이 되게하고

그래도 환상에서나 볼 수 있는 설경은 깃대봉을 오르는 힘듦을 덜어주고

 

깃대봉 마루에 서있는 안내판도

눈에 덮혀 보이지 않고 왼편으로 내려다보이는 무심한 불빛들이 우리사는 세상이 바로 밑에 있음을 얘기하고

자그마한 오르내림은 미끄러움과 겹쳐 길가는 이의 걸음을 더디게만 하고..

 

비상용 손전등도 꺼진지 오래..

오름길에 보조가 맞지않아 홀로 떨어진지도 얼마되지 않아, 저 앞에도 불빛이 보이고 저 뒤에도 불빛은 보이지만

잠시동안 아무도 없는 완벽한 어둠속에 혼자서서 4년전 이 길을 걷던날을 돌아다 본다

후배직원,그 부인 그리고 친구와 함께 끙끙거리며 오르던 이 길을 어쩌다 지금은 잠시나마

어둠속에 홀로 남아 서 있는가.. 뒤에 오는 사람이 놀랠까봐 담배한대를 피워문다..

 

아니나 다를까 어둠속의 나를 보며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고

송대장이 비상용렌턴을 꺼내준다 이미 안경도 벗어버린 터 희미하던 산길이 밝아지며 조금은 힘이 나는듯 하다^^

전망대바위 오름길인가.. 전에없던 노란색 표지가 눈이띈다 육십령 6km 와~ 많이 왔다^^

 

조금씩 눈길이 밝아지며 지리산록에 여명이 물든다

설화사이로 피어오르는 안개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지곤 하는 저 산록은 '우리의 기상이 저기로부터' 참 아름답다!

옹기종기한 암봉들을 지나며 영취산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지만 워낙에 황소걸음 인지라 쉽게 가까워지질 않고

몇차례의 오름길을 더 걷고서야 분기점! 영취산에 올랐다

 

스텐으로 세운 산정표지와 금,호남정맥이 갈리는 표지와 푸르른 하늘!

정면으로는 백운산이 그 위용을 뽐내고 오른편에는 장안산이 어서오라고 손짓하는 듯 하다

몇주전 소청에서 엉덩이 스키를 타다가 혼이 난 후로는 내림길도 영 공포심이 생겨서 '부들부들'ㅠㅠㅠ

차가 언제 왔었는지 모를 정도로 눈에 묻혀있는 무령고개에 내려선다 잠깐의 식사를 하고

곁눈으로만 쳐다보던 금,호남정맥으로 들어선다

 

장안산 2.7km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오름길은 만만치 않았고

가며쉬며 쉬며가는 걸음으로 한시간반만에 만져본 정상석은 봄 햇살을 받아 따스함까지 느낄 수 있었고

오른편 북쪽으로 휘여져 나가는 산줄기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이 길을 다 이어가서 백운산까지 갈 수 있을까...

아직 대간도 졸업하지 못한 나로서는 쉽게 대답이 되질않고..

 

마치 봄날같은 햇볕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산을 서두른다

일부는 정맥을 타고가고, 일부는 범연동 내림길로.. 내림길을 가는 사람들을 따라 내려오는 마음은

정맥길을 따라 푸른하늘을 간다...

 

얼어붙어 있는 길위에 푸석눈이 와 있으니 미끄럽기가 대단하고

범연동으로 내려서는 길 또한 희방사 내림길에 비길만하고 조심조심하며 계곡을 막아 댐을 만들고 있는 마을로

우리사는 세상으로 돌아온다. 하얀 이불을 깔아놓은듯 포근했던 산허리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