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 내리던 날 지리의 한자락에서
-언제: 2006.07.14.
-어디를: 삼신봉-상불재-쌍계사.
-누구와: 명산 산악회에서 새벽님과 포도알.




아침에 버스에 오르자 마자 잠을 자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오히려 잠은 오지 않는다.
어제 심야근무를 마치고 왔으니 어떻게든 눈을 붙이고 싶었으나……
오늘 아침 날씨도 오늘이라고 예외일수는 없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는 마치 울고 싶은 이들에게 뺨이라도
한대 맞으면 금방 울음을 터 뜨일 것 같은 그런 날씨다.

계속된 장마로 인하여 오늘 아니면 또 다시 언제 지리에 갈지 몰라
무리해서 산행을 하기로 하지만 의외로 산악회 회원들은 보이지 않고
썰렁한 빈자리만이 넘쳐나고 있어 왠지 미안하기만 하다.
원래 산 꾼이 비가 온다고 산에 가지 않겠느냐 마는 주위 사람들의 보는
눈이 여간 따갑게 느껴지기도 하구나.





어떻게 어렵게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일어나 보니 겨우 20여분을 자고서야 눈을 떴다.
내가 지리산 산행을 산악회를 이용할 때면 항상 그랬듯이
나름대로 또 하나의 코스를 만들며 산행하는 기쁨이 있다.
시간이 된다면 봉명산장에서 또 다른 능선을 타고 내려 가리라……





10시40분에 시작된 산행이 잔뜩 물먹은 등로는 물결에 쓸린 돌부리며
태풍에 밀린 주변 잡목과 어수선하게 뻗쳐 힘없이 부러져 나뒹구는
나뭇가지의 모습들이 산행에 장애를 일으키곤 한다.
좌측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금방이라도 누구를 삼킬듯한 포말음을 내고 있다.

수 없이 다녀간 이 길을 잠시 그들과 함께하려고 기다리다가
언제쯤 올지 몰라 그냥 새벽님과 함께 삼신봉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힘찬 오름을 시작한다. 날씨가 습하다 보니 온 몸은 금방 땀으로 젖어있고
어차피 삼신봉까지 오름길에서 주변의 모습도 또한 볼거리가 없으므로
사진 찍을 염려는 없어 산행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다.







<삼신봉에서>
은근히 조망을 기대했던 자신이 착각해도 아주 잘못된 착각이었다.
삼신봉 주변으로 펼쳐지는 주변 산세는 짙은 안개와 운무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되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다.
차라리 산행하는 동안이라도 제발 비만 오지 않았으며 하는 바램이로다.
함께하는 일행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마음으로 열어 본 주변의 조망을
살피는데 일순간에 비쳐주는 청학동의 모습과 외삼신봉을 타고 흐르는
청학의 구름은 거림골에 쏟아 내리고 때로는 내 삼삼신봉을 타고 넘어
단천골로 향하여 흩어져 날리 운다.







삼신봉에서 회원들 오기를 기다려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쌍계사 향하는
길로 나선다. 고도가 1000m을 넘고 보니 잘 정비된 등로인데도 앞서가는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잡목에 물먹은 습기를 빨아 올리며 산행은 이어지고
잠시 삼신산정에서 휴식을 취하며 또 다시 주변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윽고 임진왜란 당시 송정 하수일 선생님이 이곳 송정굴에서
피난 생활을 했다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비가 마침 송정굴이 있어
의외로 안성맞춤이 된 것 같았다.





잠시 지체 한 후 내 갈 길이 바쁠 것 같아 먼저 자리를 뜨고 만다.
그 뒤로 새벽님과 포도알님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비는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면서
쇠통바위에 왔지만 주변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바위가 미끄러워
올라 갈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 차라리 이런 날일수록 오히려 산행속도가
빨라 의외로 또 다른 코스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며
상불재를 향하여 간다.





<상불재에서>
상불재 거의 다 와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건지 주 등산로에 멧돼지 4마리가 서성이고 있다가 그들을
마주보고는 멈칫하는 사이에 3마리는 쌍계사쪽으로 나머지 한 마리는
청학동으로 헤어져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으니 어쩌나……
잠시 이곳에서 새벽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이제 고생길로 들어서야 하는 그들에게 싫거든 쌍계사 길로 가기를
권하는데 그들도 기꺼이 나를 따르겠단다. 잡목과 산죽으로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나갈 때 몇 발짝 띄지도 못하고 이미 옷은 젖어있었다.







<새로운능선 즈려밟기>
이따금씩 그들이 잘 따라오는가 하며 기다리는 사이 갑자기 고도를 낮춘다.
길은 생각 보다 잘 발달되어 있었고 고도 900m를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안개비는 그치는가 싶었지만 이미 등산화까지 젖어 있었다.
이윽고 860안부에서 좌측의 난 길을 내원골로 가는 길이 확연히 나 있다.
잠시 봉의 정상 이곳이 혜일봉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능선만 따라 내려 오다가 우측으로 불일암의 지붕이 시야로 들어 온다.
우측 계곡 어디로 빠져야 불일폭포 위 전망대를 갈 수 있을 텐데……
계곡을 건너도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냥 사면을 치고 오르니 불일암으로 향하는 길이 쉽게 들어 온다.
대밭 사이로 불일폭포 위 전망대를 향하여 간다.
위에서 바라 본 폭포는 또 다른 감명을 준다.
저 아래의 전망대가 마치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단배를 연상시킨다.
왠 지리산에 돛단배가 떠 있지……







<봉명산방에서>
소설가 정비석씨가 이름을 진 봉명산방에서 잠시 쉬기로 하였다.
변규화씨가 이곳에서 20년 이상 터 닦고 살며 국토 모양인 연못인 半島池와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소망탑을 쌓아 뭇 산객들의 무사 안전 산행의
소원을 빌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작은 돌 하나를 올려 마음에 간직한 소망을 빌어 본다.
반도지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원추리를 스쳐 지나치기 아쉬워하면서







<산행을 마치면서>
적당한 날씨와 즐거운 산행이 미안할 정도로 곳곳에
장마 비의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집도. 길도. 사람도. 다리도……
모두를 비가 삼켜 버렸다.
무너진 하늘을 올려 다 볼 힘마저 잃어버렸을 수재민들께
위로의 말씀을 올리며 산행기를 마칩니다.
부디 힘내시기 바랍니다.
2006. 07.20.
청산 전 치 옥 씀.


<일정정리>
10:40 산행시작(청학동)
11:05 삼신천(1080)
11:20~11:40 삼신봉(1284)
12:00 삼신산정(1354.7)
12:20~12:45 송정굴에서 점심.
12:55 쇠통바위(1240)
13:10 폐 헬기장 이정표(세석10.7/쌍계사5.7/삼신봉3.2)
13:30 상불재(1095)
13:55 860안부(좌: 내원골/우측: 상불재 가는 길)
14:30~15:00 불일암과 불일폭포에서.
15:10 봉명산장에서.
15:40 쌍계사(산행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