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37

찔레꽃 향기에 취해버린 어느 오후의 단상(斷想)  

 

 


 
 “형님! 멋진 곳에 다녀오셨더군요. 저도 한번 데려가 주십시오” 
 

 지난주에 신안 비금도에 있는 ♡하트 해수욕장과 선왕산(仙旺山)을 소개했더니 평소에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지내온 「나는 산으로 간다」 저자(著者)께서 가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출발 전날 강풍주의보가 내려 산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음대로 다녀올 수 없는 것이 바로 섬(島) 나들이다. 
 

 한동안 나누지 못했던 정담(情談)을 나눌 것을 잔뜩 기대했는데 허사가 되어 버렸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유달산을 다녀올까 하다가 애달픈 전설이 서려있는 목포의 팔경(八景) 중에 하나인 갓바위를 둘러보고 싶어 산책을 나서듯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갓바위산은 영산강 하구언에 인접된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으로 쳐주지 않는지 별다른 산행정보가 없는 실정이다. 
 

 갓바위산자락 친수(親水)구역에는 예향(藝鄕) 목포의 혼(魂)을 한꺼번에 섭렵할 수 있는 문예시설들이 밀집하고 있다. ‘목포 문화예술회관’과 개관 1년 만에 백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다녀간 ‘자연사 박물관’, 수많은 수석(壽石)과 조개껍질 등이 전시된 ‘향토문화관’, 해저보물로 소문난 송원대(宋元代)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해양유물전시관’과 남종화(南宗畵)의 대가(大家)이신 ‘남농(南農)기념관’을 비롯해서, 개관 준비가 한창인 ‘한국 산업도자전시관’ 등이 한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포 신도시로 개발된 하당지구 해안도로 마지막 지점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범상치 않게 생긴 암봉이 길손을 반겨준다. 도심에 인접되어 소음을 멀리하지 못해 다소 정감(情感)이 떨어지지만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보드라운 산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목포의 눈물’ 본향(本鄕)인 유달산과 삼학도가 건너다보이고 전라도 사람들의 애환이 녹아든 영산강이 바다와 첫 만남을 이룬 갓바위 앞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걸어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엊그제 끝난 지방선거 결과를 화젯거리로 얘기꽃을 피운다. 어느 후보가 어떻고 어느 정당이 어쩌고저쩌고 - - -  무심코 듣고 가기에는 왠지 부담스러울 만큼 논쟁이 이어진다. 우리 속담(俗談)에 “발 없는 말(言)이 천리 간다”는 말이 있다. 입소문은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말(言)이란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고 관계를 맺어야하는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요체(要諦)이다. 누구나 쉽게 하는 것이 말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이 말이다. 무심코 내뱉든 한마디 때문에 곤혹스러움을 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삼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꾸려가는 첩경임을 알고 있음에도 잘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울 뿐이다. 
 

 그렇지만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친분이 있는 스님께서 지리산 암자에서 묵언(黙言) 정진하고 계실 때 필담(筆談)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뵙기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다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억누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실감했었다. 그래서 “침묵은 금(金)이다”라고 했는가보다. 
 

 바다를 조망하며 바위를 오르는 구간이 너무 짧아 아쉽지만 그런대로 흥취를 느낄 수 있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해송들이 서로 시샘하듯 새순을 돋아내면서 뿜어내는 그윽한 솔향기가 편안함을 자아낸다. 다만 왕복(往復) 십리(十里)밖에 되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서운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듯 번거로운 일상에서 일어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괜찮은 것 같다. 
 

 “복(福)은 겸손하고 맑은데서 생기고, 덕(德)은 겸손하고 사양하는데서 생긴다. 도(道)는 편안하고 고요한데서 생기고, 생명(生命)은 화창한데서 생긴다. 근심은 욕심이 많은데서 생기고, 재앙(災殃)은 탐욕이 많은데서 생긴다. 그러므로 눈(眼)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입(口)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결점을 말하지 말라“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句節)을 떠올리면서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향기에 한껏 취해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