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골 산행기.

 

-언제: 2005.08.06.

-어디를: 성삼재- 노고단- 문수대- 노루목- 용수골- 연곡사.

-누구와: 나 홀로.

 

   <노루오줌>

 

 

   <산오이풀>

 

   <어수리>

 

안내 산악회의 산행코스가 그렇듯이 성삼재에서 연곡사까지 산행구간을 6시간 주어지고 각자가 산행을 하게 되어있다. 여름이라 피아골 계곡에서 시원한 족탕의 기회를 준다는 산악 대장의 말씀이 있었다. 자신은 항상 그랬듯이 이날도 코스변경으로 산행을 하고 싶었다. 10시25분 성삼재에서 시작된 산행은 노고단 KBS 송신탑 근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문수대를 들러 용수암골로 내려갈까? 아니면 불무장등에서 무착대를 찍고 연곡사로 내려갈까……

 

 

 

     <노고단을 오르면서 종석대(상)/형제봉 능선과 화엄사계곡(아래)

 

그러나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노고단 탐방시간과 맞물려 그쪽 사람들을 의식한 나는 송신소담 밑의 정상의 길을 버리고 곧바로 내려서고 있었으니 이게 사서 고생한다고 할까? 초원의 노고단 길의 풀섶을 헤치며 서쪽의 종석대와 남쪽으로 내리 뻗은 형제봉능선을 마주보며 원추리의 꽃밭을 감상 할 여유를 뿌리치고 자신의 몸을 숲 속으로 숨기면서 미련스런 산행은 시작된다.

 

   <벌개미취>

 

 

작년 겨울 한번쯤 와 봤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믿고(그때는 돼지령에서 문수대) 초원의 발자국을 따라 나선 길은 이내 흔적을 감추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고로쇠의 수액 길을 찾아 나서고 산죽 밭을 만나면 산죽을 헤치고 쓰러진 고목을 우회하여 계곡의 비탈길을 택해 나갔을 때는 이미 되 돌아 올 수 없는 1250고지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이윽고 커다란 플라스틱의 고로쇠통을 봤는데도 주위의 발자국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능선에서 만난 버섯>

 

    <문수대 삼거리>

 

어느 순간 자신은 혼자라는 두려움이 찾아온 것이다. 산행하면서 한 두번 겪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때만큼이나 별별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나는 혹시 곰돌이의 출현이 또는 멧돼지 아니면 자신의 극한상황 발생 등 등…… 내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웍 웍 하며 소리를 질러 본다. 좌측 능선으로 붙어야 된다는 판단아래 고도를 높이면서 동쪽사면을 타는데 이윽고 1280 능선의 희미한 길을 만난다(처음에는 이 길이 질매재에서 올라오는 능선으로 착각 했음) 희미한 능선길을 따라 고도를 올리며 1400고지에 가서 드디어 내가 찾고자 하는 문수대 길과 합류한다. 무려 1시간 10여분을 쓸데없이 소비 했으니 찾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답답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다시 찾은 문수대>

 

   <왕시루봉을 바라보며>

 

-다시 찾은 문수대.

잘 다듬어진 문수대 코스는 몇 번의 너덜 길과 겨울에 찾은 흔적의 풍경들이 이내 낮 설지는 않게 보였다. 결국 20~30분이면 찾을 문수대를 무려 1시간 20여분을 소비하고 찾았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양쪽 돌담 위에 걸려있는

출입금지 표식기는 지금도 산객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을 모양이지만 이내 문수대로 들어서면서 혹시 몰라 스님을 불러본다. 아마 출타 중이신 모양이지만 가지런히도 정렬된 채소밭에는 벌레 먹은 열 무가 심어져 있으며 떨어지는 석간수 한잔에 남쪽의 풍광을 살피며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난다.

 

   <돼지령에서 왕시루봉을>

 

   <임걸령 샘터를>

 

고도계의 시간은 벌써 12시30분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용수암골로 내려가는 시간이 빠듯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그러면 그렇지 결국 질매재능선의 삼거리에 닿는 것을 보고 질매재로 내려갈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며 주 능선을 향하여 나간다. 능선에 올라 보니 갑자기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려올 것만 같았다.

 

   <노루목에서>

 

 

    <용수암골의 상류>

 

오후 4시30분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 때문에 바빠지기만 한다.

임걸령 샘터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갈 길 바쁜 나를 산님들이 쉬어가라 손짓 한다. 솔직히 배도 고프고 성의야 고맙지만 어쩔 수 없었다. 14:00 노루목에 들어서야 가져온 점심을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으면서도 어디로 내려가야 할까 하다가 결국 용수골 들머리로 몸을 숨긴다.

 

 

 

 

   <계곡의 합수점:고도 1010고지>

 

용수암골은 2년 전에 집사람과 함께한 경험이 있길래 낯설지 않은 코스이다.

그때 3월이었는데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몇 번이고 넘어지는 과정에서 어렵사리 삼도봉으로 올랐었다. 이제 그 길을 나 혼자 그때의 추억을 더듬으며 길을 걷고 있다. 그때와는 아주 딴판으로 길은 선명하게 잘 나있었으며 수량이 풍부하여 계곡의 상류부터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과 계절이 달라 녹음이 짙게 드리워 열린 하늘을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가느다랗게 늘어진 실 폭포 중간에 피어있는 이끼류에서 때묻지 않은 이곳 세계를 경험한다는 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유독이 쓰러진 고목들이 다른 계곡에 비해 많은 것은 그만큼 숲이 우거져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되며 힘찬 물줄기가 이어 진가 싶더니 이내 작은 지류로 형성되는 가냘픈 물줄기는 돌 병풍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양이 부채 살을 엮어 만들어낸 모습의 형상이며 사이사이로 자란 푸른 이끼는 자연이 주는 생동감 그 자체이다. 나 혼자만의 신선이 되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더욱더 서둘러야 될 것 같은 모양이다. 결국 미끄러운 이끼 낀 너덜길에서 여지없이 넘어지고 만다. 왼손에 쥔 디카를 놓지 않으려고 끝까지 잡고 있으면서 엄지 손가락과 손바닥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다행히 디카는 두 군데 기스가 났지만 작동하는 데는 이상 없었다.

 

   <피아골산장>

 

    <피아골의 구계곡 폭포에서>

 

-용수암은 어디인가.   

1000고지쯤 왔을 때 용수암은 어디쯤 일까 하고 생각을 해 본다. 그때도 결국 용수암을 찾지 못했는데 오늘도 준비하지 못해 결국 용수암을 보지 못하고 가는 걸까. 주위의 바위들을 바라보며 혹시 저게 용수암이 아닌가 하고 계곡 중간에 놓여있는 바위를 바라 본다. 그러는 사이 계곡 합수점을 지나 불로교를 지나면서 갑자기 쏟아지는 게릴라성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산장을 향하여 뛰어간다. 산장은 몇몇 사람들이 처마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고 함선생님은 인사를 드려도 못들은 체 하시고, 내린 비를 언제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비를 맞으며 내 갈 길을 간다.

 

 

 

   <피아골의 모습>

 

부지런히 내려가는 위치인 표고막터에서 마지막 일행들을 보고 안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 보다 늦는 일행이 있다는 위안을 받으며 땀과 비로 흠뻑 젖은 몸을 씻기 위하여 계곡 속으로 빠져 들어가 조금 전의 시커먼 하늘빛을 바라 보면서 문수대를 찾아 헤매는 자신을 떠 올리며 산행기를 마친다.

 

                              2005. 08.10.

 

                                   청 산 전 치 옥 씀.

 

-일정정리.

10:25 산행시작(성삼재)

10:53 노고단 산장

11:10 KBS 송신탑.

11:54 1280 능선의 희미한 길

12:18 문수대 길 합류(1400)

12:30 문수대(1335)

12:50 삼거리1295(문수대/돼지령/질매재)

13:03 주능선(1370)

14:00~14:15 노루목(1405)

15:14 용수암골 실폭포(1145)

15:21 계곡 합수점(1010)

15:40 불로교(880)

15:50 피아골 산장(825)

16:43 산행종료(직전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