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아름다운 설경과 매서운 추위 - 진정한 겨울을 맛보다

1. 일시 : 2004. 1. 20(화) ~ 21(수)
2. 여행요약
    <20일> 출발(11:10) → 칠곡IC(11:35) → 영주IC(12:40) → 태백(14:20) → 몰운대(16:00) → 정선(16:55)
               → 진부 가는길에 저녁(18:00) → 진부도착 1박(19:00)
    <20일> 기상(08:00) → 진부 출발(09:00) → 월정사(10:00) → 월정사 출발(10:30) → 상원사(11:00) →
               등산시작(11:15) → 적멸보궁(12:00) → 비로봉(13:15) → 상원사(14:40) → 삼양목장(15:40) →
               횡계에서 식사(16:30) → 영덕 도착(8:50)
    <참고> 이동시간은 대부분 눈길, 빙판길에 따른 거북이 운행이었음
    <기온> -18도 (체감온도 -30도)


<첫쨋날>


대구의 겨울은 영 겨울 답지 않다. 눈도 한두 번 흩날리다 말고, 동장군 역시 영하의 기온이 두어번 있었을 뿐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예전 시골에서 클 때 살을 애는 듯한 추위은 다 어디갔노하며 투정썩인 말도 해보고, 이젠 우리나라에선 두툼한 겨울옷이나 목도리 장갑 이런 겨울용품 장사는 망하지 않겠냐며 걱정썩인 말도 해보았었다. 그러나 강원도에서 그런 투정과 걱정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몰운대의 500년 된 노송


처음 오대산에 갔던게 92년 이었으니 벌써 13년전이다. 기차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텐트까지 울러 메고, 오대산, 오죽헌, 경포대로 다녔던 3박4일의 여름휴가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 월정사에서 봤던 팔각구층석탑의 아름다움에 우리의 문화유적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깊이 느꼈으며, 텐트까지 직접 울러메고 다니던 그 씩씩하고 맹랑한 여행도 이듬해 차가 생기므로 마지막이 되었었다. 아련하고도 아름다운 13년전의 추억을 가지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강원도로 향했다.
곧장 오대산으로 향하기엔 너무 싱거울 것 같아 정선 화암8경이 있는 소금강을 지나는 424번 지방도로 길을 잡고, 느긋한 마음으로 11시가 지나 집을 나섰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며, 내일은 기온이 더 내려 간다하니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중앙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려 영주IC로 빠져 나오자 벌써 대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하얀 소백산이 우뚝 서서 겨울 위용을 맘껏 뽐내고 있다. 점점 위쪽으로 올라가자, 며칠전에 내린 강원도 폭설로 길마저 눈길이다. 태백을 지나, 424번 지방도로 들어서자 지나치는 차도 거의 없고, 눈위에 흙으로 덮어 두었지만 급하게 브레이크 밟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조심 간다. 긴장하고 가면서도, 하얀 겨울 풍경들이 너무나 좋다. 맘껏 눈에 넣는다.








▲소금강 절경


화암팔경은 화암약수, 거북바위, 용마소, 화암동굴, 화표주,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을 일컸는데, 그중 몰운대를 찾았다. 화암팔경중 제7경인 몰운대는 소금강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눈에 푹푹 발이 빠지는 비탈길을 200m 정도 넘어서자, 절벽 끝에 5백년이 넘었다는 노송이 외로이 우리를 반긴다. 그 절벽 아래로 수백명이 쉴 수 있는 넓은 반석이 있어 여름이면 소풍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명희를 세워두고 좋은 각도 찾아 사진을 찍기위해 절벽끝에 서고 보니 아찔하다. 명희야, 조금 더 뒤로, 조금 더 뒤로 하고 싶지만 그런 흔한 농담 조차 나오지 않는다.
몰운대의 깎아 세운 듯한 절벽들이 소금강으로 계속 이어진다. 소금강은 화암팔경중 제6경으로서 정선군 동면 화암1리에서 몰운 1리까지 4km구간에 걸쳐 기암 절벽들이 이어지는데, 그 기묘하고 장엄한 형상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하여 소금강이라 이름 붙여진 명승지이다. 사모관대바위, 족두리바위, 삼형제바위등 빼어난 절경들이 많으나, 추운 날씨에 하나하나 집어가며 보진 못하고, 차로 휭하니 지나친다. 백설에 둘러 쌓인 기암 절벽과 굽이 굽이 계곡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 같이 정겹다.
정선을 조금지나 산채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숙박할 진부에 도착하여,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하여둔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둘쨋날>







▲월정사


겨울산은 쉬 어두워지고, 눈이나 악천후에 걸음이 더디어져 어려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일찍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하여 서둘렀는데도 9시에 모텔을 나섰다.
모텔 문을 나서는 순간 얼어붙을 듯한 추위가 엄습한다. 놀랍게도 차량 외부온도는 -18도란다. 바람 또한 매섭게 불어대니 체감온도는 -30도는 되는 듯하다.
월정사 입구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보온병을 꺼내자 식당 아저씨께서 미리 뜨거운 물 드리까? 하신다. 고맙게도 뜨거운 숭늉을 가득 채워 주신다.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마음까지 훈훈하다.
월정사는 오대산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 이 곳을 지나지 않고는 오대산의 절경과 유적들을 만나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대산 만월대(滿月臺)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유난히 밝아 월정사라 이름했다는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절 입구의 울창한 전나무숲이 고찰(古刹)의 품격을 한층 높여 주며, 월정사 바로 앞에 있는 금강연(金剛淵)은 오대천(五臺川)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열목어 등 천연 기념물로 보호되는 생물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또한 경내에는 국보 47호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보물 139호)등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날이 추워서인지 내일이 설이라서인지 월정사에는 한사람도 없이 바람만 횡하다. 13년전 나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던 팔각구층석탑도 추위탓일까, 그때의 느낌은 아무래도 찾을 수 없고, 웬지모를 허전함만 가득하다. 내가 이미 13년전의 내가 아니듯 저 탑도 이미 그때의 탑이 아닌가보다.
전나무숲길도 걸어들어 오는게 아니라, 차로 우회하여 지나고 보니 아쉬움만 남는다. 13년의 공백을 메워둘 추억의 한자락만 간신히 주워다가 바람에 되놓아주고, 상원사로 향한다.







▲상원사


상원사는 월정사와 더불어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월정사에서 주봉인 비로봉을 향해 약 10km정도 올라간 곳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36호 동종을 간직한 곳이다. 이 상원사 동종은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선 725년에 주조되었다고 하니 무려 1,3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높이 1.68m, 구경 91cm, 무게 3,300근으로 문양이 우아하고 섬세할 뿐 아니라 계절에 따라 종소리가 두 세갈래로 다르게 울리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종각에 갖혀있는 상태라 창살 틈으로 간신히 살펴볼 수 있을뿐, 더구나 계절마다 다르다는 그 소리는 그저 마음으로 헤아려 볼 뿐이다.








▲적멸보궁


상원사를 벗어나면 곧장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산은 처음 시작부분이 힘들다 했던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하는 맘도 들고, 추운 날씨에 걱정 스럽기도 하다.
허나 그런 맘은 곧 눈 녹듯 사라진다. 하얀 눈 덮인 조그만 오솔길, 그 길따라 산길 양쪽으로 뻗어 있는 나무들, 간혹 고개들어 바라보이는 먼산의 새하얀 풍경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 자신 그 풍경의 하나인가 착각해 보기도 한다.
하얀 입김들은 목도리와 잠바깃에 묻어 얼음이 되어가고, 발은 점점 더 푹푹 빠져든다. 적멸보궁에 거의 다와갈 때쯤 혼자 하산하시는 아주머니 한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난다.
40분쯤 올라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적멸보궁에는 부처의 몸이 있기에 불상이 없다.








▲비로봉


적멸보궁에서 비로봉까지는 약 1시간 남짓 거리인데, 눈에 푹 푹 빠지며 올라가다보니 1시간 15분정도 걸렸다. 가도 가도 오르막은 끝이 없는 듯하다. 13년 전의 오대산은 아주 쉬웠건만... 눈 때문에 체력이 더 소모된다며 괜히 눈탓을 해보기도 하고, 막 냉동실에서 꺼낸 것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자유시간 하나를 먹어 보기도 하고, 매서운 바람이 눈까지 휩쓸어 하얀 바람이 되어 몰아치면 옷을 더욱 여미며 괜히 자연에 순종하는 순한양이 되기도 하였다.
드디어 정상! 흔히 정상을 정복하면 가지고간 전리품들(과일, 커피등)을 펼쳐 놓고, 30분 이상을 머물다 왔었는데, 와~우! 정상에서는 잠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잠시도 쉴틈없이 불어대는 매서운 바람에 카메라 조차 들고 있기 어려웠고, 장갑을 낀 손 마저 그대로 굳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기념 사진 한 장은 남겨야겠기에 정상 표지석을 거의 껴안다시피하고 사진을 찍고는 쫒기다시피 하산하였다. 명희는 뭔가 짭짤한 것이 입으로 흘러 들어와서 보니 콧물이 쉴세없이 흐르더란다. 나 또한 콧물이 풍선처럼 방울을 만들더니, 그대로 살짝 얼었었나보다. 손가락으로 닦아도 풍선 모양 그대로다. 희야 이거봐라 하며 손가락을 보여줬다. 뭔데 하길래 코 닦는 시늉을 했더니 그제서야 눈치채고는 숨이 넘어가도록 잼있어한다.
정상에서 조금 벗어나 보온병에 뜨거운 숭늉을 나누어 먹고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든다. 그때 세사람이 정상을 향해 지나친다. 여자분은 많이 지쳤는지 얼마나 남았나고 묻는다. 다왔다고 하자 고맙다며 답례한다. 매몰찬 추위속에 같은 곳을 정복하고 있다 생각하니 한번도 본적없는 사람들에게 동료애마저 느껴졌다. 모두 무사히 하산하길 맘속으로 기도하며, 한시간 후에 상원사로 회귀했다.








 ▲대관령 옛길을 넘으며


가을동화를 촬영했다는 삼양목장을 찾았으나 바람이 너무 강해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관계자의 말에 따라 아쉽게도 매표소에서 차를 돌려야했다.
횡계에서 황태국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대관령 옛길을 넘어 고향으로 향했다. 대관령 아래로 새롭게 영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이제 굽이 굽이 대관령 고개를 넘는 차는 드물지만, 구름도 쉬어 간다는 대관령 고개를 넘는 운치를 포기 할 수 없다. 고갯마루에 신사임당의 시비가 있는 곳에서 잠시 차를 멈추었다.
대관령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이 시비는 중종36년(1541) 사임당이 38세 때 강릉 친정으로 어머님을 찾아 뵙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에 대관령에서 오죽헌쪽을 바라보면서 홀로 계신 친정 어머니를 그리며 읊은 시를 기념한 것이다. 재덕을 겸비한 가장 전형적인 한국의 여성상으로 손꼽히는 신사임당은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바느질이나 수예는 물론 글과 글씨, 그림 등에 이르기 까지 천재적 재능을 보였고 예술가인 동시에 어진 부인이며 훌륭한 어머니였다. 특히 7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키우면서도 시부모님과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던 효녀로도 널리 알려지신 분으로 혼인한 후에도 친정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느라 대관령을 넘어 친정인 강릉과 시댁인 서울 사이를 자주 왕래하곤 했다고 한다. 다음은 대관령에서 강릉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사친시'이다.
     
대관령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산을 날아 내리네.


이 시와는 반대로 나는 대관령을 넘어 고향으로 향하고 있으나,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저물어 가는 대관령의 설경이 아득하게만 느껴져 왔다.




▣ 주왕 - 저는 지난 X-MAS이브 비교적 포근했던날씨에 갔었는데 그때도 비로봉정상의 바람은 대단했었어요.얼마나 추웠을지 감히 짐작이갑니다. 아직도 오대산풍경이 생생한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세요.
▣ 신경수 - 안녕하세요 신경수입니다 정말로 좋은 여행하셨습니다 조용한 산행기가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는군요 다음번엔 대한민국에서 제일 넓은 동굴속 광장과 기묘한 형상의 종유석과 석순이 즐비한 원시인들의 삶의 무대인 화암동굴을 추천합니다 나오시다가 근방 산에서 채취한 취한가마니를 트렁크에 실고와 무쳐먹고 쌈싸먹고 삶아서 말려두고 그래도 남으면 이웃을 초대해 삼겹살 파티라도 하시면 사는 맛이 절로 날겁니다 너무 좋은 산행기라 객적은 소리 한번 해 보았습니다 이해해 주실줄 믿습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시고 활기찬날들 이어가시고 좋은 산행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 劉恩英 - 주왕님도 비로봉의 매서운 바람을 아시는군요? 정말 대단한 바람이었어요^^;;;....... 신경수님의 푸근한 조언 가슴에 담아 두었다가 다음 기회에 꼭 취나물 삼겹살 파티를 벌여야겠어요... 침이 꿀꺽 넘어 가네요^^;;; 두분도 건강하시고 좋은 산행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