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와 함께한 첫 지리산행(2003,7,19-20 지리산 산행후기)


산행일자: 2003,7,19-20(1박 2일)


산행코스: 뱀사골-삼도봉-뱀사골산장(1박)-연하천산장-세석산장-한신계곡-백무동


산행인원: 파란늑대(나) 그리고 한규(친구)


산행 날씨:
7 월 19일 오후 맑음. 저녁엔 흐리고 안개. 밤에 잠간 비 그리고 흐림
7월 20일 새벽에 잠깐 비 옴, 오전 맑음. 09시경 이후 구름과 안개.
12시경 잠깐 비.오후엔 갬


산행시간:


7월 19일


13:16 뱀사골 버스하차장 출발
13:52 탁용소
14:29 병소
14:44 제승대
16:19 뱀사골 산장, 33분 어물쩍거림


16:52 뱀사골산장 출발
17:14 삼도봉
17:40 뱀사골산장로 다시 돌아옴.
21:30까지 먹고 마시고 ... 취침.


7월 20일


05:10 기상. 죽 끓여 먹음
06:00 뱀사골산장 출발
06:35 토끼봉
07:31 연하천산장, 아침식사.


08:23 연하천산장 출발
09:01 형제봉
09:45 벽소령산장
10:39 선비샘. 간식
11:30 칠선봉
12:26 세석산장, 점심식사.


13:05 세석산장 출발
13:40 첫 번 째 폭포
14:52 오층폭포
15:05 가내소
15:10쯤 계곡에서 40분 쯤 멱감다
16:20 백무동 매표소.


산행후기:


비 갠 후에, 계곡에 든다는 것


뱀사골하차장에 이르기 전, 버스창을 통해, 이미 나는 산행중이다.
날이 훤하다. 오늘은, 채도는 필요 없이 명도만으로 시각 효과가 구성된다.
오전의 소나기성 비가 개인 후, 그리고 장마철에 반가운 환한 그 태양이
녹색의 피조물들을 눈부시게 한다. 흙길, 진할 대로 찐해진 녹색과 검은
그리고 때론 허연 줄기의 나무들이 햇빛으로 빛을 낸다. 녹색 썬글라스를
시야로 하지만, 역시 눈이 부신다.구름이 좀 있고 바람은 없다.


뻣치는 듯 우렁찬 계곡 물소리, 포말과 어울린 청류의 힘찬 움직임. 비 갠 후의
수풀과 흙이 어우러진 상쾌한 산내음과 색조. 간헐적으로 우선(羽扇)인 양 부쳐주는
산행로를 덮은 교목들.7월의 맑은 하늘의 태양이 청랑감을 준다.
더하자면 깨끗한 공기도 달다.
그래서 오감만족(五感滿足)이다^^장마비가 갠 후 산에 들어서는 기분은 이렇다.


계곡물의 진수 뱀사골에서


어느덧 석교(石橋) 2개를 그리고 목교(木橋) 2개를 건넌다. 그리고 철교들.
그렇지만 계곡은 이미 우리에게 여러 번 멈추는 시간을 갖게 한다. 미끈하고 적당한
크기의 바위 사이를 우렁차게 굴러가는 계곡 물은, 오전까지 장마 비로 우리의
여름 계곡산행을 충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2번째 석교이후로, 산행로는 절대
계곡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지리산행은 그렇게 멋들어진 시작을 하고
있었다.


‘요룡대’를 지나서부터 뱀사골 계곡은 점점 제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단순히 길고
풍부한 수량의 계곡이 아닌, 미려한 계곡미를 한껏 내뿜고 있었다. 명도로써 표현되는
여름의 녹색과 청류 아니 옥류(玉流)가 미끈한 이만저만한 바위사이를 누비며 그렇게
청아한 옥음으로 빛나고 있다. 친구 녀석은 무엇하러 더 올라가리...이것이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한다. 난 일시 답할 무엇을 찾지 못한다.
‘탁용소’엔 옥류라 불려질 법한 계곡수가 우릴 반기고 있다. 아마 저 빛나는 태양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리라. 저 물을 옥류(玉流)라 칭하지 않고 어찌 표현할까?
청류(淸流)라 하기엔 이미 저리 아름다운 것을...


주위에 인적은 전무하다. 산행로는 산행시작 즈음에 잠깐을 제외하곤, 계곡을 멀리
벗어나는 법이 없어 그 풍성한 옥음만으로 우린 충분히 흥겹다.
잠시 여유로 물푸레나무 참나무 신갈나무 이러저러 나무들.. 막 피기 시작한,
까치수영과 산수국에눈도장을 찍는다. 간혹 시원한 계곡바람이 충분히 상쾌하다.
널찍한 길은 오전 비로 약간 질퍽이지만 보행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아름다운 이 계곡 속을, 난 삶에 소중한 친구와 단둘이 걷고 있다.
많이 오래전 ‘지리산’ 산행경험이 있는 친구다. 물론 요즘은 거의 산행 경험는.
그러므로 이 번 산행은 좀 넉넉하고 여유로운 산행이 될 것을 짐작한다. 사실 요 근래
엔 운동량도 예전만큼으로 줄여서 그리 빨리 걷지도 못한다. 단지 얼마만큼의 속도를
꾸준히 낼 정도 밖에는...


‘탁용소’를 잠깐 지난 계곡 바위에서, 우린 탁족하고픈 맘을 추스르며 준비해온
음식물들을 삼킨다. 언뜻 엷은 보라색의 옥잠화 한송이가 옆에서 우릴 반기고 있다.
짜식, 까치수영이나 산수국 같이 희색의 꽃들을 주욱 보다가 물기 촉촉한 보라색을
보니 더 반갑다. 두런두런 이어지는 이러저러한 대화들. 그리고 유쾌한 웃음.‘병소'에
가까워지며 하산객들을 한둘 보게 된다.


‘병소’에선 우린 처음으로 같은 방향의 산행객을 만난다. 널찍하게 등그레한 바위
사이로 꽤나 큰 옥빛 소(沼)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아직 복원되지 못한
청자의 색감도 이만하진 못하겠지. 아니 인조물의 색감이 어찌 자연에 미칠까?
저 물속으로 몸을 들여놓고 싶음을, 친구도 나와 같은 심정이리라.


‘제승대’. 뱀사골 계곡은, 완만한 경사이다 보니 비교적 물흐름이 편안한 편이다.
하지만 이 ‘제승대’에 이르면 갑자기 포말이 거칠게 일며,
옥류(玉流)가 백류(白流)로 화한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진 것은 아니지만
주위 바위들이 거칠게 계곡의 흐름을 밀치고 있다. 그 흐름 속에 청류는,
백~류(白流)가 된다. 단순히 포말의 모음이라 하기엔 너무 부족한 분명한 백류이다.
계곡 건너편 널찍한 바위 위에서 막걸리 한 사발하면 딱일 것 같다.


‘탁용소’에서 10번째인 철교까지였던 것 같다. 뱀사골은, 청류 옥류 그리고 백류로
때론 생성과 활기찬 자신감으로, 나와 친구를 계곡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뱀사골계곡’의 가장 큰 특징은, 바위와 숲이 철저히 계곡물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로
만족하는 듯하다. 아마, 이렇게 미려한 계곡물을 즐길 수 있는 산행이 두번 다시
없을 듯 하다. 계곡산행의 진수인 여름에 그것도 아침까지 비가 온, 그 오후에 계곡에
들어 섰으니.......아마도 이런 것을, 천시 지리 인화 즉 3박자가 맞았다고 말하리라.


마지막 다리, 즉 14번 째 다리인 철교는 건너지 않고 다른 갈림길로 올라야
‘뱀사골산장’이다.


산장에서, 그 흥겨웠음을


16:19분 ‘뱀사골산장’에 도착한 시간이다. ‘연하천산장’까지 갈 것을 제안했지만,
친구는 더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어느덧 구름도 많아 모여들었다. 그냥 멀뚱히,
팔뚝만한 통나무로 만들어진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탁족도 좀 하고....‘삼도봉’에 갔다 오는 것으로 의견합치.


‘뱀사골산장’까지 그저 완만한 경사에, 산행로도 널찍해서 거의 산책코스였다.
‘화개재’ 에서 ‘삼도봉’에 이르는 길도 완만한 편이였지만, 그래도 이제 산에
온 느낌이 든다.
‘삼도봉’에 오르자, 멀리서 안개가 딥따 몰려온다. 음..얼른 주위를 둘러본다.
‘노고단’을 좀 보려는데, 어느새 안개에 포위됐다. 능선전망은 그래서 끝이다.
친구와 이러저러 얘기들을 이어가고,산장으로 돌아와 우린 기~~인 식사시간을 갖는다.


수염이 한참 길은 산장아저씨 왈, 산장은 7시 까지 예약자에게 자리가 주어진다고
한다. 우리는 현재 3번째 산장에 와있었다. 산장에서 처음 잠을 잔다는 것에 대한
생경한 호기심으로 야릇하다. 우린 식사를 먼저하기로 한다. 마치 짐을 덜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듯. 푸짐하고 나른한 그리고 황홀한 산장에서의 만찬은,
21:30 분쯤까지 자리는 이어졌다.


6시쯤에 산장은 비예약자에게 개방됐고,아마 비가 예보됐기 때문인 듯
우리 앞엔 3팀만이 있었다.그리고 내내 마주친 산행객이 드문 것도 그 이유겠지.
하여튼 그 덕에, 우린 계곡에서 해피한 산행을 하지 않았는가? ㅎㅎㅎ


능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산장에서, 안개와 구름이 산을 덮고 ...오후 내내 걸었던
‘뱀사골 계곡’의 옥음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고, 여전히 여행의 들뜸은 있다. 우린
밥에 라면에 팩소주를 입에 넣으며, 깊은 숲 속 산장의 고요와 풍요의 만찬으로
배부른 고양이가 된다.


5개의 테이블. 어느 사이 어둠을 뚫고 산장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식사 준비하랴
나름대로 수선을 떨지만, 우린 자릴 양보할 마음이 별로 없다. 오늘 이 여운을
포기하기엔 너무 흥겹기 때문이다. 물론 눈치를 주는 분도 있었지만...어쨌든,
통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있었고, 우린 진짜 부지런히 먹고
있었으니까^^사실 이 시간에 먹은 음식이, 가져간 것 중 반은 넘었다*^^.
오후 8시 30분쯤엔, 약 20분 정도 가는 빗줄기가 뿌렸다. 우린 또 잽싸게 비
피할 곳을 선점하고, 자리의 여흥(餘興)을 이어갔다. 비가 그치고 술도 떨어졌지만
이 멋진 시간을 끝낼 마음이 없었음으로, 산장에서 구입한 캔맥주로 자리는 이어간다.


장딴지 굵기만한 통나무로 몇 개로 만든 테이블에 모서리에 등을 기대고, 역시
그 두께의 몇 개로 통나무로 만든 등 없는 의자에 반대 방향으로 엉덩이를 걸치고,
또한 통나무로 된 울타리에 발을 걸치고서는...30대 초반의 두 남자는 한 손에
캔맥주를, 시선은 그저 시커먼 공간에 두고 그리고 가끔씩 아주 사소한 지난 일들을
톡톡 던지며 오늘이라는 또는 현재라는 그 시간을 진행형으로 하고 있었다.


하얀 능선을 보았는가? 한여름 해가 뜬 시간에


5:00시경 다른 팀들의 출발 전 부산함에 잠을 깬다. 일어났을 땐 비가 없었지만,
잠자는 사이에 비가 좀 내렸나 보다. 금새 비가 또 내리고, 우리가 죽을 끓여 먹고
출발 할 땐, 안개도 구름도 서서히 없어지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의 바위가 적당한 길이 ‘화개재’에서부터 이어진다. 홍색 계열의
노루오줌과 보라색의 산옥잠화가 간간이 보이고, 산죽이 산행로 좌우로 길게
붙어 있다. 어제 잠잘 때 반팔을 입고 자서 그런가,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다.
긴팔티를 입고 출발했다. 1000m가 넘는 지형일 텐데 관목보다는 교목이 많다.
능선 조망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어느새 해가 들기 시작한다.
한 30분쯤 ‘토끼봉’에 이르렀을 때, 오른쪽으론 운해에 묻힌 신선한 삼도봉의 모습.
그리고 나는 보았다. 묵직한 지리산 주능선과 그 골에서 출렁이는 하얀 운해 그리고
아침 햇살은 장엄함으로 아니 장쾌함으로....우리의 시간을 그렇게 확인하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구상나무 고사목 몇 개가, 가벼운 포인트로 볼가에 주름을
지우는 여유를 준다.


장이불수(壯而不秀)라는 말이 있다. ‘서산대사’가 ‘지리산’을 평하신 말이다.
웅장하지만 수려하진 않다. 선인의 고언을 훼손하고 싶은 맘은 없다. 단지 내
느낌은, 장이불수는 장이불요수(壯而不要秀)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묘향산’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이리 장쾌한데, 다른 수식은 조잡이 될 것 같다. 선험이
있는 친구도 장관에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또 다른 진행을 향해 우린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이 좀 질퍽이는 경사로가 완만한
산행로 주위엔 여전히 산죽이 많다. ‘1463’봉에서 다시 한 번 틔인 조망을 접한다.
구름과 안개의 모양이 변해서 ‘토끼봉’만은 못했지만 웅장한 주능선은 여전했다.
친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두런두런 말들은 이어지고, ‘뱀사골산장’에서 먼저
출발한 20명이 좀 않 되는 무리를 제치면서 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좀 앞으로
나선다. 역시 산행은 제법 땀을 빼는 맛이 있어야 제격이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친구와 다시 맞나 아침식사를 하고, 반팔티로 갈아입는다.
여름의 오전 태양은 좀 짜증스러운 편이다. 화끈하게 뜨거운 것도 약한 편도 아닌
것이, 도시에선 가만히 햇빛을 받다 보면 눈 꼬리가 살짝 찡기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산에서 맞는 태양은 꼭 그렇지는 않았다. 교목(喬木)이 드물고 관목(灌木)과
들풀로 이뤄진 산행로를 지나칠 때, 오른쪽으로 쫓아 오는 태양이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우리가 ‘형제봉’에 이르렀을 땐 9시쯤 이였다. 반대편에서 오던 엠티규모의 학생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일일이 수고하심니다 또는 반갑슴니다 등등 인사말에 연거푸
응대한 것이 15번은 된 것 같다. 금새 자리를 떠 준다.
나와 친구만이, 주~욱 뻣은 지리산 주능선과 곁능선 그리고 또 하나....하얀능선의....
생경한 감격의 시간을 갖는다... 흙과 바위 그리고 나무로 이뤄진 능선이 아닌,
출렁이는.... 하얀 능선을....그 뒤로 묵직한 지리산 주능선과 어울린 바로 그 운해가
또 하나의 능선으로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아마 이런 장관을 내 생에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이맘 때 이 코스로 이 봉에 선다고, 이 벅참을 다시가질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것이 자연일 것이다. 그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감동을 받아들이는
자세만 있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도 같다.


안개와 비 속 능선산행


그런데 안개가 몰려오고 내 가시거리가 5m도 않되게 된 것은, 진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안개가 그득한 산행을 한다는 것. 더군다나 비 개인 후 색감,
즉 녹색의 채도가 고조된 숲 속에서 찐한 안개 속을 걷는다는 것. 비록 능선과
봉우리 조망을 잃었지만, 우린 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걷기
시작한다. 친구와 조금은 거리가 생긴다. 역시 산에 올라서 잠깐이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아니 묵묵히 걷는 시간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경사나 노면 상태는 어느덧 편해져 있었다. 주위엔 엷은 보라색의 옥잠화 종류와
흰색 꽃잎과 조금은 추적거리는 남색 수술의 특이한 산수국 그리고 진달래 색의
노루오줌들이 많이 보였고, 간혹 구상나무도 보이지만 관목들 그리고 이러저러한
활엽수들과 산죽 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나팔꽃과 흡사한 메꽃,
까치수염과 흡사하지만 남빛이 도는 긴삼꼬리풀 등등 요즘 새로이 낯을 익히기
시작한 야생화들을 접한다.
또 단 한송이의 핑크빛 솔나리와 돌 틈에서 금강봄맞이 그리고 까치수영과 비슷하지만
노란색인 이름모를 꽃(짚신나물은 아닌 것 같음)을 봤을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장거리 여행시에 옆자리에 예쁜 여성이 앉는 행운과도 같은 새큰한 흥분을 느껴본다.
비로 뚫어질 듯 팽창한 녹색계열의 숲에서 채도가 업된 이러저런 다양한 색상의
꽃들을 보며 걷는 것도, 요즘 찾아낸 또 다른 재미다.


‘칠선봉’을 얼마쯤 지나쳤을 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올 해 주말에 비가
참 많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내가 야외 활동이 많아 져서 그러려니 생각해 본다.
우장한 채 ‘세석산장’에 들어선다. 벽 없이 남향인 산장엔, 남풍이 들이치고 조금은
엷어진 빗줄기와 안개 물방울이 체감 온도를 사정없이 내리고 있었다. ‘세석산장’에
먼저 도착해 라면을 끓이고, 곧 합류한 친구와 점심을 때운다. 확실히 산행 중에
라면이란..더구나 이런 기후에...ㅎㅎㅎ 말이 필요 없다. 주위에 아줌마 아저씨들
무지 부러운 시선^^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중, 방송에선 집중호우 예상
...거림계곡’으로 하산 요망...등등..대충 이런 요지의 방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날 때쯤엔 비가 그쳐 있고, 엷은 안개만이 아직이다. 우린 어제 계획한대로
‘한신계곡’으로 빠지기로 했다.


다시 주능선 삼거리에서 ‘장터목’쪽으로 가다 보니, 옥잠화가 제법 많다.
좀 덜된 모양인 산옥잠화가 아닌 평지의 예쁜 옥잠화다. 요렇게 제법 많이 펼쳐져
있으니 이것도 꽤 장관이다. 잠깐 동안, 엷은 안개 속으로 구석구석 시선을 둔다.


또다른 계곡, 한신(寒身)계곡


급한 경사의 내리막길. 계단도 있지만, 거친 바위길에 계곡 상류가 상당히 트래버스됨.
즉 물길이 등산로이며 딱히 길이라고 표현하기보담, 그저 물길로 사람이 다닌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우천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운동화로 통행하기엔 힘들 것
같음. 그런 길이, 하산 기준으로 30분 정도 된다.


비 개인 후, 어느새 안개도 사라지고.. 진정으로 순색의 녹색들을 만난다. 어제 이
시간에는 모든 색에 빛이 있었다면, 오늘은 각자의 색에서 모든 불순물을 털어낸 듯이
이득이득스럽다. 거친 등산로와, 어느새 조그만 개울이 제법 계곡을 이루고
경사만큼이나 거친 포말음을 쏟아내고 있다. 조금은 위압적인 모습의 계곡에 접어든다.


한 30분 내려오니 경사는 좀 편해졌다. ‘뱀사골’은 등산로가 계곡에서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지만, 이 ‘한신계곡’은 그렇지는 않다. 좀 멀리 떨어져 있다 다시 접하고,
그러는 사이 힘 있는 계곡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뱀사골’의 바위들은
밝은 색 계통에 올망하고 맨질맨질하다면, 이쪽은 길쭉하고 이끼덮힌 바위결들도
그렇고 시커멓다. 그리고 등산로가 바로 옆으로 접근하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등산로 뿐아니라  골짜기 경사도 급해서 멀리서 바라보게 돼있다.


어느새 맑은 햇살이 제법 힘을 주고 있고 구름도 별로 없다. 몸도 땀으로 흠뻑이다.
잠깐 멀어졌다가 계곡물과 가까워진 어느 곳에서, 갑자기 계곡에서 밀려온
한기(寒氣)에 당황했다. 시원한 정도가 아닌, 오싹하도록 시린 기운이었다. 역시
걸맞게 이름을 지었다 싶다. 팔뚝에는 닭살이 돋고 있었다.


웅장한 ‘한신폭포’는 거친 물줄기를 시원하게 품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좀 내려간
후에, ‘가내소’는 깊은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그 검푸른 물쌀의 움직임에 화들짝
놀랜다. 계곡물이 얼마나 깊어야 물의 색이 저럴까? 여긴 용이나 이무기보다는
포세이돈이 산다고 해도 별말은 없을 것 같다^^ 몇 개의 다리들을 건너고 다다른
미려한 계곡미의 ‘오층폭포’. 이제 조금 편안해진다.
아직까지 거칠게 힘있어 보이는 물줄기와 폭포음이 있지만, 이젠 바위 색깔도 밝았고
등산로도 많이 편해져 있었다.


요즘은 탁신(濯身)을 해요^^


‘한신폭포’에 접하기 전부터 멱감을 만한 자릴 찾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어렵게
물살하며 널찍한 장소를 수배하면, 접근하기가 용의치 않고... '가내소‘를 좀 지나서
그니까 두 번째 흔들다리를 지나고 난 다음, 철교에 이르는 중간쯤에 우린 좋은
자릴 발견한다. 접근도 비교적 쉽고. 널찍한 바위에 내려서니 이런.. 주위가 너무
개방돼 있다. 위쪽 아래쪽 양쪽 다리에서 훤하게 다 보이고, 산행로에서도 나무사이로
이쪽이 다보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적당한 장소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난 훌렁 벗어던지고는, 물살이 약하고 널찍한 바위 위로 구르는 계곡물속에 몸을
담근다. 여느 계곡이 시원하지 않으랴만, 여기는 한신(寒身)계곡이다. 발을 넣기에도
너무 시린 계곡물. 하지만 그 잠깐 인내의 시간이 지난 뒤에 찾아오는 장딴지
무릎 허벅지 그리고 뇌세포까지 차오르는 듯한 이 청령한 기운의 황올함을,
난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얼마 전 ‘북한산’ ‘삼천사계곡’에서 멱감은 이후로
탁족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모양이다. *.^^) (물론 입을 것은 입었다^^)


오랫동안 계속 담그지는 못하고, 잠깐씩 주위로부터 교묘하게 시야가 가리는 바위에
올라, 축 쳐지는 몸을 얹힌다. 친구에게 권해 보지만 별로 생각이 없나보다. 잠깐
등목을 한 것에 만족해한다. 친구는 나에게 어떠냐고 묻고, 나는 주저 없이 베스트라
답한다.


계곡 건너편에 위치한 태양은 환했고, 계곡은 은류(銀流)가 되어 흐르고 내 몸은
그렇게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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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작성해서, 소속된 모카페에 올렸던 것을 조금 손봐서 올려봄니다.




▣ 소백 - 정경이보이듯, 대단한 글솜씹니다.5년전쯤 그길을 걸었던날들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청춘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