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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하순에서 시월 하순까지의 한 달 동안은 설악산을 사랑하는 등산인들과 탐방객들로 해 마다 붐벼서 넘쳐 난다.
그 중, 대청봉을 가장 손쉽게 오르기가 용이해서인지 등산인들이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코스인 남설악매표소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구간은 특히나 더 붐벼서 곳곳에서의 정체 현상이 일어 난다.
러시 현상일 때의 운행시간은 한적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므로 위 시간표 상의 구간별 소요시간 중에서 남설악매표소->끝청->중청, 끝청갈림길->소청 까지의 산행 소요시간과 산행 후 귀가 시의 용대리->홍천I/C 까지의 교통 소요시간 등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 특이한 여건으로 인한 오랜 시간 동안의 지연이 있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연산바우산악회 이용], [산마루,별자리,박무언,이슬 부부,정인,김선명,게스트(8명)
 




 

설악폭포를 향할려다 수 많은 인파로 인한 정체 현상으로 도중에서 능선을 타고 끝청으로 오르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남설악매표소에서 120분 만하면 족히 오를 수 있는 거리를 무려 232분이나 걸려서 오를 수 있었다.

 

우측 사진의 점봉산 뒤로 바다 또는 호수처럼 보이는 것은 산과 산 사이의 골 위로 드넓게 가득찬 운해이다.



 


 

중청대피소의 바로 위에 있는 끝청 갈림길에서의 소청으로 향하는 구간은 좁은 등산로이라서 산행인들이 구간 전체에 줄을 이어 서 있게 되었다.

 

기상대의 일기예보와는 달리 대청봉의 기온은 바람도 없이 포근했다. 화채능선의 입구에서 아침을 겸한 점심을 비교적 느긋하게 해결했다.

 

피크철의 대청봉 표지석에서의 기념촬영은 눈치 작전과 염체불구, 인내력 등이 필요한 데 대원 중 한 분인 '정인'님의 기지로 가까스로 촬영할 수 있었다.

중청대피소

1995년 초가을 완공된 이 대피소는 중청봉 한쪽의 안부에 있으며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숙박을 할 수 있다.
해발 : 1,500m/수용인원 : 150명/이용요금 : 7,000원/☎ (033)672-1708.
예약은 인터넷(http://www.npa.or.kr/sorak/)을 통해서 해야한다.


 


 

평소에는 이 곳 끝청갈림길에서 소청까지 10분 만하면 족히 갈 거리를 39분이나 걸렸다.

 


 


 

소청에서 소청대피소까지는 12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봉정암까지는 2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소청산장

1980년대말 봉정산장이 옮겨온 것으로, 소청봉에서 약 10분 거리이고 봉정암에서 소청봉길로 약 20분 오르면 나온다.
해발 : 1,450m/수용인원 : 50명/이용요금 : 5,000원/☎ (011)375-0401.



소청대피소에서 봉정암까지는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봉정암

鳳頂庵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북면(北面) 용대리(龍垈里) 설악산 소청봉(小靑峰) 북서쪽에 있는 절. 해발 1,224m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 3 교구인 백담사(百潭寺)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 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중의 하나로 불교신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여 창건한 뒤, 677년(문무왕 17) 원효(元曉)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知訥)이 중건하였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는 법당과 요사뿐이다.
이름을 봉정암이라고 한 것은 신라 애장왕 때 조사 봉정이 이곳에서 수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이 암자는 남한의 전국 사찰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봉정암의 창건 유래

이 절의 창건은 1360여년전, 당나라 청량산에서 3.7일(21일) 기도를 마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금란가사를 받고 귀국한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는 처음에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할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찬란한 오색빛과 함께 날아온 봉황새가 스님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따라가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쳐진 곳에 이르렀고, 봉황은 한 바위 꼭대기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이 봉황처럼, 부처님처럼 생긴 바위였다. "바로 이곳이구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실 인연처 임을 깨달은 스님은 탑을 세워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조그마한 암자를세웠다. 이때가 선덕여왕13년, 서기644년의 일이라 전한다.
이렇게 창건된 봉정암은 우리나라 5대 적명보궁 중의 하나로서, 신도라면 살아 생전에 꼭 참배해야 하는 성지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봉정암은 창건 이후 여러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 667년(문무왕17) 원효대사의 중건에 이어, 고려 중기인 1188년에는 보조국사가 중건하였다.
1648년(인조26)에는 환적의천 스님이 중건하였고, 1678년(숙종4)에는 등운스님이, 1748년(영조24)에는 설정스님이 부처님의 탱화를 봉안하고 배탑대(拜塔臺)와 누각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780년(정조4)에는 계심스님이, 1870년(고종8)에는 인공. 수산스님이 중건하여 우리나라 제일의 기도도량으로써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6.25로 인하여 봉정암은 완전히 소실 되었다.
그 후 법련스님이 1천일 기도 끝에 자그마한 법당과 요사채를 완공하였고, 1980년대 중반에 주지로 부임한 도영스님에 의해 6년 동안의 불사 노력으로 청기와로 단장한, 정면 5칸의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일주문. 해탈문. 산신각. 요사채. 석등을 건립하였다.




봉정암 오층석탑

도대체 어떤 불심이 이 높은 설악산 정상에 이같은 탑을 세우고자 했을까?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보탑이라 불리는 봉정암 오층석탑 앞에 서면 절로 이같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고려시대 양식을 갖춘 이 석탑은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일반적인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어 마치 바위를 뚫고 탑이 솟아 오른 듯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설악의 온산이 이 탑을 받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설악과 이 탑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만난다.
탑의 몸체가 시작되는 자연암석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조각돼 있다. 1면에 4엽씩 모두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님이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를 올려놓아 영원한 불심을 향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31호로 지정된 이 오층석탑에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설악불교 1호(97년 1.2월)에서-

봉정암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는 약 50분 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구곡담계곡

구곡담계곡은 수렴동계곡에서 갈라진 계곡으로서, 내설악에서 대청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즐겨 찾아오는 곳이다. 수렴동 대피소 바로 앞에서 시작되는 이 계곡은 중청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로서, 중간에 귀때기청봉에서 발원하는 백운동계곡과 합쳐진다. 수렴동 대피소의 매점 옆에 있는 계단을 내려서면 수렴동의 상징같은 구담(龜潭)이 있다. 초입은, 구담 왼쪽의 난간 옆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구곡담계곡은 백담계곡이나 수렴동계곡에 비해, 경사도 가파르고 길도 또한 거칠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쌍폭까지를 쌍폭동계곡이라고 하기도 한다.


 


수렴동대피소

백담사에서 수렴동계곡 상류로 약 1시간 50분 거리인, 구곡담계곡과 가야동계곡이 갈라지는 곳 삼거리에 있다.
해발 : 580m/수용인원 : 50명/이용요금 : 5,000원/☎ (033)462-2576.



수렴동대피소에서 오세암갈림길까지는 약 30분, 백담대피소까지는 약 120분, 백담사까지는 약 1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수렴동계곡

수렴동계곡(水簾洞溪谷)은 내설악의 백담계곡 상류인 백담산장 위쪽에서부터 구곡담계곡과 가야동계곡이 갈라지는 수렴동대피소까지의 약 6km구간의 계곡을 가리킨다.
전체적으로 아주 완만하고 유순한 계곡이며, 기존의 산길을 시멘트로 포장한 백담계곡에 비해 자연 상태가 훨씬 잘 보존되어 있을뿐 아니라 경치도 더 빼어난 곳이다.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은 소(沼)와 담(潭)의 연속인 이곳의 계곡미는 천하제일이라 할만한 절경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청봉에 오르기 위해 거쳐가는 등산로로만 여기고 주마간산격으로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숲에 가려진 그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백담대피소에서 백담사 입구까지는 1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백담산장

내설악의 백담사 건너편에서 상류쪽으로 300m 위 계곡 왼쪽에 있다.
해발 : 400m/수용인원 : 300명/이용요금 : 5,000원/☎ (033)462-5822.


 


 


 


백담사(百潭寺)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북면(北面) 용대 2 리(龍垈二里) 설악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 3 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며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어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있다.
이 절에 관한 기록으로는 《설악산심원사사적기(雪嶽山尋源寺史蹟記)》와 한용운(韓龍雲)이 편찬한 《백담사사적(百潭寺史蹟)》이 있다. 《백담사사적》에 의하면 이 절은 647년(신라 진덕여왕 1) 자장(慈藏)이 설악산 한계리(寒溪里)에 창건하였으며, 그때 아미타삼존불을 조성·봉안하고 절 이름을 한계사라 했다고 한다. 690년(신문왕 10) 실화(失火)로 소실되어 719년(성덕왕 l8)에 재건하였는데, 《심원사사적기》에 수록된 전설에 의하면 낭천현에 있었던 비금사(琵琴寺)를 옮겨 중창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실화를 겪었는데,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의 이름인 백담사로 개칭한 것은 1775년(조선 영조 51)의 7번째 소실 후에 최붕(最鵬)과 설담(雪潭)이 절을 중건한 83년(정조 7)이다. 백담사라는 이름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거듭되는 화재로 절이름을 고쳐보려고 하던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를 세어 보라고 하여 이튿날 세어 보니 꼭 100개에 달하였다. 그리하여 <潭>자를 넣어 백담사라 이름을 고치고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그 뒤부터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5년과 6·25 등 2차에 걸쳐 다시 소실되었으며, 57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칠성각(七聖閣)·선원(禪院)·요사채 등이 있고, 남쪽 150m 지점에 관음전이 있다. 암자로는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백담사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한 군중들의 장사진에 혀를 내두르며 "차례를 기다리느냐, 도보로 나갈 것이냐"를 잠시 고심하다가 7.1Km나 되는 백담계곡 위로 난 도로를 걸어 나가기로 했다.

 

산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을 가진 뒤의 예기치 않게 보태어 진, 원하지 않은 행군으로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지루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노라니 백담계곡의 수려한 경관을 느긋하게 즐길 상황이 아닌 지친 몸이었지만 그 경치는 과히 아름다움의 연속이었다.
지친 마음으로 걷다보니 백담사주차장에서 백담매표소까지 약 80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설악산의 단풍이 10월 초에 절정일 것이며 예년에 비해서 단풍이 더 고울 것이라고 보도하였지만 사실과 달랐고 별로 볼 품이 없었다. 일기예보나 매스컴의 보도를 또 다시 반신반의 하게 되었긴 했어도 설악의 경치는 어느 골과 계곡, 어느 봉과 능선들을 보더라도 과연 전국에서 최상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