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악양벌을 품은 하동 성제봉(형제봉.1115m) 산행

 

산행일 : 2004. 9. 29(水). 맑음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평사리 외둔마을회관(11:14)

  ☞능선 사거리(11:34~11:48. 해발 약95m)

  ☞아스팔트도로(12:05)

  ☞한산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12:28~12:32. 약305m)

  ☞고소성 (12:40. 약380m)

  ☞산성 위 소나무 (12:44~12:50. 약390m)

  ☞첫 번째 철계단(13:17~13:22)

  ☞두 번째 철계단 (13:26)

  ☞통천문 (13:28~13:33. 통천문 지나 한참을 오르다 점심 14:10~14:37)

  ☞세 번째 철계단(15:21)

  ☞네 번째 철계단(15:24)

  ☞신선대와 구름다리 (16:00~16:09. 약925m)

  ☞꼬마다리  (16:18~16:34)

  헬기장(16:58. 약1035m)

  ☞성제봉 (17:16~17:24. 1115m)

  ☞성제봉2 (17:28~17:31. 약1120m)

  ☞청학사 내려가는 갈림길(17:33)

  ☞샘터(17:58~18:01. 약840m)

  ☞시멘트 임도 및 청학사 (18:53)

  ☞노전마을 삼거리  (19:15)

총 산행시간 : 약 8시간 (정상적인 산행을 하면 6시간이면 충분함.)

구간별 거리 :

  외둔마을→(4.7km)→신선대→(1.9km)→성제봉→(3.5km)→청학사→(약0.5km?)→노전마을

산행거리 : 약 10.6km

산행지도 


 

산행기

  갑자기 산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온몸이 후끈 달아 오른다.

벼락같이 회원모집을 해서 간신히 2명(첫째와 둘째)을 모집해 하동 성제봉으로 향한다.

오늘도 여지없이 게으른 산행이다.

늦은 출발 덕에 산행 마무리쯤에서는 야간산행을 해야만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담력훈련과 요즘 보기 드문 반딧불이를 두 마리나 보는 큰 수확을 하였으니 녀석들에겐 추석선물치고는 괜찮은 선물을 성제봉으로부터 받은 셈이다.

19번 국도상에서 본 성제봉과 섬진강
 

  악양 벌판에 세워진 허수아비들에게서 가을과 결실, 수확, 토지를 헤아리며, 외둔마을 마을회관앞 공터에 차를 주차시킨다.

고추 따는 아낙을 뒤로 하며 외둔마을로 들어가 1분정도 오르다 왼쪽 대숲사이로 방향을 틀어 오르니 길가에 알밤들이 제법 떨어져 있다. 아이들이 밤을 줍느라 신이 났다. 여기서 10분 이상 지체를 한 것 같다.

악양벌에 세워진 허수아비와 성제봉

 

 길가에 무수히 떨어진 알밤

 

밤나무 밑에 피어있는 세잎 쥐손이풀꽃

 

  시멘트 임도가 끝나고 작은 능선에 올라 커다란 배를 하나 깎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능선을 치고 올라간다. 뱀이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등로에 풀이 무성하다. (결국 산행 중 살모사 한 마리를 보았다.)  공동묘지 비슷한 큰 무덤들도 지나고, 가파른 등로를 오르다보니 갑자기 새로 낸듯한 깨끗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와 쓴웃음이 나온다. 도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등로에 올라 한참을 가니 한산사에서 올라오는 좋은 길과 만난다.

임도가 끝나는 작은 능선 사거리. 오른쪽 수레옆에 등로가 보인다.

 

갑자기 나타나는 신작로. 가로질러 계단으로 오르면 된다.

 

한산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

 

  한산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외둔마을에서 오르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한산사쪽 코스가 길도 좋고, 시간도 얼마 안 걸리니, 우리도 이 길로 올라올걸 그랬나보다.

산하의 다른 산행기 대부분이 소상낙원을 산행 들머리로 잡고 있어서 초행인 우리도 그리했던 건이지만, 다시 오른다면 소상낙원이나 외둔마을 코스는 절대 택하고 싶지 않은 코스이다.

잡목과 풀이 우거지고, 조망도 없고, 지루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길로 괜히 올라왔다는 후회만 든다.

성제봉에 오르고자 하시는 분들은 절대 외둔마을이나 19번 국도옆 소상낙원이 새겨진 석상에서 오르는 우매한 산행은 하지 말 것을 적극 권유하고픈 마음이다.

한산사에서 오르시기를 강추.


  여기(한산사 내려가는 삼거리)서부터 정상 성제봉까지는 길이 무지 좋아서 오르는데 큰 불편은 없다.

저 멀리 신선대가 웅장한 자태를 드리우며 우리를 계속 굽어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거리는 좁혀지고 있다.

고소성에 올라 기막힌 소나무 밑에서 최고의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오른다.

사적 151호 고소성. 최근에 새로 보수를 마친 듯 돌들이 깨끗해서 고풍스런 멋은 없다.

 

고소성에서 내려다본 악양벌과 섬진강. 기막힌 색의 조화(파란하늘, 흰구름, 푸른산, 누런들판, 옥색섬진강)가 펼쳐져 보는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고소성에서 바라 본 백운산. 왼쪽이 억불봉(1000m), 가운데 뾰족봉이 매봉(865m), 오른쪽 멀리 보이는 봉이 백운산 정상인 상봉(1218m). 

 

산성위의 멋진 소나무. 기막힌 풍광이다. 또한 훌륭한 쉼터이기도 하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기도한 악양면 평사리 일대. 사진 중앙 아래쪽에 기와집들이 있는곳이 최참판댁.

 

최참판댁(줌촬영)

 

  몇 개의 철계단을 오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조망 좋은 곳에서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마을 중 최고의 명당마을 악양면을 내려다보며 감탄을 한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오로지 남서쪽만 탁 트였다. 그 트인 곳이 섬진강이니 산과 강과 드넓은 논이 조화를 이루어 사철 온화한 기운이 온 마을을 휘감는 보기가 참 좋은 마을이다. 소설 토지의 무대가 왜 악양면인지 성제봉에 오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이제야 성제봉에 오르는고? 자문해본다.

그 답을 스스로 깨우치며 오르는데 누가 감히 나를 일깨우랴.

 첫 번째 철계단
 

  오른쪽으로 줄이 계속쳐져있고, 이따금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보이는걸로 보아 자연산 송이가 많이 나는 지역으로 보인다. 

조망 좋은 곳에서 오랜만에 집에서 싸온 점심을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내 마음 행복에 겨워 가슴이 뭉클해진다. 산에 오르는 것을 즐거워하며 잘 따라 다니는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통천문. 비만인 사람은 똑바로 지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다.


등로 양옆에 있는 재미있는 소나무.

 

웅장한 신선대가 다가오고 있다.

 

 세 번째 철계단

 

  718봉에서 바라본 신선대. 오른쪽에 보이는 민둥산을 산행내내 정상인줄로 착각하고 오른다.

 

 신선대 밑의 협곡. 오른쪽 암벽이 신선대.

 

   신선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지만 가을 땡볕에 기가 죽어 바로 옆 구름다리로 발길을 돌린다. 기막힌 절경위에 걸쳐진 구름다리는 아담하지만 튼튼하다. 페인트칠이 벗겨져서 좀 보기가 안 좋으니 지자체에서라도 다시 도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긴 철계단을 내려가다 다시 작은 봉우리를 향해 올라간다.

 신선대 정상

 

신선대에서 내려다 본 지나온 능선.


신선대와 주능선을 잇는 구름다리.

 

되돌아 본 신선대와 구름다리 그리고 철계단.

 

  곧이어 작은 다리를 건너 소나무 밑에서 사과 한 알을 나누어 먹고 넓은 철쭉밭을 지난다.

억새도 제법 피었다.

능선을 타면서 보이는 용담이 너무 화려해 사진에 담아 보았지만, 집에 와서 보니 촬영에 실패한 것이 그렇게 원통할 수가 없다. 일부러 여러 장을 찍었는데 하나같이 흔들렸는가 보다. 먼젓번 디카가 접사촬영이 잘 안되어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디카로 바꾸었는데, 분하다.

작은 다리를 건너다가...

 

강선암으로 내려가는 갈림길과 철쭉군락지 그리고 철쭉제단(하얀 돌 제단).

 

제철을 잊은 왜제비꽃

 

억새와 신선대 그리고 섬진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정상인 줄로만 알고 올라선 봉우리는 헬기장이 딱 버티고 있다. 에구 에구 여기서 더 가야 한다니 부지런히 걷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헬기장에서부터 정상까지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서 그다지 힘은 들지 않는다.

 

헬기장. 왼쪽위로 정상인 성제봉이 보인다.

 

드디어 정상이 코앞에 보인다. 정상석도 보이고 그 오른쪽 밑으로 무덤도 있다.

 

  “정상이다.”

머리 위에서 맨 먼저 오른 아들 녀석이 소리를 질러댄다. 얼마나 정상이 그리웠으면 저럴꼬. 성제봉(聖帝峯). 이름 한 번 거창하다.

천왕봉이 보일까, 발돋움까지 해보지만 구름에 가린 천왕은 끝내 모습을 보이기를 거부한다. 이에 질세라 반야봉도 가세를 하니 보이는 것은 지리주능선과 노고단뿐이다. 지리산 전체를 조망하는데는 광양 백운산이 최고다.

능선을 따라 더 북쪽으로 하산을 하니 이정표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청학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요, 직진을 하면 성제봉이라고 되어있다.

어, 금방 올랐던 봉이 성제봉 아닌가? 

정상의 남과 여

 

정상에서 내려다 본 지나온 남쪽 능선.

 

정상에서 바라 본 천왕봉쪽의 조망. 구름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구름에 휩싸인 반야봉과 왼쪽에 노고단이 보인다.

 

  삼거리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빈손으로 북쪽의 성제봉에 올라보니 실제로 아까 올랐던 성제봉보다 약 5m가량이 더 높다. 어느 것이 실제 성제봉인지 확실하게 이정표를 정비해두면 좋겠다.

청학사로 내려가는 하산길과 또다른 성제봉(오른쪽)이 보인다.

 

또 다른 성제봉

 

또 다른 성제봉에서 바라본 성제봉. 아래쪽에 산친구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청학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좁고, 급경사에 수풀이 우거져서 바닥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가 많다. 이리로 오르려면 꽤나 힘들 것 같다.

  청학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에 유달리 많은 리본이 매달려 있길래 우연히 들여다 보다가 발견한 1500산님의 리본. 꽤 오래된듯하다. 요즈음은 커다란 코팅용지에 몇 번째 산이라고 써있는데...

 

너덜지역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저 만치 아래에 하얀 물이 보인다. 다가가보니 PVC관을 박아놓은 반가운 샘이다. 속이 얼얼할 정도로 시원하다. 가지고 간 식수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라 한 통 가득 채우고 손도 씻은 후 너덜지역을 통과한다.

너덜지역을 지난 후부터는 경사가 그리 급하진 않다.

 너덜지대에 있는 반가운 샘터

 

 너덜지대를 지나고나서 얼마 안 있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이 아무래도 헤드랜턴을 써야 될 것 같다. 둘째 녀석은 처음 겪어보는 야간산행이라 자못 기대가 된다.

첫째와 내가 헤드랜턴을 쓰고, 둘째를 가운데 세우고 작은 맥라이트 손전등을 들리워준다.


 

  끝도 없는 하산 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해서 내려가니 둘째는 무서워서 죽겠단다. 맨 뒤에 오던 첫째 녀석까지 덩달아 무섭다고 내게 바짝 붙어 버린다.

이 녀석들 오늘 담력훈련 제대로 하는구나.

길이 갑자기 넓어지면서 임도로 변한다.

둘째를 가운데 세우고 셋이서 손을 꼬옥 잡고서 종대로 서서 노래(푸니쿠니 푸니쿨라 : 지난 봄 학교 축제 때 음악선생님에게 배운 가곡)를 부르며 얼마를 내려갔을까 드디어 마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기에 무조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갔다.

어어~~~

아이들이 “저게 뭐야?”하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깜박거리는 저 불빛.

반딧불이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 보니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얼른 디카를 꺼내 사진에 담아보려했지만, 그 사이 멀리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곧이어 오른쪽으로 어둠 속에 작은 연못이 반짝거린다.

동시에 세 명의 랜턴 불빛이 연못 중앙의 탑에 집중을 한다. 가늘고 긴 하얀 석탑. 그 위로 어둠 속에 청학사가 희미하게 보인다.


 

  청학사에서 마을까지는 또 한참을 내려가야만 한다.

제법 큰 첫 번째 마을(노전마을)을 지나치려다 마당에 전등을 환하게 밝힌 집 앞의 동네 주민에게 다가가 택시를 부탁한다. 친절한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5분도 안돼서 택시(☎055-883-3009)가 올라온다. 


 

  8km가 넘는 길을 택시는 어둠 속을 달려 외둔마을 마을회관앞 공터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연세가 지긋한 친절한 택시 기사님의 훈훈한 정에 감동해 배춧잎 한 장을 드리고 거스름돈은 사양하였다. (택시비 7천원). 다음부터는 청학사에서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하는 기사아저씨.

택시 기사님의 말로는 얼마 안 있으면 토지 문학제도 열린다고 했겠다. 이번 토요일에는 온 식구들을 데리고 악양면 최참판댁에나 와야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