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히, 꾸벅~건강하세요!


 며칠전 봄을 재촉하던 비가 내리더만 겨울 가뭄을 해소해 주어 반갑다.그리고 훈풍이 불어온다. 그러나 한편으론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곳곳에서는 물난리를 겪기도 했다. 여린 마음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잠시 세사를 잊고 기분 전환도 하고 건강을 유지하고자 산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럴만한 산이 남도의 명산 해남 달마산이다.



 달마산(達摩山)은 전남 해남군 송지면, 현산면, 북평면에 걸쳐있는 해발 489m로 병풍같이 둘러쳐진 산이다. 이 산은 높고 낮은 암봉의 능선이 거의 6km에 이르도록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있어 완도 쪽에서 송지로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준다. 두륜산에서 잠깐 쉬었다가 마지막 기력을 다한 소백산맥이 솟아오르되 날카롭고 뾰조뾰족한 기이한 암봉의 모습이다. 특이한 산세를 갖고 있는 달마산의 품안에는 새롭게 불사를 일으킨 고찰 미황사(美黃寺)가 있다. 이 절은 우리나라 육지의 사찰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절로 한때 12개 이상의 말사를 거느린 적도 있는 오래된 사찰이다. 절 뒤로 펼쳐진 달마산은 지척에 송호리해수욕장과 땅끝이 잇닿아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광주에서 달마산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시간에 맞취 등산도 하고 넘실대는 남쪽바다와 땅끝을 둘러본다면 기분좋은 당일치기가 될 것이다.



 해남 현산면 월송리에 이르러 우측으로 가면 송지면으로 가는 지방도로가 나오고 5km 정도 가면 서정리 등몰마을이 있다. 여기서 잠깐 좌측으로 올려다보면 기암괴석이 둘러쳐진 달마산이 보인다. 바로 그 아래 산자락에 천년고찰인 미황사가 자리잡고 있다. 군데군데 패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미황사 입간판이 있다. 이렇게 1.5km 정도 들어가면 사찰 주차장에 이른다.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 뒷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암봉들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감탄을 하게 된다. 그 누가 조물주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랴만 조물주가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잘 빚어놓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모습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도열해 있다. 그렇게 잘 조화된 고풍스런 대웅보전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암릉을 올려다보면 자연이 주는 신비로운 조화에 넋을 잃는다. 주변의 산세와는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날카롭게 뾰족뾰족 솟아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는 암봉을 바라보면 그 아래 고색창연한 대웅보전이 조는 듯 꿈꾸는 듯 한참동안 넋을 잃고마니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은 간 데 없다. 



 이 미황사에는 보물 제947호인 대웅보전과 보물 제1183호인 응진전, 요사채 등 건물 일부가 있고 최근에 불사가 일어나 사세가 확장되었다. 미황사에는 가뭄이 들 때마다 괘불을 걸어놓고 기우제를 드리면 비가 왔다는 그 괘불도 전한다. 영조 3년(1660)에 조성된 이 괘불은 근래에도 몇 차례 영험을 증명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기우제 도중에 비가 쏟아져 배접이 떨어진 일도 있었다. 그래서 1993년에는 손상된 괘불을 수리한 기념행사를 갖기도 했다.


 대웅보전 앞 석조(石槽)에서 물통에 물을 담은 후 다시 되돌아나와 주차장 입구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서서히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산동백과 산죽이 있는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오르면 암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부터 가파르며 숨이 찬다. 암봉에 올라서면 건너편 완도가 있는 동쪽 해안이 보인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후 사찰을 내려다 보며 한숨을 몰아쉰다. 이마에 흘린 땀을 닦아내니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땀이 갠다. 여기서 암봉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것은 조심해야한다. 눈비가 왔을 때는 더욱 위험하니 암릉 아랫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그렇게 높지 않건만 암릉을 오르내리다 보면 힘이 든다. 암릉을 오르내리길 얼마나 했을까. 정상에 오르니 봉수대가 있다. 이는 옛날에 완도 보길도 방면에서 출몰하는 왜구의 적정을 알리는 유력한 통신수단이었다. 저 멀리 육지와 완도를 이어주는 연륙교가 보인다. 이 산과 완도를 사이에 두고 연초도, 백일도, 흑일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엎드려 있다. 잠시 앉아 쉬면서 일행과 함께 시원하고 단 나주배를 깎아 아작아작 베어 먹으면 갈증이 어느덧 사라진다. 산 위에서 먹는 배 맛은 배 위에서 먹는 맛과 달리 단맛이 혀 끝에 녹아들며 환상적이다.


 정상에서 도솔봉을 향해 두번째 암봉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뾰족뾰족한 암릉길엔 가끔 길이 끊겨 낭떠러지도 있다. 암릉아래 소로를 찾아 산행한다. 세번째 봉우리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틈을 붙잡고 조심스레 정상에 올라갈 수 있으나 다음으로 연결되는 길이 없으니 암릉 아랫쪽 길을 찾아 맞은편 봉우리로 진행한다. 그렇게 가다 보면 동편의 암릉 아래 길 옆에 하늘샘이라고도 하는 금샘(金井)이 있다. 정말 이런 암벽 틈 사이에 어떻게 맑은 물이 고여 생수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 물을 오염시키거나 폐쇄하면 하늘문이 막힌다는 전설이 있다. 산행을 하는 산꾼들에게 이런 고마운 물을 제공해 주어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금쪽같은 샘을 있는 그대로 잘 보존하고 사용해야 한다. 조물주의 뜻을 읽을 수 있는 자연의 섭리다. 이 산에는 불교설화와 관련된 많은 이름들도 있는데 문바위, 미타혈, 용정, 금샘, 도솔암터, 수정굴, 서굴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2km 정도 되는 암릉을 지나는데만도 4시간 정도요 도솔봉 까지는 6시간 정도 걸리니 결코 쉽게 산행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암릉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스릴도 맛보고 기묘한 암봉들과 완도 해안을 바라보며 바닷바람을 흠뻑 들이킬 수 있어 재미도 있다. 이렇게 산길과 암릉을 넘으며 하숫골재와 떡봉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암릉지대는 끝나고 여기서부터는 지루한 느낌을 갖게 되며 새롭게 도솔봉에서 암릉이 시작된다. 이 도솔봉에는 장거리무선중계소인 전파중계소가 있다. 사실 이곳까지 산행을 할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암릉을 오르내리며 산행을 하다 보면 많이 지치기 때문이다. 전체 산행을 하는 시간은 8시간 남짓 소요된다.



 따라서 산죽이 우거진 삼거리에 사찰 동부도원으로 가는 푯말이 서있는데, 이 곳에서 꺾어 하산하여 땅끝을 둘러보고 완도에 가서 횟감을 맛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산행은 여유를 갖고 즐겨야 한다. 산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산동백나무들이 보이고 길을 따라 내려가면 돌담으로 둘러 쌓인 곳에 넓직한 부도원이 보인다. 부도원 옆에 서있는 아름드리 노송사이로 한바탕 산바람이 지나간다. 이 곳은 우리나라 최대 부도원(浮屠園)으로 조선 중후기 스님 벽하당, 창암당, 송월당 등의 사리탑이 20여기 있으며 탑비도 5기가 서있다. 이 넓은 부도원을 보면 그 번성했던 사찰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갑자기 군데군데 돌이끼 낀 부도 사이로 청설모 몇 마리가 쪼르르 지나간다. 그 옛날 태고적에 열반한 노승들의 근엄한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런 분위기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그런데 그 누가 말했던가. 불현듯 불타의 법어로 알려진 한시 일부가 생각난다.


生也一片浮雲起   인생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
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 자체가 본시 실체가 없으니
生死去來亦如然   생사의 가고 옴이 모두 이와 같구나.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다는 느낌이 몰려온다. 생각이 나를 그렇게 잡아간다. 그러나 머리를 흔들며 인생은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이 부도원에는 숙종 18년(1692)에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이 지은 비문이 새겨진 사적비도 있다. 내용을 읽어본다. 미황사에 대한 설화를 생각하면 왠지 먼 태고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옛날 스님들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이제 생각을 접고 다시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산동백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어 동행과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걸어가기에 좋은 오솔길이다. 그러면 어느덧 사찰이 보인다. 다시 한번 달마산 암봉을 올려다보면 신비스런 비경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석조에 있는 생수를 한 바가지 떠서 벌컥벌컥 들이마시면 온 내장과 가슴과 정신이 쇄락하다. 


  이제 산행을 마치고 미황사를 나와 도로를 따라 가면 송호리해수욕장이 나오고 이 곳을 지나 한반도의 끝자락인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토말인 땅끝까지 숨가쁘게 달려가 본다. 갈래야 더 갈 수 없는 한반도의 땅끝. 북위 34도 17분 38초, 동경 126도 6분 01초인 땅끝이다. 해발 155m 갈두산(葛頭山) 사자봉(獅子峰)에 오르는 층계를 따라 올라가면 봉화대가 보이고 바로 옆에 새롭게 세워진 전망대가 있다. 이 곳 갈두산은 해남군 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옛날부터 칡이 많았다는 데에서 산이름이 유래되었다. 사자봉이라고도 하는 이 곳에 오르면 저 파란 물결이 넘실거리는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남으로 완도, 노화도, 보길도가 보이고 날씨가 맑은 날이면 보길도 서편 머나먼 수평선 끝으로 아스라히 한라산 봉우리가 보인다. 그리고 서편으로 진도, 백일도, 흑일도, 거차도, 조도 등 크고 작은 섬이 있다. 바로 앞쪽 좌측에 백일도, 흑일도를 중심으로 횡간도, 마삭도, 노화도, 보길도, 죽굴도, 대장구, 소장구, 어룡도, 까막섬, 꽃섬, 양도, 서화도 등 20여 개의 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 아래 부두에선 여객선이 뱃고동을 울리면서 바닷 물결을 가르며 지나간다. 소금기 어린 바닷바람이 한움큼 불어온다. 갑자기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떠나가는 당신을 향해 이별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왠지 모를 눈물을 글썽인다.


 전망대를 내려와 토말탑이 있는 곳까지 구불구불 인조목으로 된 층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간다. 뾰족하게 세워진 토말탑이 보인다. 이 탑 하단에는 손광은 교수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 곳은
  우리나라 맨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서
  길손이여
  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먼 섬 자락에 아슬한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당인도까지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한라산까지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수만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일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이 곳 땅끝은 산맥의 줄기가 내리뻗은 마지막 봉우리로 사자봉 정상에 봉화대를 복원하면서 각종행사를 펼쳐 이제는 각광받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매년 행사가 열리는 이 곳은 지역화합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농악잔치와 판소리 공연, 해맞이 제례, 캠프파이어 등이 펼쳐져 신명나는 남도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숨가뿐 숨을 한숨에 몰아쉬며 달려왔건만 백두대간이 다도해를 만나면서 어쩔 수 없이 쉬어야했던 곳, 더 이상 달려갈 길 없는 곳에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대의 옷자락과 옥이의 머리카락을 날리는 곳이다. 



 이 곳 땅끝은 낙조와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환상적인 저녁노을에 당신의 얼굴은 발갛게 물든다. 그리하여 남쪽바다에 살포시 안겨도 본다. 붉은 기운과 강한 빛을 내뿜으며 우뚝 솟아오르는 눈부신 아침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희망찬 새아침의 넘실거리는 바다를 가슴에 안아보라.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가슴에 벅찬 희망을 안고 광주로 돌아온다.




▣ 터프한주름살 - 조만간에 갈려고 하는데, 님의 산행기를 보니 빨리 가고 싶군요!
▣ 본인 - 참으로 좋은 산입니다. 즐겁고 추억에 남는 산행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