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때문에 실패한 덕유산 종주

 

산행일 : 2005. 1. 20(木). 흐린 후 맑음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영각사 (05:28)

  ☞첫 번째 통나무다리 (06:14)

  ☞능선 (07:13)

  첫 번째 철계단 (07:24)

  ☞남덕유산 정상 (08:15. 1,507m) 

  ☞월성재 (09:11) 

  ☞삿갓골 대피소 (11:05~12:05) 

  ☞쉼터바위 (12:51)

  ☞황점마을 황점매표소 (13:25)

총 산행시간 :  약 8 시간

구간별 거리 :

영각사 삼거리→(2.5km)→능선→(0.9km)→남덕유산→(1.42km)→월성재→(2.94km)→삿갓골재 대피소 →(3.55km)→황점매표소

총 산행거리 : 약11.2km 

산행지도

산행기

  요즘 산행기에 덕유산 산행기와 멋진 눈꽃, 서리꽃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다른 사람의 산행기만 바라보며 언제까지 군침만 삼킬 수는 없는 일이다.

새벽에 영각사쪽으로 오르면 나 같은 굼벵이도 당일종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배낭을 옆에 태우고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대진고속도로 산청부근에서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함양에서부터 퍼붓기 시작한다.

‘어어~ 이러면 곤란한데.’

서상나들목을 빠져나오면서부터 길 위에 눈이 쌓여있다.

 

  캄캄한 새벽의 농촌길을 차 한대가 조심조심 서행하며 남덕유산 영각사쪽으로 가고 있다.

영각사 500m 전.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15°정도의 경사길이 나오는데, 그 차는 반도 못 올라가고 미끄러지며 정지한다. 다시 올라가려고 가속페달을 밟지만 이내 헛바퀴만 돌고 멈춰 선다.

서서히 후진하여 다리까지 내려온 차는 사륜구동으로 바꾼 후 가속페달을 밟으며 다시 올라가보지만 아까보다 조금 더 올라갔을 뿐이다.

다시 후진하여 다리 한쪽에 주차한 후 차 주인은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스노우 체인을 꺼내 뒷바퀴에 체인을 채운다.

그리고 차는 조용히 그 길을 올라간다. 적어도 30분은 시간낭비를 한 셈이다.

 

    
                    저 고개만 올라가면 영각사가 나오는데, 못 올라가고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영각사앞 산행 들머리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위에 들짐승의 발자국이 앞서간다. 녀석은 상당한 거리까지 정확히 등산로만 계속 타고 올라간다.

영각사매표소는 어둠에 쌓여있고, 흰색 승용차 한대만이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들짐승의 발자국
 

  얼마나 올랐을까, 갑자기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눈길, 칠흑 같은 어둠, 나 홀로 산행. 은근히 두려움이 몰려온다. 다시 발자국을 따라 되돌아가서 길을 찾아 올라간다.

통나무 다리 두개를 건너서 약간의 급경사구간 너덜 길을 오르다가 다시 길을 잃는다. 그러나 이내 다시 길을 찾는다.

    

                                            첫 번째 통나무다리 (뒤돌아서 찍은것)
 

  몇 해 전에 오를 때는 길이 상당히 좋았었는데, 오늘은 온통 눈 덮인 너덜길이다. 눈이 덮여 평평한 줄 알고 밟은 곳이 뾰족한 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그럴 때마다 기운이 쭉쭉 빠진다. 오히려 눈 덮인 너덜 길에서 아이젠 때문에 더 잘 넘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가 앞서갔더라면 그 발자국만 따라가면 덜 넘어질 텐데, 평일 눈 오는 컴컴한 밤에 어떤 미친넘이 오르겠는가.

어둠 속에서 러셀과 길 찾기를 병행해야하는 지독한 고생길이다.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계단이 나타나며 드디어 능선에 올라선다.

이상하다. 몇 해 전에 오를 때는 매끈하고 널찍한 맨땅을 올라왔었는데, 오늘은 온통 급경사 너덜 길 아니면 계단이다.

옛길을 폐쇄하고 새로운 길을 낸듯하다.

여명의 눈탱이, 아니 여명의 눈동자, 아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능선 바로 전의 계단

 

     

                                                           능선에 올라선다.

 

  급경사 철계단의 바닥은 앞쪽으로 기울어져있어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가는데 상당히 불편하다.

콘크리트 구조물에서부터는 코털과 속눈썹이 쩍쩍 늘어붙는 강추위와 칼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안경만 아니면 바라크라바(가면 마스크)를 쓰던가 목 밴드를 하면될텐데, 그것들을 썼다하면 안경에 김이 서리고 이내 서리가 되어 앞이 보이질 않는다. 겨울산에서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 안경 쓴 사람들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안경에 김서림 방지제라도 뿌리고 올걸 그랬다.

    

                                                        첫 번째 철계단
 

  곧이어 나타나는 급경사 철계단을 밑만 보고 오르다가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는 순간, 뭔가 둔탁한 것이 머리를 때린다. 커다란 바위가 바로 위에 있는 줄도 모르고 밑만 보고 오르다가 얻은 선물이다.

     

                                             서리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윗쪽 철계단의 마지막에서 주의해야한다. 바로앞에 바위가 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머리를 부딪칠 수가 있다.

 

    

                                                                 서리꽃

 

    

                                            마지막 철계단 오르기 전의 서리꽃

 

    

                                         남덕유산 정상이 개스에 휩싸여 있다.

 

    

                                         화려하다. 실제로 보면 더욱 화려하다.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남덕유 정상에 오를 수가 있지만, 오른쪽으로 좁은 오름길이 보인다. 오늘은 저 길로 올라봐야겠다. 그러나 이내 후회하게 된다. 급경사에 미끄럽고 좁은 암릉길이라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어렵사리 남덕유 정상에 올라서지만(평소 천천히 올라도 두 시간이면 올라올 수 있는 거리를 세 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중간에 십분 정도 단 한 번 쉰 것 빼고는 거의 쉬지 않고 엄청난 스피드로 올라왔는데도 어둠과 눈 때문에 늘어진 것이다.) 강풍으로 인해 서있기 조차 어렵다. 서둘러 사진만 찍고 내려선다.

     

                              위험한 암릉으로 올라서니 저만치 남덕유 정상이 보인다.

 

     

                                                       남덕유산 정상 (1,507m)

 

    

                                 남덕유산 밑의 이정표. 장갑으로 서리를 닦고 촬영하였다.

 

                           

                                                     아무도 밟지않은 하산길

 

  몇 해 전 두 선배와 함께 식사했던 같은 장소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한다. 가만히 서있으니 발이 시렵다. 장갑을 끼고 먹는데도 손이 시렵다. 그래도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니 살 것 같다.

급경사를 내려가다 보니 오를 때보다 더 위험하다.

능선에는 강풍에 실려온 눈이 쌓여 기묘한 형상의 성을 쌓아, 가는 이의 발걸음을 더욱 힘들게만 한다. 허리까지 빠지는 곳은 부지기수요, 어떤 것은 사람 키보다 더 큰 것이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어서 기를 질리게 한다. 허나 어찌하랴 길은 하나뿐이니 뚫고 나갈 수밖에.

     

                                                            아침식사

 

     

     월성재. 카메라를 주머니에서 꺼내니 보온에 신경을 썼는데도 하얗게 서리가 끼어있고, 렌즈덮개는 조금밖에

     열리지  않아 그대로 찍었더니 위 사진 처럼 나왔다.

 

                           

                    사람 키보다 더 큰 눈더미가 등로를 가로 막고 있다. 저기를 뚫고 지나가야한다.

 

                             

                                         저런 눈더미때문에 엄청 힘들고 더디게 나아간다.

 

  바닥만 보고 조심해서 걷느라 정신이 없는데 앞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린다.

화들짝 놀라 올려다보니 그렇게도 그립던 사람이다. 놀란 건 그쪽도 마찬가지다. 5시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이다. 오랜지기를 만난 것처럼 두 사람은 한참을 이야기하고 헤어진다. 삿갓골 대피소에서 일행들과 1박을 하고 오는 길이란다.

곧이어 그의 일행들을 만난다. 날이 서서히 개이기 시작한다.

     

        산행 다섯시간만에 처음으로 마주친 산님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수월해졌다. 마주친 산님 발자국.
 

  두개의 배낭이 눈을 덮어쓴 채 산행로 옆에 주인을 잃고 쓸쓸히 앉아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의 흔적은 없다. 아마도 힘이 들어서 배낭을 벗어놓은체 대피소로 간 것 같다.

삿갓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한참을 가니 저 아래에 삿갓골 대피소가 보인다.

      

                    주인잃은 두개의 배낭.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는데 다른 산님이 눈을 다 털어냈다. 

 

                                       

                                     배낭 앞에서 마주친 산님들. 이분들은 삿갓골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고 육십령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날이 개면서 화려함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서리꽃

 

    

                                                                 서리꽃

 

    

                                                     원없이 보는 서리꽃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다울뿐이다.

 

    

                                                               아름답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삿갓봉이 보인다.

 

    

                                                            보고 또 보고

 

    

                                             그렇다고 한 없이 바라볼 수는 없는 일

 

    

                                                      그래도 또 쳐다본다.

 

    

                           무룡산이  보인다. 멀리 향적봉은 구름에 싸여 보이지도 않는다.

 

  갑자기 왼발이 푹 빠지면서 몸이 두 바퀴 구른 후 퍽! 소리와 함께 멈춘다. 온 몸이 눈사람(눈가루 범벅)이 되었다.

퍽소리는 머리가 땅에 부딪치는 소리다. 이번에는 맨땅에 헤딩이다. 그나마 눈이 쿠션역할을 해서 충격을 흡수해서 망정이지 바위에라도 머리를 부딪쳤으면 큰 부상을 당했거나 그 이상의 불상사가 발생하였을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머리는 띵하기만 할뿐 상처는커녕 혹도 생기지 않았다.

히어리 대단하다. (대단 = ‘대가리가 단단하다’의 약자)

언제부터인가 스틱을 안 갖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스틱을 갖고 다니면 사진 찍을 때 어찌나 애물단지로 변해버리는지 사진을 많이 찍으시는 분들은 알 것이다.

그런데 오늘 온종일 스틱이 없는걸 이렇게 후회하게 될 줄이야.

 

  대피소에 들어가 주인에게 아까 그 주인 잃은 배낭얘기를 꺼내니 취사장에 배낭주인이 있단다. 영각사 쪽에서 오다가 너무 힘이 들어 새벽 2시에 배낭을 내려놓고 빈 몸으로 들어왔단다. 식사 후 배낭 찾으러 간다하니 다행이다. 

  요기될 것이라고는 컵라면밖에 없다. (과자종류도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내 배낭속에 잔뜩 들어있다.) 주인장이 온수를 부어준 1500원짜리 육개장 컵라면을 들고 취사장으로 내려가 보니 배낭주인과 일행들이 있었다. 그들이 따라준 뜨거운 숭늉을  감사히 받아먹는다. 참 좋은 분들이다.

     

                                                        삿갓골재 대피소
 

  대피소에서 무룡산, 향적봉 쪽으로 올라간 발자국이 없다. 대피소 침상에 올라가 맘껏 누워본다. 이대로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황점으로 하산을 결심한다. 

또 다시 기약할 수 없는 러셀을 하면서 가야만하니 시간은 한없이 늘어져서 오늘 해 넘어가기 전에 향적봉에 도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도 걷지 않은 산길을 러셀하면서 걷는다는 것이 평소보다 두 배나 힘들며,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오늘 체험했으니 욕심을 내어서 향적봉으로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게다가 밤에 향적봉 대피소에 도착해서 또 컵라면을 먹어야만하니 배탈이 날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내일아침까지 모두 네 끼를 컵라면만 먹을 수는 없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내가 아닌가.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덕유산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어서 언제든지 나를 받아 줄 테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오늘만 날이 아니다.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나와 종주를 포기하고 왼쪽 나무 계단으로 하산을 한다.

 

     

                                하산길 나무계단. 이곳은 서리꽃대신 눈꽃 천지다.

 

                           

                                                            기이한 나무

 

    

                                                              쉼터바위

 

  황점으로 내려가는 계곡은 볼 것이 거의 없다. 빠른 탈출하기에 좋은 코스일 뿐이다.

한 무리 중년의 단체 산님들이 올라가고 있다.

     

            황점마을에서 바라 본 월봉산 수리봉(왼쪽산)과 가운데 남령. 남령 넘어가면 영각사가 나온다.

 

     

                                               황점마을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오랫만에 보는 황점마을의 포니 2 승용차

 

                                     

                                                    황점마을 ( 산행 날머리 )

 

    

황점마을 구멍가게 앞의 트럭에 목이 매단채로 실려있는 진돗개. 겁에 잔뜩 질려있는 눈이 가엽기만하다. 트럭은 잠시 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추위를 피해 황점매표소 앞 가게에 들어가 서상택시(영각사까지 15,000원)를 부르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주인아주머니가 어찌나 친절한지 전혀 부담이 되질 않는다.

     

                   영각사에서 내려오다가 차를 세우고 찍은 남령(왼쪽 움푹 패인곳)과 월봉산 수리봉
 

    

              서상나들목 입구에서 찍은 남덕유산(한 가운데 가장 높은 봉)과 서봉(왼쪽 두번째 높은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