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눈꽃 산행

 1월13일 오전 6시에 화곡역 출발 예정.

10분쯤 늦게 떠나 제천, 영월 거쳐 유일사 도착 11시 경.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이 시를 음미하면서, 등산객 무리에 섞여 산행 길에 동참하였다.


 

 해발 950m 유일사 입구에서 출발하는 산행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침 내린 눈이 온통 태백을 덮고 있으니 눈꽃 산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수밖에...

유일사 휴게소에서 저 아래 고즈넉이 자리한 고찰을 내려다보면서, 문득 지훈의 시가 생각났다.

       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산사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모르긴 해도 지훈이 여길 이 계절에 찾았더라면, 새하얀 눈꽃을 보고 이런  결미로 마무리하지 않았을게다.눈길을 헤집고 오르면서 지금이 봄이었다면,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돌돌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없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이렇게 읊었을끼다.  이호우는...

 

  주목 군락지를 지나 설화 눈꽃 터널, 그리고 상고대가 펼쳐지는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또 다른 경이가 펼쳐져, 조물의 신비에 경외감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만큼이나 주목 위에 얹힌 눈덩이가 힘겨워 보인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들이 세월의 무게를 저리도 힘겹게 견다고 있구나!


 

   천제단에 오르니 제법 칼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껴 디딜 곳조차 없네.


 

   누가 등 떠밀어 오진 않았다. 주름살 많은 높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찾아,  먼 길 찾아 여기 섰다. 잊고 살았던 그 넉넉한 품이 그리워 찾은 태백이다. 단 앞에 잠시 머리 숙여 본다. 

 단종의 비원을 들어나 볼 걸, 망경사에서 다리쉼하고, 곧장 갈 길을 재촉하는데,  문득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답고,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답다” 그래서 자꾸만 산들을 찾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언제나 저 산같이 되나 하고 기린 같이 긴 목을 느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구절양장 굽이굽이 돌아 하산하는 동안 커다란 바위를 마주했다. 문득 청마가 그립다.


    “ 하늘도 땅도 가림할 수 없이

      보오얀히 적설하는 날은

      한 오솔길이 그대로

      먼 천상의 언덕빼기로 잇달아 있어

      그 길을 찾아가면 

      그 날 통곡하고 떠난 나의 청춘이“

기다릴 것 같아 여기 산을 목말라 하는지도 모른다. 앞에 있는 이 바위를 보면서,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

              .

              .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바위가 청마의 비원을 웅변하는 건 아닐까!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질 않을란다.

  

 바람만일까. 나를 키운게...미당을 이해하여야 되겠지.

 

 마지막으로 윤동주의 서시로 끝맺어 볼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차 안에서의 불편이 불편했지만, 윤동주의 시로 마음을 달랜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2008.1.18일   백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