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산행일자:2008. 1. 27일

          *소재지  :강원평창

          *산높이  :비로봉1,563m, 상왕봉1,491m

          *산행코스: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

          *산행시간:10시35분-18시5분(7시간30분)

          *동행    :경동고 24기동문 등 총24명

          (24기 김남진, 김종화, 김주홍, 송찬영, 이문상, 장광종, 장병일 부부와 박용철,  백인목,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이달헌, 이명재, 우명길 및 29기 정병기 부부) 

 

 

  작년 7월 고교동기들과 함께 방태산을 올랐을 때 온갖 심술을 다부렸던 구름의 신 제우스가 꼭 반 년 만에 그 남동쪽의 오대산을 찾은 저희들을 극진히 맞아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오대산 정상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14도이고 한낮의 최고기온이 영하7도에 머무를 것이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접하고 나서 이에 골바람까지 가세한다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지기에 해발1,500m가 훨씬 넘는 오대산을 스무 명이 넘는 대식구가 과연 무탈하게 오르내릴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인 일인지 오후 1시 경에 올라선 오대산 정상의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섰고 바람은 물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 봄 날씨를 방불할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얼굴에 와 닿은 햇살이 한껏 따사로워 수많은 인파로 비로봉 정상이 북적대지만 않았다면 저는 분명 이 산의 비로자나불께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엄청 눈이 많이 쌓인 상원사-비로봉-상왕봉-상원사의 약12Km에 이르는 긴 코스를 한명도 낙오 없이 무사히 마쳤음은 어제 하루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를 내려주도록 제우스신에 말씀 주신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대산 산행을 계획하고 진행을 맡은 제가 카톨릭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로봉에 거하시는 비로자나불께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주님께서 저의 속 좁음을 나무라실 것 같아 마음속으로 기꺼이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오대산이 설악산과 대별되는 것은 평안한 산세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입니다.

정상에 올라 눈 부비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설악산의 성깔 사나운 칼바위를 찾아볼 수 없는 온후한 고산이 바로 오대산입니다. 멀리로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이 산을 찾은 신라의 자장법사에서 가까이는 6.25 전쟁이 발발할 것을 미리알고 도반(桃盤)들을 피신시킨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고승대덕들이 이 산에 머무르셨던 것도 문수, 지장, 관음, 대세지보살과 석가여래의 오류성중(五類聖衆)들께서 이 산에 자리하실 만큼 산세가 각박하지 않고 평안해서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최고의 부처 비로자나불이 거하시는 이 산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을 모시는 북대미륵암의 주산인 상왕봉까지의 능선 길은 북쪽의 설악산과 방태산이, 남쪽으로 발왕산과 가리왕산이, 동으로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높낮이도 그리 심하지 않은 편안한 흙길이어서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마음의 평화가 절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오대산 최고의 명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입니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대산-두로봉-상왕봉 및 호령봉 등 5대 고봉들이 연꽃처럼 피어오르고, 삼라만상이 다 함께 평화를 누린다는 극락정토에 들고자 수많은 중생들이 찾아와 기도를 올렸을 적멸보궁은 이 연꽃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합니다. 오대 고봉과 오대 사찰, 그리고 적멸보궁이 들어선 오대산은 시간여유만 있다면 하루를 묵으면서 이 모두를 찬찬히 들러볼만한 불교의 성지이기에 카톨릭 신자인 저도 1972년 이 산을 처음 오른 후 네 번을 더 찾아 올랐습니다.


 

  아침7시반을 조금 지나서 올림픽공원역을 출발했습니다.

일곱 쌍의 부부가 동반한 스무 명이 훨씬 넘는 대인원이 대형버스를 대절해 명산탐방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모처럼 분위기가 들뜨고 활기도 넘쳤습니다. 김남진동문의 사회로 새로 합류한 동문들을 맞이하는 서중원회장의 환영인사와 이규성대장의 오대산 설명이 있었고 저의 산행계획 안내가 뒤따라 마치 전문산악회가 가이드 하는 산행버스에 오른 것 같았습니다. 수지의 김주홍 부부가 준비해 온 시루떡으로 아침을 들며 담소를 나누는 동안 저희들을 실은 버스는 어느새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오대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동안 길 아래 계곡을 가득 채운 눈을 보자 비로봉 정상에 쌓인 눈이 어느 정도 될 것인가가 가늠되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습니다.


 

 10시35분 상원사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주차장을 꽉 채운 관광버스들이 실어 나른 수많은 산객들로 중대암을 오르는 계단 길이 꽤 붐볐습니다. 온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둘러싸인 그늘진 눈길을 걸으면서도 이렇다 할 냉기가 느껴지지 않은 것은 뜻밖의 일로 참으로 천우신조다 싶었습니다. 중수를 끝낸 지 얼마 안 된 중대암의 층층 처마에 내려앉은 햇살로 단아한 단청이 더욱 돋보였고 처마 끝의 고드름이 계속 자라서 아래 지붕에 닿아 있는 모습은 이 절의 독특한 가람배치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진풍경이어서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1시43분 적멸보궁에 다다랐습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를 몸소 찾아가신 분이 신라의 고승 혜초스님이셨다면, 인도보다 더 한 불교의 융성기를 맞은 신라에 모셔져 오신 분은 이미 입적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비로봉을 오르는 이토의 중생들이 빼놓지 않고 들러 죽어서 극락정토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 마음이 편해지고, 몸이 맑아지고, 생각이 밝아지며,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며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오대광명(五臺光明)을 얻는다면 그 곳이 바로 극락정토다 싶어 적멸보궁은 오름길에 들를 것이 아니라 땀 흘려 비로봉에 올라 비로자나불에 인사를 드린 후 하산 길에 들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멸보궁에서 비로봉1.1Km 전방의 간이건물에 이르는 길은 무명봉을 오른 쪽으로 에도는 산허리 길이어서 위아래로 가득 쌓인 하얀 눈이 볼만했습니다.


 

  13시26분 해발1,563m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대피소에서 비로봉에 오르는 길은 가팔랐고 목제계단 길이 눈 속에 파묻혀 걷기에도 조금은 불편했습니다. 고산의 심설을 처음 밟는 부인 몇 분들이 많이 지친데다 오르내리는 산객들로 길이 붐벼 마지막 0.4Km를 오르는데 무려 40분이 걸렸습니다. 비로봉에 오르자 미풍도 불지 않고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쾌청해 북쪽 멀리로 설악산 대청봉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줄기가 남북으로, 서쪽으로는 동서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한강기맥의 산줄기가 한눈에 보이는 비로봉을 오르는 일이 몇몇 분들에는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이었겠지만 덕분에 바깥분의 애틋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기에 비로봉등정의 진한 감동이 꽤 오래갈 것 같았습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잡아 놓은 자리에 빙 둘러 앉아 반시간 남짓 점심을 맛있게 들고 있는 저희들을 보았다면 이 봉우리를 지키는 비로자나불은 물론 미리 맞춰놓은 듯이 더 할 수 없이 좋은 날씨를 주선해준 제우스신도 군침을 흘렸을 것입니다.


 

  14시3분 비로봉 정상을 떠나 하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힘들게 오른 몇 분들도 상원사로 되돌아 내려가는 가까운 길을 마다하고 오른쪽으로 빙 돌아가는 먼 길을 걸어 예정된 코스를 완주하겠다는 뜻을 밝혀 24명 전원이 동쪽으로 2.4Km 떨어진 상왕봉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 두 곳을 지나 상왕봉에 이르기까지 능선 길이 붐벼 작년 2월에 이 길을 지날 때보다 운행속도가 많이 더뎠습니다. 날씨가 조금만 더 추웠더라면 가지가지에 맺혔을 설화를 보았을 텐데 그리하지 못한 아쉬움은 휘어진 굵은 줄기 위에 쌓여 있는 흰 눈을 보고 달랬습니다. 아름드리 주목과 1,500m가 넘는 다른 고산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활엽수 거목들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이들에 내년도 설산 산행을 약속했습니다. 곳곳이 포토라인이라며 좋아하는 다른 팀들 여인네들에 길을 비켜주느라 후미로 한참 쳐졌습니다.


 

  15시31분 해발 1,491m의 상왕봉을 올랐습니다.

선두의 이규성대장이 후미를 맡은 서중원 회장에 계속 메시지를 보내 명산탐방에 처음 사용해보는 무전기의 성능을 테스트했습니다. 인파에 밀려 생각만큼 앞서가지 못한 선두보다 십 수분 늦게 상왕봉에 오르자 먹을 것을 찾아 눈 위로 내려앉은 박새가 뭔가를 계속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상왕봉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가파르게 내려선 안부삼거리에서 두로봉으로 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꺾어 북대사 길로 들어서 바로 앞 1460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했습니다. 비로봉 출발 2시간이 지나서야 능선 길에 짐을 내려놓고 제대로 한번 쉬었으니 발뒤꿈치가 까져 발걸음을 옮겨놓기가 여의치 못한 한 분에는 이번 산행이 무척 힘든 산행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사이로 펼쳐진 하늘이 질그릇을 깰 정도로 냉랭하고 새파랬지만 날씨만은 맞춤 날씨여서 십분 가까이 쉬었어도 추운 줄 전혀 몰랐습니다.


 

  16시47분 북대산 갈림길의 임도에 도착했습니다.

10분여 편히 쉰 능선 길에서 큰길로 내려서기까지 20분이 넘게 걸린 하산 길은 이제는 다 내려왔다 싶어서인지 길잡이가 되어준 엄청 큰 참나무에 감사인사를 건넬 정도로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큰 길에서 몇 걸음 걸어 내려가 이제껏 후미를 맡아준 서회장이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찔러가는 지름길로 들어섰고 회계를 맡은 장광종 부부와 저는 산허리를 빙빙 도는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하얀 수피가 벗겨져 불그스레한 색조를 띄고 있는 거제수나무가 임도 옆에 나란히 서 있어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는 저희들을 격려하는 듯 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서 비로봉을 오를 때 몹시 힘들어했던 또 한분을 만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 부탁해 얻은 봅슬레이(?)에 부인을 태우고 내달려 눈 깜박할 사이에 저만치 앞서가는 이문상동문내외의 감동어린 사랑의 현장을 사진으로 옮기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18시5분 상원사주차장으로 되돌아와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골짜기에 드리운 땅거미가 임도 길로 내려앉자 기온이 급강하하고 땀이 식어 냉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워질수록 산 속의 흰 눈이 더욱 희게 보이는 것은 햇살에 밀려난 어둠이 산으로 되돌아온 후 흑과 백이 명백하게 대비를 이루는 것은 오직 어둠과 하얀 눈밖에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마중 나온 정병기 후배와 김주홍 동문을 만나 함께 3-4분을 더 내려가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르자 어느새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했습니다. 코스가 길어 더 늦었더라면 체온이 떨어져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이번 산행도 조금은 무리다 싶었습니다. 가리왕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정남시동문의 펜션으로 옮겨 뒤풀이를 가진 후 23시20분경 출발지인 올림픽공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번 산행을 가뿐히 끝내 모처럼 모범을 보인 이기후 동문, 비로봉에서 점심 때 만나고는 산행 내내 만나지 못했던 선두그룹의 백인목, 이달헌, 이명재동문도 이번 산행을 같이 했습니다. 김종화, 장병일, 이문상, 송찬영부부와 박용철 동문이 이번에 처음으로 합류해  반가웠습니다. 넉 달 후 만개한 철쭉꽃을 만나 보고자 다시 나설 명산탐방을 기다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이번 오대산 산행이 오랜 동문들과 정말로 멋진 해후가 되었기를 바라면서 산본 집으로 향했습니다.


 

  산행을 같이한 친구들에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한 평생”을 노래한 시인 박재삼님의 명시“산에서”를 올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에서”

                                           박재삼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어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연중들어 간장이 저려 오는 아픔이어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 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