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04년 9월 5일 , 일요일 , 흐림 , 오후에 비

2. 장소 : 강화도 마리산과 참성단

3. 코스 :  함허동천 - 함허정 - 마리산 - 참성단 - 마리산 -함허동천 (원점회기)
        약 2시간 소요 ( a.m 5.00 - a.m 7.03 )

4. 접근 : 대전나들목 - 경부고속도로 - 판교나들목 - 100번 순환도로 - 김포나들목 -
          48번도로 - 누산삼거리 - 양촌 - 초지대교 - 함허동천 (약 2시간 40분 소요)

5. 산행기록 :


두 마리 토끼

벌초를 위해 고향에도 가야하고 어딘가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의 고삐는 주체할 수 없는데..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는다?!"
"맞아!"
"늘 하던 것처럼 잠을 줄여서라도 다니면 될게 아냐!."
"그런데 어디가지?"
문득 떠올린 곳은 마니산, 그리고 참성단.
왜 거기였을까?
산행시간보다 접근하는데 시간이 더 드는 비경제성은 차치 하고라도 말이다.
아마 한國을 세우시고 위대한 정신유산을 물려주신 檀君께서 어리석은 중생을 와보라고 하명을 하셨음이리라.



야간비상

겨우 1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기어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늘 잠이 부족하면서도 잠을 일찍 청하지 않는 습(習)은 요즘의 습(濕)한 날씨처럼 일상이 되버린지 오래.
2시 반쯤 대전 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 판교 나들목에서 순환도로에 접어들었다.
길은 초행이지만 막히지 않아 김포까지 잘 진행하였고 지방도 접속을 위해 잠시 헤맨 다음 강화대교를 건넜다.
그리하여 함어동천의 주차장에 닿은 시각이 오전 5시.
다행으로 흐리긴 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 대기는 투명하게 느껴진다.
아하불사!  
밧데리와 디지털 카메라는 들고 왔지만 메모리카드를 놓고 온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좋을 수가!!!
기록을 위해 다시 와야 할 당위성(當爲性)이 생겼고, 또 오늘은 사진이 없어 모든 순간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평생 잊지 말아야 하므로...


함허동천

매표소를 지나고 콘크리트 포도를 따라 오르다 관리사무소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함허정이 있다.
2층 누각에 올라보니 아직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어둠이 동막과 김포의 불빛과 공존하고 있구나.
등산로는 두 갈래다.
관리사무소 왼쪽 길로 갈라져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과 함허정 위쪽으로 난 제4야영장 푯말을 따라 직상 하는 길.
당연히 수직의 오름길을 택하자 잘 나있는 등산로가 꾸불꾸불 산정으로 향하고 가빠오는 숨소리에 비례하여 정신이 맑아온다.
안부에서 잠시 멈칫하던 산길은 왼쪽의 날등으로 이어지고 오를수록 바람이 정말 시원히도 불어준다.
조금씩 나타나는 바위들.
젖어있어 미끄럽긴 하지만 통과하는데는 지장이 없고 문득 계곡 쪽이 트여지자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다.
나일론 줄로 구획이 된 길은 간간이 나무로 디딤을 놓았고 얼마 뒤 나타난 계단은 나무인데 약해 보였다.


머리가 되는 산

그 계단 끝은 `정수사`로 가는 갈림길과 만나는 곳.
이젠 동녘 빛은 점점 강해지고 사위는 비로소 제 색감을 찾아간다.
여길 지나면 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바다를 마주하고 바윗길이 성채처럼 이어진다.
참성단은 오른쪽으로 1Km 더 가야한다고 이정표가 되어있다.
기역(ㄱ)자로 구부러진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는데 아까부터 맞았던 바람이 예삿 바람은 아니더라고..
`마리산`은 `머리산`이고 "모든 땅의 머리가 되는 곳"이므로 `백두산'도 역시 그러하다.
여기엔 "나뭇꾼이 나무하러 산에 올랐다가 바둑두는 노인들을 만나 구경하다 돌아오니 300년이 지났다"는 전설이 있다.
즉,"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는 것으로 마리산과 바둑 그리고 시간이 개재된 내용이다.
산정(山頂)엔 삼각점이 새겨져 있어 특이하지만 안내판 내용은 더 유별하다.
가는 길 왼쪽은 단애를 이뤘고 내내 바위로 이어진 길은 산 중턱까지 우회로와 같이 달린다.
해풍에 실려온 습기가 채 마르지 않았으나 날등을 타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곧 참성단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 바위에는 조선 숙종때 행해진 참성단 중수비가 새겨있는데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글씨는 많이 마모되어 있구나.


시간을 재는 잣대
  
이곳은 원래 고가도(古加島)인데 古加라는 말은 과거의 간, 칸, 한으로 옛날의 위대한 황제로써 단군을 뜻한다.
이곳에 참성단을 세운 것은 물(陰)도 육지(陽)도 삼신일체(三神一切)를 이루는 그야말로 절묘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강화도의 바다에는 예성강, 임진강, 한강이 합수(合水) 되고 김포반도의 끝에 강도(江都), 화도(患)가 위치하고 그 안에 마리산과 참성단이 있다.
그리고..
우리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천산(天山)에서 시작된 한國이래 9000년, 태백산(太白山)에서 시작된 배달국(倍達國)이래 6000년 그리고 백두산에서 시작한 檀君朝鮮이래로 4320년이 기준시간이다.
예언서의 "七十二才 海印金尺"를 풀이하면 "단군조선이 B,C 2333년 무진년에 설립되었고 오늘날까지 60갑자가 72회 지속되었다."
"즉, 4320년 - 2333년 = 서기 1987년이 되는데 1988년 무진년이 새로운 시간의 시작점이다.
시간을 재는 잣대(金尺)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간이란 세계의 주도권이 대한민국으로 넘어온다는 것을 의미하면 물질문명에서 정신문명으로 바뀌는 시기라는 것이다.  


민족의 성지(聖地)

헬기장에 올랐고 `성화채화모습` 사진판을 지나 산불 감시초소 너머엔 참성단이 보이는데...
참성단(塹城壇)은 단군께서 태자 `부루`(2세 단군)에게 명을 내려 쌓도록 하신 곳으로 또 역대 단군이 제천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곳이다.
민족의 성지 참성단은 철조망으로 꽁꽁 둘러싸여 있고 주변은 바람이 세차다.
바위에 앉아 아주 좋은 기운을 마음껏 들이키고 일어설 때 세찬 바람에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한다.
기실 우리는 근본을 너무도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안팎으로 흔들리는 것은 뿌리를 튼튼히 하지 못한 까닭일거야.
조상님께서 홍익인간 할만한 곳이라 하여 대한민국을 세웠고 백성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드신 이곳.
매년 개천절과 전국체전 때마다 성화를 채화한다고 본디 만들어진 역할을 다 한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미 날은 밝았으나 구름에 가려진 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더니 마침내 찬란한 햇살을 펼친다.
그렇구나.
미망에 가려진 것들도 구름이 걷히면서 밝음이 드러나듯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도 그러할 것이다.
"대한민국""우리 모두 잘해보자!!!"


`천부경`과 우리의 미래

되돌려 오는 길.
아까 보았던 몇 개의 노란 철심과 노란선 외에 바위에 불규칙한 간격으로 빨간 점이 찍어져 있다.
내내 `마리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아 안전 기둥을 설치할 자리를 표시한 것 같다.
과도한 안전시설물을 꼭 세워야 하는지...
게다가 의미있는 우리의 성산에 말이다.
`정수사`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가면 `함허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열려있다.
볕이 잘 들지 않는데다가 물기로 촉촉하여 내림 길은 미끄럽지만 줄이 길을 잘 안내한다.
오른쪽으로는 길게 펼쳐진 암반에 물소리도 시원하게 내리는 장면이 100여 미터에 이른다.
드디어.. 포장길을 따르면 곧 비석이 보이고  오른쪽 측면에 새겨진 `천부경`(天符經)을 몇 번이고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一始無始一 析三極 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鋸

無궤化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 一妙衍萬往萬來用

變不動本 本心本 太陽仰明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우리민족 삼대경전 중의 하나로 인류문명의 근본이 들어있는 참으로 훌륭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신 조상이 있음에 늘 대한국인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중생도 분명 용처(用處)가 있을것!!!
이제 두시간여의 짧은 산행을 마치고 다시 조상님을 뵈러 고향을 향해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