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기
                           
                                               장         정        호


 결국 일을 저질르고 말았다.
800여미터의 금정산도 할딱거리며 오르지 못하는 놈들(미안)--강국상, 최익환이 어느날 갑자기 3박4일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자고 하였다.
일마들아! 지리산 종주가 알라 이름인 줄 아나? 라고 한마듸로 짤라 말했는데..............사실은 두렵기도 하고,
그러나 이왕 종주할 바에야 3박4일은 종주의 이미가 없고 무리하더라도 남들이 다하는 2박3일 일정으로 계획을 짰다.

내가 82년도 한창 젊은 나이에 단숨에 달려 지리산 종주 한 경험이 있고 또한 수산회장직을 맡고 있어 이번 지리산 종주에서는 등반대장겸 총무까지 맡아 달라고 간곡히 권할 뿐 아니라 국상, 익환이--"회장님"하는 소리에 그렇게 하기로 승낙하고 말았다.

국상---"정호야! 니는 이번에 수산회장겸 등반대장을 맡았으니 가문의 영광"이라나,
국상, 익환으로 부터" 등반중에는 회장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겠다"는 충성서약을 받고
산행계획을 짠후 9월3일 아침 우리집에서 만나 2박3일 동안 먹을 양식과 준비물을 각자의 배낭에 나누어 넣고 나니 무게가 자그마치 15키로그람--젊은놈도 아니고 이건 완전히 짐꾼인기라---

10시10분 강국상, 최익환, 김진무(강국상 어릴 때 불알 친구), 나하고 모두4명이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중산리행 직행 버스를 타고 중산리에 도착하고 보니 13:00경 , 버스주차장부근의 지리산식당집에 들러 산채, 두부무침에 막걸리, 소주 짬뽕을 하고 나니 완전히 고주망태----

4명이 지리산 식당 민박집에서 하루 묵고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중산리에서 일박한것을 빼고 나면 결국 2박3일로 지리산 종주를 한 셈이다.

민박집에서 아침일찍 일어나 칼바위, 로타리 산장을 지나 법계사에 들리니 10:00경,
익환, 진무--법계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나, 국상--대웅전에 들러 3배한후
나혼자--산신각에 들렀다.
향사르고 촛불 켠후 산신령님께 3배하면서 "부산에서 온 네놈이 버릇없이 감히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었으니 모쪼록 보살펴 달라"면서 기도하고 천왕봉을 향하였다.

법계사에서 천왕봉은 보통 2시간 거리지만 무려 3시간 30분이 걸려 정상에 다달을 수 있었다.
이건 완전히 국상 때문이다--본인에게 미안 하지만 밝힌다--
정상 못미처 부터 EBS에서 헛소리 강의하던 김홍겸과 흡사이 닮은놈(미안?) --꽁지머리에 갈색 개랑한복을 입은 폼--을 만났는데 익환이 벌써부터 친해져서 천왕봉 정상에 닿자 마자 돼지족발 안주에 소줏잔을 기울이며 함께 온 아줌마 부대들과 어울려 령산의 정상을 모욕하고 있었다.
나--정상10여미터를 남겨두고 잠시 3,4분간 기도 했지!
'산신령이시여! 무례한 놈을 용서?해 달라' 고.......
'그리고 장엄한 지리산의 정상을 감히 밟게 됨을 윤허해 달라' 고----
30여분간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촛대봉, 형제봉, 반야봉을 지나 멀리 아스라이
노고단을 바라보면서 장터목 대피소를 향하였다.
통천문을 지나면서 내가 대원들에게 한마듸 했지---"19년전 이곳을 지날 때 부레키도 잡지 않고 돌풍을 일으키며 달렸다"고 했더니
모두들--- 나 회장을 존경하는 눈치인 기라??????
고사목지대를 지날때는 모두 탄성을 자아 냈지.
장터목대피소에서 점심을 해 먹고 세석 대피소를 향하였다.
촛대봉 지점에서 할딱거리며 올라오던 국상이 체력의 한계점에 다달았는지 한쪽 다리가 삐
걱하여 맨소레덤으로 맛사지 하는 동안 익환은 땀을 씻기위해 바삐 세석 대피소를 향해 내려 갔다.

해질 무렵에 대피소에 도착하여 코펠, 바나를 꺼내 밥을 지어먹고 팩소주6개를 까 마셨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서로 자기 배낭속의 먹을 것들을 내 놓을때는 어린애들 마음같았다.
세석대피소에서 하루 묵고 아침7시에 기상, 미역국에 밥해 먹고 9시에 출발, 뱀사골 대피소를 향하였다,
국상이 체력이 약해--자꾸 되풀이 해서 미안?--뱀사골 대피소까지 못 갈 것 같아 내가 함께 뒤따르기로 하고 익환이 먼저 대피소를 출발하였다.
칠선봉, 형제봉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니 샘터에 담궈놓은 캔맥주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캔씩 마시고 나니 온갖 번뇌가 씻겨 내리는 기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7:00경 연하천 대피소를 출발하여 뱀사골 대피소를 갈려고 하니 다른 등산객들이 해지기 전에 도착하기 어려우니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라고 말리는 것을 뱀사골에서 미리 도착해 혼자 있을 익환을 생각하여 내가 산행을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꾸역 꾸역 가다 토끼봉에 다달으니 해는 이미 져 버리고 깜깜한데 설상가상으로 비마져 내려 최악의 조건에서 산행을 해야만 했다.

준비한 후랫쉬로 토끼눈을 하며 오르막 내리막을 수차례 거듭하여 뱀사골 대피소에 도착하니 밤8시---익환을 찾으니 미리 도착하여 다른 일행과 소주 몇잔을 마셨는지 침낭을 뒤집어 쓰고 깊은잠에 들어 있었다.
내가 반가워 어깨를 흔들며"익환아 우리가 왔다"고 하였더니 눈을 비비며 일어 나더니
" 야! 국상아! 니가 여기 까지 올줄 몰랐다" 고 하면서 반가워 했다.
서로 만나면 친구니, 동기니 하면서 농담을 하던놈들이 되게도 반가웠던 모양이다.
더구나 익환이는 국상이가 이곳까지 올줄 전혀 예상 못하였으니 반가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점에서 고등어 통조림을 사서 끓여 놓고 서로들 소주를 많이도 마셨다.
밤10시가 되니 매점의 불빛도 꺼지고 비도 그쳐 침낭속으로 기어 들었다.
시설이 최악인 뱀사골 대피소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7시, 마지막으로 배낭에 넣어둔 김치, 고추장, 깻잎, 멸치볶음, 미역국거리등을 몽땅 꺼내 놓고 밥을 지어 먹고나니 배낭이 한결 가벼워 젔다.

9시에 대피소를 출발하여 '마의 547계단'을 수차례 쉬어 가면서 기다시피 올랐다.
삼도봉을 지나 노루목에서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은 바위위에서
국상---홀딱 벗고(빤쯔까지) 일광욕?을 한다나?
익환---누가 오는지 망 보고,
나---국상의 나신을 모델로 삼아 카메라에 담고,-------------
30여분간 산중의 굿판을 벌인후 임걸령을 지나 노고단에 도착하였다.
노고단에서 성샴재까지는 그야 말로 지옥같은 산행이었다---옛날에는 황토길이라 걷기가 편했는대 지금은 돌을 깔아 놓아 영--걷기가 불편하였다.
익환, 국상, 그리고 나 모두--"공사비 빼 먹을려고 쓸데 없는 공사를 했다"고 투덜댔다.
누가 보아도 정말 산행을 하는 사람을 전연 고려치 않은 공사였다.

뱀사골 출발 할때 대피소 직원 왈---여기서 섬삼재 까지는 3시간이면 충분할 낍니더--
그런대 그말 믿고 갔는데 이건 택도 없는 소리 --부지런히 걸었는데 5시간 30분이나 걸려 14:40에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국상이 아주 잘 나갈때--인삼장사할 때--아는분의 아들이 11시40분부터 우리 일행을 기다렸단다. 무려 3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정말 미안, 미안하였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무쏘타고 정령치고개를 넘어 남원에 가서 광한루옆에 있는 새집 추어탕집에 도착하니 모두들 완전 녹초-------
미꾸라지 찜에 소주 몇잔 마시고 나니 온몸이 땅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추어탕으로 식사를 하고 목욕한후 남원에서 부산행 바지막 18:00에 출발하는 직행버스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니 21:00-----
회장인 내가 한마듸---"해단식겸 맥주한잔 하고 헤어지자"고 하였더니
모두들 죽겠단다.----"그냥 집으로 가자고"====///

이 나이에 부산의 수산회원들이 결국 해 냈다----지리산종주를----
그것도 2박3일 일정으로!!!!!!!!!!!!!!
2박3일 지리산 종주가 얼마나 어렵고 힘드는 지는 윤창준이는 알끼다.
건강이 좋지 않은 국상의 의지와 투기에 찬사, 그리고 거듭 찬사를 해 주고 싶다.

                                         2001.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