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의 정통코스
 

 

 

이런 날 있으신지요.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날

그리워 그리워해도 그리움이 더해지는 날.

나를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요

그럴 때 그 여린 감정을 안고 어디로 떠나보세요.

그리고 느껴보세요.

내 가슴에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가슴 와 닿는 짜릿한 감정 속에서

~ 삶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오늘은 나의 가슴이 포만감으로 채워져 있어 마냥 좋았습니다.

 

-제석봉에서-

 

 

 

-일시: 2008.12.6

 

-어디를: 지리산 천왕봉

 

-누구와: 나 홀로

 

 

 

 

 

저녁11근무 마치고 그 뒷날은 좀처럼 산행을 하지 않은 날인데

그냥 어디로 마냥 눈 덮인 산을 거닐고 싶었습니다.

바래봉으로 갈까

천왕으로 갈까

밤새 저울질을 하다가 지인과 통화한 의견에 따라 상봉을 오르기로 합니다.

 

새벽부터 서두를 일도 없지요.

그냥 아침 일어나는 시간 아무 때면 어때하던 것이7일어났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홀로 산행은 헝그리 산행 그 자체입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아내가 챙겨준 감 연시2개와 빵3개 그리고 물 한 병이 오늘 먹거리입니다.

중산리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10넘어10시 25부터산행을 시작합니다.

상봉에는 벌써 하얀 상고대가 꽃을 피웠는지 아니면 어제 내린 눈꽃이 그대로인지.

 

 

비스듬히 비치는 햇빛에 천왕을 중심으로 남으로는 파란 하늘을 비추고

고도1000 주변부터는 은색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에 괜스레 바빠지기 시작한다

눈을 기다리는 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지요.

올 들어 눈 산행을 못한 나로서는 내심 눈 같은 눈이 내렸으며 하는 기대를 안고 오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법계사 까지는 별로 조망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카메라를 내놓지도 않았죠.

그런 마음도 있지만 내심 바빠진 이유는 행여 밤새 씨로 맺어준 바람 꽃인

천왕봉의 상고대가 아침 햇살에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고

제발, 이 게으른 자에게도 축복을 주소서하고 말이죠.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망바위에서부터 카메라를 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냥 카메라를 목에 걸고 오르기로 합니다.

산행 후1시간30분만에 잠시 쉴 겸 법계사 경내로 들어 섭니다.

 

 

 

 

다행히 북 사면의 칼바람을 막아주는 적당한 곳에서 조망을 즐긴다.

몇 컷을 하고 난 뒤 줌렌즈의 답답함을 어찌할 수 없어 광각을 꺼내 들고

역시 시원스런 광각렌즈로 조망을 즐기면서 무작정 연타를 날립니다.

잠시 쓰디쓴 자판기 커피 한잔을 입에 물고 조급함의 자신을 나무랍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지

천왕의 상고대를 보지 못한다 해도 현재의 아름다운 여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경내를 돌아 보면서 발아래 저 세상을 내다 봤습니다.

 

 

 

정신 없이 허덕이며 살아가는 저 세상에서는 저 멀리에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여유로울 때 내가 산을 본다는 혹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왜 우리들은 그렇게 바둥거리며 생에 집착을 하는지

이곳에 올라보면 그렇게 왜소하게 보이는 작은 세상이지만 그곳에 가 보면 또 다른 세상이라

발아래 펼쳐진 저들의 세상에서 무엇이 그렇게 우리들의 탐욕을 불러일으키는지

아마 우리 모두가 집착이라는 조급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무의 경지에서 생을 마감하는 엄연한 사실일진데도 말입니다.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했듯이

가는 세월에 이제 내 자신부터 뭔가의 흔적을 남겨야 할 것 아닌가 싶어서 그냥 주접을 떨어 봤습니다.

 

 

 

 

30여분의 區區所懷(구구소회)를 마치고 개선문을 향해 오름 짓을 합니다.

날씨는 상당히 추운 편인데도 산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입니다.

아마 눈 덮인 산행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겨울 산은 역시 눈이 있어야 겨울다운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지요.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모든 것을 덮고 순 백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눈이지요.

눈은 겨울의 서정시이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순수하게 하는 그 자체이니까요.

등허리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지만 카메라 샷터를 누르는 손끝은

끊어 없어져 나가는 심정으로 시려 움을 느끼면서 개선문을 지나 깔딱고개에 이릅니다.

 

 

 

 

 

환상 그 자체입니다.

세상의 모든 단어를 다 동원해도 지나치지 않을 표현입니다.

진즉 내 자신이 시인이 되지 못함을 후회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고요.

이 아름다운 자체 모두를 담으려는 진사는 더욱더 아니어서 유감입니다.

남해바다 위에 외로이 떠 있는 구름도 천왕 상고대의 구름 따라 하루의 외출을 시작하려 듯

서서히 미동하기 시작 합니다.

바로 위의 상봉에서는 구름 쇼를 보여줍니다.

칼바람을 가슴에 차고 도는 습한 구름은 거침없이 빠른 속도로 남진을 하다가

이내 천왕 동릉에 부딪치면서 자신을 그렇게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리고 주변 구상나무에 눈꽃과 함께 상고대의 잔재를 남깁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를 신이 아니면 누가 빚겠는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간 시간이 지체되어 상봉에 닿습니다.

칼바람이 매 세워 북 사면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상석을 향해 기념샷을 날리는 사람들 때문에 공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서쪽으로 내리 뻗은 지리의 주능선에서는 群舞(군무)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발아래 펼쳐지는 모든 산들이 엎드려 나에게 절하는 듯 합니다.

서쪽 반야의 등허리에서도 群舞(군무) 쇼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마치 금방이라도 이곳으로 달려올 것만 같은 느낌.

상봉 바위 한 켠에 칼바람을 피하면서 용케도 상석을 배경으로 풍경샷을 날렸습니다.

 

 

 

 

추운데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 해 버렸습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배낭 속의 파카를 꺼 내 입고 단도리를 하면서 하산을 합니다.

정상의 순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으면서도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모르지요.

철 계단을 내려오면서 한바탕의 칼바람과 어우러진 운무가 나를 덮치면서 눈 벼락을 맞았다.

~휴 이를 어쩌나. 내 카메라

순식간에 얼어버린 카메라. 내 분신과 같은 카메라 렌즈를 녹이기 위해 가슴에 꼭 안았다.

손이 시려 초점도 노출보정도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그냥 자동으로 갈겨버렸다.

 

 

 

상고대와 눈꽃이 어우러진 터널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마침 내가 꿈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바닷속의 산호초를 연상케 하는 능선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석봉에 왔을 때 칼 바람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평온하게 느껴졌다.

죽어 천년 세월을 버텨갈 주목에게도 칼바람은 비켜 세우지 못하는 듯

허연 속살 위에 또 다시 하얗게 분탕 짓 한 모습을 보니 서글픈 애잔함이 엿 보인다.

 

 

 

 

추워서도 그랬지만

이런 황홀감에 빠져 있어서인지 몰라도3다가오는데도 아직까지 허기짐을 몰랐다.

장터목 간이식당에서 감 홍시2개로 점심을 해결한다.

그리고 이제 거침없이 내려가야 할 시간이기에 아이젠은 생략한 채 길을 나섰다.

몇 번의 미끄러짐과 넘어짐을 반복하면서 고도1000이하를 내려오면서

오늘 산행 정리를 해 봅니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쉬워진다는 말이 있듯이

산행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 미련 없이 당당히 겨울을 맞이하는 裸木(나목)의 의연함과

차가운 칼바람에도 따뜻함을 머금은 순백의 아름다운 눈꽃들……

밥을 먹지 않아도 허기짐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산행이었죠.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빈 마음을 포근하고 편안하게 채워 가는 일이 진정한 웰빙산행이 아닐까요?

 

 

 

산행흔적.

10:25중산리- 10:45장터목 법계사 삼거리- 11:10망바위- 11:45~12:10법계사

12:50개선문- 13:30~13:50천왕봉- 14:15제석봉- 14:30장터목- 16:20중산리

 

2008.12.8

청산의 바람흔적은 지리산 상봉에서.

http://blog.daum.net/jeon8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