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떻게 남겨야 할 지…
그 순수하고 맑은 마음들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 지...
그 흐뭇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 지...
그 따뜻한 웃음들, 정겨운 얘기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편안함,
산하의 고수들을 직접 뵙고 경험을 나누는 영광스러움...
신림동 뒷풀이 모임이 여섯시가 넘어서자 부득이 먼저 자리를 떠야했고,
카풀로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와 부산 숙소에서 눈을 붙이고 일어났건만,
아직도 내 머리에는, 내 가슴에는 어제의 감동이 남아있는 듯 하다.
2차 상견례에 참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올 초부터 부산에 파견근무를 하고 있어 격주로 귀경하는 터에
모처럼 집에 가면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처지인데다가,
낯선 분들을 만난다는, 조금은 어색한 시간일 수도 있어
주말이 다가오도록 참가여부를 쉬이 결정짓지 못한 채 망설였다.
또 '한국의산하'에야 자주 들락거리지만 산행기도 기껏 대여섯 개 올린 정도이며
산행 경력도 일천하여 참석할까 말까 주저하였다.
그러나, 만약 참가하지 않으면 아마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즉 참석해서보다는 불참함으로 인해 느낄 안타까움이 더 클 듯 하여,
일단 가 보기로 금요일에야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사당역 5번 출구에 올라서니 매우 많은 인파들로 북적대고 있다.
곧 산하 깃발이 눈에 들어왔고, 종이에 무얼 적고 있는 권경선님을 쉬이 알아본다.
권경선님께 부탁하여 초록색의 '한국의산하' 패찰을 받는다.
머뭇머뭇... 어색... 낯설음...
대충 몇 분과의 인사나눔...
막역한 사이인 듯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빤히 바라보기...
출발을 기다리기까지의 조금 어색한 시간들이 흐른다.
이거 올 자리가 맞나? @#$%^&*@#$%%^
출발을 기다리며 5번 출구 앞의 광경을 몇 컷 찍어본다.
사진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선두그룹은 열시 조금 넘어 출발을 한다. 열 댓 명 정도 되나?
그냥 머뭇거리다 보니 열시 반이 되어서야 나머지 그룹이 출발을 한다.
이십 여 명은 넘는 듯 하다. 삼삼오오 걸어가며 한 무리를 이룬다.
'산하' 패찰을 달았으니 언뜻 알아보기 좋다.
사당동에서 출발하여 관악산 연주대로 가는 길은 크게는 하나이다.
물론 사당동의 산행 기점은 여러 곳이지만 조금만 오르면 주능선에 오르게 된다.
오늘은 관음사입구 매표소를 지나 능선에 오른 후 철조망을 가로질러 조금은 험한 바윗길로 오른다.
지난 해에 한 번 가본 길이다.
산하 가족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천천히 오른다.
얼마 전에 필명을 1200산에서 1500산으로 개명하신 김정길님께서
시종 농담과 격려로 분위기를 잡아가며 후미 그룹을 이끄신다.
낯 선 분들 하나하나 이름도 부르시고,
"이렇게 험한 코스는 처음이네, 힘들어 죽겠네, 천천히 갑시다" 하며 일행들을 즐겁게 추스르신다.
며칠 전에 1,100산을 돌파하셨단다. 대단하신 분이다.
롱다리의 춘하추동님(?), mjlhalla 이만준님, 가장 젊은 주왕님,
운영자 김성중님, 북한산연가팀들과 간간히 얘기를 나누며 능선길을 오른다.
일요일이라 산길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조금 험한 구간에서는 어김없이 지체된다.
지체된 구간을 mjlhalla님을 따라 가능한 신속히 통과한다.
가다보니 어느 덧 mjlhalla님과 단 둘이다.
상당히 빠른 걸음이다. 땀도 적당히 난다.
산하에서 가끔 읽은 기억이 있는 manuel님의 친구시란다.
지난 주말에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을 가려다가 못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나는 가지산-운문산에서 강풍에 빰시려 고통스러워했었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인파를 뚫고 쇠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니 어느 덧 연주대 정상이다.
12시 40분이니 출발한지 2시간 10분이 소요됐다.
정상에서 산하 가족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미리 자리를 잡아놓겠다고 한 것 같은데...
아마 연주암 쪽에 있나?
연주암쪽으로 길을 잡는다.
어찌 가다 보니 연주암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에서 벗어나 깔딱고개로 가는 능선길로 가고 있다.
어? 이 길이 아닌데...
그리고 이 길은 예전에는 철조망으로 막아놓았던 구간인데…
아무튼 안 가본 길을 가니 새롭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들로 길이 막혀 지체된다.
깔딱고개 못미쳐 왼편 아래 너른 터에 산하 깃발을 발견하고 바로 내려선다.
먼저 오신 분들이 둥글게 않아 점심을 들고 계신다.
후미 그룹에 같이 출발하신 신경수님도 보인다.
신경수님과 mjlhalla님과 일단 같이 자리를 만든다.
신림동에서 바로 올라오셨다는 부부도 자리에 같이 모셔 점심판을 벌린다.
???님... 애고, 듬직하고 호인풍인 이 분 성함이 뭐였는지? 이 나쁜 기억력!
나와 신경수님이 이슬이를 꺼내고 그 분도 포도주 큰 병을 꺼내어 몇 순배 돌리니 분위기가 금새 화기애애해진다.
곁에 또 한 분(춘하추동님?)을 합석시킨다.
그렇지않아도 부담없는 모임인데다 같이 땀 흘려 정상을 밟았고 술까지 돌아가니 분위기는 그냥 부드러워진다.
아, 위대한 술의 힘이여!
나는 산 위에서는 술을 가급적 삼가는 편이다.
주량도 많지 않은 터에 일단 입에 당기면 억제하기도 어렵고 취하면 하산길도 위험할 테니
가능하면 산 위에서는 술을 자제한다.
내려가서 하산주야 가끔 즐기지만.
그러나 오늘은 어찌 할 수가 없다.
좋은 분들과 좋은 자리에서 함께 하는 술을 어찌 내가 마다하겠는가?
몇 잔에 취기가 오른다. 에고...
어쩌다 나이 얘기가 나와서 아들이 고3이고 내가 48이라 하니 모두들 “이럴 수가?” 한다.
휠씬 어리게 보았다나?
나야 뭐 어린 대접 늘쌍 당하는 터이니 으레 그렇게 짐작들 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하고 산다고 대답하며,
운전면허증까지 꺼내 회람을 시킨다.
신경수님의 산행기에 자주 나오는 부인 송영희님과 포도주 꺼내신 분의 부인도
나와 같이 동갑이라며 매우 반가워하신다.
빙 들러앉은 일곱명 중에 세명이나 동갑이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닭띠끼리 잘 놀아라 하는 즐거운 힐난까지 듣는다.
mjlhalla님도 내가 기껏 30대나 또래로 보았다며 정선배... 라고 부르신다.
내가 되려 미안스러워진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젊어서가 아니라 철이 없어서이리라. ㅎㅎㅎ
선두그룹으로 먼저 오르신 팀도 분위기가 아주 좋아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눈에 확 뛰는 구름나그네님, 산초스팀...
그 곁에 또 한무리를 이루어 점심을 들고 계시는 윤도균님, 1500산 김정길님, 주왕님,
오늘 16명이나 참가하였다는 북한산연가팀, 권경선님, 멀리 대구에서 오신 정상철님,
그 밖에 내 나쁜 머리로 인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산하 가족들…
점심을 먹다가 이 정겨운 모습을 일부라도 담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진을 몇 장 더 찍어본다.
자리를 정리하고 깔딱고개를 넘어 신림동으로 하산한다.
자칭 산하 구경꾼 대표로 참가하였다는 김정목님, 한국의산하에서 자주 뵌 서배현님과도 얘기를 나눈다.
나는 서배현님의 글 을 읽으며 나이 지긋하신 분으로 짐작했었는데, 생각보다 무척 젋은 분이시다.
나보다야 두어 살 위이시지만.
내려 오며 어느 분으로부터 검은 깨 사탕을 몇 알 얻어 먹는다.
역시 얻어먹은 사탕은 훔친 사과처럼 맛이 있다.
이 길은 우리 아이가 네 살 무렵에 두어 번 오른 적이 있다.
신림동에서 출발하여 낑낑대는 아들 손을 잡고,
힘들어 할 때는 잠깐씩 목마도 태워주고 갖은 고생을 해가며 깔딱고개를 넘어 연주대로 오른 추억어린 길이다.
아이가 힘들어도 했지만 아빠와 함께 힘들게 산에 간 것을 꽤 오랫동안 기억하며 재미있어 했었는데...
짜샤가 벌써 고3이다.
십 수년이 지나 오랫만에 이 길을 내려가는데, 막상 길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산길도 훨씬 넓어진 듯 하고 많이 파여 너덜지대화 한 듯하다.
하기야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니 태산인들 버티겠는가?
보존과 이용,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하는 좋은 방안은 없으려나...
신림동 계곡길을 따라 내려와 어느 덧 서울대 정문 입구에 도착한다. 참 오랫만이다. 짜식.
4시로 식당을 예약하였기에 근처 벤치에 무리지어 앉아 시간을 기다린다.
'한국의산하'를 함께 맡아 수고하시는 또 한 분의 운영자 이남주님을 뵙는다.
얼마전 중앙일보에는 김성중님 얘기만 실렸었는데, 아마도 이남주님은 막후실력자가 아닐지? 후후후.
시원스런 외모에 차분한 말솜씨하며 겸손하면서도 자부심이 있어보인다.
사비를 털어 산행 정보 공유의 뜻 깊은 장을 제공해 주시는, 정말 고마우신 분들이다.
4시가 되어 식당에 들어가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눈다.
삽겹살에 술잔이 돌아가니 처음 만나는 사이이지만 낯 설지 않게 분위기가 익어간다.
사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사이버공간에서 등산이라는 같은 취미로 서로의 글과 경험담을 보고 겪은지 수년이니,
일단 수인사만 나누고 나면 바로 십년지기처럼 친해져버리는 게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낯선 타인으로 머물 이유가 없는 셈이다.
불암산님과 금풍님과도 술잔을 주고받고, 대구에서 오신, 실질적으로 제일 멀리서 오신, 정상철님과도 잔을 나눈다.
작년에 청계-광교산 갈 적에 도중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청계산님도 다시 뵙는다.
그 때 보다 훨씬 잘생겼고 준수해보인다. 딴 사람같다. 그 때는 춥고 힘들어서인가, 내가 정신이 없었는데.
지난 연말의 1차 모임에 십여 명이 모였었다고 하는데, 이번 2차 모임은 그에 비해 참가자가 부쩍 늘어난 셈이다.
김정목님은 산행기는 한 편도 올린 적은 없으나 구경꾼으로서 모임에 참여한다고 하셨는데,
'한국의산하'는 산행기를 올리시는 분들만이 아니라 그저 구경만 하시는 분들도 다 주체이며,
그 분들이 아니면 운영의 의미도 훨씬 줄어들지 모른다는게 내 생각이다.
고수면 고수대로, 초보면 초보대로, 구경꾼은 구경꾼대로
다들 제 나름대로 즐기고 얻고 기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아닌가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오늘 모임의 수고로움을 떠맡으신 권경선님이 마이크를 잡고 나서
'한국의산하'에서 오랫동안 필명을 날리시는 고수 분들과 운영자님들을 소개한다.
윤도균님, 1500산 김정길님, 신경수님, 산초스팀, 북한산연가팀...
한참 후 가장 멀리서 온 사람으로 내가 지명되어 참가 인사말을 드린다.
즐거운 시간이 이어진다.
불암산님이 회비를 걷는데 식사비보다 무려 두 배가 걷혔나 보다.
아무튼 긴장을 풀고 담소가 이어진다.
뭐, 맨 정신이라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 시간이 되려 지루할 경우도 있겠지만,
동호인들끼리의 부담없는 자리이니 왁자지껄하게 웃고 즐긴다.
좌중을 압도하는 skkim님의 노래솜씨하며...
부산으로 내려가는 카풀 약속시간 때문에 6시 20분 경에 조용히 주위 분들에게만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빠져나온다.
아쉽지만 떠날 사람은 떠나야하니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돌아가며 오늘 모임을 되새긴다.
디카를 꺼내어 오늘 찍은 사진들을 펼쳐본다.
마음 편한 웃음들, 격의 없는 대화, 산에 대한 열정과 사랑, 그냥 탁 열어버린 가슴들,
그리고 한 분 한 분의 얼굴, 이름, 별명들...
이번 모임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는데, 이름을 일일히 기억하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이다.
모임이 깊어지며 한 분 한 분 더 기억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이 모임 참석을 망설이신 분이 있다면,
다음 3차 모임에는 마음을 열고 한 발짝만 내디시기를 감히 권한다.
그 다음은 다 알아서 풀려나갈 것이다.
'한국의산하'를 즐겨 찾고, 산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족할 것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