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의산  청계산  야사

 

○산이름 청계산 

○주봉 망경대 ○높이 618m

○위치 서초구, 과천시, 의왕시, 성남시

○유래 

청계산(淸溪山)은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이란 말이다.

풍수지리상 과천관아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보고 청계산은 좌청룡(左靑龍)의 청룡산(靑龍山), 수리산은 우백호(右白虎)의 백호산(白虎山)이라 하였다.

일두 정여창선생, 추사 김정호선생등 절의가 곧은 충신들이 난세를 피해 은거한 충절의 산이다

○특징 숲과 계곡, 황토흙으로 덮여있다.

○주변명소,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과천경마장, 양재시민의 숲, 백운저수지

○산행길잡이

  산행기점은 주로 원지동 원터골, 상적동 옜골, 청계동 한직골에서 오른다

○등산시간 4-5시간

○등산코스 

  양재역-옥녀봉-매봉-망경대-과천매봉-과천역

  원터골,옜골-매봉-원터골,옛골

  청계사-국사봉-이수봉-과천매봉-서울대공원역

○대중교통:지하철/버스, 

  전철 옥녀봉   3호선 양재역7번출구-08번버스-화물터미널

                      3호선 양재역7번출구-4432번버스-개나리골 산림욕장입구,바람골 세원마을,원터골 청계산입구 

                      4호선 선바위역1번-11-3번버스-화물터미널

                      4호선 선바위역1번-1번버스-삼포(삼부골)-돌무개(추사생가터)  

                      4호선 서울대공원역2번출구-관리사무소옆

         원터골   3호선 양재역7번출구-4432번버스-원터골 청계산입구

         청계골   3호선 양재역7번출구-4432번버스-청계골 관현사입구

         옜골    3호선 양재역7번출구-4432번버스종점-옜골굴다리

                   8호선, 분당선 모란역6번출구-11-1번버스-옜골굴다리

        금토동   3호선 양재역7번출구-4432번버스종점-옜골굴다리에서11-1번버스-금토동종점

                    8호선, 분당선 모란역6번출구-11-1번버스-옜골굴다리-금토동종점

       원터,하오고개,국사봉  4호선 인덕원역2번출구-05번버스-원터

       청계사   4호선 인덕원역2번출구-1번버스-청계사

       과천매봉   4호선 서울대공원역2번-스카이리프트옆

                       4호선 과천역1번-기업은행-문원체육공원

                       4호선 과천청사역4번-과천우체국

                       4호선 인덕원역2번-삼호아파트2동-이미마을 
 

산행일기

제1일 

산행로 양재역-원터골-매봉-혈읍재-망경대-금정수-마왕굴,마왕샘-석기봉-절고개3거리-청계사-이수봉-국사봉-하오고개-하우현성당-인덕원역

 

양재역7번출구로 나와 4432번버스를 타고 청계산입구(원터골 굴다리앞)에서 하차

 

굴다리앞 4거리에 미륵당이 있다

 

미륵당과 3층석탑(앞좌측)

 

미륵불 마침 미륵당관리인을 만나 미륵당안의 미륵불을 볼수가 있었다

 

★원지동 석불입상(미륵불彌勒佛)및 석탑 서울시 유형문화재 93호

고려말, 조선초기의 토속적인 양식

13㎡ 규모의 미륵당(彌勒堂)과 3층석탑이 있으며, 미륵당 안에는 높이 2m정도의 백색입상(白色立像)인 미륵불이 있고 장구, 목탁, 제기(祭器) 등이 갖추어져 있다.

미륵불은 원터마을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지성을 드리면 기원자의 길흉화복을 계시한다 하여 사람들이 미륵불의 영험을 믿고 계속 몰려들자 일제때 일본인이 미륵불의 배꼽을 쪼아내었는데 그 후부터는 미륵불은 영험한 능력을 상실했다고 전한다.

 

미륵당앞 길건너에는 100년된 보호수 미루나무가 있다

 

굴다리를 지나 산지정화초소가 있는 산입구에 오다

산입구인 산지정화초소옆 쉼터에는 원터석과 255년된 보호수 굴참나무와 갈참나무가 나란히 있다

 

원지동원터석

 

★원지동 원터院址 원기院基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 공무(公務)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먹고 잘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교통요충지에 역(驛)과 원(院)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에 잠원나루에서 말죽거리를 거쳐 판교 이남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큰 원(院)이 있었다.

 

255년된 보호수 갈참나무(좌)와 255년된 보호수 굴참나무(우)

 

좌측길에 있는 식당(식당이름 동지섯달꽃본듯이)좌측을 돌아 올라가 천개사에 가다

 

천개사 대웅전

 

천개사 불상

 

천개사옆길을 올라 원터골 쉼터로 가다

원터골쉼터에서 좌측의 서초주민기증 나무계단을 올라 삼각점봉에 오르다

 

원터골쉼터 청계골 매봉 갈림길의 기증나무계단시작

 

★서초주민이 기증한 사연있는 계단목 1132계단

계단마다 기증자의 말이 적혀있다

계단목 시작(1번) 원터골쉼터에서 매봉쪽길쪽의 청계골 매봉 갈림길3거리에

1번 기증자  프랑스는 알프스, 서초구는 청계산  재외프랑스인연합회

 

삼각점봉입구 기증나무계단끝

 

삼각점봉 입구에 끝번(1132번) 계단목 

1132번 끝번 기증자 나의 동반자 창순씨, 사랑하는 딸 수아야 사랑한다. 영원히

 

삼각점

 

삼각점봉 3거리를 지나 돌문바위에 가다

 

돌문바위

 

돌문바위에서 조금가다 능선우측의 충혼비에 갔다나와 매바위를 올라 매봉에 가다

 

충혼비

 

★청계산충혼비

1982.6.1.군작전중 비행기추락으로 순직한 53인의 용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

 

매바위

 

매바위

매가 날개를 펴고 날으는 형상이라고

 

매바위에서 이수봉과 망경봉

 

매바위에서 구룡산과 대모산

 

매봉

 

매봉에서 능선안부4거리인 혈읍재로 가다

 

혈읍재

 

★혈읍재血泣峙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鄭汝昌)선생이 스승 김종직선생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부관참시 당하였다는 소식에 은거지인 금정수(하늘샘)로 가기위해 피(血)눈물을 흘리며(泣) 넘어다녔다는 고개

정여창도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까지 당하지만 사후에 우의정으로 봉한다

 

★일두 정여창 [鄭汝昌, 1450~1504] 

조선 전기 문신겸 학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경사에 통달하고 실천을 위한 독서를 주로 하였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甲子士禍] 에 연루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중종 때 우의정에 추증

★점필재 김종직 [金宗直, 1431~1492]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性理學者) ·문신. 영남학파의 종조이며, 그가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이 그가 죽은후인 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그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으며, 많은 제자가 죽음을 당하였다.

중종(中宗1488~1544 조선 제11대 왕재위 1506∼1544)이 즉위하자 그 죄가 풀리고 숙종(肅宗 1661~1720 조선 제19대왕) 때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무오사화(戊午士禍·戊午史禍) 

조선 연산군 4(1498)년에 유자광(柳子光) 등의 훈구파(勳舊派)가 김종직(金宗直)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士林派)에 대해 일으킨 사화.

★갑자사화 [甲子士禍]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문제에 얽혀서 일어난 사화. 

윤씨복위에 반대한 선비들을 처형(부관참시)하고 그들의 가족들도 처벌함

★연산군 [燕山君, 1476~1506] 

조선 제10대의 왕(재위 1494∼1506).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명을 살해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秕政)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부관참시 [剖棺斬屍] 

죽은뒤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極刑)을 추시(追施)하던 일.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특히 연산군 때 성행하여 김종직(金宗直) ·송흠(宋欽) ·한명회(韓明澮) ·정여창(鄭汝昌) ·남효온(南孝溫) ·성현(成俔) 등이 이 형을 받았다.

 

혈읍재에서 직진하여 급경사의 능선을 타고 망경대에 오르다

 

망경대

 

★망경대望京臺(만경대萬景臺)

청계산 최고봉(618m)으로 천연의 암 절벽 위에 평탄한 지형(군부대안)을 이루고 있는데 옛 성터와 망루가 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부대안이라 볼수가 없다.

상봉에 오르면 눈아래 만경萬景이 전개된다는데서 만경대萬景臺라 하였으나 고려의 수절신(守節臣)으로 알려진 송산(松山) 조견(趙(조윤1351-1425)이 청계산에 은거하면서 상봉인 만경대에 자주 올라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슬퍼하였다하여 망경대望京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이태조는 옜친구인 조견을 못잊어 망경대에 초막을 짓게 하여 비를 피하게 하였으나 조견은 다시 청계산을 떠나 양주 깊은 산(현재 의정부시 송산동)으로 옮기었다고 한다

 

망경대주변은 정여창과 그의 후학들이 권력의 비정함과 세월의 허망함을 달래며 은거했던 곳이어서 지금도 주변(금정샘터,마왕샘터등)에는 집터와 다량의 와편이 산재해 있다.

 

★송산松山 조견趙(조윤趙胤1351-1425) 절고개능선,마왕샘,평양조씨보본단에 있는 안내문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고려말 영남안령사로 있을때 조선개국 1등공신인 형 조준(趙浚)이 이성계(李成桂)와 모계(謀計)할때 이를 말렸고 고려가 망하자 통곡하며 두류산(현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견으로 고치고 자도 종견從犬이라 하였다

이태조가 개국공신 평간공(平簡公)을 내렸으나 거절하고 청계산으로 은거하여 상봉인 망경대에 자주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슬퍼하다가 마왕굴 샘물로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송산松山 조견趙(조윤1351-1425)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반대의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조선의 개국공신 조준趙浚의 아우이다

고려말부터 조선초까지 문신. 일찍이 승려가 되어 여러 절의 주지(住持)를 역임하고, 30세가 넘어 환속, 문과에 급제한 뒤 고려 말 안렴사(按廉使)가 되고, 이성계(李成桂) 추대에 가담하여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상장군으로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졌다.

1419년(세종 1)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에 보임되고, 1421년 3월 71세로 퇴관하여야 하였지만 궤장(杖)을 받고 계속 벼슬길에 있다가 같은해 12월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에 진봉하였다.

 

현지의 안내문에 따르면 고려의 충신이고,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고려의 역적이다.

어느기록이 진실일까?

 

망경대에서 옥녀봉과 매봉

 

망경대에서 관악산


 

망경대에서 과천매봉 앞은 석기봉

 

망경대에서 군부대철조망을 따라 급사면바위를 내려와 남쪽계곡다음의 철망옆능선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다 능선좌측의 금정수로 가다

 

금정수(하늘샘)

 

하늘샘안

 

하늘샘앞 와편

 

★금정수金井水 하늘샘 높이592m

높은산 하늘 가까이 있다하여 하늘샘으로 불리었다

금정수(金井水)는 과천현신읍지에 "청계산 정상에 금정수가 있는데 깎아지른 백척 바위 절벽 사이로 맑은 물이 솟아나며 물빛은 황금색을 이룬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두 정여창선생이 이곳에서 은거하시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후 사약을 받고 함경도 종성에서 부관참시(시체까지 잘리는 극형)를 당하자 이곳의 샘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 후에 억울함이 밝혀져 복권이 결정되자 다시 황금빛으로 되었다고 한다

금정수옆에는 정여창선생의 움막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주변에는 집터와 다량의 와편이 산재해 있다.

 

금정수입구 능선3거리에서 조금 내려가 능선3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마왕굴,마왕샘이 있다

계속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서울대공원 산림욕장길이다

 

마왕굴(오막난이굴)

 

마왕굴위 굴안

 

마왕굴아래 우측 마왕샘(단비샘)

 

마왕굴앞 와편

 

★마왕굴魔王窟

석기봉 북 서편 100m 바위 절벽 아래

커다란 두 개의 굴 오른쪽 굴에는 맑은샘(마왕샘,단비샘)이 흘러내리고 있다

고려가 망하기 직전 맥이라고 하는 이상하게 생긴 큰 짐승이 여러 산짐승을 몰고 이 굴로 들어갔다 하여 "오막난이굴"이라고도 불린다

 

★마왕샘(단비샘)

마왕굴 암벽사이에서 솟는 샘물이다

고려말 충신 송산松山 조견趙(조윤趙胤1351-1425)선생이 청계산에 은거하면서 흘러나오는 샘물로 갈증을 풀고 쉬어가던 곳이라고 한다.

 

금정수로 올라와 우측 급경사바위면을 올라 석기봉안부를 거처 석기봉에 오르다

 

석기봉(신선대)

 

★신선대(神仙臺석기봉石基峰)

청계산의 여러 봉우리 중 가장 조망이 좋은 곳으로 그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원래는 신선대였는데 미군들에 의해 영문낙서(yankee rock미국사람 바위)가 심해지자 석기봉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남쪽바위봉에서 석기봉

 

석기봉에서 망경대

 

석기봉에서 관악산

 

석기봉에서 앞부터 절래미고개 과천매봉 응봉

 

석기봉에서 이수봉 절고개능선3거리

 

석기봉에서 내려와 헬기장, 안부공터를 지나 절고개능선3거리로 가다

 

헬기장에서 석기봉

 

절고개능선3거리에서 우측능선인 절래미고개를 넘어 청계사로 내려가다

 

★절고개

청계사 절에서 유래되었다

 

★절래미고개

절고개능선 서쪽에 있는 고개(봉우리)로 절로 향할때 넘는 고개란뜻의 "절넘이"란 말에서 나왔다

 

청계사 극락보전과 동종각

 

★청계사 (경기문화재자료 제6호)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하여 고려 충렬왕 10년에 중창한 사찰로 이곳에는 조선 숙종 15년(1689)에 세운 청계사적기비가 있고 조선후기의 건물로 보이는 극락보전이 있다.

 

청계사 동종(문화재청 자료)

 

★청계사 동종 (보물 제 11-7호)

조선 숙종 27년(1701)에 제작된 조선 후기 범종의 대표

 

청계사 목판(문화재청 자료)

 

★청계사의 목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판각한 묘법연화경이 213판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청계사 와불

 

청계사 부도탑

 

★청계사 부도탑

청계사불사비(1991) 조정숙공사당기비(1341) 청계사사적비(1689) 청계사불사비(1979) 평양조씨대종회의 신 조정숙공사당기비(1996) 등이 있다

청계사사적비 조정숙공사당기비는 청계사를 중창한 조정숙공과 사찰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조인규(정숙공1237-1308) 고려문신 청계사 중창

 

청계사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주차장앞에 평양조씨보본단이 있고 녹향원, 청계산주차장을 지나 옜골식당에 오면 식당 길건너에 초당터가 있다

 

평양조씨보본단(길옆에는 송산 조견선생과 망경대에 대하여 보본단앞에는 조정숙공사당기가 기록되어 있다)

 

녹향원(청계사 부설 정신지체 장애인 복지시설)

 

초당터 옜골식당앞

 

★초당터

조선태조가 청계산에 은거한 요신僚臣들을 접견하고자 행차할 때 잠시 쉬던 초당草堂이 있던 집터

 

옜골식당앞 3거리에서 과천매봉으로 올라가다

 

과천매봉

 

과천매봉에서 관악산

 

다시 절래미고개를 넘어 절고개능선3거리를 지나 이수봉으로 가다

 

이수봉석

 

★이수봉(貳壽峰)

일두 정여창 선생이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청계산에서 은거하며 생명(壽)의 위기를 두(貳)번 넘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이수봉의 정상은 동쪽의 군부대안의 봉우리이나 출입금지구역이라 이곳에 정상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수봉에서 우측능선의 국사봉으로 가다

 

국사봉 정상

 

★국사봉(國思峰)

고려의 수절신(守節臣)으로 알려진 송산(松山) 조견(趙)이 청계산에 은거하면서 이 봉우리에 올라 망국 고려(國)를 생각(思)하였으므로 ‘국사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국사봉(國思峰 가운데 “사”자를 思·師·士·祀·祠·賜등 여러가지로 쓰고 있다)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대개 굿을 하던 곳, 산제(기우제)를 지내던 곳, 당집(산신당이나 산신각)이 있었던 곳이다

 

국사봉에서 동쪽 금토동능선으로 내려가 능선3거리에서 좌측의 둔토리성지로 내려가다

 

둔토리성지

 

성지안

 

★청계산천주교성지(淸溪山天主敎聖址) 둔토리성지 굴아위동굴

 시 대 : 조선시대

둔토리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서 루도비코(볼리외)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굴아위 동굴이 있는 곳이다.

국사봉 등성이에 위치한 이 굴아위 동굴은 성인 5∼6명이 은거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의 동굴로서 출입구가 北向(북향)하여 있다.

 

★서루도비코(볼리외1840-1866) 프랑스인 신부

1866년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 서울 명동대성당에 안장

 

능선으로 올라와 금토동 서둘산갈림길3거리에서 왼쪽능선인 금토동쪽으로 10m쯤 가다 능선우측의 정일당강씨묘와 사당으로 내려가다

 

정일당강씨묘(능선바로밑 파평윤씨묘역아래에 부군 윤광연尹光演과 합장되어 있다)

 

정일당강씨사당(묘역 800m아래)

 

★정일당강씨靜一堂姜氏(1772-1832)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서화가. 시문 ·서화에 능하고 성리학 ·경술(經術)에도 밝았다. 글씨는 황운조(黃運祚)의 필법을 이어받아 해서(楷書)를 잘 썼고 시에는 도가(道家)의 기풍이 담겨 있다. 시작(詩作)으로 《야좌(夜坐)》, 《제석감(除夕感)》, 《청추선(聽秋蟬)》, 《경차존고지일당운(敬次尊姑只一堂韻)》 등 31수가 전한다.

 

국사봉으로 올라와 남능선의 하우고개로 내려가다

 

하우고개

 

★하우(하오)고개

조선시대 산안에 사는 염부들이 소금밭에서 작업을 하다가 시비가 일어나자 이를 가리기위해 관아가 있던 경안으로 가는길에 이 고개에 이르러 서로 화해和解했다하여 하우(하오)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서쪽도로로 내려가 하우현성당 안내판이 있는 도로입구에서 하우현성당으로 가다

성당앞에는 원터석이 있다

 

하우현성당앞에 동양원터석

 

★원터(院址) 역원터(驛院址) 동양원터東陽院址

하우고개 밑에 있는 마을(현 하우현성당)로 이곳은 조선시대 광주,인덕원,과천을 잇는 동양원(東陽院)이란 역이 있었다 하여 처음에는 역원터(驛院址)라 했다가 원터(院址)라 부르고 있다.

 

하우현성당

 

구 사제관 앞좌측은 서 루도비코(볼리외)신부상

 

★하우현성당 시도기념물176호

19세기 초반부터 천주교인의 피난처로서 교우촌이 형성되어 1894년 초가 목조 강당 10칸을 건축하였고 1900년에 구사제관(기념물176호)을 신축하였다. 1965년에 현재의 성당이 신축되었다.

 

하우현성당에서 나와 원터종점에서 05번버스를 타고 인덕원역으로 가다

 

제2일 

산행로 양재역-개나리골-개나리골약수-바람골쉼터-추사유적지-옥녀봉-수종폭포-매봉-정토사-옜골치성터-이슬샘터-봉수지-청계굿당-양재역

 

양재역7번출구로 나와 4432번버스를 타고 삼림욕장입구에서 내려 굴다리를 지나 개나리골약수터에 오다

 

개나리골약수터

 

★개나리골약수

300여년 전부터 이용되어온 약수로 아랫마을에 김서방이라는 사람이 폐병을 앓고 있었는데 하루는 개나리골의 밭에 왔다가 목이 말라 샘물을 찾던중 이곳에 샘물이 솟아나는것을 발견하고 물을 마셔보니 물맛이 좋아 계속 마시다보니 폐병이 낳게 되었고 이소문을 들은 마을사람들이 이 골자기의 지명을 따서 개나리골약수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물맛이 좋고 폐결핵등 기관지계통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황토맨발길, 사색의길을 지나 주능선의 입맞춤길의 돌무덤을 지나 바람골쉼터로 가다

 

돌무덤

 

돌무덤

등산로바닥에 박힌돌을 뽑아서 쌓아놓은 것이라고

 

바람골쉼터에서 우측의 급경사샛길을 내려가 샘터옆의 추사생부묘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가 돌무개정류장옆의 추사생가터에 가다

 

추사생부 김노경님묘

 

돌무개정류장옆 추사생가는 추사유적지 복원공사중인데 추사생부의 과지초당과 독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추사유적지복원공사안내문

 

★과지초당瓜地草堂

추사의 친부인 김노경이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을 지내던 때인 1824년 청계산 옥녀봉아래(현 주암동 돌무께)에 마련한 별서

추사가 함경도 북경유배에서 해제된뒤 생을 마감한곳

★독우물

추사가 4년간 과지초당에 머물면서 집앞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고 한다.

이 우물은 독우물(항아리로 만든 우물)로 옹정甕井이라고도 한다

 

★김노경(1766-1837) 추사의 생부 

한성판윤, 대사헌, 판의금부사등 요직을 두루 거침

 

★추사 김정희 [金正喜, 1786~1856]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추사생가터에서 능선으로 올라와 옥녀봉으로 오르다

 

옥녀봉

 

★옥녀봉

여동생봉이라 하며 옥녀같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녀봉에서 관악산

 

옥녀봉에서 매봉 망경봉

 

옥녀봉에서 청계산의 유일한 폭포인 서울랜드뒤 계곡에 있는 수종폭포로 내려가다

 

수종폭포

 

수종폭포(水從瀑布) 동폭포(東瀑布) 광명폭포라고도 불린다

과천현신읍지에는 수종폭포가 수석이 맑고 깨끗하여 목욕하며 피서할 만한 곳이라고 적혀있는데 높이는 10m, 폭은 8m정도이고 폭포 아래에는 지름 약 7-8m, 깊이 1.5m정도의 못이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매봉으로 올라와 옜골로 내려가 정토사로 가다

 

정토사 극락전

 

★정토사

연꽃연못, 연꽃축제, 연잎국수로 이름난 사찰

 

극락전앞의 연꽃연못 (앞은 백련지, 뒤는 홍련지)

 

옜골 어둔골계곡으로 가다 산지정화초소를 지나 계곡옆 4거리 정자옆에 있는 옜골치성터로 가다

 

치성터

 

 계속 계곡길을 따라가 어둔골 다리앞3거리에서 좌측능선으로 올라가 이슬샘터로 가다

 

이슬샘터 목배등 능선3거리 바로밑 계곡

 

★이슬샘

이슬샘은 뱀들이 이용하는 샘으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청계산 부근 주민들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이슬샘 찾기를 갈망했다. 하루는 병든 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하는 처녀의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이슬샘의 위치를 알려 주어 아버지의 병을 고칠수 있었다. 효녀의 정성이 지극하여 뱀이 자기들만이 먹는 이슬샘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지금은 없어져 흔적만 남아있다

 

바로 위의 목배등능선3거리에서 좌측능선으로 내려가다 오봉재3거리에서 직진하여 안부3거리를 지나 천림산봉수지에 가다

 

천림산 봉수지

 

★천림산 봉수지 경기도기념물 179호

달래내 고개위 능선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천림산 봉수지는 천천현(천림현) 봉수대로 불리며 부산 다대포를 출발한 봉수가 서울 남산으로 이어지기 직전에 있는 마지막 봉수대다.

천막으로 덮어놓아 안은 볼수가 없다

 

우측으로 내려와 산지정화초소가 있는 봉수지입구에서 좌측의 서울쪽 도로인 달래내고개를 넘어 좌측의 청계산굿당에 가다

 

청계산굿당 청계암 용궁정

 

★천황당 청계산굿당 청계암

토속적인 민간신앙(미신)으로 무당이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당집

무당은 신비한 능력을 신으로부터 받은 반성인적(半聖人的)인 존재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고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무당이 하는 굿은 병원의 심리치료행위와 다를것이 없으며 우리조상은 4000년전부터 굿을 하여 심리치료행위를 해왔다

 

산지감시초소, 굴다리(옜골)를 지나 4432번 버스종점에 가서 버스를 타고 양재역으로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