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장엄한 일출


 


일자: 2004. 1.2-4


날씨: 맑음


동행: 쩜장(은행지점장 김정술), 신고수(걸음의 달인 신원길씨)


 


 


지리산종주길 떠나기가 쉽지않은지라 다소 무리가 따르는 강행을 하다보니 나는 나대로 어제 백두대간


삼도봉산행을 마치고 온 몸을 추수르지도 못한 상태, 몸무겁기가 천근이고, 쩜장도 연말 술에 쩔어온


몸이라고떠들어대는 풍이 엄살만은 아닌듯해서 걱정스럽지만 다행이 신고수는 마라톤을 겸하고있는


강골이라하니 여차하면 쩜장을 언제라도 맡길판이다.


 


22.59  영등포역에서 만나 기차를 탔다. 소주잔을 몇순배하는지도 모르게 돌려가며 이야기는 백두대간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기차는 정차역을 계속 알리면서 달린다.


어느 짬에 잠시라도 눈을 부쳐야할텐데 주위의 소란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5:15  구례구역앞에서 아침해장국을 달게 먹고 천은사매표소를 지나 성삼재로 내달린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은 눈으로 하얗게 포장되어있고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바람소리는 하늘의


준엄한 소리인 듯 고공에서 천둥소리처럼 우렁차게 울려대고 있으니 그 기세에 푹 죽어 뚜벅뚜벅 신음소리


내며 노고단 신령님앞으로 끌려들어간다.


코재에서 한가로운 구례시가지의 야경을 바라보며 처진 쩜장과 신고수를 기다린다.


 


6:30 노고단에 올랐으나 아직도 사위는 어둠속에 있어 지체없이 오솔길로 들어선다.


렌턴불빛에 비춘 나뭇가지들이 눈을 잔득 뒤집어 쓴 모습이고 앞서간 이들의 흔적이 별로 보이질 않아


조심스럽다.


쩜장의 걸음이 별로 신통치 않다. 얼음길도 아닌데 비틀대고 엉덩방아질을 해대니 보다못한 신고수가


염려스런 마음에 슬그머니 뒤로 처져 쩜장의 부실한 걸음을 감시하며 따른다.


 


 




 


7:30  임걸령샘물은 이 겨울에도 따뜻한 온기를 갖고 철철 흐른다.


돼지령을 지나면서 여명이 밝아오더니 노루목을 지난 어느지점에서 불길같은 해가 어느새 솟아 불쑥


나무사이로 나타난다.


 


 




 



반야봉은 아직도 강한 눈보라에 휩싸여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들러가고 싶었던 내 바램을


거부하는듯 해서 비켜섰다. 나중에 허락하는날 기꺼히 다녀가겠습니다 하고 삼도봉으로 내달린다.


 


 





 


이따금 상고대 군락이 나타나 눈에 담고 카메라에 주어담는다.


 


 




 



8:40  삼도봉에 올라 잠시 여유를 갖는다. 가야할길이 천왕봉까지 눈바람속에서도 뚜렸하다.


 


 


14:15  벽소령 남사면길은 구렁이 허물벗어놓은 것처럼 정갈한 눈길이다. 나뭇가지사이로 보이는


수려한 남쪽조망에 눈을 빼앗겨 갈지자 걸음을 반복하며 눈길을 벗어나다가 추락주의라고 써놓은


로푸를 잡고 벼랑위에서 걸음을 멈춘다.  칠선봉으로부터 상당한 고도차를 갖고 떨어지는 능선길이


벽소령뒤의 형제봉능선과 포개지면서의신마을로 떨어지고 영신봉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도 다른


능선이 한걸음 뒤에 병풍처럼 우람하게 뻗어내려간다.  이 깊은 계곡위에 달이 떠오르면 벽소명월이라는


것이구나...


 


잠시 행복했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칠선봉 북사면에 접어들면서 고행길이 시작된다.


어제 마누라에게 진 빛을 갚아야할지를 가늠하는 시간이 온 것 같다.


 


실은 어제 대간산행 후 마비된 몸을 풀까해서 맛사지 얘기를 꺼냈더니 그게 얼만데 한다.


3만원 할 껄 했더니, 돈욕심이 발동하는지 지가 만원깍아서 2만원에 해준다나. 주머니돈이 쌈지로 가니


그래 그럼, 대신 만원은 현금, 만원은 효과가 있으면 갔다와서 준다 하고 몸을 마꼈다.


아불사, 이참에 서방 혼줄내려는지  두들겨 패고 꺽고 온몸을 굴리며 법석을 떤다. 참다못해 그길로


목욕탕에 가서 싸우나로 마무리를 하고 왔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난히 세석으로 달려가고 있다. 쩜장의 걸음을 따라가다간 세석산장주인장에게


오밤중에 잠자리 달라고 애걸해야할 판이라 나라도 먼저 가서 미리 자리확보를 해야할 것이 자명해졌기에


벽소령에서 잠시 쉬지도 못하고 내처 달려오는 길이다.


 


15:05  선비샘 물줄기는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처럼 여리고 곧 멈출 듯 오락가락하며 가는 바람에도


흔들거린다.  선비샘을지나 10여분을 오르니 두 바위벽사이로 천왕봉으로부터 불어오는 골바람이 매몰차다.


 


 





 


칠선봉바위의 온화한 모습을 보았다.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지리산의 어머니인 듯.


 


 






 


영신봉은 인자한 모습인데 어쩌다 마의 영신봉이 되었는지 175개나 되는 나무계단이 지친다리를 붙잡는다.


 


 




 


영신봉 나무계단에 오르니 창(?)밖으로 천왕봉이 가까이에 있다.


 


 


 


5:20  세석에 도착


 


신고수는 지칠대로 지쳐 몸가늠도 못하는 쩜장을 물심부름에 잔심부름까지 시키며 잠시도 짬을 주지않고


닥달하고 신통하게도 쩜장은 고분고분 따르며 차츰 기력을 되찾는 듯하다. 이 나이에 마라톤대회마다


출전을 빼먹지않고 백두대간에 정맥길도 일찌감치 다녀온 고수답게 지친몸을 추수리는 비법을 전수한다.


 


북적대는 취사장 한 구석에서  또 다시 술잔을 주고 받는다. 준비물을 적당히 하자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각자의 배낭속에서 나온 먹걸이가 풍성하다.


 


 


5:00  다음날 아침,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려했던 계획을 바꿔 일찌감치 서둘러 세석을 떠났다.


눈은 점점 더 수북해지고 간간히 얼음도 있지만 두 스틱에 의지해 장터목으로 내달리는데 별 무리가 없다.


스틱사용법을 열심히 익혔더니 어제 오늘 천군마을 얻은 듯 걸음이 수월하다.


쩜장과 천왕봉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출시간에 마추느라 신고수와 뛰다시피 걷는다.


 



 






 


 


7:20  천왕봉에 올라 10여분 여명을 지켜보다가 장엄한 일출을 본다. 기대하지도 않은 너무나 큰 선물을


지리산이 나에게 주다니 그저 감읍할 뿐이다. 붉은 여명의 띠가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노고단까지 이어지고


있는 장관도 그 여명아래 운해속에서 가물가물 모습을 드러낸 능선과 봉우리들의 파노라마도 장엄한


일출을 위한 서막이었다.


 


살을 가르는 추위를 몸소 안고 여기까지 온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갑신년 새해에 거는 소망과 꿈이


이루어지도록 지리산주지신령님과  이곳에 영원히 잠들고계신 영령들에게 소주한잔 올리며 기원합니다.


산가족 여러분의 새해소망도 모두 이루워 주십사하고 빕니다.


 


 



 


이른 아침 낮은 햇쌀을 받은 지리산 종주길을 되돌아보는 감회가 깊다. 노고단과 반야봉의 모습이


또렷하고 각 고봉마다 눈매김을 해보니 어제 오늘 줄기차게 걸으며 숨막히던 상황들이 감격스럽게 점철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감격.  일상의 복잡함을 잊고 잠시나마 이러한 감격을 맛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또 감격한다.


 


 





 





중산리 넘어로 진주가는길이 꼬불꼬불 계곡따라 이어집니다.


 




 




 



 


하산길에 법계사에 들러 신고수와 함께 거금 만원씩을 불전으로 내고 오늘산행을 무사히 마친 것에


감사드렸다. 로타리산장을 조금 지난 쉼터에서 바라본 천왕봉의 모습이 어머니의 품같이 넉넉해보인다.


주말에 북한산을 오르는 것도 행복인데 1000m가 더 높은 천왕봉에 오를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다.


 


아직도 기운이 펄펄 남아 허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신고수는 바람처럼 사라져가고 나는 그 발걸음을


따라가다가 체력의 한계를 못 이기고 작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며 오른쪽으로 계란말이를 혼줄나게


한다.


쩜장은 계속되는 경사길이 겁나서 로타리산장에서 자연학습로로 돌아내려온다. 각자 체력에 맞게


헤여졌다가 다시 만난다.


 


신변을 대충 정리하고 다시 주당들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막걸리잔을 계속 부디친다. 축제의 시간은


계속되어 진주가는 버스에서 목동까지 와서야 지리산 종주길을 마감했다.


 


이렇게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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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복 - 석기, 정술이 넘 좋은 시간에 좋은곳에 다녀왔구나. 언젠가
▣ 유병복 - 시간이 되면 산행한번 같이 하고 싶구나. 요즘은 마라톤에 미쳐서 산을 찿는 시간이 뜸하지만, 언젠간 석기처럼 다시 산을 찿은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