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경봉 산행기



일 시 : 2003년도 3월 9일 오전 7시 10분(일요일) / 갬, 구름 많음.

행정구역 : 江原道 平昌郡 道岩面 , 江陵市 旺山面

출발장소 : 지하철 1 호선 종각역 2번 출구 제일은행 앞.
07시 10분

산행거리 : 총 5 .4km

산행시간 : 총 4시간 10분(10 : 00 ∼ 14 : 20** 정확한 시간대는 기억이 없음)

산행구간 :
대관령(1.8km) [- 준공비 - 임도 - 산불감시 초소 - 제왕산갈림(오른쪽) - 헬기장 ] - 능경봉(2.6km) - 횡계현(제1쉼터/대관령터널)(2km) - [왕산골 - ] - 456번 지방도로

지형도 :
- 1/ 2만 5천 邱山[2002 .3 . 인쇄], 車項[2001 .12. 인쇄].


산행후기 :

능경봉은 대관령 남쪽 1.8km에 위치한 해발 △1123 .2 m의 산이고, 고루포기산은 능경봉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4.1km에 위치한 해발 △1238 .3m의 산이다. 두 산 모두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왕산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루는데, 보통인들도 백두대간 종주에 참가하게 되면서 일반화 추세에 있는 바람에 찾는 발걸음이 잦아진 산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쌓이는 대관령 일대이기 때문에, 반대편에 있는 선자령(1168m), 제왕산(△840.6m)과 더불어 대관령과 연계하여 겨울 적설 산행지 또는 초봄 마지막 적설 감상 산행지로 각광을 받는 대표적인 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서울 산사람들도 이 인기에 편승하여 초봄 마지막 적설 산행, 즉 춘설산행을 즐기기 위하여 대관령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차안에서야 비로소 계획이 수정되었음을 알고 적이 실망하였다. 즉, 당초 계획으로는 대관령 - 준공비 - 임도 - 산불감시 초소 - 제왕산갈림(오른쪽) - 헬기장 - 능경봉(1.8km) - 횡계현(제1쉼터/대관령터널) (2.6km) - 대관령 전망대 (1.4km) - 오목골 갈림길 - 고루포기산(1.5km) - 오목골 갈림길 - 오목골 - 횡계5리 마을회관(3km) 약 10.5km(산행시간 4시간 )[서울산사람들 게시판 참조]의 코스로 하여, 두 산을 연계하여 모두 종주하기로 하였으나, 며칠 전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코스를 절반으로 줄여서 대관령 - 능경봉 - 왕산골 코스로 변경하였다. 당초 계획이 수정되어 다소 섭섭하기는 하였지만, 이미 백두대간 종주 때 답사한 적이 있으므로 감수하기로 한다.

당초 코스도 약 4시간 남짓한 부담없는 산행 코스이나, 기습 폭설로 인하여 적설량이 증가함에 따라 러셀을 하면서 산행하여야 하므로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어, 초보자를 감안하여 그렇게 정한 문대장의 고민이 이해가 간다. 비록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설경을 만끽할 수 있었던 그런 산행이어서 기억이 오래 남는다. 모두들 한없이 웃고, 떠들고, 소년소녀처럼 장난을 하는 등 원없이 마지막 눈을 즐긴 하루였다. 특히 왕산골로 하산할 때 산길을 벗어나 큰 밭이 있는 곳에서 눈무덤을 파고 생매장(?)하는 장난을 할 때는 봉변을 당하는 측도, 봉변을 주는 측도 모두 즐거움의 극치를 이루었다. 나는 교묘하게 그 봉변을 피했으나,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었다. 그리고 하산을 완료하여 버스가 대기한 지점에서 짬을 내여 젊은 분들이 만든 두 기의 눈사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배꼽을 잡게 했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장정들이 엄청 크게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여 실물을 만들어 붙인 것이 어찌나 실물과 흡사하던지 모두들 깔깔이었다. 나도 여기서 나무를 조그맣게 짤라서 눈, 코, 입 등으로 사용하게 하여 명작을 낳게 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정말 늘근소님이 있었더라면 촌평이 그럴 듯했을 텐데 아쉬웠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또 한번 봉변을 면하였다. 젊은 분들이 슬슬 눈치를 살피며, 영택씨가 나를 보고 눈사람 곁으로 와보라고 은근히 유도하기에 슬슬 꽁무늬를 빼서 눈에 생매장당하는 불운을 면하였던 것이다. 눈사람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두고두고 명작 눈사람을 감상하면서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다.

오늘은 봄철답지 않게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고, 간간이 햇살이 비치는 날씨여서 산행하기 더할 수 없이 좋은 날씨였다. 가정에 어려운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장수님이 산행에 참여하시어 좋았으나, 늘근소님, 큰 형님, matroos님, 쩡애님, 아이비님이 여러 사정상 불참하는 바람에 조금 아쉬웠다. 이번 산행에서는 나는 일부러 메모를 하지 않았다. 이미 이전에 답사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설경을 만끽하는데 충실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기억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을 참고삼아 전제한다. 준비물에는 친절하게도 윈드자켓, 모자, 장갑, 스펫츠, 간식, 물, 아이젠 등을 들고 있었으나 아이젠은 눈이 많이 쌓여 무용지물이었다. 뒤풀이로 황태 전문식당에 와서 황태요리를 맛보니 더욱 더 추억이 된다. 멋진넘씨를 필두로 한 1군과 문대장/약장수님을 필두로 한 2군이 갈라져서 각각 다른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한다. 이왕에 물 좋고 큰 황태를 그 식당에서 한 묶음 샀다. 고래씨가 값을 깎아주는데 일조를 해서 감사드린다.
여하튼 이 산은 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나,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눈덮힌 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므로, 겨울뿐만 아니라 춘설 산행지로서도 적격임을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비록 짧은 거리지만 백두대간의 장쾌함도 덤으로 느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랴? 얼마나 재미들이 있었으면 짜야 총무와 도치님이 남편의 눈길이 서슬같은 데도 불구하고 격려 차원에서 문대장에게 뽀뽀를 선물하였을까! 미루어 짐작하기 바란다. 총각이 복도 많지....! 한꺼번에 내노라 하는 미녀들에게서 뽀뽀 세례를 받다니....

(1) 대관령(1.9km) [- 준공비 - 임도 - 산불감시 초소 - 제왕산갈림(오른쪽) - 헬기장 ] - 능경봉

이른 아침 버스에 모인 우리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때아닌 폭설로 산행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나,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문대장이 하루 전에 다른 팀과 더불어 확인산행을 하고 왔다고 하면서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한다. 철저한 준비를 한 것 같아 든든하다. 이용석 기사님의 안전 운행으로 우리는 무사히 대관령에 내렸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터널이 뚫리고 난 이래 대관령에 접근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편이고, 폭설도 내린 뒤라 미끄러운 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대관령에 내린 나는 눈을 의심했다. 대관령 일대의 하얀 설원을 이룬 풍경이 멋지게 펼쳐져 벌써 이국적인 기분에 휩싸이고 마음을 설레게 하였지만,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대관령에 통행하는 차량이 없는 것이다. 어리둥절하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새로 대관령 구간이 개통되어 구길이 되어 버린 이 대관령 고개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맥과 기맥 등을 찾아다니다가 보니 이곳의 정보에 어두웠던 것이다. 주변에는 능경-고루포기산을 찾는 팀 이외 대관령 북쪽 선자령을 찿는 팀도 많아 휴게소 일대가 관광버스가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터널이 뚫리고 난 이래 황량하기만 한 휴게소가 주말만큼은 북적북적 그 황량함을 약간 벗어나는 기분이라고 행상을 하는 주민 아줌마가 귀띰한다. 버스에시 이미 산행 준비를 마친 터이라 바로 산행길에 나섰다. 눈들이 대단히 많이 쌓여 있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봄의 적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봄인가 겨울인가... 분간이 가지 않은 곳이다. 늦게까지도 유난히 많이 내리더니, 날씨는 봄처럼 바람도 없고 포근하지만 이곳은 온통 눈천지였다. 시리도록 하얀 눈 말이다.

대관령은 강원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해발고도 832 m. 총연장 13 km이며, 99개소의 굽이가 있다. 서울과 영동을 잇는 태백산맥의 관문이며,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하였으나 지금은 새로 인근에 새로 개통되어 그 사명이 덜어진 고개이다. 문득 대관령 고갯길을 내고 두 번씩이나 죽음을 당한 高荊(형)山이라는 사람 얘기가 떠오른다. 본래 대관령 고갯길은 오솔길이었으나, 이 고갯길을 조선시대 중종때 고형산이라는 사람이 사재를 털어 수개월 간에 걸쳐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혀 놓았다. 따라서 강릉과 한양간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그후 세월이 흐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 군대가 주문진으로 상륙하여 고형산이 넓힌 대관령 길을 이용하여 쉽게 한양을 침범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혼쭐났던 인조가 크게 노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 헤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대관령을 경계로 동쪽은 五十川이 강릉을 지나 동해로 흐르며, 서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松川이 흐른다. 대관령 일대는 황병산, 선자령(1,157m), 발왕산(1,458 m) 등에 둘러싸인 분지로, 고위 평탄면 지형을 이룬다. 기후는 한랭 다우지역으로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서리가 내리는 지역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연평균 기온은 6.1 ℃, 연강수량은 1,450 mm이다. 고랭지 채소 및 씨감자의 주산지이며 목축업이 발달해 있다.

대관령에서 옛 하행[남쪽]길 휴게소에서 우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계단을 한없이 오른다. 사람들이 많아 지체가 된다. 허벅지까지 눈이 빠진다. 다른 팀에서 러셀을 해 놓아 길은 어느 정도 나 있었다. 이어 영동고속도로준공기념비(해발 865m)에 이른다. 거대한 거북 등 위에 오석으로 만들어 논 거대한 비석이다. 공원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좌측 아래로 동해 바다와 손바닥만한 경포대가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데, 오른쪽 능선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한 길을 따라 계속 오른다. 눈이 쌓인 등산로, 바로 앞에 능경봉이 보인다. 등로는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선을 따라 진행하게 된다. 좌측(동)은 강릉시 성산면이고, 우측(서)은 평창군 도암면이다. 완만한 능선을 타고 오른다. 힘이 든다. 곧 [능경봉 1.3km] 표지판이 나오며 임도가 나타난다. 여기서도 동쪽 바다의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에 구름이 거무스름 끼여서 조망은 좋지 못하나 하얀 눈으로 치장된 산들과 저 멀리 강릉저수지의 파란 듯한 호수가 보여 묘한 감흥을 느끼게 한다. 30여 미터 후에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약수터'가 나온다. 그러나 그곳에 서 있는 비문을 읽지 못해서 답답함을 느꼈다. 50여 미터도 가지 않아서, [산불감시초소]에 도달하게 된다. 폭설이 와서 산불이 날 염려가 없고 날씨가 추우니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였다. 능경봉을 올랐다가 이 산불감시초소로 되돌아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 초소 앞에는 커다란 능경봉 안내판도 하나 설치되어 있다. 이정표에는 "대관령 0.7km, 능경봉 1.1km, 제왕산 2.0km, 대관령박물관 6.9km"라고 되어 있다. 이어 3거리에서 임도는 좌측의 제왕산 방향[암릉 코스가 좋슴]으로 갈라지고, 우리는 우측 좁은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여기서 능경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처음에는 그리 경사도가 크지 않은 산사면에 키가 큰 나무들이 울창하여 큰 산에 온 것임을 자각케 하고, 나무들이 온통 눈꽃을 이고 있어 보기에도 환상적이다. 앙상한 나무가 너무나 안스러워서 그렇게도 하이얀 눈꽃들을 피웠나 보다. 온 천지에 그냥 눈인 것이다. 엄청나게도 쌓였다. 그런데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로만 러셀이 되어 길이 나 있다. 유난히도 깨끗하고 하얀 눈길에 줄을 서서 오르는 산님들의 등산복을 입은 모습이 오색찬란하다. 약간은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냥 하얀 눈을 밟고 걷는다. 그냥 앞사람의 뒤를 따라 걷는 형국이다. 가끔은 떠드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그 엄숙함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앞사람의 발자국만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라고나 할까! 조금이라도 등산로를 이탈하면 허벅지까지 빠져 버리는 그런 엄청난 눈이 쌓여 있다. 퍽 환상적이다. 그러나 평상시보다 발을 더 높이 들고 진행을 해야 하므로 힘이 배나 든다. 시장기도 빨리 올 것 같다.

이어 2개시군 겸 3개면의 분기점에 이른다. 즉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가 만나는 점이다. 이어 조금 오르는데, 대구에서 온 산행객들이 길을 비켜 준다. 자기들보다 우리들이 좀더 프로다워 보였나 보다. 참 미덕스런 일이다. 그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어 등로는 더욱 급경사를 이루고, 눈에 많이 빠지니 힘들어 하는 측들도 보인다. 이어 밧줄까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오른다. 그 동안의 지겨움과 즐거움을 일시에 앗아가 버리듯이 약 50m 정도의 급경사 구간이다. 조금 위험하다. 눈 속에 있던 로프라서 잡으니 매우 미끄럽다. 능경봉 정상이 아주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이어 급경사를 지나 오르니 확실한 능선이 나타난다. 이어 짧은 잘록목이를 두 번 지나치면 제왕산 쪽과 강릉쪽 조망이 시원한 공터에 이른다. 그늘 속의 눈과는 달리 여기의 눈은 아주 눈부시다. 너무나 하야서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주변의 눈꽃과 함께.... 머리는 텅비어 멍한 상태가 된 듯하다. 그러길래 여기서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이다. 도치님이 나보고도 포즈를 취하라고 하는데, 어쩐지 어색하다. 그런 나의 모습이 재미있는 양 끝까지 나의 사진을 찍고 만다. 나중에 받았는데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동두천에서 오신 부부 사장님도 여기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는데, 눈이 허리부분까지 빠진다. 모두들 눈에 묻혀 보기도 하면서 환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여기에서 조금 오르니 헬기장 초원이다. 이어 조금만 더 오르면 바로 능경봉 정상에 도착한다.

능경봉은 해발 1123 .2m로서,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1,708m)과 오대산(1,563m), 황병산(1,407m)을 일으키고,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아오른 산이다. 주변은 잡목숲이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여 조망이 무척 좋았다. 북쪽으로는 선자령, 곤신봉, 매봉, 황병산,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대관령 일대의 하얀 산들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용평의 발왕산, 고루포기산, 계방산을 조망할 수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서득봉(△1052 .6m)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가 조망되며, 북동쪽으로는 오똑 솟은 제왕산과 여기서 대관령 쪽으로 임도가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오봉댐과 닮목재 가는 도로도 보이고, 맑은 날엔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흐려 조망은 그리 좋지는 않은 편이다. 이 산은 좌측(동)의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우측(서)의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 할 때 여기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고, 정상표지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깃대와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대관령 남쪽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제일 높은 봉우리로서, 산정에 영천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대관령 줄기의 다른 산에 비해 산행거리가 비교적 짧고 대관령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수시로 볼 수 있어 각광받는 등산로이다. 제왕산의 모산으로 오르기가 다소 힘드나 찾는 이가 적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산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정상표시석과 삼각점과 영천을 찾을 수가 없어 다소 아쉽다. "대관령 1.8km, 닭목이 "라는 이정표가 있었는 듯하다.

여기 정상에서 먹거리 파티가 벌어진다. 아직 때가 이르러 점심 생각이 없고, 하산하여 황태요리로 배를 채우고 싶지만, 산님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수환 리더의 산사춘 술이 맛있었다. 모두들 드시는데 열심이다. 나는 자제하면서 위를 남겨 놓기로 한다. 내려가서 이 고장 특산인 황태 요리를 먹기 위해서다. 그리고 여기서 대관령 아래 쪽 마을에 일부의 햇살이 비치는 곳에 마치 무슨 기적이 일어난 듯하다. 너무 모습이 멋있어 약장수님께 부탁하여 사진으로 남긴다. 멋있다.

(2) 능경봉(2.6km) - 횡계현(제1쉼터/대관령터널)

능경봉 정상에서 우측(서)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눈이 많아 다칠 염려가 없으니 뛰어 내려가는 측도 보이고,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측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눈이 많고 경사가 급해 균형을 잡기가 매우 어려워 그냥 미끄러져 가며 내려갔다. 한참 후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내리막이 이어지더니 얕은 안부를 지나 이내 1,030m봉이 나온다. 낮으막하고 밋밋하고 평탄하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온통 눈나라를 이루고 있다. 좌측(남)으로 별로 뚜렷하지 않은 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이 봉을 넘어 약간 좌측(서남서)으로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어 안부에 이르니 "횡계깃점 5km"라는 푯말이 있다. 안부를 지나 조금 오르면 그저 둔덕같이 생긴 970m봉이다. 나도 이제부터 산행시에 요긴하게 쓸 지팡이를 만들기 위하여 산림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나무가지를 찾기 시작한다. 줄기를 끊어버린다면 나무에 치명타가 되므로 가지 중에서 적당한 크기의 놈으로 장만하는 것이다. 좀처럼 눈에 띄이지 않는다. 나무가 너무 무르지도 않아야 한다. 가능하면 자작나무나 물푸레 나무 중에서 고르려고 시도하며 간다. 약장수님과 달공 대장님은 좋은 사진 작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다. 늘근소님과 matroos님이 동참했더라면 다른 시각에서의 작품들도 많이 나올텐데 하고 생각하니 그저 안타까운 생각만 앞선다.

970m봉에서 그대로 직진하여 내려간다. 역시 서남서 방향이다. 이제 제법 사람들이 눈썰매에 익숙해졌는지, 그렇게 얌전하게 보이던 아주머니, 아가씨, 아저씨, 청년 할 것 없이 요령껏 눈썰매를 즐기고 있다. 마치 눈썰매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약삭빠르고 경험이 많은 측들은 비료푸대 등 비닐을 깔고 하는 측도 있고, 순진무구한 측은 그냥 등산복 차림으로 그냥 눈썰매를 타기도 한다. 그 무엇이 대수랴??!!! 즐거우면 되는 것을....!! 눈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야말로 '눈천국' 이었다. 쭈욱 쭈욱 미끄러지며, 40대의 아주머니들도 마치 어린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깔깔' 거리고 있었다. 근자에 보기 드문 '많은 눈' 이었다. 올라올 때의 눈꽃들은 참으로 소담하여 나무 가지 위에 5센치 이상 쌓여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날씨가 따스하여 그러한 모습은 보기 힘들었지만 눈에 누가 약간의 잘 '미끄러지는 약품'을 들이 부은 듯 기쁘게도 자알 자알 미끄러움을 타고 있다. 거대한 자연의 어머니의 품속에서 약간은 물기가 있는 듯한 조금은 진밥과 같은 그러한 느낌을 주는 '하얀 덩어리' 속에서 너비 50센치 정도의 깊이 허벅지깨의 조그마한 '법열'의 길을 그냥 타고 가는 것이다. 시간은 어느 새 그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야 만 것이다. 나도 그냥 마음과 가슴을 다 열어버리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면서 추억에 잠길 뿐이었다. 재국씨를 위시한 우리의 멋있는 산꾼이며 산사나인 측들은 여성들이 즐겁게 눈썰매를 즐길 수 있도록 한껏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참으로 매너가 좋아 귀감이 될 만하다. 고래씨 등 백두대간을 완주한 측들은 별로 신기해 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가 문득 궁금해진다. 이어 평탄한 안부에 이른다. 쓰러진 나무들이 더러 보인다.

이어 다시 경사가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오르면 990m봉이다. 매우 평탄하고 밋밋하다.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우측(북서)로 소능선이 희미하나마 분기하고 있다. 우측 아래로는 어렴풋이 마을과 도로가 보이는데, 화약골마을과 구 영동고속도로인 모양이다. 뒤돌아보니 능경봉이 웅자를 과시하며 우람하게 서 있다. 좌측(남동) 아래로 도로 소음이 많이 들려 내려다보니, 최근 개통된 영동고속도로(50번)가 지나고 있으나 눈으로 인하여 교통량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여기서 길은 좌측으로 직각으로 꺾여져서 거의 남동 방향으로 된다. 잠시 후에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른다. 이어 940m봉에 이른다. 여기서 좌측 아래로 신 영동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아래로 임도가 나 있는 흔적이 구절양장같다. 그 임도를 따라 눈길을 주노라면 어느덧 고루포기산이 한눈에 올려다 보인다. 좌측(남동)으로 희미한 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이 봉우리에서 이제는 우측(서남서)으로 또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눈썰매를 타느라고 법석대고 있다. 솜씨도 이젠 능숙하게 되었다. 얼굴은 홍조를 띠어 예쁜 모습들이다. 완만히 내려서다 보면 어느덧 안부이고, 이를 지나 조금 오르면 x945m봉이다. 우측으로는 조금 깊은 계곡과 나무들이 울창하고, 좌측(남동)으로는 희미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이어 아주 완만히 내려가다가 아주 완만히 오르면 둔덕같은 940m봉이다. 밋밋하고 평탄하다. 이 붕은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우측(북북서)으로 희미한 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한참 내려가니 3거리 안부이다, 우측(북서)으로 내려가면 왕산골을 거쳐 456번 지방도로에 이를 수 있는 길이므로 탈출로로 이용할 만하다. 동순갑씨와 김재중씨 및 그 일파들이 거기서 고기를 굽어서 술 한잔을 하고 있다. 고기는 온통 타버린 상태인데, 건강에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이다. 일부는 고루포기산쪽으로 올라가다가 전망대까지 다녀왔다는 측도 있다.

오늘은 여기서 하산하는 것이다. 이 안부가 횡계현, 제1쉼터인 모양이다. "전망대 1.4km,능경봉 2.6km, 샘터 100m, 왕산골 700m"라고 쓴 이정표도 설치되어 있다. 좌측(남) 바로 밑에는 새로 뚫린 대관령 1터널이 지나고 있으며, 그 옆으로 고속도로가 보인다. 그것이 편리할 지는 모르나 나같은 산꾼에게는 심산 특히 백두대간의 분위기를 망쳐 버리고 만다. 아쉽다. 굳이 대관령 길이 있는데도 거액을 들여 이렇게 우회도로를 내고 터널을 뚫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옛날 백두대간 종주시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어서 그런지, 그저 산을 망친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여기서 나도 대관령 전망대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포기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구하지 못한 지팡이감을 물색해야 하므로 부득이하다.

(3) 횡계현(제1쉼터/대관령터널)(2km) - [왕산골 - ] - 456번 지방도로

여기 안부를 뒤로 하고 우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완만하나 눈이 많이 쌓여 푹푹 빠진다. 나는 쓸 만한 가지가 있으면 눈을 헤치며 갔다오곤 해가며 내려간다. 사람들이 바람둥이님과 초심씨에게 시간을 주기 위한 작전으로 둘만 남기고 모두 앞서 내려간다. 많은 얘기를 나누라는 취지이다. 선남선녀이다보니 많은 대화 속에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이다. 눈 쌓인 길을 러셀하며 내려간다. 나는 드디어 물푸레 나무와 자작나무에서 지팡이를 만들어 내었다.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지난 번 한강기맥에서 만든 단풍나무 지팡이가 금이 가더니 이내 갈라져 못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계곡은 제법 계곡미를 갖춘 것이나 아직은 동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이내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임도가 나타난다. 소나무숲길이다. 묘도 보인다. 사람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여기서 도치, 복남, 짜총, 정대현씨, 고래님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소나무를 흔들어 갑자기 눈벼락을 맞게 하는 장난을 하니 재미있었다. 복남씨의 유난스런 놀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재미있다.

이어 우측으로 다시 시야가 트이면서 산행 안내판을 지나니 넓은 밭이 나온다. 이 밭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은 눈 설원이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여기서 오늘 최고의 이벤트가 벌어진다. 사람들이 복남씨를 먼저 눈에 생매장한다. 그 비명소리가 일품이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럴 때 혼자라는 사실이 부쩍 서러울 것이리라. 그러면 다음에는 바지씨를 데리고 올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의도적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 차례로 도치, 짜총 등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모두 재미있게 생매장하고, 또 당한다. 고래씨와 나는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들을 보고 그저 즐거워하였다. 이어 달공대장도 당하였다. 그리고 정대현 대장도 당하였다. 정대장은 처음에는 매우 불쾌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수긍한다. 설사 수궁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신혼부부를 그렇게 하다니 조금은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만한 춘설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으랴 하는 대목에 이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소위이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상윤씨와 초심씨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상윤씨는 초기에는 반항하는 듯하더니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이내 포기하고 생매장당해 준다. 그리고 초심님도 생매장한다. 그 대목에서는 좀 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악의가 없는 장난이니 모두가 기분좋게 받아들인다. 그런 모습들이 아름답다. 이제 사람들이 다음 사냥감을 물색하고 있는 눈치였다. 고래씨가 이를 눈치채고, 나에게 내려가자고 귀띔을 한다.

그래서 수레길을 따라 내려온다. 여기서부터는 편안한 길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봉변을 당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이어 비닐하우스 등이 보이더니 왕산골 민가들이 나타난다. 우측 멀리로 456번 지방도로에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선두들은 내려가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밭사이의 수레길을 따라 계속 가다니까, 마을을 갔다가 오는 소년 2명을 보았다. 개를 데리고 가는데, 분위기가 어릴 적 나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 내가 놀랄 지경이었다. 이어 약간 좌측으로 휘어지다가 우측(북)으로 휘어져 나아간다. 그런데 우측 밭에 황태덕장이 있었다. 인부들이 트럭을 주차시켜 놓은 채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여 다가가 말을 걸어 보았더니,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매몰차게 서둘러 나가라는 소리만 들었다. 몹시 불쾌하고 괘씸했다. 뭐 내가 도둑인 줄로 안 모양인가! 신경질이 난다. 머리털까지 솟구친다. 화를 내고 싸워보고 싶었으나 참는다. 이참에 아예 황태 먹지말기 운동이라도 벌일까 보다. 에이 참...!

기분이 나쁜 것을 감추고 길로 다시 나와 마을을 지나니 이내 456번 지방도로가에 도착했다. 모두들 눈을 실컷 즐기고 난 뒤라 모두 얼굴에 화기와 생기가 돈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몽땅 눈에 두고 가는 형국이다. 아직도 눈썰매, 눈생매장 등 재미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화기애애하다.

※ 그 후

버스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배낭을 정리하고 나오니 젊은 사람들이 도로 건너편 밭에서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임영택, 박수환씨 등이 3사람 정도 굴러도 힘들 정도로 눈뭉치를 크게 하여 2개의 눈사람을 만들었다. 물론 남녀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남자의 거시기를 너무나 크고 실물감 있게 만들어 붙여 아줌마들까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참 재미있다. 온갖 류의 유머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니 말이다. 누가 사주했는지는 모르지만 임영택씨가 나를 눈사람 쪽으로 와보라고 말을 건넨다. 나는 그게 생매장 하기 위한 것임을 즉각 알아차리고 완곡하게 거절하여 여기서도 봉변을 면하게 된 것이다. 지팡이 나무가 너무 길어 일부를 잘라 눈사람의 코와 입, 눈 등으로 사용하도록 박수환씨에 건넸다. 그럴듯하게 눈사람이 완성된 후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고 버스에 올라 도암면소재지에 있는 식당에 들어서서 많은 여행자들의 눈총을 받으며 먹는 황태 요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산해 진미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그 얼큰한 맛이 며칠간 떠나지 않은 것을 보니....


교통 :

갈 때는 서울 경부나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 경유 강릉방면 직행버스 이용, 횡계 하차(3시간 20분 소요). 횡계에서 대관령까지는 택시를 이용한다.
숙박은 도암면소재지 횡계에서 남서쪽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용평스키장 근처의 콘도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이 주변은 큰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올 때는 갈 때의 역순임. 그러나 횡계 버스터미널에서 강릉행 버스가 07 : 50에서 21 : 30까지 약 10분 간격으로 있으므로 강릉까지 나가서 서울로 오는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다.

** 주위의 가 볼 만한 곳 ***

1. 대관령박물관
청동기부터 근세에 이르는 수십 세기의 방대한 역사와 민속유물 2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사설박물관이다. 고인돌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으며 언뜻 보면 6개의 건물로 보이지만 건물내부는 하나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는 원통형으로 들어온 곳을 통해 다시 나가게 되는 특이한 건축형태를 하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로 나누어진 전시관은 다시 6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지는데, 백호방에는 주로 조선시대 유물 중 종교, 민속신앙, 궁중유물이, 현무방에는 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청동기 유물이, 토기방에는 주로 석기시대와 신라시대의 토기유물이, 청룡방에는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도자기 유물이, 우리방에는 조선시대의 생활용품류가, 주작방에는 15세기 설화도를 비롯해 산수도, 민화 등의 고화와 불화 등이 진열되어 있다. 각 방마다 우리고유의 분위기와 색감을 살려 진열되어 있으며 눈으로만 보는 문화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유리진열장이 아닌 노출상태로 진열되어 놓은 전시품이 많다. 또한 야외전시장에는 20개의 장승을 비롯해 신라시대의 사리함, 조선시대의 문관석 및 동자석등이 있다.


2 .신사임당 시비
대관령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중종36년(1541) 사임당이 38세 때 강릉 친정으로 어머님을 찾아 뵙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에 대관령에서 오죽헌 쪽을 바라보면서 홀로 계신 친정 어머니를 그리며 읊은 것이다. 재덕을 겸비한 가장 전형적인 한국의 여성상으로 손꼽히는 그녀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바느질이나 수예는 물론 글과 글씨, 그림 등에 이르기 까지 천재적 재능을 보였고 예술가인 동시에 어진 부인이며 훌륭한 어머니였다. 특히 7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키우면서도 시부모님과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던 효녀로도 널리 알려지신 분으로 혼인한 후에도 친정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느라 대관령을 넘어 친정인 강릉과 시댁인 서울 사이를 자주 왕래하곤 했다고 한다. 당시 가마를 타고 가더라도 이 높은 고개를 넘는 고초가 대단했으리라 본다.

3 .대관령자연휴양림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대관령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수림이 울창하고 계곡물이 깨끗하여 좋다. 산림문화 휴양관, 통나무집, 야영데크, 임간수련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대관령이나 강릉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해수욕과 능경봉이나 제왕산 산행을 겸하면서 울창한 숲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갈 수 있는 좋은 곳이다.

4. 대관령 성황당
대관령 국사성황신 범일국사는 826년에 당나라에 가서 불법의 도를 얻어 돌아와서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학산리에서 굴산사를 창건하고, 열반하여 대관령 성황당에 모셨다고 한다. 이 신이 한 번 화를 내면 영동지방에 반드시 홍수, 폭풍, 가뭄, 질병 등 온갖 재앙이 왔다고 한다. 이에 매년 음력 4월 1일이면 제물과 술을 올리고, 4월 15일에 무당과 봉화군 관청의 노비 수백 명이 제사를 올린 뒤에 굿놀이를 하고 신이 들린 생나무 신목을 꺾어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여성황당에 잠시 모신다고 한다. 그리고 5월 5일 단오 전날 다시 신목을 모시고 강릉 남대천 백사장에서 풍년제를 비롯하여 민속놀이인 관노가면놀이를 하고, 단오제가 끝난 뒤 신목을 태워 버리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제 제 13호인 강릉단오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성황사는 지금도 음력 4월 보름에 강릉 사람들이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예전 강릉 단오제 때에는 태평소, 국, 장고, 꽹과리, 징, 제금을 든 창우[倡優=광대]들이 무악을 울리고 호장과 도사령들 뒤로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대관령 구불구불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 이곳까지 왔던 것이다.
대관령 국사 성황에 국사여성황을 모시게 된 내력은 이러하다고 한다. 옛날 강릉에 정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나이찬 딸이 있었다. 하루는 꿈에 대관령 성황이 나타나, "내가 이 집에 장가오겠노라"고 청했다. 그러나 정씨는 사람이 아닌 성황을 사위삼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어느 날 정씨의 딸이 노랑 저고리에 남치마로 곱게 단장하고 툇마루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와서 업고 달아났다. 딸을 업고 간 호랑이는 산신이 보낸 사자였다. 딸을 잃은 정씨는 호랑이가 물어간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대관령 국사성황을 찾아갔다. 그러나 딸은 성황과 함께 서 있는데, 벌써 죽어 혼은 없고, 육신만 비로소 떨어졌다고 한다. 성황이 처녀를 데려와 혼배한 날이 4월 15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