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적산[白積山] 산행기 [강원 평창]





일시 : 2003 년 8 월 31 일 / 비.

* 출발 예정시간 및 장소 : 오전 7시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제일은행 앞

행정구역 : 江原道 平昌郡 龍坪面, 珍富面, 大和面

산행거리 : 약 6.5km[도상거리]

산행시간 : 4시간 35분(11 : 55 ∼ 16 : 30)

산행코스 :
모릿재터널 위 도로(1km) - x978m봉(1.3km) - 백적산 정상(2 .1km) - 능선분기점(2.1km) - 소근리 도로분기점

지형도 :

1/5만 : 道岩, 蓬坪
1/ 25, 000 : 창동[1995. 7. 인쇄], 수항[1993. 6. 인쇄].

산행후기:


그동안 몇 번 정기산행에 빠지고 하여 이번에는 만사를 제치고 참가하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모두 반가왔으나, 한편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빠지신 분들이 많아 조금을 썰렁하고 아쉬웠다. 추석이 가까워 오니 벌초다, 모임이다. 결혼식이다 하여 많이들 보이지 않는다. 그분들은 다음 번으로 만나는 것을 미루는 수 밖에 없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교적 무난한 종주길이었고, 또한 산행 내내 길은 비교적 잘 나 있었다. 다른 산행 단체들의 산행한 흔적이 보이기도 해서 곧 오염이 되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이 산행기를 써야 하는가가 심히 망설여졌다. 종주길 능선 주변의 소나무들과 잡목들, 각종 야생화와 야생초들이 초록색의 윤기를 머금고 펼쳐지고 있어 온 산이 청산의 바로 그것이었다. 이렇듯 청산을 보면서 가는 것만 해도 오염되지 않은 산에 매료되어 좋은데, 그리고 가랑비가 살갗을 부드럽게 간지럽히고 또 간간이 부는 가을로 가는 서늘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어 상쾌함을 더하여 주었다. 하여 땅만 젖지 않았더라도 그냥 능선에 뒹굴고 싶고, 그냥 반듯이 누워 동행하지 못한 won을 생각하며 무심코 흘러가는 뭉게 구름이라도 보고 싶게 하였다. 아마도 그랬더라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흥얼거려지지 않았을까 싶다. 같이 동행하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다. 생각하면 아쉽다. 그러나 비로 인하여 안개가 끼여 시야가 별로 멀리 가지 못하여 조망을 하지 못한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눈부신 태양은 아니더라도 날씨가 개었으면 좋으련만.... 서울은 날씨가 맑았다고 하던데 말이다.

이 산은 여름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허버지까지 빠지는 푸짐한 눈이 있어 설경을 만끽할 수 있어 좋을 것 같고, 봄철의 신록과 가을철의 단풍도 무척 좋을 것 같다. 하여 어느 계절 할 것 없이 어느 철이나 좋은 산행지가 될 것 같다. 이 산은 후덕한 덕을 지닌 듯 육산/흙산이라 좋았고, 정상에서는 많은 명산을 거느리는 모산답게 엄청난 청산의 파노라마를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안개로 그 조망은 놓쳤지만, 산에 대한 애정은 더욱 짙어지게 만든다. 여기서 승화하여 문득 조국애가 자리잡게도 만든다. 한민족, 한겨레를 위하여 내 한 목숨 바쳐 모든 산줄기를 답사하여 보겠노라고 말이다. 가슴 속에 뜨거운 기운이 뭉클한다. 그리고 won과 함께 하지 못한 현실에 눈가에 촉촉함이 젖어 든다. 백적산이여, 영원 무궁토록 임하시어 우리 겨레의 영광과 조국의 번영을 지켜 주길 기원하고 왔다. 그리고 문득 우리 산악인들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들이 합심하여 조국의 산하를 깨끗하게 지켜 나아가야 함을 제언하고 싶어진다. 그래야 우리의 후손들에게 떳떳하지 않을까 한다.

백적산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림이 울창하며 듬직한 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백적산 주변에 있는 산들이 한결같이 높다보니 백적산은 1000m급의 산이면서도 인근 산들의 유명세에 밀려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밀려나 있게 되어 인적이 드문 산 중의 하나이다.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산이기에 한적한 등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찾아볼 만하다. 원시림의 청정함을 흠뻑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가보니 서쪽 대화면의 신리와 동쪽 진부면의 마평리를 잇는 군도가 확장포장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모릿재 터널을 지나서 바로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백적산도 미구에 유망 산행지로 떠오르게 될 것 같다.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산행 코스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나, 우리 서울산사람들은 모릿재터널 지나 동쪽 능선으로 올라서 정상을 지나 남서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삼갈래길 능선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골안이골 능선분기점에서 다시 좌측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묘련서 아래로 내려와 보호수가 있는 도로분기점으로 하산하는 식으로 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택하였다.

백적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영동고속도로상의 속사리재를 지나 계방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또한 모릿재에서 남쪽으로 잠두산, 백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계속 산행하고 싶어 혼났다. 어찌하여 우리 서울산사람들의 문대장님은 이렇게 산행의 변죽만 울려 놓고 마는지 모르겠다. 자꾸만 숙제만 밀리게 하는지 조금은 야속하다. 그러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어쩌랴? 언젠가는 나 혼자라도 다 가보리라.

산행후 묵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그 자리에서 무려 300 년 이상을 버티며 소근리를 지키고 백적산의 향도 역할을 한 느릅나무 보호수를 보지 않고 올 수 있는 점이다. 나는 꼭 보기를 권한다. 나무 밑에 서니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충정을 느끼게 한다. 모쪼록 잘 관리되어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주변에 가 볼 만한 곳이 많았으나, 시간관계상 가 보지 못하고 온 것이 마냥 아쉽다. 그리고 묘련사에서 필요하면 사연이 있는 분들은 기원을 해도 좋을 듯하다.

또 하나 특기하여 둘 게 하나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남선진씨가 9월 초 분만예정인 몸으로 이번 산행을 종주한 점이다. 만삭의 몸으로 참 대단하다. 꽤 가파른 부분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서울산사람들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네스북에도 올라야 할 것으로 믿는다. 아무튼 바라는 대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 산행 들머리에 이르기까지

출발 장소로 나가니 문대장과 고래부대장이 나와 점검하고 있었으나 차량은 보이지 않는다. 일이 있어 다른 차로 대차하는가 보다. 인사를 나누고 있으려니 늘근소님이 나타난다. 모닝 커피를 한다기에 대신 짐을 맡고 있는데. 임영택 님이 나타난다. 이어 버스가 온다. 그런데 고려관광으로 바뀌어 어리둥절했다. 이어 안재준 가족 및 동행 가족들이 택시를 타고 나타난 후 멋진넘 부부와 김재국 부부가 역시 택시를 타고 나타난다. 이후 여러 분들이 오신 후에도 버스는 출발예정시간을 넘기고도 출발하지 않고 있다. 안재준 일행들이 우리는 바빠서 택시를 타고 오기도 했는데, 하면서 불만을 하는 소리가 내 뒤통수로 들려 온다. 이윽고 정상윤 리더가 나타난다. 이어 버스는 예정보다 약 20분 늦게 출발한다.

교통 체증이 상당하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한다. 성묘 또는 벌초를 위하여 고향으로 가는 차량들이 서로 엉켜 있어 한참만에야 양재에 도착하니 동순갑씨가 승차한다. 신경쓰는 일이 있는지 얼굴이 몹시 상해 있는 듯하여 안스럽다. 이어 한 정거장 후에 정상덕 부부가 탄다. 역시 잉꼬 부부를 과시하는 듯 다정히도 오른다. 이제 인원은 다 채워진 듯한데 몹시 빈 자리가 많다. 시기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어 버스는 여주로 해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10 : 11 경 문막휴게소에 이른다. 하차하니 매우 부드러운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회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데, 나는 비빔밥으로 아침을 한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으나 이것으로 대신한 것이다.

10 : 40 경 문막휴게소를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로 계속 간다. 벌써 들녘에는 벼가 피어 있고, 가을의 느낌을 주고 있다. 이어서 11 : 18 경 장평 IC로 들어가서 장평 시장에서 고기와 야채, 라면, 짜장면 등을 산다. 하산 후에 요기할 것들이다. 여기서 남동쪽으로 31번 국도를 따라간다. 주변으로 감자꽃과 기타 많은 야생화 들이 눈길을 끈다. 이어 신리초등학교 앞 3거리에서 좌측(북동)으로 깨끗이 포장된 아스팔트 2차선 도로를 따라 간다. 휴가 또는 성묘를 왔는지 길가에는 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고, 가끔 폐가가 나타나기도 하여 안타깝기도 하다. 메밀꽃이 별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그림같은 집들도 보이며, 양쪽으로 높은 산이 공제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맑은 대화천이 흐르고 있다. 이어 자작정 마을을 지나면 이내 좌측 아래 밭둑에 보호수가 보이는 도로 분기점이 나온다. 북쪽으로는 백적산이 공제선을 그리면서 우뚝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좌측 계곡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묘련사와 농가들이 보인다. 여기서 우측으로 오르면 이내 모릿재 터널이 나오고 이를 지나면 산행 기점인 모릿재 고개마루에 이른다.

(1) 모릿재터널 위 도로(1km) - x978m봉

본래 모릿재는 해발 약 800m 정도이다. 그런데 그 밑으로 터널을 뚫어 도로를 낸 것이다. 아마 생태계의 통로 마련을 위해서인 것 같다. 도로 고개마루에는 가로등들이 외로이 서 있다. 모릿재는 원래 십자로 안부이었던 곳이었는데, 좌측(서)의 대화면과 우측(동)의 진부면의 면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도로의 고개마루의 우측(동)은 진부면의 마평리와 405번 지방도로로 이어지고, 좌측은 대화면의 신리와 31번 국도로 이어지는 군도의 확장포장공사로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지난다. 대화면 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모릿재 터널이 뚫려 있다. 착공은 1999년 경으로 알고 있다. 도로의 고개마루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진부면인 것이다. 차량 통행은 아주 뜸한 편이다. 본래의 모릿재 고개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백적산에 이르고, 남쪽으로 오르면 蠶(잠)頭山(△1243.2m), 白石山(△1364.2m)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 도로상 모릿재 고개마루에 내리니 보슬비가 내린다. 많이 미끄러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두들 우의를 입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가기로 한다. 더워서 땀이 나면 땀에 젖는 것이나 비를 맞는 것이나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여기 도로상 모릿재 고개마루에서 좌측(북서)으로 난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 오른다. 그런데 굳이 만삭의 선진씨가 산행을 하겠단다. 만류를 하지만 막무가내이다. 조금 걱정이 된다. 그리하여 나는 초기에 근접지점에 있으면서 만약의 사태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인 김재국씨가 힘이 장사이니 잘 커버할 것으로 믿었지만 말이다. 좌측으로는 고랭지 채소밭이 보인다. 양배추가 잘 자라고 있다. 이어 3거리가 나오면 좌측으로 오른다. 이내 비포장 임도가 이어진다.

이어 다시 3거리에 이른다. 좌측 사면에는 대형 송신탑이 서 있다. 여기서 등로는 우측 사면으로 들어서 올라야 한다. 그 산행지점 입구에 백적산 안내판이 서 있다. 비에 젖은 숲은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산꾼은 이 냄새가 좋아 산을 떠나지 못하나 보다. 이어 큰 잣나무 군락을 지난다.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낙엽이 있고 비를 머금은 흙이 제법 미끄럽다. 이어 능선에 이른다. 여기서 우측(북북동)으로 완만히 오른다. 이내 밋밋하고 평탄하며, 주위가 신갈나무숲인 890m봉 직전에 오르게 된다. 이 봉우리는 본래의 모릿재에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비로서 주능선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대화면(서)과 진부면(동)의 면 경계선을 따라 능선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890m봉 직전에서 좌측(북)으로 사면으로 진행한다. 이어 능선에 나와서 내려간다. 좌측으로 대화천 상류, 도로, 소근리 계곡 등이, 우측으로 도로, 오대천, 곡건리 마을과 계곡이 보일 것이나 안개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다. 전방으로는 x978m봉이 우뚝하게 서 있는데, 아주 가까이 있다. 잠시 후에 안부에 이른다. 옛 참호가 있고, 물봉선화가 보인다. 우측은 잣나무숲이고, 좌측은 신갈나무숲이다. 다시 오른다. 방향은 모릿재 이래 계속 북 내지 북서 방향이다. 잡목숲 아래 덩굴나무들이 무성하다. 낙엽도 제법 있다. 길은 계속 양호하다.

이어 능선마루에 이른다. 이정목이 서 있는데, "모릿재 0.5km, 정상 1.6km"라고 되어 있다. 평평하고 밋밋하다. 잡목숲인데, 자작나무가 눈길을 끈다. 여기서 좌측(남서)과 전방(북서)으로 극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좌측 아래로 묘련사가 있을 것이나 안개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다. 우측(남동)으로는 계곡이다. 그리고 조그만 이정표 팻말이 나무에 걸려 있다. 아마 향토 산악인들이 애향심을 발휘하여 이렇게 손색없이 이정목을 세우고 등산로를 정비한 것 같다. 참으로 다른 지방 분들이 본받을 만한 일이다. 평창이 이렇게 향토애가 강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그 분들에게 많은 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정상덕씨가 이정목 아래에서 더덕을 캤나 보다. 그 특유의 향기가 온 숲에 진하게 풍기는 것으로 보아서이다.

여기 능선마루에서 우측(북동)으로 휘어 완만히 오른다. 이어 밋밋한 둔덕에 이른다. 좌측(북서)으로 극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다시 우측(북동)으로 잠시 완만히 내려간다. 페트병이 버려져 있어 불쾌하다. 이 멋진 산하에 웬 쓰레기냐 말이다. 그렇게 무겁지도 않는데.... 이어 오른다. 다시 밋밋한 둔덕에 이른다. 신갈나무숲이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나무에서는 굵은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며 숲의 고요를 깨고 있다. 마치 굵은 비가 오는 듯하다. 산행 내내 이러했다. 다시 내려간다. 안부에 이르니 큰 키의 신갈나무숲이 울창하다. 우측(남)으로 극히 희미한 하산로가 보인다. 좌측은 계곡이고..... 이어 가파르게 오른다. 신갈나무 숲 아래에 진달래 및 철쭉 군락지인데, 가지들이 조금 성가시게 한다. 길이 매우 미끄럽다.
이내 x978m봉에 이른다.

(2) x978m봉(1.3km) - 백적산 정상

x978m봉은 밋밋하고 평탄하다. 주위는 신갈나무와 덩굴 숲이다. 공터가 조금 있어 쉴 수는 있다. 우측(남동)으로 극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조망이 좋아서 좌측으로 계곡, 백적산 등이, 우측으로 도로, 오대천, 곡건리 마을과 계곡이 보일 것이나, 안개로 인하여 조망이 엉망이니 개탄스럽다. 앞으로 가야 할 주능선 길도 한눈에 들어올 텐데 역시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니 쉬기도 어렵다. 그냥 진행한다.

여기서 좌측(북동)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완만한 편이다. 신갈나무 숲이다. 좌우로 조망이 아주 좋을 것이나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으니 마냥 아쉽다. 우측은 가파른 사면이다. 이어 얕은 둔덕이 나오고 계속 내리막이 이어진다. 완만하다. 이어 우측(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이 나온다. 큰 키의 신갈나무숲이 상쾌하게 해 준다. 다시 완만히 내려간다. 역시 신갈나무숲이다. 둥글레가 지천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측(동)으로 극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이어 얕은 안부에 이른다. 장송숲 아래 둥글레가 역시 지천이다. 다시 완만히 내려가다가 안부를 지나 잠시 오르면 920m봉이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고, 밋밋하고 평탄하다. 주변은 장송숲이다.

여기서 좌측(북서)으로 휘어 잠시 내려간다. 넓고 평탄한 곳에 이른다. 십자로 안부이다. 좌측(남서)은 묘련사 쪽으로 이어지고, 우측(동)은 곡건리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힘들면 여기서 좌측으로 탈출하여도 될 것 같다. 여기서 직진하여 북북동 방향으로 아주 완만하게 오른다. 이어 완만하게 진행한다. 계속하여 조망은 볼 수 없다. 그 놈의 안개 때문에 다 망쳤다. 조그만 둔덕 바로 전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간다. 평탄한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구절초도 눈에 띄며 갖가지 잡초들로 무성하다. 이어 북서 방향으로 계속 오른다. 조망은 계속하여 엉망이다. 능선에 이르러 좌측(북서)으로 오른다. 장송숲이 나온ㄷ. 상쾌하다. 이슬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이어 등로가 매우 가팔라진다. 길은 뚜렷하나, 낙엽이 있고, 비에 젖은 흙이 미끄럽기까지 하다. 오늘 산행 중 매우 힘든 부분이다. 선진씨가 올라올 수 있을까 염려된다. 하기야 남편인 재국씨가 워낙 장사이니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있지만 말이다. 조금 힘들게 오른다. 드디어 평탄한 곳에 올라선다. 이어 완만히 오른다. 이어 가파른 바위지대를 오른다. 다시 오르막이다. 이어 둔덕을 넘어 오른다. 이어 가파르게 오른다. 우측(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을 지난다. 조금 더 오르니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계곡이 나타난다. 안개로 인하여 조망이 하나도 되지 않는다. 속상하다. 이어 1040m봉에 이른다. 매우 밋밋하고 평탄하다. 주변은 신갈나무숲이다. 좌측(남서)과 우측(북동)으로 극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조망이 좋을 것 같으나 안개 때문에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좌측으로 대화천 상류, 묘련사, 도로, 소근리 계곡 등이, 우측으로 임도, 오대천, 넘은곡건동 마을과 계곡, 거문초등학교 등이, 전방으로는 백적산이 가까이 보일 것이나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갑갑하다.
여기서부터 연달아 1040m봉을 두 개나 지나게 된다. 완만히 내려가다가 얕은 안부를 지나고 오르고를 반복한다. 그러나 워낙 완만한 지형이라 지나치기 쉽다. 등로 주변은 신갈나무숲이 시원하게 한다. 좌우측으로는 계곡이 깊다.

드디어 세 번째 1,040m봉에 이른다. 밋밋하고 바위도 조금 있다. 주위는 신갈나무숲이다. 공터가 조금 있어 쉬기에 좋다. 우측(북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으며 그리로 길이 나 있어 3갈림길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도 조망이 좋을 텐데 안개가 다 망치고 말았다. 여기서 좌측으로 휘어 남서쪽 방향으로 잠시 내려간다. 바로 공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텐트를 여러 동 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어 우측으로 휘어 내려가는데, 북서 방향으로 변한다. 신갈나무숲이 좋다. 잡목들도 보인다. 좌우에는 능선 가까이까지 안개가 올라와 있다. 그래서 마치 구름 위를 유유히 활보하는 기분이 들어 좋다. 마치 이것이 신선인 것처럼.... 보통인들이 산행을 하지 않고는 절대로 이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어 안부에 이른다. 넓은 공터인데, 자세히 보니 헬기장이었던 곳이다. 좌측(남) 방향으로 묘련사 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 있다. 이 쪽으로 탈출해도 될 것 같다. 선진씨가 이 곳으로라도 탈출했으면 좋을 듯하다. 헬기장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어 잡초와 잡목이 무성하다. 유사시를 위하여 관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싸리, 버드나무, 억새와 야생화가 지천이다. 쉬거나 식사하기에는 별로이다. 그러나 한숨을 돌릴 만하기는 하다. 좌우측으로 계곡이 깊다. 여기 3갈래길에서 우측(북서)로 진행하니 이정목이 서 있다. 의외이다. 거기에는 " 정상 0.3km, , 모릿재 1.5km, 모릿재터널 1.8km."라고 적혀 있다.

이어 우측으로 오른다. 산사랑산악회! 송파 위례성 산우회! 강릉믿음산악회! 송문산악회 등의 표지기들이 보인다. 이미 상당한 수의 산악회들이 다녀간 것이다. 아마도 묘련사 우측으로 올라왔는가 보다. 하여튼 이런 오지에서 표지기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마지막 비탈길답게 상당히 가파르고 난코스이다. 오르는 길이 비를 맞은 흙으로 인하여 미끄럽기도 하고 바위도 많다. 겨울철에는 상당히 미끄러워 힘들 것 같다. 잡목숲을 지나니 바위지대가 나온다. 우측으로 우회하다가 평탄한 곳에 오른 뒤 우측으로 오른다. 이어 다시 바위지대를 직접 타고 넘어 오른다. 이어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전망대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 올라 보니 조망이좋을 듯하나 안개로 인하여 도무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다시 조금 더 오른다. 너덜지대에 3갈림길이 나온다. 이정목이 서 있다. " 모릿재 1.8km, 이목정 2.3km, 골안이(굴암사) 1.9km. "라고 되어 있다. 우측 이목정으로 하산하는 길은 뚜렷이 나 있다. 조금 오른다. 이내 넓은 바위에 이른다. 아주 반듯하게 되어 있어 식사하거나 쉬기에 좋고, 조망도 즐길 만한 곳이다. 15여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듯하다. 안개로 인하여 조망은 별로이다. 여기서 멋진넘 부부를 위시하여 많은 분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이어 우측으로 몇발 오른다. 드디어 백적산 정상에 이른다.

(3) 백적산 정상(2 .1km) - 능선분기점

백적산은 해발 1141.2m로서, 대체로 거대한 흙산이지만, 정상 부분에 바위를 쌓아올려 우뚝 솟구친 정상은 다시 평평하게 된 흙으로 되어 있고, 서쪽에는 꽤 큰 바위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 바위로 올라 갈 수 있다. 그 바위에는 작은 안내팻말이 걸려 있다. 정상 남쪽으로 암벽이 수직으로 되어 있어 아찔한데, 또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삼각점이 있다. " 봉평 23, 1989 복구, 건설부." 깃대와 깃발은 없다. 이 산은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梨木亭里와 대화면 新里 5리 및 진부면 巨文里가 맞대어 있는 3개면의 경계에 정수리를 두고 있다.
고봉험산준령의 우람한 줄기를 이끌며 남으로 힘차게 내리뻗던 백두대간이 우뚝한 오대산에서 서쪽으로 갈래를 쳐서 지맥을 이룬다. 이 지맥은 조금 후에 남한 제 5위로 높은 계방산(△1577m)을 밀어 올린 후에 이 계방산의 1,462m봉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정남쪽으로 약 50리를 남하하고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뛰는 오랫동안의 산고 끝에 이 백적산을 솟구친 것이다. 다시 백적산은 기라성 같은 명산을 낳은 어머니산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백적산 아래로 錦塘山(△1173.2m), 巨文山(1175m), 고두산(1030m), 蠶(잠)頭山(△1243.2m), 白石山(△1364.2m), 中旺山(△1376.1m), 加里旺山(△1560.6m; 남한 제 9위의 고봉임), 靑玉山(x1249m), 南屛山(△1149.7m), 만지산(716m), 백운산(883m) 등을 일구어 놓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백적산의 서쪽으로는 興亭川과 束沙川이 龍坪面 才山里 의풍포 마을 앞에서 합류해 平昌江이 흐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五臺川이 각각 남으로 흘러내린다. 이 백적산은 평창강과 오대천 사이에 위치하여, 공제선(하늘 마루금)을 그으면서 거대한 산줄기를 과시 내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백적산에서 발원한 대화천은 평창강으로 합류하게 된다. 이후 평창강은 남한강으로 흘러들게 된다. 이처럼 이 산은 명산을 낳는 외에도 강도 낳음으로써, 사람으로 치면 백덕산은 그 덕이 수만대에 이어갈 것에 비견되는 명산이 아닐런가 싶다.

백적산은 그 북쪽 능선 정상 밑에는 엄청난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다. 조금 내려가 보고 싶으나 생략한다. 선답자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로 흰 빛깔의 큰 바위로 넓게 쌓여 있으며, 흰 횟돌의 왕성원이 둘러져 있어 속칭 흰적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왕성원이 검게 보이면 날이 궃고 희게 보이면 날이 개인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어느 봉우리에 있는 샘물은 옛날 어느 장수가 이 물을 먹고 힘을 길러 공을 세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밖에 쉴바위, 선바위, 부처바위가 그 경관을 더해주고 있으며 질좋은 산채류와 약초류가 산재하고 있어 농가 부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정상 주변은 철쭉나무가 보이고, 풀이 무성하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정상 부위는 꽤나 길쭉하고 평탄하게 생겼다. 각종 관목들과 잡초가 무성하다. 야생화들도 보인다. 북쪽으로 지능선이 분기하는데, 이 지능선은 용평면(서)과 진부면(동)의 면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또 남서쪽으로도 지능선이 분기하는데, 이 지능선은 용평면북)과 대화면(남)의 면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올라온 능선은 또 대화면(서)과 진부면(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으로 막히지 않아 무척 좋을 것이어서, 우선 남쪽 아래로 소근리 계곡이 아름다울 것이고, 첩첩이 사방으로 포개어진 청산들의 행렬이 눈을 시리게 할 것이며, 끝이 없는 하늘과 조화되어 우리 조국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며, 북쪽으로는 약 50리에 걸친 능선을 따라가니 계방산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힘차게 뻗어가는 능선이 잠두산, 백석산, 중왕산, 청옥산, 가리왕산을 빚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으며, 동쪽으로는 발왕산, 박지산 및 그 너머로 고루포기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능선이 보일 것이며, 또한 노추산, 다락산, 상원산, 옥갑산 등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태기산과 덕고산, 봉복산, 운무산 등이 장쾌한 산줄기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안개 때문에 하나도 볼 수 없으니 몹시도 아쉽고 한탄스럽다. 멋진 조경은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삼각점이 있는 공터와 전망대 바위에 2패로 나뉘어 식사를 하고 정상주를 나누었다. 비가 오는데도 식사가 꿀맛이다. 갖가지 음식과 반찬들이 즐비하다. 그런 와중에 김재국, 남선진 부부가 마지막으로 도착한다. 모두들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고 먹을 것을 권한다. 김재국 리더도 상당히 힘들었나 보다. 오늘은 비가 와서인지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지 않았다. 더 있고 싶지만 귀가를 일찍 하고 체온저하도 막기 위하여 하산한다. 안개로 조망을 못하고, 또 너덜지대에 다녀오지 못한 채 아쉬운 발길을 떼며 하산한다. 하산은 백적산 정상에서 좌측(남서)으로 난 능선으로 내려간다. 완만하다. 철쭉 및 신갈나무 숲이다. 이어 가파르게 내려간다. 흰 빛깔의 돌들이 보인다.

이어 잠시 평탄지대를 진행한다. 다시 완만히 내려가니 안부에 이른다. 바위들이 많다. 이어 완만히 오른다. 바위가 있는 둔덕에 이른다. 잠시 내려가다가 오르니 둔덕에 이른다. 길쭉하고 평탄하고 밋밋하다. 3갈림길에 이정목이 서 있다. "정상 0.4km, 골안이(굴암사) 1.5km." 주변은 신갈나무숲이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안개로 조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좌측 아래로 개짖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 온다. 상쾌하기는 하다. 이어 완만히 내려가다가 안부를 지나 오른다. 이어 1090m봉에 이른다. 길쭉하고 밋밋하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바위가 있다. 다시 완만히 내려간다. 큰 키의 신갈나무숲이라 좋다. 울창하다. 이어 안부에 이어 오르막이다. 완만하다. 바위들이 있다. 평탄한 둔덕을 지나 아주 완만하게 내려간다. 이어 평탄지대를 진행한다. 통로는 좋으나 바위들이 있다. won과 동행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젓하고 상쾌하니 말이다. 날씨가 맑았으면 얼마나 더 좋겠는가 말이다.

잠시 오른다. 신갈나무 숲이 울창하다, 다시 평탄지대를 지나 오른다. 바위가 있는 둔덕을 지나 내려가다가 평탄지대를 진행한다. 이 부분이 지형도상 1070m봉이다. 여기도 길쭉하고 평탄하고 밋밋하다. 신갈나무숲이다. 이어 완만히 내려간다. 다시 오르니 밋밋한 둔덕에 이른다. 북서쪽과 남서쪽으로 극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휘어 남서 방향으로 조금 내려간다. 이어 평탄한 안부에 이른다. 다시 조금 오르내리다가 평탄지대를 지나 완만히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완만히 오른다. 둔덕같은 1030m봉에 이른다. 신갈나무숲이나, 공터가 없어 쉬기에는 별로이다. 다시 조금 내려간다. 평탄지대를 지나 우측(남서)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다가 좌측으로 내려간다. 또 안부에 이른다. 이어 조금 오른다. 우측에 하산로가 희미하게 나 있다.
이어 능선분기점인 곳에 이른다.

(4) 능선분기점(2.1km) - 소근리 도로분기점

여기서는 우측(남서)으로 지능선이 분기하여 용평면(북)과 대화면(남)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약 1040m 정도이다. 여기서 좌측(북동)으로 크게 꺽어 계곡으로 묘련사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으나 문대장님에 따르면 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좌측(남동) 지능선으로 진행한다. 오르막이다. 잡초들이 많은 편이다. 덩굴 등이 걸리적거리기도 한다. 한참 오르니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있다. 잡초들이 무성하다. 좌측(북동)으로 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인천일산산악회 표지기가 있다. 평탄하다. 이후 비교적 완만하게 진행한다. 고래 부대장과 잠시 동행한다. 여러 얘기를 나누고, 정맥 종주에 자꾸 빠지니 흥미가 안 난다고 토로한다. 가끔 더덕을 캔 흔적들이 보인다. 고래 부대장도 더덕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나 번번히 실패이다.

드디어 다시 능선분기점에 이른다. 해발 1070m 정도이다. 여기서 좌측(남동)으로 내려간다. 메모지가 비에 젖어 버려 더 이상 메모를 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그냥 기억에 두면서 그냥 내려갔다. 신갈나무숲에 철쭉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양쪽 사면을 가파른 편이다. 다시 좌측(남동)으로 휘어져 가파르게 내려간다. 드디어 3갈림길에 이른다. 여기서 우측으로 잡초가 무성한 길로 진행한다. 다시 조그만 능선 갈림 부분에서 좌측 골짜기를 향하여 진행한다. 사면을 내려서니 절개지가 나온다. 물이 나와서 몹시 질다. 이를 내려서니 고랭지 배추밭이다. 여기서 문대장님이 지난 번 김재국씨와 답사할 때 칡덩굴 위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던 독사를 만난 지점을 가리켜 준다. 그 쪽으로는 길이 전혀 없는 곳이라 애먹을 것 같다.

고랭지 배추밭에는 배추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이를 지나니 농로가 나오고 이어 좌측으로 휘어 내려가니 물이 흐르는 도랑이 나오고 그 건너편으로 민가 1채가 있다. 이어 우측으로 진행한다. 무가 엄청 잘 자란 무밭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이어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좌측 위로 보니 묘련사가 보인다. 맑은 물이 흐르고 물소리가 제법 크다. 이 개울이 백적산에서 발원하는 대화천의 상류인 것이다. 이 물이 흘러흘러 평창강으로 들어가서 남한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조용한 산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는 묘한 감을 더하여 준다. 더욱 적적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 말이다.

여기서 잠시 그 쪽으로 해서 올라가 보기로 한다. 묘련사 입구에는 어설픈 안내문이 있는데, 법화도량이라 쓰여 있다. 좌측으로 오르니 우측으로 묘련사 전모가 보인다. 조그만 절집이 하나 덜렁 있고, 그 옆에는 절간 건물보다 더 크고 화려한 건물이 서 있어 부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절 앞 개울 쪽에는 돌망태로 축대를 쌓아서 조그만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짐차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 기원을 드리러 온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목표를 이루어 달라고 기원해 볼까 싶었으나 참는다. 사위는 조용하고 흐르는 물소리가 적막을 깨고 있다. 이어 삼거리에는 폐가가 하나 있다. 이어 오르막이다. 이윽고 좌우로 밭들이 나타나고 우측 휴경지에는 폐가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우측 위로 집 두 채가 보인다. 맨 위의 집은 붉은 기와집이다. 멀리서도 장작이 쌓여 있는 것이 정겨워 보인다. 며칠 정도 와서 푹 쉬고 가고 싶은 곳이다. 주위로는 온통 고랭지채소밭이 일구어져 있다.

다시 3갈래길로 되돌아 와서 직진한다.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진다. 감자밭이 나오는데 잎이 몽땅 죽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리를 건너니 감자밭이 나온다. 여기도 싹이 모두 죽어 있다. 이어 완만히 오른다. 드디어 2차선 아스팔트 도로와 만나는 도로 분기점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선진씨가 힘겹게 도착함으로써 모두들 안전하게 산행을 마친 셈이다. 그래서 대장님 이하 모든 분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린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우측 아래 밭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보호수이다. 우측 아래는 감자밭인데, 그 밭 둑에 보호수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사람들이 고기를 굽고 짜파게티,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모릿재 터널 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온 후, 밭으로 잠깐 내려가서 큰 나무 가까이 가서 찬찬히 둘러보니 정말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우람하게도 서 있다. 느릅나무(비슬나무) 고목으로 1982년 11월 13일에 마을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다. 정자목인 것이다. 주변에 큰 돌로 축대를 둘러치고, 그 안에는 작은 돌로 채워 두어 제법 대접을 한 흔적이 있어 다행이다. 잘 세워진 안내문에 따르면 수고 24m, 최대 직경 3.9m, 가슴둘레 410cm 정도나 된다. 소재지는 평창군 대화면 신리 1703번지이고, 고유번호는 강원 평창 14번이다. 수령이 약 300년이라니 그간의 온갖 풍상에 시달리면서도 충직하게 이 소근리 마을을 묵묵히 지켜온 것에, 비록 나무이지만 존경심이 일고, 머리가 숙여진다. 영생하기를 기원하여 둔다. 옆에는 조그만 선바위(남근석)가 자리하고 있다.



교통, 숙박, 음식 :


승용차는 영동고속도로 - 장평I.C - 대화 - 신리4리 - 신리3리 - 자작정 - 소근리.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장평 경유, 강릉행 고속 직행이 06시 30분부터 18시 55분까지 40분 간격으로 운행. 2시간 30분 소요. 장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하여 다시 대화행 시내버스[07 : 00부터 20 : 00까지 1일 15회 운행를 이용, 신리 4리에서 하차. 여기서 소근리 산행 들머리까지 도보로 갈 때는 약 1시간 30분 소요.
산행 들머리의 소근리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이 없으므로 봉평의 부촌장(033-333-1923), 봉평장(033-332-5100) 등, 장평의 장평장여관(033-333-7100), 그린장여관(033-333-9914) 등,
대하면의 서울(033-333-2029). 대림장(033-333-2172). 대화장(033-333-1122). 도미성(033-333-2052). 성문장(033-333-5060) 등에서 숙박하거나, 또는 장평에서 3km 떨어진 화가 마을에서 민박을 하여야 함.
봉평 장터 근처에 메밀국수로 유명한 진미식당(033-332-0242) 등이 있다.



주변의 볼거리 :

1. 장평 - 봉평가도

1936년 발표된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선생의 태생지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메필꽃 길을 걸으며 이 소설을 생각한다면 산행과 더불어 기억에 남는 문학기행이 될 것이다. 승용차로는 장평 IC에서 봉평(물레방아)방면으로 10분 거리이다.

평창초등학교를 유학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에서 소재가 된 소설은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남안동) 생가 터에서 출발하여, 메밀밭이 무성한 시골길을 걸어 흥정천과 물레방아터를 지나고 다시 봉평장터를 만나게 되며, 노루목 고개를 지나 여울목을 건너는 곳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장과 평창장등 초등학교를 다닌 어린시절 반복하였을 코스 그 대로 소설의 배경은 펼쳐지고 있다.
지금은 생가터에서 걸어 나오다 보면 왼쪽으로 물레방아터를 만나기 전 오른쪽으로 약 120평 면적의 비닐하우스로 [메밀꽃 필 무렵 야생화 연출] 이라는 곳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무슨 내용인가 의아해 할 수 있는데 일단 들어가 보면 이해가 가는 곳이다.
소설과 우리 야생화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한 농민에 의해 이루어진 곳으로 소설 전문을 각 색션마다 나누어서 잉크로 그려진 삽화와 소설 구절 그리고 야생화와 접목된 미묘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순서대로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소설에 심취하게 되는데 그 여운이 아쉬우면 나올 때 그가 작품으로 만든 책을 구입할 수 있다. 전시된 각 내용을 그대로 책에 옮겨 소설 전문과 각 색션마다 그려진 삽화가 함께 하는 책은 젊은 시절 고향에 취해 서투른 문학에 심취하던 이곳의 주인 '김상기'(45세)씨가 직접 그린 것이라 하여 또 놀란다.
소설 속 그대로의 배경인 봉평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가와 고향을 사랑하는 뜻이 그대로 연출된 곳이다. 달빛에 흐드러지던 메밀꽃이 지더라도 그의 작품을 추모하는 이곳은 연중 운영되어 방문하는 이에게 아쉬움을 덜하게 한다.

이효석은
1907년 평창군 봉평면 창동에서 이시후의 장남으로 출생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
1929년 조선문예에 [기우] [행진곡]을 발표, 이듬해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근무하다가 경성농업학교 교편을 잡음. 이때를 기하여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전념하였으며 더불어 9인회에 참여하여 [돈] [수탉]등 일련의 향토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작품경향이 변모하여 인간본능의 순수성을 지적하는 작품경향을 보였으며 [분녀] [개살구] [낙엽기] [화분]등이 좋은 예이다.
1942년 [봄의상] [풀잎] [일요일]등의 단편을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해 5월 25일 뇌막염으로 별세했다.
[도시와 유령]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한 이유로 유진오와 더불어 카프(KAPF)진영으로부터 동반작가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였음. 이후 구인회에 가담하여 순수문학의 방향을 더욱 분명히 하였으나 이효석의 작품세계는 향수의 문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메밀꽃필무렵]과 마찬가지로 유랑을 제재로 한 작품을 소개하면, 배따라기(김동인), 청산별곡, 역마(김동리)등이 있다.

*가산공원 일대에는 매년 8월~9월 초(3일간) 효석 백일장이 열린다.



2. 이승복기념관

1968년 울진, 삼척 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들에 의해 12월 9일 무참히 살해된 이승복 소년의 반공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2년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본관 전시실을 비롯하여 이승복 동상, 다니던 학교, 살던 집의 모형, 묘소, 휴게소, 자연학습자료 전시장 등이 있다.

3. 신약수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에 있는데 물맛이 텁고 시원하며, 빛이 맑다. 속사IC에서 신약수로 10분 거리이다.

4. 기타

용평리조트, 오대산토종마을(토속품판매, 황토찜질방), 재산무공해토마토 시범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