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台峰[금대봉], 大德山 산행기



구간 : 싸리재 ∼ 蒼竹洞[창죽동] 검용소 주차장.

일시 : 2003. 9. 28. 日/ 흐림.

행정구역 : 江原道 旌善郡 古汗邑 ; 三陟市 下長面 ; 太白市 창죽동

출발시간/장소 : 2003. 9. 27. 22시[무박 2일]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제일은행 앞.

산행거리 : 총 10.3km[검용소 왕복 1.2km 포함]

산행시간 : 총 5시간 35분(05 : 30 ∼ 11 : 05) * 일반인은 약 6 ∼7 시간 정도 소요.

산행구간 :

싸리재(1.3km) - 金台峰(3.5km) - 분주령(1.6km) ∼ 大德山(1.3km) - 분주령 임도개시점(1.4km) - [검용소 왕복 1.2km] - 蒼竹洞 검용소 주차장


지형도 :

- 1/2만 5천 咸白[2003. 4 . 인쇄](★★★ 참고로 이 지형도는 문양식 대장님이 손수 구해 주신 것이다. 매우 감사드린다. )
- 1/5만 太白.

회비 : 금 30,000원(아침, 중식 제공).


산행후기 :


조금 늦게 나갔더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신다. 박경하님 송민정님 장태익님 등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 반갑다. 특히 권 큰형님과 박수환 리더가 오랜만에 보니 반가왔다. 문대장님, 늘근소님, 멋진넘 및 도치님, 복남님, 은영씨, 총무, 고래, 임영택, 오승렬 부부, 정상윤씨, 임향순, 문대장 친구 등등 총 22명을 태운 버스는 22 : 15 출발장소를 출발한다. 조금 막히는가 하더니 이윽고 양재 구민회관 쪽에서 약장수, matroos님, 정상덕씨를 태운다. 총 25명으로 불어난다. 약장수님과 matroos님도 오랜만이어서 반갑다. 그러나 아기를 보러 갔다는 김재국리더도 안 보이고, 양인호님 등등 많은 분이 안 나오셔서 서운하다. 버스 출발을 잔뜩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정상윤 씨가 소백산에서 채취한 귀중한 송이버섯을 다듬어 조금씩 나누어준다. 그 향기가 상당한 기간 입속에 머무르면서 기분을 좋게 한다. 한술 더 떠서 정상윤씨는 또 사과들을 종류별로, 그리고 배도 깎아서 맛을 보인다. 비록 태풍 매미 때문에 낙과한 것이라고 해서 어찌나 마음이 아리던지 모른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홍옥도 옛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하여튼 그 손길에서 경상도 사나이의 후덕함이 느껴지고, 정이 뚝뚝 듣는다. 얼마나 좋은 광경이랴?

금대봉과 대덕산 지역은 나뭇잎이 넓은 활엽수가 지배하는 곳이어서, 생태학으로 볼 때 최종 단계의 숲이라고 한다. 훼손되지 않고 스스로 발달한 건강한 수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 126만평(약 38만 950㎡)을 환경부가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것 같다. 그만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이 일대는 겨울에는 한랭건조하고, 여름에는 온난다습한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며, 한여름에는 집중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단다. 환경부는 1993년 보호지역 지정에 앞서 전문학자들로 조사단을 구성, 2년에 걸쳐 종합적인 자연자원조사를 벌였는데, 이때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동식물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생태계 현황을 보면 식물류 445종류, 조류 53종, 포유류, 양서류 15종, 곤충류 107종으로 개관된다고 한다.

식물류로는 특수식물, 한국 특산종, 희귀식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제주도와 울릉도에서만 발견된 덩굴용담이 서식하는 등 모두 455종의 다양한 식물들이 다수 분포하여 매우 풍부하게 자라고 있는 편이라 한다. 특수식물로는 대성쓴풀, 한계령풀, 공작고사리, 나도파초일엽, 덩굴용담, 노랑무늬붓꽃, 가시오갈피, 주목, 땃두릅나무, 두메닥나무, 사장분취, 큰제비고깔 등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 중 대성쓴풀은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 특산종 식물로는 참꿩의 다리, 섬기린초, 터리풀, 노랑갈퀴, 금강제비꽃, 할미밀망, 좁은단풍, 두메기름나물, 도라지모시대, 분취, 털개불알꽃, 홀아비바람꽃, 누른종덩굴 등 15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희귀식물로는 털댕강나무, 왜미나리아재비, 바이칼바람꽃, 나도바람꽃, 나도양지꽃, 혹쐐기풀, 모데미풀 등 16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류에는 조류, 포유류, 양서류, 곤충류 등이 두루 발견된다고 한다. 조류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매/새매(제323호), 검독수리(제243호) 등 53종인데, 두견이, 청호반새, 파랑새, 오색딱다구리, 발종다리, 큰유리새,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 딱새, 숲새, 쇠박새, 박새, 방울새, 어치 등이 그 중에 속한다고 한다. 포유류로는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를 비롯 대륙목도리담비, 오소리, 고라니, 청솔모, 너구리, 고슴도치, 두더지, 멧토끼, 다람쥐, 노루 등 13종이다. 파충류로는 도마뱀, 아무르장지뱀, 유혈목이, 누룩뱀, 까치살모사, 쇠살모사 등 6종이 서식하고 있다. 양서류로는 멸종위기종인 꼬리치레 도룡농을 비롯하여, 무당개구리, 도롱뇽, 두꺼미, 물두꺼비, 청개구리, 참개구리, 산개구리, 옴개구리 등 15종인데, 고한쪽의 두문동 계곡에서는 도마뱀, 한소리 계곡에서는 도롱뇽, 창죽계곡에서 꼬리치레도롱뇽의 집단서식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곤충류로는 방패벌레, 그림날개나방, 꽃등에, 꽃파리, 맵시벌, 잠자리, 여치, 메뚜기, 총채벌레, 풍뎅이, 하늘소, 호랑나비, 노랑나비 등 107종인데, 이중 한국미기록종도 상당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은 생태학적으로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즉 금대봉은 우리 민족의 거대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 등이 발원하는 곳으로 지리학적으로도 아주 뜻이 깊다. 그리고 또 있다. 지천으로 널린 야생화, 특히 산행로의 양쪽에 핀 야생화만 구경해도 산행 오기를 잘 했다고 수백번을 되뇌이고 말았다. 특히 여름에 꼭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산행이라고 권고하고 싶다. 정말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생태학적, 지리학적, 야생화, 막힘 없는 조망, 높은 산을 걷다가 보면 어느덧 호연지기를 체득하여 한 단계 향상된 자신을 느낄 수 있고,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을 산행하게 되어 여간 기쁘지 아니하다. 또한 여름이 이제는 지나갔으며 분명히 가을이 왔음을 알게 하는 이번 산행 기회를 마련해 준 대장님 이하 여러 분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산을 산행하는데, 무박산행이라고 하여 사람이 적은 편이라 몹시 아쉬웠다.

이어 한참 후에 11 : 30 여주 휴게소에 들렀다가 12 : 00경에 출발한다. 잠을 잔 듯한데, 어느 순간엔가 차가 마구 좌우로 흔들려 잠이 다 달아난다. 길이 험해서 이리저리 휘어 오르다 보니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새벽 약 4시경인가 싸리재에 도착했나 보다. 나는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어서 정확한 시간을 모르나, 문대장님이 출발 전에 4시경이라 하여 그대로 인용한다.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니 5시가 넘어 있다. 이용석 기사님이 잔치 국수를 삶아 놓았으니 아침 식사를 하라고 한다. 덜 깬 잠을 깨서 아쉬운데, 누군가가 밖에 비가 온다고 한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는 배낭에서 항상 가지고 다니던 우의와 배낭 커버를 내어 놓고 산행을 한다. 그런데 이곳은 비가 온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비를 맞고 산행하려니 아득하다. 그래서 짐을 가능한 한 최대한 줄이고, 경량화하여 산행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내려가니, 거의 모든 분들이 이미 드시고 난 뒤라 국수는 남는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뜨거운 국물에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나 참 좋았다. 찬 도시락만 먹기가 힘들었을 텐데 ... 따뜻한 국물이 어디냐...! 이렇게 배려해 주시는 이용석 기사님이 고맙다.

돌이켜 보면 옛날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이 구간에서는 눈이 아주 많이 쌓여 있던 겨울이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초가을의 기운이 도는 날에 산행을 하게 되니 굉장히 이채롭고 또한 감회가 새롭다. 백두대간을 할 때도 금대봉에서 분기하는 지능선에 솟아 있던 우암산, 대덕산 주변 초원능선을 얼마나 종주하고 싶었던가. 그리고 한강 발원지인 검용소는 지금까지도 하나의 소원으로 남겨 두었던 것이 아니던가. 오늘 비로소 이 두 가지 숙제를 모두 해결하게 되었으니 나의 인생은 점점 풍부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아직도 능선 내내 야생화를 볼 수 있어 좋았고, 각종 수목의 바다를 지나는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여인의 풍만한 젖가슴을 연상케 하는 완만한 능선과 능선 주위에 펼쳐진 넓은 초원 등등은 이 산꾼의 혼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 뿐이랴? 1000m 이상의 고원지대를 지나며 무한히 이어지는 고산준봉들의 행렬이 조망되어 모름지기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되면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호연지기를 길러주기에 좋은 곳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아침 일출 직전과 일출 광경은 영원히 망막에 잔산으로 남으리라... 이 광경에 대해서는 이미 약장수님이 명작으로 촬영하여 올린 바 잇다. ... 고목샘을 본 것과 분주령골에 내려선 뒤 검용소에 다녀온 것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거기서 도치님에게 기념 사진 한 장 촬영을 부탁했는데, 잊어버리지 않고 전해 주시길 고대한다. 다만, 나는 이미 가 본 적이 있지만, 다른 분들을 위하여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과 비경인 구문소를 볼 기회가 없어 아쉽다. 이어 검용소 오르는 길에 나오는 고랭지 배추밭 및 검용소 주차장 인근에 있던 고랭지 배추밭에서 끝물로 챙긴 배추로 삼겹살 파티도 하고 지참을 할 수 있게 되어 가슴 가득 고향을 담아온 듯하여 푸근하다.


(1) 싸리재(1.3km) - 金台峰

싸리재는 강원도 태백시 화전 2동에 소재한 해발 1,268m이다. 금대봉과 함백산을 가르는 백두대간상의 고개이다. 태백시 화전동[禾田洞]에서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38번 국도가 지나는데, 2차선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고, 차량 통행은 많은 편이다. 싸리재 정상에서 고한읍까지가 20리, 태백까지가 30리이다. 정선(서)과 태백(동)의 경계에 위치한다. 고개 너머 정선 땅에 바로 "두문동"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는데, 두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해서 '두문동재'라고도 한다. 이곳의 이정표는 물론 지도에도 하나같이 두문동재를 싸리재라 적고 있지만, 태백문화원 김강산 사무국장에 의하면 싸리재는 재 너머 싸리밭에서 호명골로 넘어가는 또 다른 고개라고 한다. 따라서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 싸리재를 두문동재라고 명명하자고 주장하는 산악인들이 적지 아니하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비로소 그 곳의 표지판에는 작은 글씨로 괄호를 치고 "싸리재(두문동재) 1,268m"라 적혀 있다,
남쪽으로는 함백산(△1,572 .3m)이, 동쪽으로는 매봉산(△1,303.1m), 그리고 북쪽으로는 금대봉이 올려다 보인다. 싸리재 밑에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태백시 화전동을 잇는 길이 1.363m, 해발 1050m 정도의 두문동터널이 1994.12.30 - 2001.8.31에 걸쳐 뚫리면서 정선과 태백을 오가는 사람들은 만항재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길은 더욱 한가로울 수밖에 없다. 겨울철이면 눈이 워낙 많이 쌓여 차량 통행도 끊기고 하나밖에 없는 휴게소도 문을 닫아 쓸쓸하기까지 하단다.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경기도 개풍군의 지명이다. 고려 말에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고 한다. 『개풍군지』에 보면, 만수산의 서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회유에 지친 조선의 태조가 끝내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고 하는데, 많은 이들은 이렇게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피난 와서 살았던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인 杜門洞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문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하였으니 이름 역시 두문동이다. 또한 예로부터 난리가 나면 사람들이 숨어들었다 하여 두문동으로 불리워졌으며, 杜(두)門不出이라는 말을 낳은 골로서도 아주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두문동의 형세는 참혹할 정도가 되어버려 이제 더 이상 사람의 삶터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대성초등학교는 분교로 전락하였음에도 아이들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실마다 가득했던 아이들은 이제 고작 10명뿐이란다. 광부인 듯한 중년의 사내 하나가 벌써부터 벌겋게 낮술이 올라 운동장을 서성이며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또 누구에게 한풀이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렇게나 삿대질을 해대고 있는 풍경이 목격된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의 골짜기에는 시커먼 폐수와 함께 버려진 기계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벌겋게 고여 있다고 한다. 끼니를 걸렀는지 쓰레기 더미를 뒤집는 동네 강아지들을 쫓으며 한 집을 지나면 대여섯 집은 빈집이다. 아뿔싸, 왜 이리 퇴락했을꼬.....

싸리재에는 깃대 3개에 달린 깃발이 열심히 펄럭이고 있다. 고원도시임을 실감케 한다. 깃발 옆에는 광산촌도로(고한 - 태백) 개수 및 포장공사('84. 11. 19. - '89. 12 .21. ; 24.6km.) 완공비도 보인다. 또 이 고개 위로는 함백산 쉼터와 화장실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옥수수 맛을 보지 못하여 아쉽다. 도로 건너편 화장실 인근에는 마고할미탑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돌탑인 것 같기도 하고 돌무지 같기도 하다. 하여튼 오랫동안 세월에 걸쳐 쌓아진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는 싸리재 밑을 터널이 개설되는 바람에 싸리재의 역할은 많이 줄어들 것 같고, 가끔 산행객이나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 또는 아침 해돋이를 촬영하거나 감상하려는 사람들 정도가 드나들 것이기에 마고할미탑도 더 이상 높아지거나 수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낮이면 어느 국악인이 부르는 정선아리랑이 구성지게 흘러나올 것 같기도 한 분위기이다. 함백산으로 오르는 산행 초입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문이 잠겨 있다. 함백산 등산로 안내판도 서 있다. 옆쪽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문 바로 옆에 철조망이 동그랗게 벌어져 있어 개구멍이 있다. 거기로 빠져나가서 오르면 될 것이다. 도로에 한쪽 면에는 "태백시 화전동", 반대면에는 "정선군 고한읍"이라고 쓴 행정구역 경계판이 서 있다. 그리고 "용연동굴 8.5km, 태백석탄박물관 22km"라고 적힌 이정표도 있다. 싸리재에서 차를 타고 아래로 5분 정도 내려가 너덜샘에서 막영을 하면 된다. 너덜샘에 있는 두개의 수도꼭지에선 물이 콸콸 나온다. 참고하기 바란다. 정선과 태백의 갈림길임을 알리는 아리랑의 고장 돌비석이 웅장하다. 비석 밑 기단에 정선 고장 안내 해설문이 잔글씨로 새겨져 있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05 : 30 조금 넘어서 산행을 시작한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모른다. 마고할미탑 우측 편으로 나 있는 넓은 임도로 진입한다. 싸리재는 금대봉의 거의 9부 능선에 해당하는데, 주변이 그렇게 평탄할 수가 없다. 이처럼 거의 9부 능선부터에서 산행을 시작하니 금대봉으로 보아서는 조금은 '얌체' 같다. 임도 입구에는 자동차 차단 바리케이드가 있는데, 이를 우회한다. 이어서 이 지역이 환경부의 생태계보호지역임을 알리는 대형 표지판이 서 있다. "대덕산/금대봉 생태계 보전지역, 4.20㎢, 1993. 4. 26. " 그리고 태백시 안내간판이 크게 서 있다. 임도를 따라 북북동 방향으로 아주 완만히 오른다. 임도는 아마 산판한 나무를 나르기 위한 것인가 보다.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것으로 보아 방화선 역할도 하는 듯하다. 여름철이면 임도 주위에는 터리풀과 병꽃나무가 보인다고 하는데.... 아쉽다. 이어 비록 철이 지나긴 하였지만, 금방 야생화 꽃송이가 눈에 띈다. 여름이면 대단할 것 같다. 벌과 나비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야생화를 찾아, 들여다보고 감상하며 간다. 여름이면 산 전체가 온통 야생화로 가득하여 무릉도원에 온 기분일 것 같다. 그리고 임도의 양쪽은 온통 야생화 천지이다 보니, 어느 하나의 꽃에 너무 시간을 낭비하지 보면 진행이 더디어지므로 주의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이 심어 놓은 듯 저리도 질서정연하게 임도를 따라 피어 있을까 싶다. 흰 꽃을 피우는 태백시의 市花 함박꽃나무와 역시 흰 꽃을 피우는 백당나무 등이 보인다.

조금 후에 첫 번 째 헬기장에 이른다. 사진 찍는 분들은 벌써 작품 만들기에 착수하는 듯하다. 늘근소님이 임도를 벗어나 헬기장으로 오르며 열심히 물색하고 있다. 이어 약장수님도 서서히 활동할 것이다. "식물을 화면에 담을 때는 무아지경에 이른다"는 어느 사진작가의 말처럼 이분들도 식물사진을 촬영할 때는 즐겁거나 괴로운 모든 인간사는 물론이고 촬영현장의 말소리, 시간 등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모양이다. 진흙탕이라도 엎드리지를 않나... 혼신의 정열을 다 쏟는다. 참 보기 좋다. 무언가에 심취하여 무아지경까지 가는 경지는 경험자가 아니면 그 심오함을 전혀 모르리라. 또한 그 두 분은 역대의 파파라치에 뒤질세라 멋진 장면을 잘 찍어내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시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그래서 우리의 사이트는 더욱 윤택해진다. 이번 산행에서는 어떤 파파라치급 사진이 찍혀졌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가 되는 것은 무슨 일일까? 치명적인 것은 올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첫 번 째 헬기장 주변 풀밭에서는 쥐오줌풀, 세잎종덩굴, 요강나물, 미나리아재비, 초롱꽃, 범꼬리, 나리난초 등을 볼 수 있다. 또 태백 일대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태백기린초가 보인다. 윗부분의 잎이 크고 두꺼워 보이며 꽃은 크고 선명한 노란빛인데,. 이런 겉모습이 기린초속의 다른 종과 완연히 구별된다.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 임도 따라 조금 걸으니 두번째 헬기장에 이른다. 이 부근에는 구슬댕댕이가 여름에 꽃을 피우고 있었을 것이다. 괴불나무속의 식물로 다른 종류들에 비해 잎, 꽃, 키가 모두 큰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식물은 이곳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여러 그루를 볼 수 있다. 헬기장 옆 임도에는 흙탕물이 가득 고여 있다. 헬기장에는 억새 등 잡초가 무성하다. 헬기장에서 몇 걸음 나아가다가 임도가 좌측(북서)으로 휘어지는 지점이 나온다. 이 임도는 금대봉 서쪽을 두르며 계속 이어진 후 금대봉 북쪽 아래의 초원지대에서 금대봉을 지나온 길과 다시 만나 우암산(x1,348.4m)으로 향한다. 우리는 이 삼거리에서 우암산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가지 않고, 오른쪽(북북서)으로 여주뫼솔산악회의 등산로 안내 리본이 보이는 곳으로 금대봉을 향하여 산길을 오른다. "나 여기 다녀 갔소!" 하고 무언으로 말하고 있는 리본.... 바로 백두대간 표지기가 아니던가..!!! 힘들게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이곳에는 눈이 엄청 많이 쌓여 있던 아련한 옛 추억에 잠시 잠겨 본다. 이름 모를 꽃들이 이슬로 세수를 하고 멀리서 온 나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서 약장수님과 늘근소님은 살짜기 임도를 따라 간 것 같다. 아마도 임도를 따라 가면서 임도 공사때 침입한 것으로 생각되는 서양민들레 꽃이라도 관찰하려는 것일 것이다. 야생화 산행으로서는 늦은 감이 있어 두 분은 얼마나 아쉬울 것이랴? 그 아쉬운 마음이 나의 가슴에 감지되어 온다.

금대봉으로 오르는 길의 주변 숲이 하늘을 가린다. 어두컴컴할 정도이다. 이부분에도 여름에 오면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만발할 것이리라. 노랑갈퀴, 기린초, 까치수염 등이 화사하게 피어 있을 것이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리꽃일 것이리라. 주황색 혹은 주홍색의 여섯 꽃잎이 선명하여. 빛깔만으로는 마치 열대의 숲 속에 든 것 같을 것이다. 또한 주변의 초원과 숲속을 살피면 감자란, 제비란, 솜방망이 등을 찾을 수 있을 것임은 물론이고, 양지꽃속과는 속부터가 다른 나도양지꽃도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을 것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면 은대난초, 꿩의다리, 범꼬리, 천남성, 백당나무, 꽃개회나무, 눈개승마 등이 연이어 나타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옅은 단풍도 예쁜데, 거기에 아침 일찍 떠오르는 일출의 온통 붉은 기운이 가세하니 숲이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일출 직전의 불그스레한 기운과 일출 광경도 장관이다. 다행히 약장수님이 그 멋진 광경을 사진으로 담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단풍 외에도 동해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잔뜩 가을이 묻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어 평탄하게 완만한 오름길이 되더니 이내 금대봉에 이른다.

(2) 金台峰(3.5km) - 분주령

해발 1418.1m.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과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의 경계에 위치. 하늘이 열린 듯한 느낌이 든다. 삼각점이 있다. " 438, 1975. 10. 복구."라는 글자만 판독이 된다. 깃대와 깃발은 없다. 이 산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태학적으로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고, 한강과 낙동강 등 이 이곳에서 시작한다. 금대봉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흐르면 한강, 남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어 우리 민족의 거대 젖줄인 두 강이 발원하고 있어 지리학적으로도 매우 뜻깊은 산인 것이다. 정상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초원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백두대간은 동쪽(북동)으로 급하게 꺾이어 매봉산을 향해 이어지며, 낙동정맥을 분기시킬 준비를 한다.
옛날에는 지형도상 무명봉으로 표기되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으나, 백두대간 종주코스가 알려지고 나서, 다소 많이 알려진 산이다. 이 산은 백두대간의 주릉에 우뚝 솟아 동쪽의 매봉산 줄기를 받아 남쪽의 함백산, 태백산으로 백두대간의 장쾌한 맥을 이어주고 있다. 이 봉우리 북사면 골짜기에는 한강의 발원지 역할을 하는 고목샘, 검용소 등이 있고 낙동강 천리 물길이 시작되는 용수골이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봉산 동쪽 가지인 1145m봉에서 낙동강 동쪽 산세를 형성하는 낙동정맥이 뻗어 있으니 금대봉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러나 사실상 금대봉은 양강 발원지가 아니고, 남한강의 발원지일 뿐이며, 탐사를 잘못한 것이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산악인도 있다.

금대봉의 명칭의 유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환경부의 조사용역을 맡은 학자들이 국립지리원의 지형도에 봉우리 이름이 없어 고한쪽의 두문동에 있는 대성 초등학교에서 이름을 따서 대성산이라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이 부근에는 대성산이란 없다면서, 그 무명봉을 금대봉이라 부르며 지형도에 금대봉이라 되어 있는 해발 1,096m의 봉우리는 이름 없는 봉우리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국립지리원이 지형도를 제작할 때 금대봉의 위치를 잘못 쓴 데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여튼 그 이후로 금대봉이란 산 이름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이름은 참 예쁘지 아니한가! 참고로 정암사 절을 세울 때 금탑, 은탑을 세운데서 금대봉, 은대봉이 유래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식물이름 중에서도 이와 관련 있는 것이 있다. 용담과의 대성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 금대봉에서 처음 발견된 이 식물의 우리말이름은 앞의 이유와 비슷하게 대성산에서 발견되었다는 뜻으로 `대성'쓴풀이라고 붙인 것이다. 만약 이 식물을 발견한 산 이름이 금대봉임을 알았다면 틀림없이 `금대'쓴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씁쓸한 일이다.

금대란 말은 『검대』로 신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또한 금이 많다고 하여 금대라고 한다고하여 산 속 여러 곳에 금구뎅이가 있다. 그러나 어느 곳도 확실히 금줄을 잡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이 산의 이름이 금대이니 금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에서 금꾼들이 몰려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금대봉 정상에는 금대봉이라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 兩江發源峯 1,418.1m, 한국청소년연맹한강탐사대"이라고 쓴 길다랗고 좁은 흰 색 말뚝이 세워져 있어 이채롭다. 한강과 낙동강이 이 산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산불 감시초소가 높이 서 있고, 돌탑이 하나 서 있다. 산불감시초소는 녹슨 곳이 보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관리가 잘된 듯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다. 감시초소의 사다리를 올라가 열려져 있는 바닥의 뚜껑으로 감시초소에 들어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아주 좋을 것이나 안개가 끼어 아쉽다. 남쪽의 함백산과 동쪽으로 매봉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대덕산이 보이며, 멀리 고랭지 채소밭도 보이고, 백두대간의 연봉이 끝없이 이어져 펼쳐진다. 정선카지노 등 큰 시설이 들어서면서 마구 파 헤쳐진 능선들도 보이는데, 몹시 보기에 흉하다. 운해에 잠겨있는 봉우리들도 아스라이 보인다. 주위에 높은 산에 속해서인지 산불감시초소에서는 아주 멀리까지 감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초소 안에는 다소 오랫동안 비워 놓은 흔적이 있다. 산불감시요원이 직무를 태만히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만약 그렇다면 이 좋은 산림이 불이 났을 때 조기 진화하지 못하여 엄청난 피해를 유발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정상에는 여름이면 범꼬리, 큰앵초, 쥐오줌풀, 미나리아재비, 태백기린초, 박새, 광대수염 등이 많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붉은인가목도 발견될 것이다. 장미과의 큰 특징인 5개의 꽃잎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미과의 원예종들처럼 겹꽃잎이어서 신기하다고 한다. 정상 주변에는 또 하나의 귀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백합과 산마늘이라고 한다. 울릉도에는 흔하지만 한반도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은 식물이라는데, 울릉도에서는 옛날부터 `명' 또는 `명이'라 부르며 구황식물로 이용되어 왔으며 현재는 고급 나물로 인기가 있어 값도 산나물 중 가장 비싸다고 한다. 정상에는 또 " 생태계 보전지역, 대덕산, 금대봉"이라고 적힌 키는 작으나 굵은 말뚝(이하에서는 '흰말뚝'이라고 약칭하기로 한다)이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를 잠시 감상하고 있노라니 옛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몸서리치게 힘들던 시절... 더구나 허리 높이의 눈을 헤치며 종주하던 때가 그립다. 그러나 다른 회원들은 조금 있더니 내려가 버린다. 산행 시작기점부터 후미를 담당하던 임영택 리더가 더 이상 올라오는 회원이 없음을 확인하고 "늘근소님과 약장수님은 조금 전의 임도로 진행하셨을 것이다."며 나에게도 이제 내려가자는 눈치를 보낸다.

조금 아쉽지만, 금대봉을 뒤로 하고, 금대봉에서 좌측(서북서)으로 내려간다. '금수강산', '서울산사람들', '대구산수산악회' 등의 표지기들이 보여 반갑다. 여기서 무턱대고 우측(북동)으로 진행하면 백두대간 능선으로 들어서 버리게 되므로 좌측의 등산로로 들어서서 우암산을 향해야 한다. 낮은 키의 조릿대숲, 철쭉나무, 신갈나무 등의 숲인데, 여름이었다면 그 숲 아래로 고광나무, 은대난초, 물참대, 나비나물, 팥배나무, 민백미꽃, 개회나무, 노박덩굴의 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 철조망이 나오면 좌측으로 내려간다. 숲이 끝나고 초원지대가 된다. 이내 조금전의 임도와 만난다. 늘근소님과 약장수님이 임도로 해서 올라와서 앞에 가고 있다. 주위는 넓은 초원으로 되어 있는데,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같지는 않은 듯하다. 여름이면 미나리아재비와 털쥐손이가 군락을 이루고 초롱꽃, 요강나물, 수영, 범꼬리, 졸방제비꽃, 광대수염, 붉은참반디 등이 자라고 있을 것이며, 특기할 만한 식물로는 십자화과의 노란장대로서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데 키가 1미터에 가깝다고 한다.

우측 초원지대에 "대덕산, 금대봉 생태계 보전지역" 안내문이 서 있다. 임도 따라 내려간다. 능선을 따라 초원이 계속된다. 왼쪽 사면은 벌채를 했는지 나무가 거의 없고 풀만 무성한데 이곳에는 많은 초본식물이 자라고 있다. 늘근소님과 약장수님이 무언가 열심히 찾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어 완만히 오른다. 이어 좌측으로 휘어 오른다. 얕은 고개마루에서 좌측 초원지대를 오른다. 잠시 후에 1330m봉 일대에 이른다. 생태계 보전 말뚝과 간판이 있다. 정상은 온통 초원지대이고 어린 묘목이 자라고 있다. 웅덩이도 보인다. 다시 임도로 내려와 우측(북동)으로 임도를 계속 따라 내려간다. 초원과 낮은 키의 나무숲이 계속된다. 왼쪽 사면은 벌채를 했는지 나무가 조금 있고 풀이 무성한데 이곳에는 많은 초본식물이 자라고 있다.
조금 후에 임도를 버리고 우측 숲속 사면으로 난 샛길을 찾아 오른다. 여기서 임도는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 사면 길 주변은 낮은 키의 신갈나무숲이다. 억새들이 제철임을 만끽하고 있다. 이어 능선 안부에 이른다. 여기가 우암산 갈림길이다. 좌측으로 오르면 우암산이다. 두문동재에서 대덕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측 길로 우암산 능선의 오른쪽 사면을 횡단해 가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산행을 왔다면 여기 3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서 펑퍼짐한 봉우리를 이루고 잇는 우암산(x1348.4m)에 갔다오기를 권하고 싶다. 그곳도 초원을 이루고 있는데 털쥐손이가 대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고, 서덜취, 복주머니란 등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산사나무, 층층나무, 백당나무 등이 꽃을 피우고 있으며, 쉽게 볼 수 없는 털댕강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20여 분이면 둘러보고 다시 고개로 내려설 수 있다.

우암산 직전 이 갈림길에서 오른쪽의 사면을 횡단해 가면 고목샘에 닿는다. 정식 이름은 없는 것 같으나 선답자가 고목샘으로 명명하고 있으니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한국청소년연맹이 세운 한강발원지라는 푯말이 서 있다. 국립지리원이 인정하는 공식적인 한강발원지는 이 샘이 있는 금대봉 골 저 아래 밑에 있는 검용소인데 검용소 위에 이 샘과 제당금샘 두 샘이 있다. 고목샘 주변에는 감자란, 범꼬리, 광대수염, 나도옥잠화, 촛대승마, 두루미꽃이 자라고 있다. 강서양천전기공사협의회가 세운 탐방기념목비(2002 .6. 1.)가 있다. 이 높은 곳에서 물이 나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졸졸졸 흐른다. 비록 샘은 작지만 가뭄 때에도 잘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아래에는 함몰된 엄청 큰 웅덩이가 있다. 참고로 제당굼샘은 금대봉의 7부 능선 쯤에 있다고 하는데. 이 샘을 진짜 한강의 발원지로 보는 의견이 있는데, 샘물이 맑고 시원하다고 한다. 정확히 위치를 몰라 내려가 보지 못하여 마냥 아쉬울 뿐이다.

고목샘을 지나 사면을 계속 진행한다. 약장수님과 임영택님이 나와 비슷하게 간다. 노거수와 산죽들이 무성하다. 이른 단풍이 곱다. 이어 우암산 북쪽 능선으로 나와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곳에는 여름철에는 식물상이 풍부하여 당귀, 천궁, 누리대, 곰취, 참나물, 5가지 맛이 난다는 나물 중의 나물인 어수리, 말발도리, 나비나물, 민백미꽃이 자라고 있고 이어 옥잠난초, 은대난초 등 온갖 야생화를 두루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분주령까지는 1시간 거리이다. 숲이 울창하고 조릿대가 많다. 흰말뚝이 있다. 주위는 평탄한 능선이 이어지고 있어 힘도 들지 않는다. '생태계 훼손 금지/경고 현수막이 서 있는데, 찢어져 있다. x1,273.3m봉을 우회하여 다시 사면을 진행한다. 낙엽송 군락이 숲을 이루고 있다.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가다가 오른다. 다시 흰말뚝이 보인다. 다시 좌측(북동)으로 휘어 완만히 오른다.

이어 무명봉에 이른다. 잡목숲이다. 밋밋하고 길쭉하다. 공터가 조금 있어 쉬기에 좋다. 좌측으로 계곡이 보이고 우측 아래로는 분주령골 계곡이 보이고 매봉산이 우뚝 보인다. 전방으로는 대덕산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북동)으로 내려간다. 가림산우회 표지기가 보인다. 분주령과 대덕산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이 곳부터는 모자가 필요 없을 정도이다. 하늘을 보기 힘든 울창한 숲인데, 길이 잘 나 있다. 흰말뚝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히 진행한다. 이어 완만히 내려간다. 이어 약간 좌측으로 휘어 내려간다. 남보라 색의 투구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이어 안부가 나온다. 반을 죽어 있는 나무가 비스듬하게 서 있는데, 생명의 끈질김을 대변하는 듯하다. 여기서 또 간단히 술잔이 오고 간다. 정상윤씨의 머루주가 맛있다. 총무의 안주 대기 모습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시커먼스님의 복분자주도 향기를 더한다. 반갑게 나누어 마시며 우의를 다지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다.

잠시 오르다가 둔덕을 넘어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른다. 우측으로 깊은 계곡이 나온다. 이어 3갈림길에 이르니 우측 길은 테이프로 막아 두었다. 직진하면 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좌측으로 내려간다. "승우여행사" 표지기가 있다. 아름드리 낙엽송 노거수가 많이 보이는데, 낙엽송 숲이 이어진다. 주변은 평탄하며, 이름모를 버섯들이 지천이다. 문대장이 버섯이 많음을 지적해 준다. 의외로 "조난자 위치추적 표지판[하장-1]이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울창한 낙엽송 숲이 계속된다. 어 그런데 늘근소님이 넘이진다. 그러나 사진기는 확실히 챙기는 모습이다. 근성이 남부럽다. 주위에선 낙법이 절묘하다가 칭송이다. 고래는 고양이낙법이라는 용어까지 구사한다. 때때로 노거수들이 있어 이채롭다. 다래 덩굴 군락지대를 지난다. 다래는 보이지 않는다. 벌써 다 떨어져 버린 것일까?

이어 사면을 다 내려와서 얕은 안부에 이른다. 이어 우측(북동)으로 완만히 오른다. 흰말뚝이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 좌측 아래로 깊은 계곡이 보인다. 이어 좌측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우측으로도 깊은 계곡이 나타난다. 이어 능선분기점에서 우측(북동)으로 완만히 내려가다가 평탄지대를 지난다. 초원지대이다. 흰말뚝이 있다. 일중산악회 표지기가 있다. 다시 내리막인데, 초원지대이고 야생화가 더러 있다. 이어 보리둥 붉은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 있다. 모두들 따서 맛을 본다. 다시 평탄지대에 나오니 묘 1기가 있다. 잔디는 없으나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이런 첩첩산중에 묘를 쓴 이는 누구일까? 아마 명당이라는 판정을 받아서 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 정도이면 참 집념이 강한 후손들이 아닌가 싶다. 이어 내리막이다.

이어 분주령에 이른다.

(3) 분주령(1.6km) ∼ 大德山

분주령은 십자로 안부이다. 해발 약 1,065m. 좌측으로는 한소리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역시 분주령골 계곡으로 이어진다. 분주령은 중간 탈출로로 활용할 수 있다. 우측(남동)으로 내려가면 이내 분주령골 임도에 이르므로 길이 좋다. 분주령에서 검용소 주차장까지는 약 50분 정도 걸린다. 어른 가슴 높이의 쑥들이 울창하게 초원을 이루고 있어 말그대로 쑥대밭이다. 그 사이사이로 주변에는 백미꽃과 벌노랑이가 자라고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런 쑥대밭이 생성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풀을 넘어뜨려 쉬고 싶어진다. 메꽃과 개미취가 꽃을 피우고 있다. 예쁘다. 흰말뚝이 있고, 분주령골로 하산하는 길에는 롯데트랙킹, 승우여행사 등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 있다.
여기 분주령에서 잠시 쉬어간다. 정상덕씨가 발렌타인 12넌산 양주를 내놓는다. 바람에 게눈 감추듯 금방 사라지고 만다. 대단한 주량들이다. 잠시 먹을 것을 나누어 먹으려 재미있게 환담하며 시간을 보낸다. 너무 빨리 산행을 하는 바람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주위 풍경이 너무 좋고, 고원지대라 상쾌하여 그런 듯하다. 시간이 남으면 추전역이다 다른 명승지를 한 번 다녀가면 좋으련만..... 문대장이 알아서 베풀어 줄 것이라 믿어본다. 오랜만에 산행에 나서서인지 무거운 사진기를 든 약장수님이 조금은 힘들어 보인다. 새로 온 분들도 무난하게 산행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다.

분주령에서 직진(북)하여 오른다. 처음에는 완만하다. 구미뫼설악클럽, 롯데트랙킹, 일중산악회 등의 표지기가 달려 있다. 소나무숲에 초원지대이다. 약간 가파르게 한 단계 오름길이다. 그러면 정말 대단한 초원지대가 나온다. 정말 여름이면 야생화가 엄청날 것 같다. 여름에 꼭 한 번 와보고 싶다. 흰말뚝이 초원에 묻혀 있다. 인진쑥들이 보인다. 큰형님이 약하려고 조금 채취하신다. 찔레나무 열매가 붉게 익어서 달려 있다. 억새들도 많다. 일중산악회! 산사랑산악회! 삼척시 경계 종주대! 표지기들이 보인다. 이어 광활한 초원지대가 끝나고 이어 조금 후 가팔라진다. 꿀풀, 구슬붕이, 초롱꽃, 장대나물이 자라고 있다. 등산로는 조금 후 오른쪽의 일본이깔나무숲으로 이어진다. 조금 후에 3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해 한참 실랑이가 벌어진다. 우측으로 오르는 길은 낙엽송들이 많이 있고, 잦나무들도 더러 보이는데, 1,260m봉 사면을 우회하여 대덕산 아래 넓은 안부 초원지대로 이어지는 완만한 길인 것이다. 힘이 빠진 분들은 이쪽으로 진행할 만하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좌측 정통 산행길로 오른다. 여기서 본인들의 자존심을 존중하기 위한 배려에서 우측 길로 살짝 진행한 분들의 명단을 여기에서 구태여 거론하지 않으련다. 하여튼 정상윤씨가 잣나무에 올라가 싱싱한 잣송이를 몇 개 수확하여 회원들에게 나누어주어 맛있게 까먹었다.

나는 여기 갈림길에서 물론 좌측(북)으로 오른다. 일중산악회와 산수산악회의 표지기가 보인다.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낙엽이 많아 미끄럽다. 이어 잡목숲으로 바뀐다. 모처럼 땀을 흘릴 수 있는 지역이다. 무척 가파른데도 오늘 처음 오신 박경하님이 선두그룹에 당당히 나선다. 대단하다. 이어 돌길이 나온다. 잘못하여 돌을 건드려 돌이 내려가니 짜야 총무가 기겁을 하며, 단번에 "왜 돌을 굴리느냐?"며 항의를 해온다. 귀염성이 배어 있다. 박경하님은 자꾸 뒤돌아보며 스트레스라도 확 풀어버리려는 듯 야호를 외쳐댄다. 본인을 크게 지른다고 하는 것 같으나, 나의 귀에는 소리가 작게 들려 그냥 노래 소리로 들릴 뿐이다.

이윽고 능선마루에 이른다. 좌측(서)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전방 아래로 절골과 고랭지 채소밭이 보일텐데, 안개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다. 주변은 평탄한 편이고, 큰 키의 신갈나무숲이 버티고 있다. 투구꽃들도 앙중맞게 다닥다닥 피어 있다. 너무 가파른 사면을 올라오느라 회원들마다 힘든 모습이 역력하다. 정상덕씨, 짜총 등 괜히 분주령에서 한 잔 하는 바람에 가파르게 올라오느라고 힘들었다면서 푸념을 늘어놓는다. 여기에서 다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측(동북동)으로 아주 완만히 오른다. 길이 뚜렷하게 나 있고, 큰 키의 거목 신갈나무숲이 울창하다. 풀들도 지천이다. 이어 좌측(북동)으로 휘어 오른다. 제비난초가 있다는데, 찾을 수가 없다.

잠시 뒤에 1,260m봉에 이른다. 신갈나무 숲이다. 밋밋하고 평탄하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좌측으로 한소리의 계곡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분주령골 계곡과 대덕산이 가까이 보인다. 후방으로는 금대봉과 함백산이 보인다. 좌측(북서)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는데, 그 능선상에는 길도 나 있다. 이 1,260m봉에서 우측(동남동)으로 내려간다. 롯데트랙킹, 제천 김영복, 구미뫼설악클럽 표지기가 있다. 가파르다. 이어 잠시 평탄지대가 나온다. 대단한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소나무들이 몇 그루 이채롭게 서 있다. 이어 완만히 내려간다. 초원지대가 대단하다. 소나무 및 신갈나무숲이다. 이어 좌측으로 휘어 내려간다. 야생화 꽃이 지고 난 꽃대들이 서 있어 씁쓸하다. 여름이었으면 얼마나 화려했을까 상상이 간다. 대신 억새들이 부드러운 꽃대를 바람에 맡긴 채 흔들리고 있어 환상적이다. 숲을 빠져나오니 엄청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이어 아까 능선마루 오르기전 우측 사면으로 오르던 길과 만난다.

조금 후에 안부에 이른다. 여기 주변도 온통 쑥대밭이다. 가슴 높이까지 훌쩍 자라 있다. 매우 넓은 편이어서 분주령보다 훨씬 더 넓었다. 여름에 오면 온통 야생화가 만발하여, 정말 환상적일 것 같다. 연인과 단둘이서 여름철에 오면 정말 멋질 것이다. 그 쑥대밭 사이로 나도양지꽃, 개미취꽃이 피어 있다. 우측 멀리 금대봉이 정말 늠름하게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대덕산은 아주 가까이 있다. 임향순씨가 잣알을 몇 개 건네 준다. 너무 딱딱하여 어금니로 깨물어 알을 꺼내 먹어보니 향긋한 게 맛이 일품이다. 여기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어떤 분인지 재미있는 농담을 하여 주위를 한바탕 웃긴다. 이곳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숲을 지나가게 되는데 숲속 나무 밑에는 태백기린초, 터리풀, 쥐오줌풀, 꿩의다리, 요강나물, 눈개승마가 자라고 있다. 늦어도 15분이면 숲을 빠져 나와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 안부에서 같은 방향으로 오른다. 잠시 초원을 진행하다가 울창한 숲으로 진행한다. 조금 가파르게 오르게 된다. 산사랑산악회! 삼척시경계 종주! 표지기가 보인다. 옅은 단풍이 이채로우나 색깔은 예년처럼 곱지는 않은 것 같다. 하기야 그렇게 비가 오고 흐린 날이 많았으니 고운 색깔을 내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합성되지 않아서일게다. 그런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문대장 친구분(이곳 태백 출신이라 함)이 낙오를 한다. "술을 먹어서..."라고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이제는 절대로 산행 빠지지 말고 힘을 기르시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해주고 싶었으나 참았다. 조금 있으니 복남씨가 또 힘들다며 나무에 기댄 채 서 있다. 변명은 "살이 찌니 힘들다"이다. 그러니 열심히 운동을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윽고 땀께나 흘린 뒤 숲을 지나고 완만한 초원지대를 조금 오르니 대덕산에 이른다.

(4) 大德山(1.3km) - 분주령 임도개시점

대덕산은 해발 1310.2m이고,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과 삼척시 하장면 한소리의 경계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산을 이루고 있다. 삼각점이 있다. " 태백 23, 1995 복구." 깃대와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삼각점 주변에는 조그만 돌들이 놓여 있다. 흰말뚝이 있다. 지적경계표도 있다. 그러나 정상표지석은 전혀 없다. 아쉽다. 여기서도 단체사진을 촬영한다. 문대장이 스틱 위에 자동카메라를 얹어놓고 조작하여 놓고 사람들이 정렬해 있는 곳으로 들어오니, 카메라가 바람에 흔들려 한바탕 웃었다. 누군가가 카레라 다리를 좀 사라고 주문한다. 정상부가 평평하여 수십 만평에 달하므로 커다란 덕(더기=고원지대의 평평한 땅)이 있다고 해서 큰 덕이라 불렀고, 한자로는 大德이라 표시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풀이한다. 정상부에는 폭 200m ∼300m, 길이 1km 쯤 되는 널따란 초원을 이루고 있다. 천연 초지를 이루고 있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데, 마치 골프장을 연상케 한다. 봄에는 초원에서 마구 뒹굴거나 뛰어다니며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풀이 어느 정도 높게 자라 있어 그러하지 못한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는 좋다. 해발 1300m의 고지대로써 사방이 확 트여 있어 전망 또한 뛰어나다. 좌측으로는 피골 계곡이 깊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창죽동 계곡과 그 건너로 금대봉 - x1,255.5m봉 - △1,233.1m봉 -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가 보인다. 우측(남)으로 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산정상에 고려 유신이 세운 사직단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인하지 못하여 아쉬울 뿐이다. 산중에 비학상천평의 명당이 있다고 하니 나중에 한 번 찾아나설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matroos님 등에게 설명해 주었더니 재미있어 한다. 초원인 정상에는 왜우산풀, 쥐오줌풀, 수영, 광대수염, 태백기린초가 자라고 있고, 가장자리에는 백당나무가 보인다.

대덕산에서 1220m봉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수목이 거의 없는 초원이 펼쳐지고 있다. 이 초원지대에는 범꼬리, 말나리, 각시취, 곤드래, 노랑미나리아재비, 보라색 쥐오줌풀 등이 있다. 대덕산 정상에서 우측(남동)으로 아주 완만히 내려간다. 흰돌이 나오고,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나 붉은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5각형의 보라색 꽃이 앙증스럽게 피어 있다. 좌측 아래로 분주령골 계곡의 검룡소주차장 부근의 밭, 도로와 매봉산이 보인다. 이어 3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길은 남동으로 분기하는 극소능선이 이어진다. 좌측 아래로 민가 같은 것도 보인다. 여기 3갈림길에서 우측(남서)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너무 좋다. 그러나 색이 바래지거나 말라 버리거나 말라가는 중에 있는 야생초들이 많아서 좀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방으로는 금대봉이 우뚝하다. 초원지대에는 어린 낙엽송들이 식재되어 있다. 흰색의 오엽 야생화(늘근소님은 물매화라고 함)가 예쁘다.

이내 안부에 이른다. 우측(남동)은 분주령골로 하산하는 길이다. 부드러운 풀이 원형으로 자라고 있다. 누워서 푸른 하늘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어진다. 좌측으로 아주 완만히 오른다. 온통 쑥대밭인 초원지대가 이어진다. 도치님이 수리취꽃(이미 꽃이 지고 씨를 맺고 있었음)을 가르쳐 준다. 조금 더 오르다가 좌측 낙엽송 숲 속 평탄한 곳에 터를 잡는다.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다. 겨우 09 : 30이다. 너무 이른데 또 먹는다니 거부 반응이 온다. 그러나 대세에 따르는 수밖에.... 이내 무척 푸짐한 상차림이 이루어진다. 가히 산상의 파티가 벌어진다. 나는 큰형님이 불러서 큰 형님과 matroos님 팀으로 합류한다. 항상 많이 싸오시는 큰형님과 matroos님.... 김재중님의 손수 담은 오가피주 맛이 독하다. 족발, 초밥, 부루크리, 배추, 생태찜, 대하, 떡, 임향순씨의 2년 묵은 잣술, 과일 등...큰형님의 백년주 임영택씨의 오가피주 등등.... 다른 2개의 팀이 더 있었는데, 그 쪽 사정은 잘 모른다. 그러나 모두들 맛있고 재미있게 식사를 하고 술을 나누고, 음식을 서로 권한다. 서로의 모습이 너무 진실되어 보여 너무 보기 좋다. 누군가 채취한 더덕도 나누어준다. 향긋하다. 입안에 오랫동안 여운이 감돈다.

식사 도중 잠깐 해가 비친다. 숲에 있으니 축축하고 추워서 양지에 나와서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어 다시 모두 배낭을 챙기고 쑥대밭으로 다시 나와서 북서 방향으로 오른다. 쑥대밭의 초원지대가 끝나고 숲길로 오른다. 이내 1,220m봉에 이른다. 주변은 밋밋하고 평탄한데, 신갈나무숲이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우측(서)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여기서 우측(남서)으로 조금 내려간다. 롯데트랙킹 표지기가 있다. 이어 한참 후에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북동 방향이다. 숲이 울창하다. 낙엽송이 제각각 날씬한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날씨가 다시 흐려진다. 날이 좋았으면 더 멋진 산행이 될텐데 아쉬웠으나 비가 안 오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이어 남남동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여기도 낙엽송들의 각선미 경연장이다. 다래 덩굴이 낮게 많이 자라고 있다. 이어 수해로 돌이 드러나 있는 개울이 나온다. 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물이 조금 나오더니 이내 땅밑으로 숨어 버린다.

(5) 분주령 임도개시점(1.4km) - [검용소 왕복 1.2km] - 蒼竹洞 검용소 주차장

이내 우측(북서)에서 내려오는 큰 냇물과 만나는 지점에 이른다. 이른바 분주령골 상부가 된다. 우측으로 오르면 분주령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좌측(남)으로 내려간다. 산사랑산악회와 송파산사랑산악회, 가림산우회의 표지기가 보인다. 우측 개울에는 물이 많이 흐른다. 물소리가 경쾌하다. 이어 임도가 나온다. 군데군데 홍수로 패인 곳이 있지만, 대체로 길이 아주 좋다. 둘국화와 돼지감자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이어 우측으로 검용소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합수되는 지점이 보인다. 이어 조금 후에 철문이 있는 나온다. 다행히 열려 있다. 그 옆에 자연생태계 훼손금지/경고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어 묘 1기가 나온다. 잔디가 좋고, 잘 관리되어 있으며,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이어 수해로 임도 대량 유실된 지역을 지난다. 이내 자연생태계 훼손금지/경고 현수막이 나오고 이어 삼거리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검룡소 가는 길이 나타난다. '검룡소 600m'라는 이정목이 걸려 있다. 이 길에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대로를 타고 자동차로 들어온 사람들이 더러 눈에 보이는데 웬 배추를 서너 포기씩 들고 내려온다.

여기서 잠시 검용소에 다녀 오기로 한다. 바로 내려가는 측도 있으나, 옛날부터 검용소를 답사하고픈 숙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여태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비로소 해결할 있어 마음까지 다 푸근해진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역시 넓은 길이다. 이내 내를 건넌다. 이어 우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우측 아래 계곡에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검룡소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주위 숲은 울창한 편이다. 다래나무도 큰 것이 보이는데, 다래가 땅에 떨어진 것이 보인다. 우측 아래로 넓은 메밀밭과 배추밭이 연이어 나타난다. 이어 잠시 내려간다. 우측에 배추밭이 이어진다. 이어 공터가 있는데, 생태계 보전지역 안내문이 서 있다. 조금 더 진행한다. 우측 개울에는 암반 위를 청류가 흘러가고 있다. 이어 儉龍沼(검룡소) 안내문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 이곳은 한강 514.4km의 발원지로(국립지리원 공인) 하루 2,000 여톤 가량의 지하수가 석회 암반을 뚫고 올라와 깊이 1∼1.5m, 넓이 1∼2m 파인 암반 20여m를 지나며 이루어 내는 광경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수온은 4계절 9。C 정도로 일정하며, 암반 주변 푸른 물이끼는 신비함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 沼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지금의 폭포이며, 인근에서 풀을 뜯다가 물먹으러 오는 소를 잡아먹기도 해 동네 사람들이 메워버렸다고 전해진다. 1986년 태백문화원에서 메워진 연못을 준설하여 원형을 복원하였고, 1989년 태백시에서 육각정을 세우고 주위를 정비하였다"고 되어 있다.

검용소 안내문 옆에 있는 석비에는 " 태백의 광명 정기 예솟아 민족의 젖줄 한강을 발원하다"라고 거창하게 적어 놓았다. 그 위에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앞에 육각정이 멋있게 서 있다. 육각정인 儉龍亭을 지나 좌측으로 오른다. 향냄새가 나서 신비감이 든다. 암반이 갈라져 있고, 우측에는 이무기가 몸부림친 흔적이라는 용틀임폭포 내지 와폭이 보인다. 신기해 하면서 조금 오르니 "儉龍水"라고 글씨가 암각된 바위가 나오고 이어 검룡소이다. 울창한 숲에 들어앉은 바위 한가운데에 둘레 20여m, 지름 5m 정도의 둥근 웅덩이가 파여 있고, 암반 사이 구멍에서 지하수가 솟아올라 잔잔한 푸른 샘을 형성하고, 철철 넘치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물이 솟아나는 구멍 뒤에는 뱀의 머리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 신비감이 더한다. 좌측 바위 밑에는 누군가 양초 2개와 향에 불을 붙여 놓았다. 검룡소 우측에는 현수막이 3개나 붙어 있다. " 생태계보전을 위해 붉은 귀거북(청거북)을 방생하지 맙시다. 태백시.", " 우리의 생명수 발원지를 보호하자. 한국수자원공사 충주관리단.", " 물, 자연 그리고 사람,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그것이다. 샘에서 흘러넘치는 물이 영겁의 세월 속에서 바위를 깎아 흐르며 용틀임폭포를 만들었는데, 그 깍인 모습이 보기 좋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 물가에 있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주위에는 쉴 수 있는 바위가 많다. 그러나 오래 있다가는 감기라도 들 것 같은 한기가 느껴져 금방 햇볕으로 나올 정도이다. 한여름에는 이만한 피서지가 없을 것 같다.

검룡소는 삼수동(구창죽동) 금대봉골에 위치한다. 금대봉 기슭의 제당궁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나와 514.4㎞의 한강 발원지가 된다고 하니 어찌 신비스럽지 않으랴? 1987년 국립지리원에서 도상 실측 결과 최장 한강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니 그냥 믿기로 한다. 오랜 세월동안 흐른 물줄기 때문에 깊이 1-1.5m, 넓이 1-2m의 암반이 폭 파여서 그리로 물이 흐르는데 흡사 용이 용트림을 하는 것 같다. 옛날 서해 바다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고자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가장 먼 쪽의 상류 연못을 찾아 헤매 이곳에 이르러 가장 먼 상류의 연못임을 확인하고 이 연못에 들어가 용이 되려고 수업을 하였는데 연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 친 자국이라 한다. 이 물은 정선의 골지천, 조양강, 영월의 동강, 단양, 충주, 여주로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서 합류되어 임진강과 합류한 뒤 서해로 들어간다. 이곳에선 매년 태백문화원 주최로 한강대제가 열린다고 한다. 도치님이 검용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고맙다. 잊어버리지 않고 꼭 사진을 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검룡소를 뒤로 하고 내려간다. 가는 길에 배추밭에서 수확하고 남은 끝물 중 쓸만한 것을 골라 채취한다. 점심 때 삽겹살에 싸 먹으려고 그런 것 같다. 이어 다시 3거리로 되돌아와서 좌측 길로 내려간다. 길이 아주 좋다. 생태계보전지역 안내문과 안내도, 흰말뚝이 나온다. 이어 출입금지 바리케이드를 지나니 산행의 종점인 검룡소 주차장이다. 입구에는 검룡소안내문, 검룡소에서 시작된 물이 굽이쳐 흐르며 결국 한강으로 연결되는 것을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 "여기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입니다", 생태계 보전지역 안내문, "검룡소 1.3km"라고 적힌 이정목이 있다. 검용소 안내문에는 " ● 이곳 검룡소는 1천 3백여리(514.4km) 한강의 발원지입니다. ● 검룡소에서 솟아오른 물은 임계를 지나 정선, 평창, 단양, 충주, 양평, 서울, 강화만에 이르기까지 12개의 하천과 북한강 등 3개의 강, 38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 황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 고대시대부터 한반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검용소의 물은, 한강유역의 백제문화를 꽃피웠으며, 조선 5백년의 번영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민족의 젖줄입니다. ● 산자수려한 우리 태백시는, 가야, 신라의 문화를 꽃피운 낚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과 오십천의 발원지가 소재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3대강 발원의 도시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좌측에는 쉼터와 주차장이 좁게 자리잡고 있고, 우측으로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쉼터와 넓은 잔디가 조성되어 있다. 그 잔디밭 끝에 큰 돌이 서 있는데,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라고 암각되어 있다.

이어 조금 더 진행하니 우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측 냇가에는 토사유실 시멘트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어 광활한 지역에 주차장과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포크레인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주변의 좋은 산록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어 안타깝다. 우측 냇가에 물이 스며들어 자갈만 있는 지역에 먼저 내려온 분들이 삼겹살과 오뎅 국물을 끓이고 벌써 한 잔 하고 있다. 거기에 합류하여 매화수, 소주, 양주, 중국술, 담은 술, 약술 기타 많은 종류의 술을 감당하고 섭렵하느라 힘이 들었다. 오뎅 국물은 어찌나 시원하던지.... 후미 그룹으로 내려오신 matroos님에게 내가 검용소가 약 1.3km에 불과하니, 들르지 않으셨으면 다녀 오실 것을 강권하였다. matroos님도 다른 분들이 가지 않으니 가시지 않았다고 하면서 혼자 다니러 올라가신다. 나중에는 흥에 겨운 약장수님이 즉석 자작시를 암송하려는데, 마침 내려가던 아줌마들이 "먹을 것 있느냐"며 말을 거는 바람에 흥이 깨지는 불상사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시커먼스님이 나무 지팡이를 아주 잘 만들자 이를 탐내는 사람이 많아 결국 3개나 만들게 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검룡소를 보려는 사람들이 심심챦게 차를 타고 올라오고 있다. 대형버스도 올라오고 있다.

검용소에 혼자 답사하러 가신 matroos님이 돌아오신 후 열심히 드신다. 우측에 민가가 하나 있는데, 사람이 거주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주위에 넗은 고랭지채소밭이 있는데, 이미 수확하고 남은 배추가 더러 있었다. 이미 배불리 드신 분들 중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 수확하여 삽겹살과 함께 먹게 제공하기도 하고, 기념으로 지참하여 가져 가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나 태백시의 가 볼만한 곳을 하나도 가지 못하여 아쉬웠다. 이어 모두들 먹을 만큼 먹고, 취할 만큼 술을 마시고 나서야 13 : 40 경 자리를 정돈한다. 이어 13 : 41 경 버스가 출발한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느리게 진행한다.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아직 복구중이라 안타깝다. 민가들도 나오고, 배추밭도 넓다. 누런 황소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보기 힘든 "조"들이 머리를 숙인 채 여물어가고 있다. 노란 들국화도 가을을 암시해 주고 있다.



교통 :



갈 때는 영동고속도로에 이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신림IC로 빠져 영월을 거쳐 태백으로 진입한다. 수도권에서는 약 4시간 이상 소요. 길 옆의 풍광이 빼어나다. 제천IC에서 빠져 제천시내를 관통해 영월로 향하는 방법도 있다. 고속시외버스가 서울에서 하루 20여 차례 왕복운행한다. 열차는 모두 6차례 서울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태백역(033-553-7788)에 정차한다. 태백시내에서 싸리재로 오르다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 길로 올라야 한다. 왜냐하면 직진은 새로 난 두문동재 터널로 이어지는 길이고, 왼쪽은 싸리재 옛길, 함백산 등산로로 가는 길이다. 포장을 새로 한 이 길에는 과속 방지턱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도색이 안된 과속방지턱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면 무조건 차바닥이 긁힌다.
태백에서 산행들머리인 싸리재를 넘어 고한이나 사북까지 다니는 완행버스는 06:50부터 20:30까지 하루 15회 있다. 20분 정도 소요.

올 때는 하산지점인 안창죽마을까지 다니는 시내버스는 하루 2회밖에 없으므로 35번 국도까지 30분정도 걸어나와서 국도의 창죽정류소에서 태백과 하장을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 태백까지 30분 소요.


숙박시설 :


태백산 입구인 소도동의 스카이호텔(552-9977)이나 태백산 당골광장 인근에 태백시에서 운영하는 태백산민박촌(033-553-7460)을 이용한다. 민박촌의 경우, 식당 대부분이 민박을 치고. 여름 휴가철에는 야영장도 운영하는데, 9평형(2인용)을 기준으로 비수기 2만5,000원, 성수기 3만5,000원이고, 기설치된 조리대와 가스렌지외의 취사도구는 개인이 챙겨야 한다. 황지동 인근의 호텔 메르디앙(553-1266), 연화여관(552-3334), 대현장(552-4230) 등이 있다.



먹거리 :


먹거리 천국인 태백에는 특히 인기가 높은 태백 한우 외에도, 돼지고기, 향토음식으로 태백 순두부, 토종닭, 감자 수제비를 음미하면 좋다. 태백한우는 해발 65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청정한 공기와 물을 먹고 자라고, 전기도축이 아닌 재래식 도축 방식을 쓰므로 육질이 연하고 감칠 맛이 나는데, 특히 생등심을 권하고 싶다. 태백역 앞의 경성실비식당(033-553-9357), 황지 부근의 한우마을(552-5349) 등이 유명하다. 고추장 돼지고기 삼겹살은 호텔 메르디앙 뒤의 고원지대갈비마당(553-6114)가 유명한데, 고기 뒤에 찬 소면으로 마무리하면 개운하다. 특산품으로 산나물, 주목공예폼, 미리내 돌, 인진쑥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 * 주변의 가 볼만한 곳 ***



o 용연동굴:

금대봉 동쪽 기슭 하부능선 해발 920m 지점에 위치한 자연석회암 동굴이다. '80. 2.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39호로 지정. 일반에 개방된 동굴로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또 산에 올라야 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 아래 매표소부터 동굴입구까지 1.1km에 걸쳐 용연열차라는 미니 열차가 다니므로 이를 이용하면 낭만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 동굴의 길이는 모두 834m. 돌아보는데 약 1시간이 걸린다. 다양한 종류의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 진주, 동굴산호, 석화, 커어튼 등의 동굴 생성물들이 즐비하여 구경거리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동굴 중앙내부에 폭 50m, 길이 130m의 대형광장과 리듬분수는 자연 생성물들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동굴내 서식하는 생물은 관박쥐, 장님 새우등 12종으로 밝혀져 그 신비감을 더해 준다. 이밖에도 용연동굴▶금대봉▶한강 발원지 검룡소를 잇는 3.1km의 백두대간 자연생태 등산로 등이 갖추어져 있다.



o 태백산 단군성전 :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신성시되고 있다. 그 태백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단군성전은 단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단군제를 봉행한다.


o 황지천의 求門沼 :
태백시내에서 철암으로 가다보면 황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큰 석문(뚫린 굴)을 만들고 길 왼편에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구문소라 한다. 구문소를 지나는 길이 신비롭기만 하다. 구문이라는 말은 `구멍'의 방언이다. 구문소는 구무소의 한자 표기로 구무는 구멍·굴의 고어이다. 또다른 말로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라고도 한다. 주위가 모두 석회암반으로 되었으며 높이 20~30여m, 넓이 30m정도로 동양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는 환선굴 입구보다 몇 배나 크다. 이 특이한 渡江山脈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5천만년에서 3억년전 사이에 형성되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형을 찾기 힘든 기이한 곳이다. 낙락장송, 기암절벽이 어울러져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고,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 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바위, 용천 등으로 불리우는 구문팔경이 유명하며 특히 구문소일대의 천변 4km구간은 우리나라 하부고생대의 표준 층서를 보여주는 지질시대별 암상을 비교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이 지역 일대는 구문소 고환경 및 침식지형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곳에 구문소 자연학습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지질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도 약간의 호기심만 있다면 1시간동안 고생대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구문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3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① 화전의 커다란 싸리나무가 떠내려와 부딪쳐 뚫렸다는 설, ② 중국 하나라 우왕이 단군에게 치수를 배울 때 칼로 뚫었다는 설, ③ 황지천 백룡과 철암천 청룡이 낙동강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다가 백룡이 청룡을 기습하기 위해 뚫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구문소의 또 다른 전설로는 엄종한의 백구 백병석 전설과 효도 왕자와 월선의 전설이 있다.


o 추전역 :

태백시 화전동[삼수동] 123 소재. 해발 855m의 고지에 자리하여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역이다. 싸리밭골 언덕에 위치한 역이기에 추전역이라 한다. 월 평균 10만톤의 무연탄을 전국 각지로 수송한다. 연평균 기온이 국내 역 가운데 최저를 기록하고 적설량도 가장 많은 역이라서 이미 9월에서 5월초까지 난로를 피운다. 1973. 10. 16. 태백선 철도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했으며, 역사 서북방 500m 지점에 전국에서 두 번째로 긴 정암굴(길이 4,505m)이 있다. 해마다 10~2월까지 이곳은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환상선 단풍열차와 눈꽃열차가 운행되어 많은 철도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o 황지연못 :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로 태백시내 중심부에 위치한다. 이 못에서 솟아나는 물은 드넓은 영남평야를 도도히 흘러가게 된다. 연못의 둘레가 100m인 상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1일 5,000 톤의 물이 용출하고 있다.
황부자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에 따라 黃池라고 부르는데, 훨씬 이전에는 하늘 못이란 뜻으로 天潢(황)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황부자 전설은 이곳에 시주를 요하는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 주었는데 이것을 며느리가 보고 놀라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쌀을 한 바가지 시주하니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 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다 봐서는 안된다"라는 노승의 말을 듣고 뒤따라 가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렀을 때 자기 집 쪽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노승의 당부를 잊고 돌아다 보았다. 이 때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꺼져 내려가 큰 연못이 되어 버렸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 며느리는 돌이 되어 있는데 흡사 아이를 등에 업은 듯이 보인다. 집터는 3개의 연못으로 변했는데 큰 연못이 집터, 중지가 방앗간 터, 하지가 화장실 터라 한다.


o 삼수령 :

태백시 적각동 135번지 해발 920m에 위치. 태백시내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삼척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재인데, 이곳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 된다. 이곳의 빗방울이 한강을 따라 황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도록 하는 분수령이라 하여 三水嶺으로 불리운다. 정상에는 조형물과 정자각이 있다. 일명 '피재'라고도 하는데 삼척 지방 사람들이 황지지역을 "이상향"이라 하여, 난리를 피해 이곳으로 넘어 왔기에 피해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o 정암사 :

대한 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月精寺의 말사이다. 자장(慈藏)이 636년(선덕여왕 5)에 唐나라에 들어가 文殊道場인 산시성[山西省] 운제사(雲際寺)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親見하고, 석가의 神寶를 얻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이를 나누어 모셨는데, 그 중 한 곳이 이 절이었다고 한다. 신보는 석가의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 ·염주 등인데, 지금도 사찰 뒤편 天衣峰 중턱에 남아 있는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봉안되어 있다고 하여, 법당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절은 1713년(숙종 39) 중수했는데 낙뢰로 부서져 6년 뒤 중건하였고, 최근에 새로 두세 차례 중건하였다. 이 사찰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정암사열목어서식지(淨巖寺熱目魚捿息地)도 있다. 정암사는 무척이나 고즈넉하고 산사의 적막함과 아름다움을 전부 지니고 있다. 크지 않은 규모와 번잡하지 않은 주변 경관이 더욱 가을 산사의 평온함을 돋보이게 한다.
정암사에는 유명한 것이 셋 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석영의 일종인 수마노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수마노탑(보물410호), 천연기념물로 보존되고 있는 열목어이다. 수마노탑은 높이 9m, 지대석 너비 3.04m, 상륜 높이 1.7m. 적멸궁(寂滅宮) 뒤쪽에 있는 회녹색 석회석으로 길이 6.5∼5.8cm, 두께 5∼7cm의 크고 작은 모전석으로 쌓은 탑이다. 지대석은 모를 죽인 화강석으로 6단을 쌓았고, 모전석으로 탑신을 받치기 위한 1단의 받침을 형성한 위에 너비 1.78m, 높이 1.03m의 사각형 초층 옥신을 모전석으로 15단을 쌓아 만들었다. 옥신 남면 중앙에는 화강석으로 외부 너비 65cm, 높이 70.5cm, 내부 너비 41cm, 높이 59cm의 방광(方)을 짜고 문비(門扉)는 1장의 판석을 세워 두 짝 문을 나타내었다. 상륜부는 화강석제의 노반(露盤)과 청동제의 상륜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맨 꼭대기 보륜(寶輪) 위에는 병형(甁形)이 얹히고 끝에 풍령(風鈴)이 달렸다. 거작은 아니지만 균형 있고 수법이 정미(精美)하다.
가을의 정암사는 붉은 단풍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이곳 단풍은 곳곳에 파헤쳐져 검게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는 탄광들로 인해 더욱 붉게 느껴진다. 함백산의 단풍은 정암사 주변의 은대봉이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정암사에서 수마노탑까지만 올라도 함백산 단풍의 5할은 보고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