財峙山 산행기





구간 : 한탄 6교 ~ 정상 ~ 용수골 기화교

일시 : 2003. 10. 12. 日/ 흐림, 가랑비.

행정구역 : 江原道 平昌郡 美灘面.

출발 예정 시간/장소 : 2003. 10. 12. 07시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제일은행 앞.

산행거리 : 총 4km

산행시간 : 총 4시간 30분(11 : 00 ~ 15 : 30).

산행구간 : 한탄 6교 앞(1.6km) - 정상(1.4km) - x666봉(1km) ~ 기화개울/기화교.
* 상세한 구분 : 한탄 6교 앞 - 고추밭 - 무덤 - 발통바위 - 급사면 - 직벽 바위 - 취나물 군락 - 정상 - 무덤 - 안부 - 666봉 - 삿갓봉 - 기화개울/기화교


지형도 :

- 1/2만 5천 美灘[1992. 2. 인쇄], 平昌[1996. 3. 인쇄]
- 1/5만 旌善, 平昌.

회비 : 금 20,000원. 참가 인원 총 41명.



산행후기 :


오늘은 서울산사람들과 함께 강원도 평창군 미천면 소재 재치산을 다녀 왔다. 이제 탐진기맥이 하루 분만 남은 상태에서 이를 미루고 서울산사람들에 합류하기로 한다. 비록 재치산은 장쾌한 산이라는 느낌을 들지 못하지만, 오금이 저리는 암릉과 직벽들,,, 가파른 경사지역, 맑고 깨끗하고 계류낚시가 가능한 용천수 계곡이 이어져 있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너무 조용하고 시원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아주 좋을 듯한데, 연인과 함께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감히 탐진기맥을 미루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배낭을 챙겨 종로1가에 가는 버스를 탔다. 도중에 마포에서 큰형님이 타시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맨 앞자리에 타신다. 굳이 번거로워 하실까봐 가만히 있다가 내릴 때 인사를 한다. 오늘도 여전히 진심으로 베풀고 싶어 음식 보따리가 대단히 무겁다. 대신 들어서 종각역 2번 출구로 오니 고려관광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미 나온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오른다. 며칠째 강행군을 하다보니 몸이 많이 지쳐 있어 잠을 청하는데, 잘오지 않는다. 버스 안은 오랜만에 만난 분들끼리 나누는 대화로 시끌벅적한다. 정상덕님 부부, 도치님 부부, 이영주 사장님 부부, 포천 사장님 부부, matroos님, 연실낭자 군단, 양인호씨, 동순갑씨, 문대장, 정상윤, 임영택, 고래, 오승렬님, 복남, 큰형님, 박경하씨. 기타 이름을 모르는 여러 분들이 나와 계시다. 그런데 김재중님, 김재국씨, 짜총, 뫼오름님 기타 많은 분들이 안 보여 아쉽다.

드디어 07 : 10 출발한다. 한참 후에 양재역에 서더니 아이비님과 늘근소님이 합류한다. 늘근소님은 어제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듯하다.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우려가 된다. 여하튼 총 41명이라는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버스 안은 꽤나 활기찬 모습이다. 문대장은 가파른 지역이 많아서 산행 행사를 걱정한다. 어제 직장에서 야유회를 갔는데도 멀리 속초 근처에서 강행군하여 야간에 올라와서 이번 산행을 지휘하는 모습이 듬직하였다. 버스는 8시 50분 경 문막휴게소에 들른다. 그러나 차량이 너무 많아서 걸리적거린다. 사람도 많아서 인산인해다. 단풍철임을 실감나게 한다. 바로 출발해서 새말휴게소로 간다. 여기서 아침을 먹을 시간이 있어 이를 해결한다. 감자떡과 우동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커피자판기가 있으나 몽땅 고장이 나 있다. 조속히 교체하여 줄 것을 제언한다. 이어 10시 58분 경 한탄 6교에 도착하였다.

서울을 출발해서 평창 경내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서 푸르고 청명한 하늘의 색깔이 환상적이었으며, 구름도 높이 떠 있었다. 산행 내내 길은 좋은 편이었다. 썩 좋지는 않지만 말이다. 바위가 많아 조심하여야 하는 부분도 많고, 나뭇가지가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힘드신 분들도 많으리라. 조림지역에서의 날카로운 그루터기와 정상에서 하산길에 들어설 때 독도에 주의하여야 하는 점 등이 신경쓰인다. 그리고 이미 잎을 떨군 나무들과 세력이 약해져 동강만 남은 풀잎도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산행 내내 하산 지점을 볼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으며, 수직의 절벽과 직벽바위들과 그 주변의 가을단풍이 보기에 좋았고, 동강으로 이어지는 기화개울의 차디차고 맑은 물, 그 속에 유유히 노는 자연 송어들, 아름다운 수석. 회양목, 낙락장송과 큰 키의 참나무, 낙엽송 숲이 이색적이었다. 약초가 많은 산이라더니 도라지, 잔대, 자치 등이 보이니 약초 산행으로도 한몫 할 것 같다. 마지막 꽃을 피우며 조용히 자연에 순응하고 있는 풀꽃들도 더없이 보기 좋다. 송어회를 즐기는 분들은 이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하여 더욱 더 추억에 남을 것 같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산행 내내 내렸으나, 이를 그대로 맞으면서 진행하는 산행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가파른 오름길에서는 힘이 들었고, 더구나 큰 바위돌이 굴러 내려올 땐 혼비백산하였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파른 하산길은 미끄럽고 위험하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백룡동굴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로 손꼽히며, 이 동굴의 종유석과 석순 등의 동굴 생성물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학술적인 가치로도 또한 뛰어나다고 밝혀진 바 있다. 다양한 2차생성물이 발달해 있어 고생대 오르도비스기로부터 시작된 시간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석순과 종유석, 석화와 산호가 자라고 퇴화한 흔적들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수가 만든 연못이 고여 있고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미처 다 그려내지도 못할 기묘함으로 빛나는 지하궁전 백룡동굴, 석회암 점적수가 수십만년 흐르고 굳어 만들어진 굴에도 지하수가 되어 동강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가까이 있으니 산행 겸 들러보는 것도 아주 좋아 보인다. 그렇게 엄청나다고 하니 꼭 한번이라도 가보고 싶어진다.

용수골에서 동강가의 진탄나루까지는 얼마되지 않는데 가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심정이 몹시 안타깝다. 일찍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에 부탁해서 차를 내어서라도 가보지 못한 것이 몹시 후회된다.


(1) 한탄 6교 앞(1.6km) - 재치산 정상

드디어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에 있는 한탄 6교를 건너서 버스에서 하차한다. 다리를 되돌아 건너온다. 그런데 다리 아래로는 기화개울이 있는데, 이는 미탄면 소재지에서 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개울이다. 다리 주변의 기화개울에서는 지하로 물이 흐르는 지형이라 물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군데군데 큰 웅덩이가 있어 물이 깊이 담겨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이것이 석회암 지대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땅속으로 물이 흐르다 지상으로 솟아 흐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한탄리의 4km에 이르는 계곡도 여름철 우기가 아니면 계곡에서 물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오지마을에 개울물이 이어져 흐르지 않으니 이것 또한 더없이 삭막하게만 느껴진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위치한 이 기화개울은 하류의 진탄나루터에서 동강과 연결되는 지류로서 1급수를 자랑하는 맑고 깨끗한 물에다가,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게다가 천혜의 계류낚시여건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95년과 ’97년 대홍수로 인해 대부분의 송어 양식장이 파손되어 많은 양의 송어들이 기화개울로 유입되면서 송어 플라이 낚시터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플라이 낚시가 가능한 장소는 기화초등학교(분교) 옆에 위치한 송어양식장을 기점으로 진탄나루터까지 여러 개의 보가 형성돼 있어 갈수기에도 적정한 수량을 유지하고 있어 이들 보안에서 심심찮게 송어를 낚을 수 있다. 그러나 여름 휴가철 피서지로 많이 알려진 데다 예년에 비해 송어자원이 점점 고갈돼 가고 있어 기화개울 자체의 자연스런 멋을 점점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도로 공사중인지 아니면 수해복구공사중인지 도로가에는 마구 어지러이 널려 있어 어수선해 보인다.

한탄 6교를 건너니 민가 4채가 잘 지어져 있다. 전형적인 오지 마을이다. 건너편 산은 가파른 암반지대를 형성하고, 거기에 어쨌든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계절에 잘 순응하면서 이제 단풍을 선보이고 있다. 오랜 장마와 잦은 비로 인하여 광합성을 제대로 못했으니 본래의 고운 단풍은 아니지만, 그래도 볼 만한 정도는 되었다. 기세등등하던 풀잎들도 이제 말라버리거나 반쯤만 남은 몸뚱이를 드러내고 있어 안스럽다. 대자연의 힘에 그 누가 대항하리오마는 우리 인간도 여거서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가 앞에는 드럼통 채전이 이색적이다. 큰 드럼통에 흙을 담아 거기에 채소를 심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이채롭다. 혹시라도 난폭한 운전자가 집으로 돌진하는 저지대로서의 역할과 먼지나 돌이 튀기는 것을 예방하는 목적이 있지만. 거기다가 한 수 더 떠서 조그만 채전으로 하여 집을 장식하는 것도 도니 그 아이디어가 특출하다. 상추와 무가 유난히 싱싱해 보인다. 모두들 새로운 농사법이라도 한 마디씩 하고 지난다.

민가들 중 제일 우측 민가의 우측으로 오른다. 넓은 농로가 나온다. 주변 밭에는 콩, 고추, 배추, 팥, 상추 등이 보인다. 이미 고추대는 말라가고 있고, 팥과 콩은 금새라도 추수를 해야 할 것 같다. 상추는 이미 자랄대로 자라 삐죽한 채 씨를 잉태하고 있다. 그런데, 밭에는 나팔꽃이 지천이라서 이외였다. 나팔꽃은 절대 곡식이 아닐진대, 왜 저리 많을까 싶다. 여하튼 보라색 꽃이 고와 눈길을 끈다. 아쉽게도 묵밭도 보인다. 이어 묘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이 묘에서 좌측(서)으로 오르다가 좌측으로 휘어져 오른다. 다시 나팔꽃 군락들이 지천이다. 나팔꽃 밭인 것이다. 이어 묵밭도 나온다. 도치님과 정상덕씨 부인 오금숙씨는 슬슬 뒤로 쳐지더니 산행을 포기하고 만다. 늘근소님도 덩달아 오르지 않는다. 아마 어제 과음을 하였나 보다. 종로로 올 시간에 닿지 못하여, 양재로 와서 합류할 정도이었으니.....연실낭자 일행 3명도 산행에 불참하여 여기에 기록으로 남겨 둔다.

이윽고 밭지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선다. 초입에는 칡넝쿨 지대인데, 여름철에는 꽤나 무성했을 듯 싶다. 어! 표지기도 보인다. “새살림산악회!, 서울산사람들! 반더룽 산악회! 한차례 가파른 오름길이 된다. 이내 평창이씨 묘 2기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묘역이 넓어서 좋고, 명당 자리인 것 같다. 약장수 님이 맨 뒤에 오면서 열심히 사진기에 풍경을 열심히 담고 있다. 다시 울창한 숲길을 오르면 묘 1기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여기서 좌측(남서)으로 오른다. 이제부터 정식으로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이 시작된다. 낙엽이 많다. 숲이 울창하다. 돌도 더러 있다. 어, 그런데 갑자기 철사줄이 나타난다. 무슨 용도인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어 둔덕에 이르니, 밋밋하고 잡목들이 무성하다. 이어 내리막을 진행한다. 의외에도 회양목들이 많다. 석회암 지대라서 그런가 ... 좌우측 아래로는 도로와 기화개울, 민가들이 그림같다. 기화개울의 물소리도 청아하게 들려온다. 통로에는 돌이 많이 있다. 이어 완만하게 오르막으로 된다. 우측 아래 기화개울에는 웬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있고, 부지런히 기화개울을 두리번 거리며 다닌다. 아마도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인가 보다 했는데, 수석 채취를 하는 사람들 같다. 혼자 즐기려고 혹은 돈을 벌기 위하여 아름다운 수석을 가져가 버리는 사람들이 얄미울 뿐이다. 역시 통로에는 돌이 많은 편이다.

이어 가팔라진다. 돌이 제법 많고 회양목이 지천이다. 완만지대에 이르니 좌측으로 도로와 용수골의 여러 송어양식장과 민가들과 기화개울이 보인다. 민가들이 제법 수가 많다. 나중에 하산할 지점인데, 우리는 이렇게 하산지점을 내려다보면서 산행하는 셈이 된다. 잠시 풍경을 즐기며 진행하노라니 이내 완만지대 끝지점에 이른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수십미터나 될 법한 수직의 바위가 시위하듯 우뚝 막아선다. 바위의 한켠 조그만 틈에는 벌통 하나가 얹혀져 있어 색다른 풍경이다. “2”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그래서 이 바위군을 “벌통바위”라고 하나 보다. 억지로 직진하여 오르려면 오를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측으로 우회한다. 사면으로 난 길로 잠시 내려가는데, 우측 아래 사면의 급경사다. 실족하는 날에는 기분좋게도 한참 엉덩썰매를 탈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나무와 충동하여 적쟎이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 와중에서도 정상윤 리더가 더덕 한 뿌리를 캔다. 홍더덕이라고 하면서 좋아한다. 토양에 따라 표피 색깔이 변한 것일 뿐이지 종류가 다른 것은 아닐진대, 굳이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자신의 성취를 과시하는 모습이 아직은 귀여워 보인다. 여하튼 그 더덕은 이따가 어느 소주병이 될 지는 모르나, 소주병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독특한 향취를 풍기며 술꾼들의 미각을 돋우게 되리라. 나도 살며시 더덕이 든 소주를 생각하니 입맛이 다셔지는 것으로 보아서 술꾼 언저리에는 드는 것인가!

이어 좌측(남서)으로 휘어 오른다. 마의 급경사 지역이다. 실족 위험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배낭 무게로 인하여 뒤로 덜렁 나자빠질 우려가 크다. 낙엽이 많고 숲은 울창하다. 비라도 오면 무척 미끄러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문대장이 사전답사올 때 비가 와서 억수로 고생했다고 하면서, 사실 이 산행 행사를 할 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척 고민을 했다고 토로한다. 좌측엔 벌통바위에 이어지는 암벽이 병풍처럼 막아서고 있다. 어, 그런데, 문대장 앞에서 뭔가가 기어가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라 자세히 보니 아이비님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네 발로 땅에 바짝 붙어 열심히 오르고 있다. 얼굴에는 온통 두려운 기색이 역력하다. 마치 아래쪽에서 보이지 않는 귀신이 마구 잡아당기는 것처럼.... 후회스런 표정도 스며 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올라오지 말 것을 .... 하면서. 아, 평소에 운동을 하고 체력관리를 좀 해 둘 걸.... 하고. 그러나 든든하고 믿는 사람이 있어 안도의 표정도 곁들여 있다. 바로 뒤에 듬직한 문대장이 따라가며 격려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산이 몹시 가팔라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이니 아마 올라가기가 힘이 들었을 터이리라. 이해를 해 주기로 한다.

이어 벌통바위의 위에 해당하는 능선에 오른다. 바위들이 많다. 여기서 우측(남서)으로 오른다. 울창한 참나무숲이다. 이어 바위지대를 오른다. ‘국제산악회’의 표지기가 보인다.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다녀간 듯하다. 아마추어 시절 참여했던 산악회라 표지기를 보니 반갑다. 그때 산우들은 다 잘 계시는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여기도 회양목이 지천이다. 이어 능선에 나서니 비가 온다. 가랑비이지만 반갑지는 않다. 우측 아래로 마을, 기화개울, 민가들, 높은 산들이 파노라마같이 펼쳐지고 있다. 이어 좌측(남서)으로 오른다. 달공 등 많은 분들이 더덕을 찾고 있다. 비록 곱지 않은 단풍이지만 이걸로 만족할 만한 단풍을 감상한다. 이어 가파른 바위지대가 나온다. 도라지 및 자치, 잔대 등이 보인다. 사람이 가기 힘든 곳이 라서 약초가 많은 것 같다. 누군가가 귀한 약초들만 골라서 일부러 심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약초들이 많다고 한다. 잔대, 도라지, 삽주, 연삼, 더덕, 자치, 위령선, 승마, 산작약…등 손에 잡히는 풀이 모두 약초가 아닌 것이 없다고 했던가! 그 중에서 자치, 잔대, 도라지 밖에 보지 못하였으니 나는 아직 약초꾼은 아닌 것인 모양이다. 무엇보다 자치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한다. 지치는 옛날부터 산삼을 능가하는 효력이 있는 환골탈태하는 선약으로 알려진 약초이다. 이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뫼오름님이 설명을 자세히 한 바 있다. 나의 고양산, 반론산 산행기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잔대는 뱀독, 농약중독, 중금속독, 화학약품 등 온갖 독을 푸는 데 묘한 힘이 있다. 옛 기록에도 100가지 독을 푸는 약초는 오직 잔대뿐이라 하였다.
도라지는 봄․가을에 뿌리를 채취하여 날것으로 먹거나 나물로 먹는데, 그 주용 성분은 사포닌이고, 생약의 길경(桔梗)은 뿌리의 껍질을 벗기거나 그대로 말린 것이며, 한방에서는 치열(治熱)․폐열․편도염․설사에 사용한다.

다시 바위지대가 나오길래 좌측 아래로 우회하여 우측으로 오른다. 한참 후에 좌측으로 우회하여 우측으로 오른다. 이어 밋밋한 능선부분에 이른다. 주변 단풍이 볼 만하다. 바람이 불어오는데, 비를 몰고 오는 것으로 습기가 많이 머금어 있다. 이어 수직의 바위직벽에 이른다. 그대로 직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진록산맥 표지기가 있다. 우측 사면 길로 우회한다. 수직의 암벽 밑을 통과하는 셈이다. 이어 엄청 큰 노거수의 단풍나무가 있어 이채롭다. 주변에는 단풍이 제법이다. 이어 좌측으로 아주 가파르게 오른다. 낙엽이 많고, 마사토 지역인데, 직벽바위의 우측이 된다. 다래 덩굴도 많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큰 돌이 굴러오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돌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가까이 내려올수록 가속도가 붙어서인지 그 소리가 커진다. 아이비님과 문대장, 내가 있는 쪽으로 굴러온다. 우리 뒤쪽에는 이제 막 직벽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약장수님이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앞사람들에게 빨리 피하라고 고함친다. 바위가 커서 그대로 몸으로 받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아이비님이 무섭다고 눈이라도 감아버리고 가만히 있을까봐 걱정이었다. 혼비백산한 나머지, 긴장의 찰나가 마치 영겁처럼 느껴진다. 숨조차 쉴 수 없다. 다행히 우측으로 살짝 비켜준다. 나도 우측으로 비켰다. 내가 있던 자리를 지나 내려갈 때 아래 쪽의 약장수님께 빨리 피하라고 고함쳤다. 약장수님도 약삭빠르게 옆으로 피해 화를 면했다. 바위가 굴러가며 찍어버린 나무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보니, 십년감수를 하였다고 웃으며 서로 말은 나누었지만,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른다. 누가 돌을 구르게 원인제공을 했는지 따져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여하튼 사고가 나면, 돌을 구른 사람은 과실상해죄의 처벌을 면하지 못하는 것인데..... 산행에서는 무척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산처럼 소수의 산악인들이나 약초꾼들, 나물꾼들이 오르는 외에는 별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산을 산행할 때에는, 돌이나 길이 정리가 되지 않아 자칫 돌을 아래로 굴러가게 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로로 한발 한 발 옮길 때에 특별히 주의하여야 하는데, 누군가가 조금 방심한 듯하다.

마음을 추스리며 밋밋한 능선에 이른다. 직벽바위의 위쪽이 된다. 좌우측으로 단풍이 좋아서 잠시 감상을 한다. 좌측 아래로 용소골 마을이 어렴풋이 보인다. 여기서 우측(남서)으로 오른다. 이어 가팔라진다. 바위지대를 지나 암봉에 이른다. 참나무숲에 노간주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시원하다. 좌측 아래로 용수골 마을이 보이고, 우측 아래 계곡이 보인다. 주변의 단풍은 아주 곱게 물들어 있어 실컷 즐긴다. 이어 좌측으로 내려간다. 남서 방향이다. 이내 안부에 이르니 바위들이 많이 보인다. 더러는 많은 참나무숲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다. 싹쓸이가 아니라 그야말로 조금만 줍는다. 동물 먹이로 쓰이는 걸 아니까 말이다. 이어 오르막이 된다. 엄청 큰 소나무 및 참나무 숲이 울창하다. 낙엽도 많다. 정말로 큰 산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비가 내리고 있고, 가끔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토토리가 많이 보인다.

이어 밋밋한 지역에 이른다. 주변에는 참나무 숲이 너무 울창하다. 노거수 장송도 다수 눈에 보인다. 쭉쭉 뻗어 올라간 것이 마치 각선미 경연장 같다. 숲이 좋아 쉬기에 좋다. 마침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는 평탄지역이 있어 다행이다. 좌측 아래로 용수골 마을 민가들이 보인다. 잠시 담소를 나무며 쉰다. 이어 오르막이 된다. 산사랑산악회 표지기! 역시 울창한 신갈나무 숲인데, 노거수들도 더러 보인다. 이어 좌측으로 오른다. 낙엽이 많고, 큰 나무 숲 아래에는 철쭉 군락이 지천이다. 이 주변이 아마도 봄에 취나무가 지천으로 많은 지역인 모양이다. 다시 우측으로 잠시 오른다. 평탄지역에 이른다. 신갈나무 숲이다. ‘인천연안산악회’ 표지기! 이어 좌측(남서)으로 오른다. 낙엽이 많은데, 신갈나무 숲이 좋다. 산사랑산악회 표지기가 보인다. 우측(북)으로 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한참 후에 좌측으로 휘어져 완만히 오른다. 참나무 및 소나무, 신갈나무 숲이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잦아진다. 그 작은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숲의 정적은 깊다. 바람소리도 듣기에 좋다. 불청객을 경계하는 듯한 까마귀들이 선회하여 짖어댄다.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소리도 듣기 좋다. 낙엽이 밟히는 소리도 듣기 좋다. 시간이 있다면 여기에 머물고 싶은 자리이다. 자연과 동화되어 푹 쉬고 싶다. 이어 좌측으로 능선이 분기하는 평탄지형에 이른다. 사람들이 거의 모여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삽결삼을 굽는 친구는 정상윤씨와 그 국방부 친구들이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여기까지 와서 정상에 가보지도 않고 그냥 무심히 식사나 하려고 모여 있다.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잠시 우측으로 조금 오른다. 정상에서 내려오시는 이영주 사장님과 마주친다. “커다란 장송 외에는 별 볼 것이 없네요” 하신다. 언제 뵈어도 후덕하신 분이다.
이내 재치산 정상에 이른다.

(2) 재치산 정상(1.4km) - x666봉

재치산은 강원 평창군 美灘(탄)面과 영월군 영월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해발 750.9m이다. 삼각점이 있다. “ 21 재설, 1977, 건설부.” 깃대와 깃발은 없다. 아쉽다. 조속히 복구해야 할 것이다. 백두대간의 줄기인 內地山脈에 속하며, 동쪽에 白雲山, 서쪽에 三芳山, 남쪽에 完澤(택)山, 북쪽에 靑玉山 등의 고봉이 보인다. 서쪽 삼방산과의 사이에는 미탄면 栗峙里와 영월군 北面 磨磋(마차)里를 잇는 지방도가 밤재[栗峙]를 통하여 평창~영월 방면의 국도 및 평창~정선 방면의 국도와 연결된다.
정상 일원은 움푹 꺼진 분지를 이룬 카르스트지형이다. 직경이 1.5km에 달하는 원형 분지 속으로 물줄기가 계속 스며들어 산 덩어리 전체를 흠뻑 적시면서 있다가 산자락 밑바닥에 이르러서야 마치 순대덩어리가 터진 듯 솟아오르는 용천수가 볼 만하다. 산 위쪽은 거대한 석회암 절벽으로 막혔고, 아래는 깨끗한 기화개울이 흘러 선경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는 산사랑산악회의 정상표지 비닐판과 2000. 7. 20. 용인거북이산악회의 정상표시 비닐판이 나무에 걸려 있다. 정상 주변은 신갈나무숲이고, 밋밋하다. 벌목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큰 노거수의 장송이 이채롭고, 이영주 사장님의 말씀과 같이 볼 만하다.

마침 가랑비가 내린 관계로 안개가 끼여 재치산 정상에서의 조망이 별로이다. 재치산 남쪽 아래로 움푹 패인 분지를 이룬 곳에는 고마루 마을이 있을 터인데,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은 토양층 아래 석회암 지층이 내려앉는 돌리네(Doline)현상에 의해 형성된 분지마을이다. 움푹 들어간 분화구 모양의 크고 작은 분지들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해 상상이 안되지만 지난날 40여가구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었던 소중한 농토들인 것이다. 3가구만이 남은 고마루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어디론가 떠나버린 빈집들과 잡초로 뒤덮인 산비탈 밭이 전부 하지만 지나는 나그네를 반기는 인심만은 여전하다고 하는데 눈으로라도 가보고 싶다. 고랭지 채소가 주업으로 지금도 나무로 밥을 짓고 군불을 지펴 생활하지만, 공해와 물질만능 풍조에 찌든 도시보다 예나 지금이나 생활은 달라진 것 없어도 인심 좋고 공기 맑은 고마루가 훨씬 좋다고 주민들은 말한다고 한다. 지리적 문화적 환경적으로 오지의 삼박자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곳으로 석회암 지대인 동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해 있다. 언젠가 한번 와서 푹 쉬고 싶은 고마루 마을임을 기억해 둔다.

이어 다시 내려와 평탄한 곳에 자리잡은 점심 파티에 참가한다. 주위는 매우 밋밋하고 평탄하며, 거목의 자작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진록산맥’ 표지기도 보인다. 나는 배낭을 풀고 도시락을 꺼내려고 하는데, 큰형님과 정상덕님이 마냥 그릇에 밥을 담아 수저까지 건네는 바람에 도시락은 꺼내지도 못했다. 오늘 하산하면 맛있는 송어매운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점심을 적게 먹고, 위를 비워 놓아야 하는데... 조금씩 먹다가 보니 전략에 차질이 온다. matroos님은 여러 가지 많이도 싸오셨다. 아마 가정에서 상당히 대접받으시며 사시는가 보다. 어느 산악회에 가보면 나이 많으신 분들이 빵조각만 달랑 사 들고 산에 오시곤 한다. 참 안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matroos님은 그러하시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정상덕씨의 와인이 입안 가득 향기를 남긴 채 목으로 넘어간다. 맛의 백미이다. 이어 콘형님의 자치술이 나온다. 지난 번 고양, 반론산에서 임영택 리더가 캐서 드린 것을 술로 담그어 가져 오셨는데, 빛깔도 좋을 뿐 아니라 맛, 향기도 약술답게 좋다. matroos님은 오디주를 내놓는다.

이렇듯 푸짐한 상차림이 끼리끼리 모여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들이 형제보다 더 우애스럽고, 자매보다 더 다정해 보인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말끔하게 정리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이 다 서울산사람들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그런 다음에 기념사진 촬영을 한다. 굳이 누구라고 밝히기는 싫지만 어떤 여성 회원이 그 사이에 얼굴이 흉해지지나 않았는지 확인하고, 루즈까지 챙긴다. 예쁘게 보이려는 게 여성의 본능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모두 잔뜩 폼을 잡는데,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하여 한바탕 웃음꽃이 피기도 한다. 정말 화기애애하다. 언제 와도 즐거움이 있는 우리 서울산사람들이다.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빗줄기가 굵어지기라도 하면, 가파른 길이 위험하므로 빨리 서둘러야 한다. 문대장이 ‘기화 양어장 횟집’에 전화를 걸어 송어회를 주문예약해 둔다. 그런데 전부 송어회로만 주문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 같이 민물회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매운탕으로 주문하여 주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다.

사진을 찍고 난 후 좌측(동)으로 내려간다. 독도주의! 여기 평탄지역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있고, 또 그 능선상에는 묘도 있으므로 우리가 진행하는 능선과 흡사하므로 잘못 갈 수 있으므로 독도에 주의하여야 한다. 이어서 우측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우측에는 덩굴나무들이 무성하다. 쓰러져 있는 큰 나무들도 보이는데, 몹시 안쓰럽다. 이어 좌측으로 휘어 완만히 오른다. 우측 아래로 분지가 보이는데, 낙엽송 숲이 울창하다. 이어 둔덕이 나온다. 둔덕에는 바위가 있고, 신갈나무들과 노거수의 소나무가 이채롭다. 이영주 사장님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계셔서 여쭈어 보았더니 “우리 반쪽이 아직 안 와서” 기다리신다고 한다. 참 애처가처럼 보이는데, 보기에 좋다. 같이 산행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즐겁게 여생을 보내소서...!

이어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오른다. 좌측은 가파른 사면이다. 아마 바위절벽이다. 이어 완만히 내려간다. 낙엽이 많다. 낙랑장송들이 즐비한데, 큰 산에 온 느낌이다. 큰 키의 신갈나무숲들도 보기에 좋다. 이어 평탄한 곳에 이른다. 묘가 1기 있는데,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잘 자라며, 공터가 있어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을 듯하다. 주변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묘에서 완만히 내려간다. 낙엽송 숲이 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것이 마치 각선미 경연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비록 낙엽송이지만 손으로 만지고 싶어진다. 여기서도 ‘진록산맥’ 표지기가 나온다. 잠시 완만히 오른다. 다시 평탄하게 진행한다. 단풍이 매우 좋다. 좀 서서 감상하고 진행한다. 이어 완만히 내려간다. 장송숲이 나온다. 엄나무도 보인다. 가끔 자치, 잔대 등이 보인다. 영택씨에게 자치를 지적하여 준다. 이어 좌측(북동)으로 내려가다가 안부를 지나 걸음을 빨리하여 오른다. 영택씨가 열심히 따라 온다. 이어 평탄한 곳에 이른다. 장송숲 군락이 너무 좋다. 여기도 ‘진록산맥’ 표지기가 나온다. 약장수님이 어떤 꽃을 대상으로 몸을 아끼지 않고 땅에다 대고 엄숙한 태도로 촬영하고 있다. 지나가면서 “무슨 꽃이예요?” 하고 물으니, “산국인 것 같습니다.” 한다. 사진 하나를 찍는데도 여느 사람과는 달리 참 열심히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분은 이렇게 사진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글에도 소질이 있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분이다. 우리 서울산사람들의 보배로운 존재이다. 흥에 겨우면 자작시도 즉석에서 나올 정도이다. 앞으로 무궁한 문운이 융성하기를 기원하여 마지 않는다.

우측으로 휘어 진행한다. 이어 장송숲을 오른다. 큰 산에 온 듯 기분이 좋다. 이어 길이 좌측 사면으로 트래버스하게 된다. 직진하여야 x666m봉이다. 그런데 직진하는 쪽은 길이 나 있지 않다. 굳이 x666m봉에 갈 일도 없기에 영택씨와 함께 사면길로 진행한다. 점차 좌측으로 휘어져 오른다. 이어 x666m봉 아래 능선에 이른다.

(3) x666m봉(1km) ~ 기화개울/기화교.

바람이 제법 분다. 비도 가랑비 치고는 많이 내린다. 메모하는 데에 적잖이 애로가 된다. 메모를 안 하자니 기억이 다 안 날 것 같고, 하자니 종이가 젖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영택씨가 먼저 내려간다. 이제부터 가파른 사면길이 많으니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도 이 능선에서 좌측(북동)으로 휘어 내려간다. 좌우측으로 단풍이 곱다. 실컷 눈에 넣어 두기로 한다. 아마도 올해 중에는 강원도 단풍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한 번 남은 탐진기맥이 완주되면 백두대간 꼬리나 여수지맥을 답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가 제법 굵어지는 듯하다. 좌우측의 계곡이 깊다. 이어 가파른 절벽 끝에 이른다. 한 발자국이라도 실수로 더 내딛으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황천길이 되는 것이다. 아찔하다. 절벽 아래로 용수골 마을이 제법 크게 보인다. 도로와 기화개울도 보인다.

여기서 우측(남동)으로 내려간다. 무척 가파르다. 좌측은 가파른 절벽이 형성되어 있다. 그 아래로 용수골 전경과 기화개울, 도로가 보이는 것은 조금 전과 같다. 그런데 matroos님이 아직도 무릎이 불편하신지 힘들어 보인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내려가시는 모습이 구도자의 모습 같다. 빨리 완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그 앞에 또 한 분이 거의 땅에 바짝 붙은 자세로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으로 내려간다. 아이비씨이다. 옆으로 내려가면서 약을 좀 올려 주었다. 썩은 나무로 만든 좋지 않은 지팡이를 의지해 내려가는 폼이 너무 안스러워 내가 가진 튼튼한 지팡이를 빌려 주었다. 다소 안도의 표정이 스쳐가는 듯하다.

한참 내려가다가 오른다. 좌측에는 바위로 된 수직절벽이 형성되어 있다. 건너에도 바위절벽이 웅자를 드러내고 있는데, 거기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아름답게 단풍을 연출하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 한참 쳐다보고 진행하다. 그러면서도 자꾸 눈길이 간다. 여기서 건너다 본 단풍과 암벽 절벽이 오늘 산행에서 최고의 절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통로에는 회양목이 지천이고, 바위가 많다. 소나무와 참나무도 많다. 그 와중에도 잔대와 도라지가 보인다. 이어 까만 색의 바위지대를 지난다. 참나무숲을 오르니 암봉에 이른다. 이곳을 삿갓봉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뒤쪽의 절경을 배경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댄다. 암봉에는 회양목이 무성하고, 사진 찍기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쉬기에도 좋을 듯하다. 나는 그대로 통과하려고 하니 누군가가 사진을 굳이 찍으라고 하여 찍었다. 아마 뒤 배경이 멋져서 사진이 잘 나올 것 같다. 여기서는 전방으로 용수골마을과 도로, 기화개울이 보인다. 빤히 내려다보이는 게 무척 가깝게 느껴진다. 실제로는 제법 먼 거리인데, 높은 데서 보니 가깝게 보일 뿐이다.

이 암봉에서 같은 방향으로 내려간다. 바위지대이고 회양목이 많으므로 실족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고, 돌부리 등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곧 바위절벽이 나온다.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무척 가파르다. 비가 웬만히 와서 미끄럽다. 회양목이 역시 지천이다.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어 좌측으로 오른다. 바위절벽 아래 능선에 이른다. 우측(북동)으로 내려간다. ‘진록산맥’ 표지기가 나온다. 좌우로는 가파른 바위 절벽이 있다. 이어 평탄하게 진행하는데, 여기에도 가파른 바위 절벽이 있다. 회양목도 많이 보인다. 이어 안부를 지나 오른다. 이어 우측으로 휘어진다. 돌이 많이 나오는 길이다. 회양목이 역시 많다. 참나무 숲이 되면서 조금 완만해진다. 뒤를 돌아보니 재치산 정상쪽과 그 일대가 온통 가파른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 교묘하게 뿌리를 내리고 질긴 삶을 이어가는 나무들은 아름다운 단풍을 선보이고 있다. 절경이었다. 그래서 이 조그만 재치산이 우람하지는 않는 대신 바위절벽과 단풍, 맑은 1급수의 기화개울, 송어회로 인하여 앞으로 유명세를 탈 것이 예상된다.

둔덕에 이른다.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있고, 거수의 엄나무가 눈길을 끈다. 바위도 있고, 쉴 만한 공간도 있다. 조망도 좋아서 용수골과 동강으로 이어지는 기화개울과 도로가 보인다. 이어 완만히 내려간다. 우측으로 휘어 완만히 내려간다. 동쪽 방향이다. 아마 이곳이 마지막 난코스인가 보다. 급경사이다. 나무도 울창하다. 점점 좌측으로 휘어져 가며 내려간다. 드디어 자작나무 조림지에 이른다. 넓은 지역에 걸쳐 나무를 베어내고 자작나무를 식재한 것인데, 나중에 이 나무들이 울창해지면 굉장할 것 같고, 또하나의 미탄면의 명물로 자리할 것 같다. 그런데, 낫으로 벌목한 그루터기가 칼날이나 창끝처럼 날카롭게 나 있어 넘어지거나 할 경우 깊은 상처를 입을 우려가 있어 아쉽다. 이왕 벌목을 할 양이면 톱으로 밑둥을 싹 베어내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마구 흩어져 있는 벌목들도 걸리적거리는 편이다.

어, 그런데 우측(동)으로 내려가는 아주 완만하고 희미한 극소능선 상의 조림지에서 한 무리의 회원들이 내려가는 길이 어디냐고 고함치며 물어온다. 나도 그 사람들을 겨냥하여 내려가다가 그 사람들이 길이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지형도를 살펴보니 위 능선으로 북쪽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북동)으로 내려가야 함이 감지된다. 그래서 모두 능선으로 올라오라고 전한다. 문대장이 이즈음에 당도한다. 내가 생각한 루트가 맞다고 한다. 일단의 내려가 길을 찾느라 헤매던 사람들이 불평이다. 리더진들이 모두 앞으로 내려가 버렸나 보다. 이어 능선으로 진행하는데, 벌목한 그루터기와 벌목들이 매우 걸리적거린다. 조심해서 진행한다. 이어 약간 우측으로 내려간다. 역시 조림지가 계속된다. 그런데 우측 아래 저 멀리로 먼저 내려간 일행들이 기화교 쪽으로 가고 있다. 모두 잘못 갔다고 하면서, 장난으로 “빽!!”이라고 연발하였으나, 들은 척도 안한다. 양인호씨, 박경하씨, 임영택씨, 고래 등등인 것 같다. 걸리적거리는 벌목들을 헤쳐가며, 뽀족한 나무 그루터기에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간다. 조금 가파르다.

이어 임도에 이른다.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이어 임도 3거리에 이른다. 누군가가 불을 놓은 흔적이 있다.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다. 만약 불똥이라도 번졌다면 아름다운 이 재치산은 잿더미가 되는 게 아닌가!!! 산에서는 정말 불조심을 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단풍이 너무나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있다. 이어 여기 임도 3거리에서 우측(남동)으로 임도 따라 내려간다. 임도가 끝나고, 싸리, 칡이 군락을 이룬 지대가 나온다. 길은 잘 나 있다. 다시 자작나무 조림지에 이른다. 역시 벌목된 나무들이 걸리적거린다. 좌측으로 휘어져 조금 내려서니 “증 가선대부평창이씨지묘”라고 음각된 비석이 있는 묘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여기서 임도는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묘 2기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다시 임도가 나온다. 임도 따라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어 우측 숲으로 내려간다. 약간 우묵한 지형이다. 큰 다래덩굴이 이채롭고 낙엽이 많다. 조그만 바위지대도 나온다. 이내 기화개울 가에 이른다. 물이 무척 맑고 깨끗하다. 그런데 홍수가 대단해서 그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물의 양이 많았던 모양으로 개울가의 나무의 중턱까지 물이 닿은 흔적과 찌꺼기들이 묻어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물을 건너가자는 파와 우측으로 사면을 헤쳐 나가 기화교를 건너자는 파로 설왕설래하여 한참 시간을 보낸다. 성급한 나머지 문대장은 바지를 둥둥 걷고 건넌다. 허벅지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건너는데, 깊은 곳에 이르러 히프선을 넘어버린다. 아무리 키가 크지 않은 문대장이지만 물이 그 정도 깊다면 내의까지 다 젖을 우려가 있어 내키지 않았다. 어떤 여자 분들은 ‘무 다리’를 도저히 노출시킬 수 없다고 하소연이다. 마침 그때 도치님이 우측으로 가면 길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 온다.

나도 물을 건너려니 신발도 벗어야 하고 여간 귀챦지 않은 차에 잘 되었다싶어서 우측으로 사면을 진행한다.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나무뿌리를 오른다. 이어 사면을 오르내리니 이내 기화교에 이른다. 건너편에 ‘기화 양어장 횟집’을 위시하여 횟집이 더러 보인다. 다리를 건너자니 웬 청년들이 개울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뭐하느냐고 물으니 송어낚시를 하고 있단다. 말로만 듣던 천혜의 계류낚시를 한다더니 정말 실감난다. 이를 보는 우리의 우리 일행 중 낚시를 좋아하는 분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낚시도구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법하다. 조금 있으려니 그 분이 벌써 한 마리를 낚아서 이내 즉석 회를 친다. 그것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분도 있다.

송어는 연어목 연어과의 물고기로서 시마연어라고도 한다. 몸길이는 약 60cm. 몸은 연어보다 굵고 둥글며 약간 옆으로 납작하다. 주둥이는 연어보다 무딘 편이고, 비늘은 둥근비늘(원린)이다.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사이에 기름지느러미가 있고 꼬리지느러미는 얕게 갈라진다.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는 모양이 비슷하고 수직선상에 거의 나란히 붙어 있다. 측선(옆줄)은 완전하고 몸 양쪽 옆면의 거의 중앙부에 곧게 달린다. 몸빛깔은 성어의 경우 등쪽이 짙은 남빛이고 배쪽은 은백색이며, 옆구리에는 작은 암갈색 반점이 있다. 유어는 암녹황색 바탕에 측선에서 등 언저리까지에는 엷은 회색에 가까운 은색을 띤다. 눈 둘레는 검은 빛을 띠며 눈알에는 검은 반점이 흩어져 있다. 유어의 가슴지느러미·배지느러미·뒷지느러미는 엷은 오렌지색으로 지느러미의 연조는 흑회색이다. 산란기는 9∼10월이며 암컷과 수컷이 다 같이 까만 갈색으로 변하고 수컷은 주둥이가 길어져 구부러지며 몸의 양쪽 옆면에는 복숭아색의 불규칙한 구름 무늬가 나타난다. 산란기가 되면 암컷과 수컷이 다 같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온다. 물이 맑고 자갈이 깔려 있는 여울에서 수컷이 웅덩이를 파고 산란과 방정을 한 뒤에 암컷이 자갈로 알을 덮는다. 부화한 알은 약 1년 반∼2년 동안 강에서 살다가 9∼10월에 바다로 내려가고 3∼4년이 지나 강으로 되돌아와 산란 후 모두 죽는다.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강에 남아서 성숙한 것을 산천어라고 한다. 강 상류의 물이 맑은 곳에 서식하며, 주로 곤충을 먹지만 작은 어류,·갑각류도 먹는다. 무리를 이루어 다니며 고급식용어이다. 오호츠크해,·동해 등 북서태평양에 분포한다.[두산동아대백과에서 발췌]

다리를 건너 도로를 지나니 ‘기화 양어장 횟집’이다. 송이들이 많이 양식되고 있다. 수조마다 고기의 크기가 다르며, 같은 수조에는 거의 비슷한 크기의 숭어들을 양식하는데, 그 이유는 큰 것들과 함께 두면 큰 것들이 먹이를 다 가로채기 때문에 작은 것들이 살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타고 온 고려관광버스가 있고, 이어 수도를 지나 약간 비스듬히 오르니 본채이다. 거기 한 방에는 늘근소님과 연실낭자 군단이 함께 실컷 먹은 표정과 자세로 우리를 맞는다. 도치님과 오경숙 님은 산행한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측에는 머루로 만든 덩굴이 제법 넓게 조성되어 있어 여름에는 피서에 한몫 할 것 같다. 머루가 많이 달려 있어 몇 알 따서 먹어 보니, 머루 특유의 향기가 입속을 한참이나 채운다.

이를 지나 우측으로 가니 다락방 같이 생긴 곳에 우리의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우리 외에 한 가족이 와서 매운탕을 시켜 먹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매운탕은 없다. 웬지 민물회는 꺼림칙해서 먹지 않는 게 나의 소신이다. 더구나 양식장에서 건져 올린 것임에랴? 나는 창가 라인의 제일 끝 좌석으로 갔다. 양인호씨와 정상덕씨와 함께이다. 나의 사정을 알아차린 정상덕씨가 튀김을 시켜준다. 양인호씨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몸이 좋지 않아 그동안 뜸했노라고 한다. 아무튼 선한 분인 만큼 조속히 회복하여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좌측 아래로는 양어장에 숭어들이 무리지어 헤엄쳐 다니고 있다. 저렇게 유유히 놀고 있는 놈을 여기 주인은 무심하게 건져 올려 목숨을 빼앗고 산 채로 몸을 절개하여, 작은 도막을 낸 다음 몹시 차거운 얼음 팩 위에다 올려 놓은 것을 우리 회원들이 맛있게 들고 있다. 신선해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잔인한 생각도 든다.

송어회는 1kg에 17,000원이다. 약간 붉은 빛깔을 띤다. 아까 개울에서 직접 잡아 회를 뜨는 것을 보니 흰색에 가깝던데 여기 회는 붉은 편인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동동주도 있는데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 아쉽다. 나는 매운탕이나 시켜 주었으면 기대했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직접 주문하고 싶었으나 별나다고 할까봐 그만두었다. 모두들 열심히 드신다. 산에서 점심을 먹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말이다. 콩가루에 비벼 먹는 송어회가 그렇게도 맛있는 것인지....채소가 많이 나온다. 나는 남은 도시락을 꺼내어 부족한 점심을 때운다. 소주와 맥주도 많이들 소비되었다. 나중에 매운탕이 나오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다. 조금 먹고 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하나 둘 자리를 일어선다. 다락방을 내려서니 대추나무가 있다. 정상윤리더와 어떤 여자 분이 마구 따고 있다. 좀 얻어서 먹으니 맛이 좋다. 알이 잘아서 상품성은 없는 것이다.


교통 :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지나 중앙고속도로 진입 치악휴게소를 지나 신림 I․C 진입 후 주천방향으로 좌회전하여 평창 → 맷둔재를 넘어 미탄면으로 진입하면, 기화리 방향 포장도로가 나온다. 미탄면에서 기화리(기화개울) 송어양식장 입구까지 2.7km임.




**** 주위의 가 볼만한 곳 *********


1. 백룡동굴


1976년 4월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절매마을 주민(지금도 이 마을에 살고 있음) 정무룡씨 형제가 산책하다가 동강 주변 산밑에서 뭔가 스멀스멀 스며나오는 것을 보고, 동굴 통로 중간이 작아 출입할 수 없던 곳에 며칠간 개구멍 정도의 구멍을 뚫어, 이 비좁은 구멍을 따라 들어간 것이 이 동굴을 발견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동강 역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만한 일을 해 낸 분이라 존경스럽다. 정씨 자신들도 그 당시 이 백룡동굴을 처음 보고 엄청난 흥분과 충격에 휩싸였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그 후로 정씨 등은 동강 보존운동가가 되어 그동안 찍은 사진은 4천만년 이상된 곰뼈. 장어. 새우 등 화석과 종유석. 동강 절경 등 1천 컷이 넘는다고 한다. 백룡동굴은 이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 닫지 않은 채 발견된 셈이었다. 정씨 등은, 정부에 이 발견 사실을 알림으로써 동굴 내부의 규모와 경관이 학계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백룡동굴의 발견소식이 전해지자, 한국동굴학회는 1976년 부랴부랴 한.일 합동조사를 실시하였고, 백룡동굴이란 이름은 동굴을 배태하고 있는 백운산의 '백'자와 동굴을 발견한 정무룡 형제의 돌림자인 '룡'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인 1979년 2월 10일 영구 미공개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되게 하는데에 기여했다. 이 동굴은 특징적인 진귀현상이 많을 뿐 아니라, 원형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학술 연구대상으로 매우 중요시되어 영구 미공개로 결정한 것이라 한다.

이 동굴의 소재지는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동강변이다. 평창군에서 소유․관리한다. 주지하다시피 동강은 영월, 평창, 정선군등 3개군의 경계에 있는 강임. 동굴 입구 양쪽에는 모두 절벽으로 되어 있고, 동강의 수면으로부터 15m 높이[해발 고도 238m]에 출입구가 있기 때문에, 이 동굴에 직접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문희마을 상류로 나룻배를 타고 절매 마을로 건너가 바라보면 백룡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또한 이 절매마을에서 배를 타고 가야만 접근이 가능하다. 동굴 입구에는 여러 겹의 쇠창살로 막혀 있고, 출입을 경고하는 살벌한 경고문이 서 있어 뭔가 씁쓸한 마음이 들게 하며 눈을 의심케 한다고 한다.

백룡동굴은 석회암 천연 동굴로서, 면적은 956,434㎡, 총 연장은 약 1.8km로 보고되어 있으나, 더 연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210m가 되는 곳까지는 내부가 드러나 있다. 백룡동굴 내에는 여러 개의 작은 동굴이 갈라져서 연결되어 있는데, 크게 3개의 굴로 이루어져 있다. 고, 이 가운데 주통로 굴의 길이는 780m이다. 가지굴은 90m, 199m, 103.5m로 조사된 바 있다. 90m의 가지굴은 주굴을 따라 왼쪽으로는 발달되어 있고, 199m의 가지굴은 막장 부근의 주굴로부터 우측에 발달하여 있다. 다른 자료에는 주굴인 A굴(775m) 외에 B굴(185m), C굴(604m), D굴(300m)로 나누어져 있다고 적고 있기도 하다.
몇 해 전 정부가 수자원 고갈을 이유로 동강에 댐을 건설하겠다고 했을 때, 동강 물길에서 국보급 이상으로 평가되는 백룡동굴의 수장문제가 처음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가 백지화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만약 댐을 건설하면 4억년이란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그 신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천혜의 보물은 수장되고 말 것이었기 때문이다.

백룡동굴이 다른 동굴보다 빼어난 점은 동굴 안에 있는 갖가지 다양한 형태의 종유석과 석순, 동굴방패(백룡동굴의 대표적 경관인 동굴방패의 성장을 보여주는 해파리형 종유석이 상부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곡석, 휴석, 동굴산호 등이 특히 아름답고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특히 기이한 모양의 종유석, 꽈배기 모양의 석순, 피아노 소리를 내는 커어튼형 종유석, 종유관, 동굴산호는 백룡동굴만이 가지는 특이한 동굴 생성물이라고 한다. 특히 달걀 후라이(fried egg)모양을 한 석순은 다른 동굴에서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백룡동굴의 것들은 내부가 연노랑색이고 그 주위가 백색을 띄고 있어 계란 후라이와 똑같은 모양을 보이고 있어, 기형의 종유석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한편 시간의 역사가 응결된 백룡동굴의 보석에 해당한다고 한다. 약 2층 높이에 해당하는 거대한 석순이 있는데, 지하수 삼출이 넘쳐흘러 디스크형이 되었다고 한다. 이 압도적인 석순은 정상부에서 작고 가는 종유석과 만나 결국 석주가 된 것이라 한다. 주굴은 통로가 넓어서 몇 사람이 같이 다닐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종유석, 석순, 석주, 유석 등 석회동굴 내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다양한 동굴생성물들이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90m 가지굴에는 일반적인 종유석과는 다른 내부가 점토로 채워진 종유석이 발달되어 있고, 199m의 가지굴에는 '별궁'이라고 명명된 작은 독방이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종유석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주굴인 A굴은 작은 동방으로 연결된 수평굴로서 막장에는 대규모의 광장이 발달하고 있고, 또 대형 종유석과 석순, 동굴방패, 석주, 유석, 에그후라이형 석순 등이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 B굴에는 석화와 대규모의 휴석이 발달되어 있다. C굴에는뚱딴지형 석순이 특징적이며, 동굴바닥으로부터 수m 아래에는 수로가 형성되어 지하수가 흐른다. D굴은 좁은 통로형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전혀 훼손되지 않은 종유석과 석순 등의 동굴생성물이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여하튼 백룡동굴은 대체로 동남방향으로 사행 발달하며 내부로 깊이 들어감에 따라 현수상 종유석, 석순․석주․석막(石幕)․석회화폭(石灰華瀑)․석회화단구․기타의 형성체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또한 다른 동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천장면에 발달한 막상 종유석의 파곡현상(波曲現象), 왜곡(歪曲) 기형종유석, 수적(輸積) 종유석, 동굴 건천(乾川)과 연엽(連葉) 형성 등의 기이한 형상, 3차원의 퇴적현상, 희귀한 동굴광물인 지정(地精)․기타의 동굴 퇴적물도 풍부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지금까지 백룡동굴에서 발견된 동굴 동물은 모두 35종으로 돌좀벌레, 장님굴새우, 장님애새우, 금띠노래기, 물좀벌레, 반도굴아기거미와 붉은박쥐 등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중 반도굴아기거미와 붉은박쥐는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홍수가 날 때마다 강물이 동굴 내로 침입하기 때문인지, 발견되는 동물의 종류는 동굴의 규모에 비해 빈약한 편이다. 약 3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뼈도 발견되어 그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백룡동굴 안에 있던 것으로서 길이 43㎝, 둘레 18㎝, 무게 2.2㎏ 규모의 남자 성기(男根) 모양새와 흡사한 형태로 자라나서 신기하던 종유석을 `97년11월 모 경찰서에 근무하는 간부 경관 일행이 절단, 훼손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뻔했으나, 여론의 빗발치는 비등으로 인하여 관심을 모았었던 일이 있었는데, 훼손자들이 이를 반납함에 따라 문화재연구소 복원팀에 의해 완벽히 복원됐다고 하니 다행이다. 복원을 담당한 문화재연구소 복원팀은 종유석의 상태와 동굴내 환경을 면밀히 분석하고 복원후 종유석의 성장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4개월간 예비시험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보도된 바 있었다. ‘99년 4월20일부터 5일간 진행됐던 종유석 복원작업에는 고순도의 스테인레스 스틸봉과 에폭시 수지가 접합제로 사용됐다고 한다. 복원팀은 2002. 11. 21일 백룡동굴에서 종유석의 접합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접합부 고정을 위해 설치했던 지지대를 철거하고 종유석의 성장을 정밀 관찰하기로 했던 바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ꡒ복원된 종유석의 접합 및 성장을 주기적으로 정밀 관찰할 계획ꡓ이라며 ꡒ이번 종유석 복원에 대한 연구결과는 국내 석회동굴의 과학적 보존에 활용될 수 있을 것ꡓ이라고 했던 보도가 기억난다.

백룡동굴이 소재하는 동강이 흐르는 산악 지역은 석회암 지대로서, 이 동굴 외에도 많은 석회동굴이 곳곳에 산재하여 발달하고 있다. 그 중 백룡동굴이 백미인 것이다. 이 일대는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조선누층군 막골층; 약 4억 8천만년전)에 퇴적된 석회암과 중생대 쥬라기에 퇴적된 이질암(반송층)이 발견되며, 백룡동굴은 막골층 내에 발달한다. 동굴의 입구 안쪽에는 과거 선조들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7평 정도의 구들이 있다.


2 . 동강 12경

동강 12경은 1999년경 `우이령보존회'와 `동강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이 동강 유역의 생태문화적 경관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동강의 총체적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아래와 같이 동강가의 12곳을 지정한 것이다. 동강 12경을 따라 동강을 따라 가노라면, 가을 따라 펼쳐지는 정경이 매우 포근하며, 시멘트 다리가 드물 뿐만 아니라 포장도로조차 없는 강변길이 얼마나 정겨운지를 만끽하게 된다.
① 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풍경 ; 정선읍 가수리 수미[`물이 아름답다'는 뜻]마을은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 마을 가수분교 정문 옆에 높이 35m, 둘레는 7m나 되는 수령 700년 된 느티나무가 1그루 서 있다. 여름철에는 아름다운 강물 위에 녹색 그림자를 하늘거리며 동강에 생명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② 운치리 수동 섶다리와 얼음굴 : 강을 사이에 마주보며 살아가는 동강 강마을들은 앞뒤에 빼곡한 산에서 가장 얻기 쉬운 재료인 나무를 이용하여 늘 이어지곤 했다. 동강의 다리 가운데 가장 빼어난 다리는 정선군 신동읍 운치 2리의 섶다리였다. 해마다 음력 9월에 놓는 데 이듬해 여름 장마로 휩쓸려 가 버리면서 모습을 감추고 생명을 다한다. 그러나 어느 해엔 운치리에 섶다리를 놓지 않는다. 가까이에 시멘트 다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 섶다리와 함께 오뉴월에도 얼음이 얼어있는 얼음굴은 동강 풍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③ 백운산과 칠족령 성황목과 점재에서의 조망 : 백운산과 그 곳에서 뻗어내려 정선군과 평창군을 잇는 칠족령은 고갯마루의 소나무와 참나무가 얽힌 성황목과 함께 동강 중상류의 산과 강을 돋보이게 한다. 운치리에서 백운산에 오르는 점재에서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④ 고성산성과 주변 조망 :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고성산성은 삼국시대 한수 이북을 지키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휘어도는 동강 중상류의 장관을 사방으로 펼쳐진 산세와 함께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산 아래엔 청동기 유적지가 있다.
⑤ 바새 앞 뼝대와 강변 하늘벽의 자생 향나무 : 신동읍 고성리에서 연포쪽으로 난 길을 따라 물레재를 넘어서면 바새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을 따라 또다른 세계인 절벽이 길게 이어진다. 이를 주민들은 `앞 뼝대'라 부른다. 이는 동강 석회암 단애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관이며, 이 절벽의 능선과 사면에는 자생 향나무 등 희귀식물이 자라고 있다.
⑥ 연포마을과 황토 담배건조막 : 정선쪽 동강의 거의 끝에 있는 연포마을은 동강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가장 아름답게 눈에 들어온다. 황토와 몇 가닥의 목재로 세운 담배 건조막은 이 마을 정경과 어우러져 돋보인다. 뗏꾼들을 위한 객주집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⑦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백룡동굴 : 관음굴과 함께 국내에서 제일로 꼽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총 길이 1200m가 넘는 이 동굴은 내부의 기묘한 종유석이 잘 보존돼 있다. 영구보존동굴(천연기념물 206호)로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는다.
⑧ 황새여울 강변의 바위무리 : 동강에서 두번째로 빠져나가기 어려운 물길인 평창군 마하리 황새여울 주변에는 어른 몸만한 바위들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무리지어 하나의 자연조각공원을 이루고 있다.
⑨ 두꺼비바위와 자갈모래톱과 앞 절벽에서의 조망 : 영월읍 문산리 그무마을에서 남쪽으로 강을 따라 내려가면 강 옆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길을 막아선다. 두꺼비 1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금새 펄쩍 뛸 듯한 모습이다. 두꺼비바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위 앞뒤로 길게 이어지는 모래밭과 강 건너편의 거무스레한 뼝대다. 이곳 모래톱은 동강 모래밭 가운데 가장 길다.
⑩ 어라연 : 오래전부터 동강은 몰라도 어라연(영월읍 거운리)은 안다고 했다. 강물 가운데 솟은 3개의 바위를 삼선암이라 한다. 그 주변은 희귀식물 군락지이기에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다.
⑪ 여름하늘고갯마루에 걸린 동강의 흰 구름 : 동강 하늘과 산마루에 걸린 흰 구름은 또 하나의 인상을 남긴다. 특히 한여름 납운돌에서 연포, 문산리 일대까지의 뭉개구름은 그림같다. 떼재 산등성이에 석양에 피어오르는 구름은 압권이다. 그래서 동강 유역에는 구름 `운'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⑫ 된꼬까리와 만지 : 어라연을 돌아가는 물길이 빚어놓은 여울목이 된꼬까리다. 물길 옆으로 강쪽을 향해 삐죽한 큰 돌이 향하고 있다. 옛날 뗏꾼들은 이 바위를 `문둥바우'라 부르며 뗏목을 부딪히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정선에서 영월로 가던 뗏목길 가운데 위험한 곳으로는 아우라지 밑 상투비리, 용탄의 범여울, 마하리 황새여울, 거운리 된꼬까리 등이었는데, 된꼬까리가 가장 넘기 버거운 물길이었다고 한다.
된꼬까리를 지난 뗏꾼들을 기다리는 것은 여울 바로 아래 만지에 있는 너댓곳의 술집이었다. 그 가운데 전산옥이라는 여인이 운영하던 주막은 가장 인기가 좋았다. 그는 미모에다 정선아리랑까지 구성지게 불러 밤새도록 뗏꾼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오죽하면 정선아리랑 한 대목에도 나올까. ꡒ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판차려 놓게… ꡓ

* 동강의 여러 이름들.
예로부터 남한강 수계인 동강은 구역마다 이름이 각각 있었다. 태백산에서 비롯되어 임계쪽을 두루 휘돌아 흐르는 골지천과 평창 발왕산쪽에서 내려오는 송천이 정선 북면 아우라지에서 만나 조양강이라는 이름으로 흐른다. 이 조양강은 오대천과 동대천을 거느리고 아래로 내려오다가 정선읍 가수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남천 물줄기와 만나 동강이 된다. 가수리에서 굽이돌아 51㎞를 흘러 영월읍에서 다시 평창쪽에서 흘러오는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단양, 충주, 여주를 거쳐 서울에 이른다. 이렇듯 지금은 정선읍 가수리에서 영월까지를 동강이라고 하고, 정선 북면 아우라지에서 가수리까지를 조양강으로 구분하지만 조선시대에 간행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지금의 조양강을 대음강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지도서> 등 조선 후기 문헌에는 조양강을 동강으로, 지금의 동강은 연촌강이라 했다. 따라서 지금 쓰이는 동강이라는 이름은 일제시대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동강은 북쪽으로는 정선군 광하리, 동으로는 정선군 신동읍, 서로는 평창군 미탄읍 창리, 남으로는 영월군 삼옥리로부터 접근된다. 총 길이 60여㎞에 이르는 동강은 정선군 가수리에서 영월군 섭새에 이르는 구간에서 시멘트 다리가 없는 아름다운 강풍경을 이뤄낸다. 험준한 800~900m 높이의 고산준령으로 에워싸인 지형에다 강변에 포장도로나 접근로가 연결될 수 없어서 자연이 잘 보존된 이 지역은 별도의 탐방로가 필요없이 생태관광이나 자연교육장으로 활용가치가 높다. 우이령보존회와 전문가들은 동강 전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식의 구태의연한 `개발지향' 보존이 아니라 동식물 보호를 위한 성역이나 `보존구' 개념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생태보존구역과, 주민들의 농경, 거주요건을 보장해 가며 탐방객의 편의를 제공하는 완충구역, 토지이용 계획이 수립되는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