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향로봉 산행기





구간 : 부곡리 강림초교 부곡분교 ~ 곧은치 ~ 향로봉 ~ 보문사 ~ 국형사

일시 : 2003. 11. 9. 日/ 흐림.

행정구역 : 江原道 橫城郡 講林面., 板富面 ; 原州市 杏邱洞

출발 예정 시간/장소 : 2003. 11. 9. 07시 30분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제일은행 앞.

산행거리 : 총 9.1km

산행시간 : 총 4시간 30분(11 : 00 ~ 15 : 30).


산행구간 :

횡성군 강림면 釜谷里 강림초교부곡분교(1.1km) - 부곡공원 관리초소[입산통제소](4.1km) - 곧은치(1.1km) ~ 향로봉(1.5km) - 普門寺(1.3km) - 國亨寺.
* 상세한 구분 : 횡성군 강림면 釜谷里 강림초교부곡분교(1.1km) - 부곡공원 관리초소[입산 통제소](4.1km) - 고둔치골- 첫 번째 다리 - 두 번째 다리- 곧은치(1.1km) ~ 향로봉(1.5km) - 普門寺(1.3km) - 國亨寺.

지형도 :

- 1/2만 5천 釜谷[1995. 6. 인쇄] * 참고 原州[‘95. 5. 인쇄]
- 1/5만 安興. * 참고 原州.

회비 : 금 20,000원. 참가 인원 총 29명.



산행후기 :


오늘은 서울산사람들과 함께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과 원주시 판부면과 행구동에 걸쳐 있는 향로봉[치악산 줄기]을 산행을 가는 날이다. 탐진기맥을 끝내고 지난 주에 새로 시작한 여수지맥을 단 한 번만 다녀온 상태라서 여수지맥에 다음 구간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이어서 오늘도 여수지맥을 가고 싶지만, 이를 미루고 서울산사람들의 산행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비록 치악산 내지 그 연봉은 여러 차례 가 보았지만, 서울산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계절이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은 산이라 어렵지만 그렇게 한 것이다.
이번 산행은 어머니 젖가슴처럼 포근한 능선들, 맑고 깨끗한 계류가 흐르는 계곡이 이이져 있고, 마지막 단풍들, 조용한 산사인 보문사, 국형사가 있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후회는 없는 산행이어서 다행이었다. 너무 조용하고, 비교적 평이한 코스라 사시사철 산행지로 아주 좋을 듯한데, 연인과 함께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을지 숙제로 남겨둘 뿐이다.

과감히 여수지맥을 미루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배낭을 챙겨 종로1가에 가는 버스를 탔다. 도중에 마포에서 큰형님이 타시려니 해서 기대해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로 오니 고려관광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미 나온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은 오랜만에 만난 분들끼리 나누는 대화로 시끌벅적하다. 약장수님, 문대장, 정상윤, 임영택, 고래, 오승렬님, 도치님 부부, 이영주 사장님 부부, matroos님, 동순갑씨 부부, 동순갑씨 백두대간 산우이신 분, 김재중님, 은영씨 재준이와 그 군단, 기타 이름을 모르는 여러 분들이 나와 계시다. 특히 matroos님은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시고 거의 주무시지도 못한 채 산행에 참가하신 저력을 보이시어, 서울산사람들과 산에 대해 가지신 애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늘근소님, 복남씨, 큰형님, 아이비님, 연실낭자 군단, 양인호씨, 박경하씨,.포천 사장님 부부, 김재국씨, 짜총 및 대현씨, 뫼오름님 기타 많은 분들이 안 보여 아쉽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는데다가 날씨까지 흐리다보니 성가시다는 이유로 많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늘근소님은 문중의 시제가 있어서 지방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산행에 오기로 했다는 어떤 사람이 상봉동이라고 전화해 놓고 나타나지 않아서 조금 기다리다가 드디어 07 : 50이 되어서야 버스가 출발한다. 참 웃기는 사람도 다 있다. 자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기다린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말이다. 사람들이 조금 언쨚은 표정들이다. 그러나 이내 잊어버린다. 서울 시내의 가로수들이 깊은 가을을 맞아서 한창 단풍을 뽐내고 있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일 것이다. 버스에 탄 채로 보니 서울 가로수의 단풍이 이처럼 예쁜 지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그만큼 바쁘게 살아온 증좌이리라. 한참 후에 다리를 건너 양재역에 버스가 서니 동순갑씨 부부와 정상덕님이 합류한다. 이제야 겨우 총 29명이 된 셈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버스 안은 꽤나 활기찬 모습이다. 이영주 사장님은 재치산 산행때 주우신 도토리로 묵을 손수 쓰셔서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단단한 게 맛있다. 젊은 후배들을 생각하시는 토타운 마음씨가 엿보인다. 문대장은 산행 루트가 평이하여 걱정도 안 하는 눈치이다. 언제나처럼 이번 산행을 지휘하는 모습이 듬직하였다. 버스는 9시 23분 경 문막휴게소에 들른다. 평소보다 약 30분 가량 지체된 셈이다. 그러나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단풍철 치고는 차량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여기서 아침을 먹을 시간을 준다. 이어 9시 50분 경 문막휴게소를 출발한다.

이어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저 지독한 겨울 바람을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어떤 나무들은 아직도 잎을 매단 채 버티고 있는 것도 보인다. 추수하고 남은 배추들이 눈길을 끈다. 기회가 되면 몇 포기 수확해서 가고픈 심정에서일 것이다. 드디어 안흥교를 건너고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몇 분이 용변 용무가 있어서이다. 휴게소를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영주 사장님이 그 유명한 안흥찐방을 두 박스씩이나 사셔서 나누어 주신다. 맛있게 먹었다. 난 2개가 주시어서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어느덧 버스는 안흥면을 지나 강림면으로 들어서더니 부곡출장소 매표소에 이른다. 문대장이 내려서 단체로 표를 구입한다. 이윽고 다시 출발해서 진행한다. 주변의 장송숲의 푸른 기운과 맑은 물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송어양식장도 보이니 물은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이윽고 산행준비령이 떨어지고 이내 강림초교부곡분교에 도착한다.

서울을 출발해서 산행기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날씨가 흐려서 비가 오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으나 산행 내내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끔씩은 햇볕도 나서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입동이 지나서인지 향로봉 정상에서는 맨손이 약간 시리게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길은 정상까지는 아주 좋은 편이나, 돌이 많아 조심하여야 하는 부분도 많고, 특히 하산할 때는 길은 비교적 뚜렷한 편이지만, 낙엽 때문에 미끄럽고, 잡목과 나뭇가지가 걸리적거리기도 하였다. 가끔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힘드신 분들도 많았으리라. 그리고 이미 잎을 떨군 나무들이 마음을 쓸쓸하게 하였다. 그러나 낙엽송들의 마지막 단풍인 노란색을 연출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 좋았고, 산행 도중 장송숲을 볼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으며, 서만이강으로 이어지는 개울의 맑은 물, 바위. 낙엽송 숲이 이색적이었다. 산행객이 자주 만날 수 있어 삭막하지 않아서 좋았다. 국형사 아래 주차장에서 삽겹살을 안주로 이슬이를 즐기는 분들도 추억에 남을 것 같다. 신성한 불교 도량 앞에서 고기를 굽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지만 말이다. 대신 속죄하는 뜻에서 장작을 패주어 잠시나마 불목하니를 자처했음을 슬며시 밝혀 둔다.

향로봉 건너편 봉우리에는 박성태 산성님의 “영춘지맥” 표지기가 달려 있는 것을 보니 너무 반갑다. 추후 언젠가는 내가 답사하여야 할 영춘지맥.... 여기서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산성님의 노고가 느껴진다. 그리고 의의가 깊었다. 보문사는 너무나 고요하고 물이 좋은 절이어서 언젠가는 한 번 찾아와서 조용히 머물고 가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도 숙제로 남겨 둔다. 그 절 주변에서 마지막 남은 단풍의 잔재를 감상한다. 특히 낙엽송 잎이 빚어내는 노란색 단풍의 향연은 장송숲이 그리는 녹색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앙상한 나무들이 풍기는 삭막한 느낌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여하튼 깊이 몰두하니 초겨울이 아닌 듯한 계절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국형사는 사세가 다소 좋은 듯한데, 그래서 각종 불사를 크게 일으키고 있었으나 개를 11마리나 키우고 있어 눈에 거슬렸다.

이번에 우리가 간 코스는 원주나 신림 방면과 달리 유순한 산세를 지니고 있어 큰 힘 들이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등산객으로 붐비는 구룡사 계곡 코스에 비해 조용하고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었고, 또한 정상과의 거리도 짧을 뿐만 아니라 완경사로 이어져 있어 노약자조차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오르내릴 수 있고, 치악산 주능선의 장쾌함을 감상할 수 있었기에 당일산행지로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이를 권고하고 싶다. 산행기점에서 한적한 농로를 걸으며 농촌을 음미할 수 있어 좋았고, 이 포장농로를 지나면 입산통제소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고든치골 입구인데, 여기서 곧은재까지 중간 중간 낙엽송이 양쪽으로 도열한 널찍한 산책로가 한참을 이어지는데 삼림욕과 산보를 겸한 한적하여 연인이나 가족 동반 나들이에 아주 좋을 듯하다. 오른쪽에서 내려오는 원통골 계곡과 합수되는 지점부터 좁은 산길이 이어지는데 곧은재까지 가파른 길은 별로 없었다. 계속 물을 끼고 완만한 길을 걸을 수 있어 여름에 오더라도 더위도 식힐 수 있고 계곡 구경도 겸할 수 있어 부담 없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합수지점부터는 길이 희미한 곳이 두어 군데 나오는데 무조건 왼편 계곡 길을 선택해야 바로 곧은재로 연결된다는 점만 주의하면 될 일이다. 하여튼 고둔치골은 '치악산의 내실'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기로 이름난 골짜기임을 확인하였다.
곧은재에서 좌측으로 향로봉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길은 아주 좋아서 억새와 밋밋한 능선과 조망을 즐기며 오를 수 있는 무난한 지역이다. 향로봉에서 가파른 산줄기가 보문사까지 이어져 있어 다소 조심해야 하고 독도에도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만, 보문사에서 바라보는 향로봉의 모습이 웅장하기 그지없고, 이어서 보문사에서 국향사로 이어지는 계곡이 아기자기하게 이루어져 있어 산행이 지루하지 않게 마무리되게끔 하여 좋았다.

치악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고산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는 산이다. 서울에서 약 150km 거리에 위치하여 수도권 일일관광지와 주말 휴양지, 청소년 자연학습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코스의 등산로에 안내 이정표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안전시설도 잘 정비되어 있어 연인끼리, 가족끼리 오붓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높이 1,288m로, 영춘지맥의 줄기로 嶺西 지방의 명산이며 강원도 원주시의 진산(鎭山) 이다. 상봉이며 주봉우리인 飛蘆峰(1,288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천지봉(1,086.5m), 梅花山(1,084m), 三峰(1,073m)과 남쪽으로 香爐峰(1,043m), 南臺峰(1,181.5m), 수리봉(810m) 등 여러 봉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능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서쪽은 매우 급하다. 1973년에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큰골, 영원골, 입석골, 범골, 사다리골, 상원골, 신막골 등 아름다운 계곡과 입석대, 세존대, 신선대, 구룡폭포, 세렴폭포, 영원폭포 등 볼거리가 많다. 이밖에 九龍寺(얼마 전 전소됨), 上院寺, 石逕寺, 國享寺, 普門寺, 立石寺와 같은 오래된 절이 많이 있다.
서울산사람들의 산행안내서에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 치악산은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붉을 赤(적)자를 써서 赤岳山이었으나 그 유명한 꿩의 보은설화가 생겨난 뒤, 꿩 치(雉)자를 쓴 치악산으로 개명됐다. 치악산 상봉 비로봉 정상에 선 3기의 돌탑에도 전설같은 이야기가 얽혀 있으며, 구룡사, 국형사 등의 산내 사찰에도 짜임새가 뛰어난 전설이 전한다. 그러므로 치악산은 한마디로 전설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계절 모두 경치가 좋은 팔방미인형 명산이다. 한편 겨울의 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적설기의 풍광이 가장 좋은 산이라며 겨울 치악산을 탐한다. 한국 최초의 신소설 작가인 이인직은 치악산을 배경으로 한 신소설 ‘치악산‘을 발표하기도 했다.“


(1) 횡성군 강림면 釜谷里 강림초교부곡분교(1.1km) - 부곡공원 관리초소[입산통제소]


횡성군 강림면 釜谷里 강림초교부곡분교에서 버스를 내리니 조그만 가게가 있다. 시내버스 종점이다. 마침 군내버스 1대가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손님은 하나도 없다. 개 한 마리가 낯선 서울사람들을 적대시하며 짖는다. 조용한 산골마을이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보인다. 이 부곡리 일원은 치악산맥에 둘러싸인 분지형의 산골로서 자연미가 넘치고 있었으며, 비로봉 남릉에서부터 남대봉(△1181.5m)에 이르기까지 치악산맥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부곡리 기점 산행 코스에는 치악산의 부드러운 산세를 바라볼 수 있는 비로봉 남릉 코스와 치악 제1의 계곡미를 탐닉할 수 있는 고둔치골 코스가 대표적인데, 우리는 후자의 코스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이어 서쪽으로 난 콘크리트/시멘트 포장 농로/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길가에는 어느덧 냉이, 씀바귀, 꽃다지 등 겨울을 나는 식물들이 모습을 내밀고 있다. 계절이 성큼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몇 뿌리 캐어서 국이나 된장에 넣어 봄직도 하지만 반길 이 없으니 포기한다. 그러기에 가슴이 아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무며 가노라니 한참 후에 좌측으로 ‘송학산장’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젖소 축사가 보인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 길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다. 축사 냄새가 나서 누가 이 산장에 들 것인가? 주위에는 김장용 배추가 짚으로 잎이 묶여져 빨리 속이 차라는 주인의 염원을 들으며 자라고 있다. 서리가 내리고 김장철이 되면 뽑혀져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진 다음, 새해 봄나물이 나올 때까지 주인에게 비타민 등을 제공하는 영양원이 될 배추... 한 포기 덥석 뽑아서 맛있는 된장과 젓갈 등으로 쌈을 싸 먹고 싶어진다. 좌측 송정마을 뒤에는 조그마하고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이어 고둔치 민박이 보인다. 여기는 쉴 만한 곳인 것 같다. 언젠가는 한번 와 보고 싶은 곳이다. 비가 올 것 같이 하늘이 흐려있으니 비가 오기 전에 산행을 마무리하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듯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듯하다. 이윽고 시멘트 포장길과 마을이 끝나고 비닐하우스가 나온다. 이어 비포장 흙길을 조금 걷다가 우측으로 휘어 내려서는 듯 오르면 부곡공원 관리초소에 이른다.


(2) 부곡공원 관리초소[입산통제소](4.1km) - 곧은치


부곡공원 관리초소는 입산통제소이기도 하다. 각종 화기를 소지하지 못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모두들 이에 따랐으면 한다. 혹시라도 잘못하여 산불이라도 나는 날은 이 좋은 산이 잿더미로 변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 치악산의 상징이기도 한 구룡사가 전소되었다는 비보도 있지 않았는가! 생각할수록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근무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비로봉 8.9km, 곧은재 4.1km, 부곡리 1.1km."라고 적혀 있다. 긴급구조신고말뚝 및 구조안내문이 있다. 신고전화는 033-732-5221 또는 033-119이란다. 차량진입을 금지하는 말뚝도 보이고, 수렵을 금지구역임을 알리는 안내문도 있다. 모두들 산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니 그냥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으면 한다.

부곡공원 관리초소에서부터는 계곡가로 난 오래된 임도 따라 진행하는데, 임도는 다리골 직전에 끊어진다. 임도는 제법 넓은 편이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장송들이 푸른 기운을 내뿜고 있어 상쾌하다. 계절의 감각을 잠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더구나 좌측 아래 개울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한참을 숲에 취해 걷노라면 긴급구조신고말뚝이 있다. “ 치악 04- 01.” 이어 돌다리가 나온다. 소나무가 길게 누워 자라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돌다리를 건너 완만히 오른다. 낙엽 쌓인 넓은 산책로 길이 시작된다. 낙엽이 비에 젖어 있어 운치를 돋우어 준다. 둔덕을 넘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작은 무명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시원해 보인다. 이어 평탄하게 진행하다가 오른다. 둔덕을 넘어 내려간다. 긴급구조신고말뚝이 있다. “ 치악 04- 02.” 다시 평탄하게 진행하다가 오르다가 평탄지대를 지나노라면 또 긴급구조신고말뚝이 있다. “ 치악 04- 03.”

이윽고 첫 번째 다리가 나온다. 이를 소위 다리골 다리라고 한다. 나무로 만들었는데 참 멋지다, 하나의 목공예 작품을 방불케 한다. 우측 다리골로도 산길이 나 있으나, 잘 이용되지 않고 있다. 이 다리골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골짜기의 비경 이어지고 있었다. 여름에는 피서객들로 만원을 이룰 것 같다. 이어 산허리를 돌아 진행한다. 낙엽이 많이 쌓여 푹푹 빠진다. 주위에는 푸른 산죽들이 보이는데,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의 풍기는 처량한 감을 조금이나마 상쇄해 준다. 돌무더기도 보이고, 맑고 깨끗한 물과 그 흐르는 물소리가 좋다. 이어 완만히 오른다. 다시 평탄한 지역을 지난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비로봉 6.8km, 곧은재 2km, 부곡리 3.2km."라고 적혀 있다. 어느덧 상당히 많이 온 것이다. 속도들이 제법 빠른 편이다. 이런 추세라면 오늘은 일직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어 완만히 오른다. 긴급구조신고말뚝을 만난다. “ 치악 04- 04.” 길에는 돌이 제법 박혀 있다. 여기서 길은 우측(북)으로 휘어 완만히 오르막이 된다. 이어 평탄하게 진행하다가 완만히 오른다. 길에는 역시 돌이 많이 박혀 있다. 낙엽도 제법 쌓여 있다. 큰 바위군이 있는 지대를 지난다. 이내 두 번째 멋진 나무 다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원통골이고, 여기서부터 고둔치까지 이어지는 골짜기는 신막골이다. 이 두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골짜기를 벗어나 억새밭과 잡목 숲길로 변하게 된다. 다리 바로 아래 냇가에는 일단의 산행객들이 즐겁게 대화하며 맛있게 오찬을 즐기고 있다. 부럽다. 상당히 일찍 왔나보다. 이어 약간 가파른 오르막을 진행하다. 이내 완만하게 진행한다. 이어 숲이 잠시 끝나는 것 같더니 억새밭이 나온다. 주변은 제법 공터도 있고 하여 운치있게 쉴 만하다. 우측으로도 희미한 길이 나 있는 것 같다.

아주 완만하게 오른다. 억새밭이 끝날 무렵 평탄한 곳이 있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비로봉 6.8km, 곧은재 1km, 부곡리 4.2km."라고 적혀 있다. 우측으로 낙엽송 숲이 울창한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폼이 마치 선녀들이 각선미를 경연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 오르막이다. 이어 우측(북서)으로 휘어 오른다. 낙엽송이 울창한 숲길이다. 은영씨가 올라온다. 금대봉 산행시에 정상덕씨가 선물해 준 지팡이를 지참하고 있다. 여기서 희한한 경험을 하였는데, 다름이 아니라 낙엽송의 짧은 낙엽이 떨어지는데, 마치 노란색의 향연을 베푸는 것 같다.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상상한 하더라도 황홀할 것이다. 이어 긴급구조신고말뚝을 만난다. “ 치악 04- 06.” 이쯤 되니 벌써 산에 취한 분들이 환성과 대화가 활발하고 경쾌하다. 특히 재준이와 준호 꼬마는 탄성을 지르고 기운이 펄펄 나는 듯 열심히 가고 있다. 무척 좋은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일찍 산을 안 것은 아마 행운이다. 그런 인식을 시켜 준 그 부모들의 선각자적 사고가 부럽고 칭찬할 만하다. 그 무슨 교육보다 좋은 것임을 자부하니 말이다.

잠시 내려가다가 얕은 개울을 지나 오른다. 이제 보니 이 계곡이 꽤 긴 편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물론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땀도 좀 흘려야 하므로 이제는 산행다운 산행을 하고 싶어지는 타임이다. 이어 완만히 진행한다. 낙엽송 숲이 울창하다. 다시 우측(북서)으로 오른다. 낙엽이 많아 운치가 그만이다. 비에 패인 길에는 돌들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잠시 해가 난다. 비가 올까봐 노심초사하는 중에 보는 햇빛은 아주 좋다. 여기도 낙엽송 숲길이라 낙엽송 잎 “비”를 만난다. 이어 일단의 사람들이 자리잡고 윤활유인 이슬이를 나누기 위해 둘러앉는다. 나는 이틀 전에 심하게 술을 한 적이 있어 별로 생각이 없어 그대로 진행하기로 한다. 너무 더워서 웃옷 하나를 벗어 배낭에 집어 넣은 다음 출발한다. 이젠 메모하면서도 선두그룹에 서기 위해서다.

이어 긴급구조신고말뚝을 만난다. “ 치악 04- 07.” 이어 덩굴나무 군락들이 무성한 지역을 지난다. 앞에 도치님을 위시한 선두들이 보인다. 이어 가파르게 오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 맛이 나려나 보다. 한참 후에 조림된 잣나무 숲에 이른다. 잣 알갱이가 한 두개 발견되기도 한다. 자세히 올려다 봐도 잣송이 하나 달려 있지 않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준호 초등학생이 뒤쳐져 있다. 아까는 그렇게 활발하더니 이제 좀 힘이 드는 모양이다. 이어 십여명의 여자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무슨 말인가를 열심히 하면서 까르르 웃기도 하는 양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이 보인다. 이어 긴급구조신고말뚝을 만난다. “ 치악 04- 08.” 이어 통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게 된다. 주변은 소나무 숲이다. 가파른 편이다.
이내 곧은치에 이른다.


(3) 곧은치(1.1km) ~ 향로봉


곧은치는 해발 860m로 모름지기 치악산의 안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지형도상은 840m 정도로 되어 있다. 곧은치는 또 십자로 안부인데, 올라온 방향(동)은 부곡리, 직진 방향(서)은 관음사를 지나 원주시 행구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우측(북)으로 오르면 비로봉으로 이어지고, 좌측(남서)으로 오르면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정표도 서 있는데, “ 관음사 2.1km, 비로봉 4.8km, 상원사 5.7km, 부곡리 5.2km."라고 적혀 있다. 돌로 만들어진 이정석도 보인다. 주등산로 안내도가 크게 잘 그려져 서 있다. 긴급구조신고말뚝도 있다. “ 치악 01- 20.” 영택씨와 도치님을 만난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른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아주 그만이다. 주변에는 억새와 잡목들이 보인다. 그리고 동쪽 아래로 일단의 푸른 소나무숲이 있다. 이 고둔치는 옛날부터 부곡리 주민들이 원주에 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로, 고개 양옆으로 길이 잘 나 있다.

곧은치에서 우측(북)으로 진행하여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에 또 다녀오고 싶어진다. 빨리 다녀올 수도 있지만, 오늘은 좋은 날, 우리 서울산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니 포기하여야 한다. 아쉽다. 겨우 4.8km만 가면 되는데.... 비로봉 쪽으로 오르는 일단의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한참 바라보다가 좌측(남서)으로 완만히 오른다. 이내 완만한 내리막이 된다. 곧 헬기장이 나온다. 전혀 예상치 않던 것이었는데.... 헬기장은 잘 관리되어 있고, 공터가 넓어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아 보인다. 주변에는 억새가 무성하여 좋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배어 있다. 이어 오른다. 초입에는 물이 나는지 길이 질다. 낙엽까지 쌓여 있어 미끄럽다. 앙상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 지역이다. 전방으로 향로봉이 우뚝 서 있다. 우측 아래로는 운무에 가린 마을이 얼핏 보인다. 나머지 풍경은 보이지 않아 유감스럽다. 김재중씨와 통순갑씨가 이슬이에 넣어 마실 더덕을 사냥하기 위하여 사면을 진행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많이 발견하기를 기원한다.

이어 평탄한 부분에 올라선 뒤 좌측으로 오른다. 가팔라진다. 이어 평탄지역에 이른다. 바위가 제법 큰 게 있고, 이정표도 서 있는데, “ 비로봉 5.4km, 상원사 5.1km."라고 적혀 있다. 다시 완만히 오르다 보니 가팔라진다. 이어 1,020m봉에 이른다. 길쭉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평평하다. 공터가 있어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을 듯하다. 이정표도 서 있는데, “비로봉 5.6km, 상원사 4.9km, 국형사 2.2km."라고 적혀 있다. 국형사로 내려가는 산행로에는 말뚜과 흰색 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다. 향로봉이 아주 가까이 와 있다. 이어 직진하여 완만히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른다. 이어 평탄지대가 나온다. 우측으로 운무가 사면을 타고 올라와 능선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이어 오른다. 이어 약간 경사가 가팔라진다.

드디어 오늘 산행 중 최고봉인 향로봉에 이른다.


(4) 향로봉(1.5km) - 普門寺


곧은치에서 여기까지는 시/군경계선을 따라 진행한 것이다. 즉 우측(서)의 원주시와 좌측(동)의 횡성군(강림면)이 그것이다. 향로봉은 해발 1042m라는 정상표시목이 뽑혀 있다. 회원들이 사진을 찍을 때 이 말뚝을 앞에 두고 이용했다. 화감암으로 제대로 된 정상표지석을 세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왜냐하면 향로봉도 치악산의 주요 봉우리이기 때문이다. 이정표도 서 있는데, “ 비로봉 5.9km, 성남리 9.8km, 상원사 4.6km."라고 적혀 있다. 긴급구조신고말뚝도 있다. “ 치악 01- 22.” 조망이 무척 좋다. 그러나 우측(서)으로는 운무 때문에 전혀 조망이 되지 않아 몹시 안타깝다. 좌측(동) 건너로는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능선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 능선에서 갈래를 치는 수많은 능선이 마치 어머니 젖무덤같이 부드러워 보인다. 북쪽으로는 정상인 비로봉이 우뚝 서 있다. 우측(남서)으로도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서 남쪽으로 솟아있는 향로봉은 원주시(행구동, 판부면)와 횡성군(강림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치악산 종주산행의 중간지점 으로 남으로는 남대봉을 북으로는 비로봉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곧은치 아래의 분지인 부곡일대도 조망할 수 있고, 금대리와 상원사 뒷봉우리인 망경봉을 조망하는 경관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바로 발아래로는 치악평전이 가까이 있다.
속칭 차령산맥, 산악인의 명칭상으로는 영춘지맥에 솟아 있으며, 매화산(1,084m),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1,288m), 남대봉(1,182m) 등과 연이어 있다. 능선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북서사면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경사이다. 동쪽에서 발원하는 물은 주천강으로, 서쪽에서 발원하는 물은 원주천으로 각 흘러든다. 맑은 물과 조릿대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수림이 계곡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며, 특히 능선을 따라 이루어진 억새풀밭과 갈대밭이 제철에는 장관을 이룰 듯하다. 주위에는 보문사 · 국향사 · 입석사 등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신다랭이, 행구재 저수지가 있다. 등산로는 행구동 - 관음사 - 곧은치 - 산정 - 능선마루 - 길아재 - 일론 - 금대리 코스와 행구동 - 국향사 - 보문사 - 주능선 - 산정 - 곧은치 - 행구동 코스, 그리고 부곡리에서 곧은치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 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잘 설치된 ‘ 치악산 경관 해설’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호국의 城地 嶺願山城’에 대한 것인데 그 내용을 보면 이러하다. “ 국가사적지 제 447호. 영원산성은 향로봉(1043m)에서 남쪽으로 약 2.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돌로 쌓은 성이다. 신라 문무왕(661-681) 때 축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三國史記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梁吉이 이곳에서 지내면서 궁예로 하여금 주위의 주헌, 예성 등의 고을을 지키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둘레가 3, 749척(12.37km)이며, 성안에 우물 1개와 샘 5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4km 정도만 남아 있다.” 좀더 정확한 고증과 복원을 하였으면 하고 제언하여 둔다.

정상에서 고래님과 이영주사장님은 남쪽을 향하여 돌아앉아서 담배를 피우신다. 마치 세파의 시름을 다 날려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몹시 맛있게도 피운다. 산행을 하여 허파꽈리가 완전히 개방된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면 아주 깊숙이까지 니코틴이 침투하여 허파꽈리에 혹처럼 붙어버릴 텐데.... 몹시 걱정이 된다. 모두 어린아이 마냥 뽑혀진 정상표지목을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도치님도 기묘한 몸짓으로 후배들의 사진을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후미그룹으로 올라온 약장수님도 많이 찍으신다. 모두들 우측(북) 조망이 운무에 가려 아쉬움을 표시한다.

나는 막간을 이용하여 건너편 봉우리에 다녀오기로 한다. 지형도상으로는 그쪽이 더 향로봉 정상인 것 같아 보이고, 실제로 삼각점도 있고, 해발 1042.9m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영춘지맥의 주요 봉우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향로봉에서 잠시 내려간다. 안부에 이르니 우측 아래로 넓은 사면에 억새로 무성한 지역이 보인다. 그 주변에는 쉬기에 좋을 듯하다. 이곳이 이른바 치악평전이라고 하는 곳이다. 금대리에서 영원사로 올라오다가 보면 멀찌감치 계곡안으로 마치 하늘의 정원 같이 보이는 곳이다. 억새가 정말 무성하게 자란 향로봉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하는 조금 넓은 평탄한 분지형 골짜기이다. 억새꽃이 한창 피고 있을 때에는 볼만한데. 11월 초순인 지금은 말라버려 그저 조금 허옇기만 한 억새들이 바람을 맞아 일렁이고 있는 다소 썰렁해 보였다. 옛날 언제인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강풍이 혹독하게 불던 어느 겨울날 치악능선을 종주하던 중 능선에서 숱한 바람에 부대끼다가 문득 바람소리가 먼 꿈속처럼 잦아지고 의외로 보료가 따뜻하게 깔린 방에 들어온 듯이 느껴질 정도로 더운 느낌을 주어, 경이로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치악평전에서 조금 내려가면 지척의 거리에 샘이 하나 있다. 그 샘은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서 평전의 넓이가 우물물을 공급하는 주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내려가지는 않았다.

안부에서 조금 오르니 건너편 봉우리이다. 삼각점이 있다. “ 안흥 456, 1989 재설.” 깃대와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돌탑이 보이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주변은 잡목숲이다. 여러 표지기들이 많으나, 특히 박성태 산성님의 영춘지맥 종주 표지기가 눈에 유별나게 들어온다. 여기서 또 표지기만으라도 뵈오니 감개가 무량하다. 그 분의 발자국이 지나간 곳이기에 어쩌면 신성스런 감마저 드는 봉우리이다. 언젠가 내가 답사해야 할 영춘지맥!!! 오늘 이렇게 일부나마 발로 밟아보았기에 가슴이 설렌다. 여기서 좌측(북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우측(남동)으로 영춘기맥이 장구하게 이어져 가고 있다. 기타 표지기로는 ‘대구청룡산악회’, ‘횡성군청산사모’, ‘대구청봉산악회’, ‘서울 세종고 11기 올라가줌’, ‘포항로얄’, ‘뫼솔산악회’, ‘서울 개봉동 매봉산악회“ 등이 있다.

다시 향로봉으로 돌아오니 아직도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이다. 일부에서는 점심을 먹자고 제안이 들어온다. 여기서 먹자는 파와 여기는 흙이니 어디 숲에서 장소를 물색하자는 파로 나누어 의견을 교환한다. 이윽고 리더진들이 장소를 물색하려 우측(남서) 능선으로 내려간다. 한참동안 제대로 찾지 못해 방황하더니 이윽고 그쪽 능선으로 내려오라고 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향로봉 정상에서 우측(남서)으로 내려간다. 잡목숲이다. 길은 비교적 뚜렷하다. 이어 잠시 오르다가 내려간다. 이어 공터가 나오는데, 잘하면 텐트 두세 동은 칠 만하다. 이 공터에서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기로 한다.

끼리끼리 둘러앉아 배낭을 풀어 입으로 넘길 만한 것들을 꺼내 놓는데, 정말 가관이다. 김재중씨의 봄에 뜯어 냉동보관하던 곰취, 멋진넘씨의 배추(김재국 리더가 고향 부여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소고기 장조림, 삽겹살, 오징어회, 젓갈, 김, 이슬이, 과일, 김치 등 산해진미가 다 모였다. 초등학교 소풍이 이보다 더 즐거웠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웃고 이야기하며 맛있게들 먹는다. 배추가 참 고소하다. 멋진넘씨가 직접 했다는 부침개도 맛있었다. 특히 멋진넘씨가 김치를 많이 싸가지고 오는 바람에 배낭에서 계속 냄새가 났던 것임을 여기에 추억거리로 적어 둔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의 정신으로 임하시는 두 내외분의 마음이 숭고해 보인다. 약장수님은 쨤을 내어 포즈를 포착하여 사진을 찍기에 열심이다. matroos님도 맛있는 걸 많이 싸 오셨다. 산꾼들만이 느낄 수 있는 산 정상에서의 오찬은 아마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신 분들은 그 희열과 맛을 모르리라. 땀을 흘리고 난 뒤 고귀한 대가로 접하는 음식은 바로 환희 그 자체인 것이다. 한동안 산상파티가 이어진 후 자리를 정돈한다. 마지막으로 멋진넘씨가 주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은 마무리하는 것 치고는 최상이었다. 그 와중에 이런 두 꼬맹이는 소나무에 올라가는 모습이 천진스럽다. 도치님이 이런 장면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다.

이윽고 자리를 다시 한 번 살펴본 뒤 내려간다. 이어 오르고 내리기를 두어 번 반복한다. 능선은 약간 날카롭다. 이윽고 바위를 지나고 우측(서)으로 가파르게 내려간다. 이제 운무가 능선마루까지 가득 차서 올라온다. 그 위를 걷노라니 마치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참 기묘한 경험이다. 여기서부터는 길 안내를 위하여 문대장이 선두를 선다. 가파른 내리막에는 잡목숲인데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 미끄럽다. 그렇다 보니 꼬마들을 위시한 몇 분들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여러 번 찧는다. 한 번 넘어질 때마다 막걸리 1통씩 내겠다고 천명하면 다시 넘어지지 않는 법인데...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계절을 웅변하고 있다. 나는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보문사도 둘러보고 싶어서 선두로 치고 나서 내려간다. 가면서 길이 애매하면 낙엽을 쓸어서 표시해 두었다.

이어 3갈림길에 이른다. 좌측(남서)으로 난 지능선 상으로 길이 좋게 나 있으나, 이를 버리고 우측(북북서) 능선으로 내려간다. 길이 낙엽 때문인지 조금 희미하다. 잡목 및 나뭇가지들이 몹시 걸리적거리고 성가시게 한다. 눈이 찔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낙엽은 역시 많다. 조금 더 내려가니 이윽고 전방으로 보문사가 눈에 들어온다. “전방에 보문사가 보인다”라고 에코를 보내주고 계속 선두로 내려간다. 이후 가파른 경사도 지나고 잡목가지들고 헤쳐 가면서 내려간다. 한참 후에 시냇물 소리가 들려 온다. 이내 남동에서 북서로 이어지는 소롯길에 내려선다. 우측 위로 보문사가 가까이 있다. 이어 우측(남동)으로 내려간다. 조릿대가 조금 보이고, 잡목숲이다. 이내 좌측으로 휘어 돌이 많은 지역을 조금 내려간다. 이어 개울을 건너 몇 발 오르면 아스팔트 포장이 된 도로에 이른다. 여기서 우측(동)으로 조금 올라간다. 마침 젊은 남녀 1쌍이 내려온다. 그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인다. 얼마나 좋을까? 이어 주차장이 나온다. 그 앞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상원사 5.8km, 향로봉 1.2km, 국형사 1.3km."라고 씌여 있다.

주차장 좌측의 계단길을 굽이쳐 오르면 건너편 용왕각에서 건너온 다리와 연결되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이르고, 좌측으로 몇 발 오르면 보문사에 이른다. 절 앞은 가파른 사면으로 되어 있다. 어떻게 절을 조성했는지 상상이 가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보문사에 들르지 않고 곧장 하산하여 버렸다.


(5) 普門寺(1.3km) - 國亨寺


普門寺는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에 있는 사찰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원주시 행구동이다.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순왕(재위 : 927∼935) 때 無着이 창건하였다. 그 이후에는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普門庵創記’ 에 따르면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중창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普門蓮社라고 불렀다. 1930년에 강상준이 중건하고, 1971년 주지인 李白蓮華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 산신각, 용왕각, 범종각과 범종, 요사채 등이 있다. 산신각은 대웅전 뒤에 있고, 용왕각은 전방 건너편에 있는데, 그리고 건너려면 출렁다리를 이용하여야 한다. 용왕각은 현판이 걸려 있지 않고, 또한 이 산 위의 절에 웬 용왕각이 있는지 의아스럽다. 유물로는 보문사칠층석탑이 유명하다. 이 석탑은 강원 원주시 행구동 산 105번지 대웅전 앞마당 입구에 서 있는데, 높이 1m 정도에 불과한 작은 탑이지만 현재 海印寺와 禁山寺 등 몇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것으로서 粘板岩으로 建造된 석탑으로, 신라 말기에 비롯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유행한 것이다. 일명 ‘普門寺 靑石塔’이라 불리며,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 9월 13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2개의 기단에 연화문을 조각하였고, 탑신석에 梵字가 새겨진 것이 특이하다. 1970년 무렵 옛 보문사 절터 위에 현재의 보문사 절을 신축하던 도중 땅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하였다. 2개의 기단과 1∼5층의 5개의 옥개석과, 2, 3, 4 층의 탑신석, 상대갑석·하대갑석은 본래의 것이나 나머지는 출토 당시에 새로 만들었던 것으로 원형이 아닌 것이다.

보문사 절 마당에서 청석탑을 자세하게 돌아보니 참 특이했다. 돌 색깔도 희귀한 것 같고, 그 규모의 작음이 마음에 들었다. 보문사에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탑을 못 보아서 평생 아쉬워할 것이다. 마침 요사채 앞 우물에는 보살과 일꾼 한 사람이 포도, 사과 등 과일을 잔뜩 물에 씻고 있었다. 무슨 귀한 손님이 왔는지. 제물로 쓰는 것인지는 모른다. 좋은 일에 쓸 양이면 중생구제의 원대한 마음이라면 우리들에게도 한 알 씩 권할 만도 하련만 아무런 말조차 없다. 우물 옆에는 ‘술이’라는 흰색 진도개 수놈이 철끈에 매여 있었는데, 몹시 사납다. 외로워서일까? 인간들에 대해 신물이 나고 썩은 냄새가 진동해서 싫어서일까? 몇 번 놀려보니 금방 이를 드러내면서 덥석 물어버릴 자세와 반응을 나타내니 재미있다. 계속 놀리고 싶으나 대장님 이하 여러 분들이 채근하는 바람에 그만 두었다. 출렁다리를 건너 용왕각으로 가 보니 역시 현판은 걸려 있지 않다. 그 도중에 우물이 보이고 물이 맑고 깨끗하다.

다시 보문사 절마당으로 돌아와서 도로로 내려선다. 이어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정상윤씨가 뒷걸음으로 빨리 따라온다. 빨리 내려가서 안주거리를 준비하려는 듯하다. 전방으로 원주 시가지 일부가 보이는데, 마치 시멘트를 갖다가 쏟아부어 놓은 듯하여 몹시 부조화스럽고, 괴물같이 보인다. 아마도 신성한 대자연에서 느끼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남은 단풍이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바르르 떠는 모습도 보인다. 낙엽송 숲 잎이 펼치는 노란색의 단풍도 곱기만 하다. 평범한 듯한 이 골짜기에도 향로봉 일대의 치악산 줄기가 눈에 들어오면서 영원골이나 사다리 병창 코스에서 본 치악산의 억센 기세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향로봉 일대도 제법 고봉다운 풍모를 갖춘 엄정한 자세로서 좌우로 험준한 능선을 거느린 채 독립불기의 거봉으로 웅립해 있는 모습이었다. 즉, 향로봉은 치악산맥 중 조금 평탄한 능선에 어쩌다가 조금 솟아오른 어쭙쟎은 능선상의 봉우리가 아니라 하나의 당당한 봉우리로 볼 수 있었다. 한참 후 행구동 매표소 겸 입산통제소에 이른다. 여기서 잠시 메모차 잠시 섰더니 정상윤씨는 앞서서 내려간다. 통제소 주변에는 치악산국립공원안내도와 국립공원입장료안내문이 보이고, 이정표도 있다. “ 보문사 1.3km, 향로봉 2.5km."라고 되어 있다. 주변은 거송 숲이 녹색의 향연을 베풀고 있어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어 내려간다. 이내 우측으로 국형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 3거리이다. 그러나 그 입구 길은 출입금지 되어 있다. 뒤따라 내려온 임영택 리더와 만난다. 옛날 등산 왔을 때 좌측 위 능선으로 올랐던 기억을 말해 주며, 국형사에 대해서도 미리 말해 주었다. 우측으로 돌아나가니 이내 국형사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이를 오르면 國亨寺다. 지형도에는 국향사로 되어 있으니 정정하여야 할 것이다.

국형사는 원주 동편, 치악산 향로봉 서쪽 끝자락 석경 마을의 고문골에 자리잡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원주시 행구동 98번지다. 國享寺는 國事亨通 즉 나라의 萬事가 잘 亨通되기를 기원하고, 나라의 享祀(향사)를 맡은 절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만으로도 국가와 관계가 깊은 절임을 알게 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절은 조선 태조 이래로 600여년 동안 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祭享해 온 것이다. 國亨寺는 신라 경순왕 때 無着대사가 창건하여 古文庵이라고 하였다 전하며, 일명 고문절(古文寺)으로 불리기도 하고, 웃고문절(보문사) 아래쪽이므로 '아랫고문절'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 태조때 대웅전 옆에 東岳壇을 쌓아 5악의 하나인 東岳神을 봉안하였다. 조선조 때는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리고 해마다 봄·가을에 강원도 관찰사를 비롯하여 원주, 횡성, 영월, 정선, 평창 등 6개 州郡의 원님들이 호국대제를 올리게 하여 국형사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요즈음도 해마다 原州雉岳祭 때에는 이곳에서 치악산신제인 치악제를 올리고 있다. 지금 東岳壇은 절 왼쪽 100m쯤에 있다. 1680년(숙종 6)에 왕명으로 중건하였으며, 1680년 이후 폐사된 것을 1907년에 碧河와 應松 스님이 중창하고, 1945년에 慈航 金城國대사가 중창하고 6·25후 폐사 상태인 것을 1974년에 全龍浩 주지가 다시 중수하였다. 그는 '도끼중' 소리를 들어가며 노송을 지켜 내어 원주 최고의 울창한 솔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의 공으로 인하여 주위의 노송림이 우거져 매우 인상이 깊었는데, 현재는 원주 시민을 비롯한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 좌측 아래로 주차장이 있다.

국형사 마당에 들어서니 동쪽으로 산을 등지고 선 대웅전이 마주한다. 대웅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에 팔각지붕으로서 높이 3,4m의 2단 축대 위에 서향으로 서 있다. 가운데로 난 계단을 오르니 바로 본당이다. 가파르지 않게 비스듬히 놓인 2층의 돌계단은 부처님을 뵈러 가며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듯하다. 이다. 원형과 사각의 서까래로 2층으로 올린 처마는 특별한 장식이 없어 더욱 단아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관음전이, 북쪽에는 요사채가 좌우로 모시듯이 서 있다. 대웅전 앞 돌계단 좌우에는 석등 두 개가 보이는데, 자그마하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으나, 자세히 보니 맵시가 있어 본당과 마당의 중간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을 켜면 사찰 안은 물론 온 세상을 밝힐 것만 같다.

관음전 뜨락을 남쪽으로 돌아가니 하얀 화강암 석불인 관음상이 이 사바세계를 굽어보듯이 서 있다. 높이 8.5m 정도인데, 좌대가 250㎝에 관음상이 6m쯤 되는 것 같다. 넓은 사각 기단 위의 하대석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단과 중단은 8각이고 상단은 커다란 복연 8잎으로 되어 있다. 하단의 폭은 210㎝에 높이 90㎝이고, 중단은 8각 8면이다. 상대석은 두 겹으로 된 8개의 연꽃잎으로 되어서 관음보살이 연꽃 위에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연꽃 보관을 쓰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관음보살상의 모습이 예쁘고 품위가 있는 한 여인을 연상케 한다.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물병을 아래위로 받쳐 든 두 손 손가락의 모습이며, 통견(通肩)에 늘어진 소매 자락에, 발밑까지 치렁치렁 흘러내린 法衣의 옷자락들이 너무나 살아 있는 듯이 생생하다.

국형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둘째딸 희희공주가 당시에는 불치병이던 폐병이 걸렸다. 온갖 약이 효과가 없자 원주 동악 보문암에 정양하며 발원할 것을 건의하였다. 여기서 요양하며 백일기도를 드린 끝에 완쾌되자, 공주는 환궁하여 보문암이 협소하니 대찰을 창건할 것을 주청하였다. 이에 보문암에 동악단을 쌓고 춘추로 호국대제를 봉행하게 하였다. 절은 조금 떨어진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짓고 이름을 國亨寺라 하였다는 것이다.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이처럼 국형사는 단순한 하나의 절이 아니라, 나라에서 국태민안을 빌어 오던 절이고, 지금도 해마다 강원도지사·원주시장이 제관이 되어 만사 亨通과 平安을 기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국형사에는 청동대범종 불사와 대웅전 증축 불사, 남북평화통일 대범종 종각 불사 등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고, 그 안내문들이 크게 서 있다. 일응 수긍이 가는 불사였다. 특히 청동대범종은 무려 1,000관이나 된다고 하니 대단하다. 국형사는 불교와 유교와 토속신앙이 3위1체로 융화되어 국가와 萬民의 所望을 祈願하는 수백 년의 전통 文化가 행해지고 계승되는 곳이다. 참 뜻깊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곳에 와서 빌면 그 영험(靈驗)이 치악산 골짜기를 넘어 원주 들녘에 퍼지고, 온 나라 안에 번진다고 한다. 나도 won과 같이 찾아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큰 所願을 이루어주시길 빌어 보고 싶다. 그 소망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배낭을 놓고 내려서니 정상윤 리더를 중심으로 회원들이 파티를 벌이려고 준비하고 있다. 정상에서 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말이다. 큰 용량의 페트병 이슬이와 2홉 들이 이슬이병들이 속속 드러난다. 삽겹살 즉석구이와 짜파게티 요리가 시작될 모양이다. 나는 별로 생각이 없어 그 막간을 이용하여 다시 국형사로 올라간다. 뒷꼭지로 정다운 얘기소리가 들린다. 전방으로는 노거송과 함께 국형사가 서 있다. 절의 좌측에 큰 창고 같은 건물이 있어 가 보니 화목이 쌓여 있는 화목 창고다. 수원에서 오셨다는 할머니가 거기에 계셨다. 입구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낯선 객을 보고 으르릉거린다. 우측 아래에는 맑은 물이 관을 따라 나오고 있다. 물맛이 깨끗하고 좋다. 이어 창고로 들어가 보니 소나무 통나무 등걸들이 잘려져 있고. 일부는 장작으로 쪼개어져 있다. 양해를 구하고 등걸을 도끼를 이용하여 장작으로 패기 시작했다. 꽤나 운동이 되었고, 절에도 불목하니로서 근로봉사를 하였으니, 국형사에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 믿는다. 할머니의 격려도 힘이 되었다. 그리고 관솔이 있어 잘 갈라지지 않는 것은 도끼로 홈을 낸 다음 쐐기를 박고 망치로 치니까 그 질긴 소나무도 이윽고 갈라졌다. 이것은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다. 새로 패 놓은 장작을 보니 스스로 대견해 보인다. 재미도 있었다.

한참 후에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그제서야 파티가 파장이 된다. 나도 양치질과 세수를 한 다음 버스에 오르려는데, 기념사진 촬영이 있다고 하여 거송 아래 바위에서 단체로 촬영했다. 약장수님이 먼저 찍고, 다시 문대장이 찍었다. 그래서 그 사진에는 두 분 중 어느 한 분이 없는 것이다. 뒷정리를 깨끗이 한 후 16시 30분에 국형사 주차장을 출발한다. 이어 17시 30분경에 여주(상) 휴게소에 이른다. 그런데 고향 시제에 다녀오시던 늘근소님이 20분 거리의 후방에 있다면서 연락이 온 모양이다. 문대장은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기다린다. 여기저기서 휴게소에서 기다리는 일보다 더 신경질 나는 일이 없다면서 짜증스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니 문대장도 조금은 당혹스런 표정이다. 그분들의 기밀을 위하여 여기서 그분들의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으련다. 조금만 양보가 필요한 대목이다. 결국 18시 10분이 되어서야 늘근소님이 나타나 인사를 한다. 그래도 보고 싶은 일념에 전화를 한 것인데, 그만 차가 막히는 바람에 그러했다며 사과를 한다.

이윽고 18시 15분에 여주(상) 휴게소를 출발한다. 비록 조금 지체했지만 우리 이용석 기사의 기지로 비교적 이른 시간인 18시 53분 경에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이어 양재, 강남, 논현역에서 잇따라 원하는 회원분들을 하차시킨 후 19시 38분 경 을지로 지하상가역에 이른다. 그런데 전태일 열사 기념 전국노동자 대회에 참석한 인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바람에 차가 잠시 거북이 걸음을 한다. 이어 종로 3가 국일관 앞에는 약 19시 50분 경에 이른다. 그냥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로 한 잔 했으면 했는데, 굳이 국일관 7층으로 오른다. 종업원이 없어 잠시 기다린다. 방을 배정받은 우리는 생맥주와 안주 일부를 시킨 뒤 각자 배낭에서 남은 음식을 몽땅 꺼내어 상을 푸짐하게 한다. 여기서 나는 서울산사람들의 새로운 모습을 목격했다. 멋진넘씨의 노래가 혼을 앗아갈 정도로 환상적이었고, matroos님의 옛 가락 실력도 가히 수준급이었다. 재준이 모친과 그 군단분들의 노래와 율동은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정상윤 리더의 천년바위는 내가 꼭 배우고 싶은 노래였는데, 혹시 누가 악보라도 구해 주었으면 좋겠다. 막내 은영씨의 두 곡도 영원히 고막에 남아 있는 듯하다. 약간 약주가 과했던 도치님과 김재중씨는 끝까지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중간에 살짝 도망간 측들도 있다. 내가 부르면 노래한다던 약장수님도 나의 어설픈 노래에 이어 한가락 구성지게 뽑는다. 모두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 서울산사람들의 노래를 약장수님이 작사하시고, 은영씨가 작곡하기로 하자고 건의가 있었는데 문대장이 이를 수용하였다는 사실이다. 한번 기대해 봄직하다. 그 노래가 탄생하는 날 국내 어느 산행 단체보다 제일 먼저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노래를 보유하는 단체가 될 것이라 확신해도 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거의 10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2주일 후의 창립 2주년 기념 산행을 기약하면서..... .




교통 :


갈 때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원주시로 들어가 안흥면, 강림면으로 해서 부곡분교로 진입함. 동서울터미널에서 안흥행, 안흥에서 부곡리는 시외버스나 택시. 손수운전은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42번 국도로 안흥·부곡리.

올 때는 82번 시내버스(하루 8회 운행, 첫차 06:00 원주역 앞에서 출발하는 것임)로 원주역으로 가서 열차를 이용하거나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됨. 승용차는 국형사에서 원주공고를 거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행구동낚시터를 지나 원주경찰서를 지나 중앙고속도로 남원주I.C로 진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