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台山 산행기



일시 : 2003. 11. 23. 日/ 맑음. 쾌청하고 비교적 포근함.

행정구역 : 忠淸北道 永同郡 陽山面. ; 錦山郡 濟原面.

출발 예정 시간/장소 : 07시 20분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제일은행 앞.

산행거리 : 총 6.4km.

산행시간 : 총 4시간 30분(11 : 20 ~ 15 : 50).

산행구간 :
    주차장(1.1km) - 寧國寺(1.5km) - 천태산 정상(1.8km) - 남고개(0.9km) - 寧國寺(  1.1km) - 주차장

※ 상세구간 : 주차장 ~ 삼단폭포 ~ 영국사 ~ A코스[75m 암벽코스] ~ 삼거리         ~ 천태산 정상~ 우측능선 ~ 전망석 ~ 남고개 ~ 영국사 ~ 주차장

지형도 :
- 1/2만 5천 伊院
- 1/5만 이원

회비 : 금 20,000원. 참가 인원 총 69명.



산행후기 :


오늘은 서울산사람들 창립 2주년 기념산행이라서 자못 의의가 있었고, 감회가 새로운 날이었다. 서울산사람들과 함께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과 금산군 제원면에 걸쳐 있는 천태산 산행을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본래 어제 여수지맥을 지난 구간에 이어서 산행한 후 올라와서 천태산 현지에서 이 산행에 합류하려 하였지만, 금요일(‘03. 11. 21) 오후부터 1박 2일로갑자기 양평리조트(031-774-8800 ; 011-9033-8481)에서 그룹임원 워크샵이 있어 부득이 여수지맥을 가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워크샵에 참석하였다가 어제 올라와서 오늘 아침 서울산사람들의 창립 2주년 기념산행에 합류하였다. 비록 천태산은 초보 시절 이래 여러 차례 가 보았지만, 오늘은 서울산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늦가을이라는 계절의 정취를 즐기고 암벽을 오르는 스릴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어 산행할 가치있는 산이라 나름대로 다시 가 보고 싶기도 하였던 산이기도 했다. 한편 앞에 가는 사람의 부주의로 돌이라도 굴러 떨어지면 뒤에 오는 사람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여야 할 것임을 밝혀 두고 싶다.

이번 산행은 비록 설악산 등에 미치지는 못하나, 제법 암릉과 바위들이 스릴을 주고 있고, 정상에서는 제법 양호한 전망을 제공해 주며, 조용한 산사인 고찰 영국사와 여러 문화재가 있어 역사기행에도 한몫 하며,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절의 운치를 돋우고 있어 좋았다. 비록 수량은 풍부하지 못하나 나름대로 깨끗한 계류가 바위 사이를 흐르고 있고, 낮은 산 이면서도 폭포도 볼 수 있고, 마지막 단풍들도 감상할 수 있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후회는 없는 산행이어서 다행이었다. 충북의 설악산이라고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오름길인 A코스는 암벽이 있고 내림길에도 암반들이 있어 다소 위험하여 초보자들은 조금 힘들었을 것이나, 로프와 안전시설이 비교적 잘 되어 있어 사시사철 산행지로 아주 좋은 곳이다. 특히 구기자술 등 막걸리등 먹거리가 좋아서 연인, 특히 가까워지고 싶은 연인과 함께라면 어려운 코스를 도와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다 보면 금방 친해질 것 같아서 금상첨화일 것 같다. 나도 계절을 달리 하여 다시 한 번 들러서 종주 코스를 답사하는 것을 숙제로 남겨 둔다. 행복은 가까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며 산행을 하고, 계절과도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맞아 주고, 산의 의젓함에 나의 숨소리는 고요해질 뿐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많아 다소 걸리적거렸으나 산 자체는 좋은 산이었다. 암벽을 타는 데 느낀 스릴감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을 것이다(박경화씨의 말). 유별난 산도 아닌데 웬지 정이 듬뿍 가는 산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민족 5000년 역사에 최대의 업적인 훈민정음을 이룬 세종임금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며 그를 도와 조선에 들어와 있던 당악, 향악을 정리하여 순수 우리 음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아악으로 태동시킨 3대 악성인 박연이 태어나 수학하고 조정으로 들어가 한국 문화사에 큰 획을 그은 고장인 영동에 있는 산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여기는 “양산을 가요 모링이 돌아서 양산을 가요, 난들 가서 배잡아서 양산을 가요. 잉어가 논다. 잉어가 논다. 양산 창포강에 잉어가 논다”의 양산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천태산은 전문 산꾼에게는 다소 싱거운 산일지 모르지만, 아기자기한 암반과 암릉을 갖추고 있고, 충북 영동에 있지만 고속도로와 국도로 바로 연결돼 한나절 여행코스로 진입하는데 손색이 없으며, 산행시간도 4시간 정도로 무리가 가지 않으므로 초심자나 가족, 연인끼리의 산행지로는 다소 이상적인 산이다. 그러나 천태산은 암산이므로 도중에 샘이 없어서 식수가 구하지 못하므로 등산을 시작을 할 때 충분한 식수를 고려하여야 하고, 살갗이 바위에 긁혀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여름과 겨울보다는 봄과 가을이 좋을 듯하다. 정상에 오르는 등산코스는 영국사 입구에서 모두 4개로 갈리는데, 이곳 양산면에서 약방을 경영하는 배상우씨가 정성들여 다듬어 놓은 A, B, C, D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중 관음길이라 불리는 B코스는 영국사로 직접 이어지는 가파른 코스로 최근 생태보호 차원에서 당분간 폐쇄되는 바람에 실제로는 3개이다. 미륵길이라 불리는 A코스는 천태산 최북단에서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코스로 밧줄을 타고 오르면 정상까지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원각국사길이라 불리는 C코스는 영국사 남쪽 약 200미터 지점의 원각국사비 바로 뒤로 이어지는 능선 길로 중간에 구멍바위가 이색적이고 이어 주능선으로 닿게 된다. 남고갯길로 불리는 D코스는 남고개로 이어지는 길로 대게 하산코스로 많이 이용되며, 절반쯤 내려오면 경사가 완만하고 아름다운 주변경관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다. 곳곳에 길 안내 팻말과 이정표, 그리고 굵직한 밧줄이 어떤 국립공원보다도 더 빈틈없이 잘 설치되어 있어 어린이나 초보자도 쉽게 산을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분의 향토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모름지기 모든 국민들이 이분의 향토애를 본받으면 우리 나라는 정말 환경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배상우씨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이 중 천태산 정상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재미있는 길이며 오른쪽 최북단의 능선 코스인 A코스를 선택하여 경사가 70도 정도 되는 수직 암벽도 타는 짜릿함과 스릴을 만끽하는 것을 비롯한 암릉을 오르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정상에 올라 서쪽으로 서대산,남쪽으로 성주산과 그 너머 덕유산, 계룡산, 속리산 등 시원한 조망을 즐긴 뒤 다시 조망이 좋은 능선을 탄 뒤 울창한 수림과 암반이 있는 D코스로 하산하였다. 산행의 재미를 최고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문대장이 이 코스를 선택한 것이 잘 한 일이었다. 그 뛰어난 혜안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나로서는 산행이 짧아서 조금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천태산은 원점회귀형 산행이다. 동순갑씨와 박경화씨 등은 옥쇠봉까지라도 갔으나 나는 시간이 없어 옥쇠봉까지 산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비교적 낮은 산 치고는 등산객이 매우 많은 편이어서 정체가 되는 것이 다소 흠이라면 흠이었다. 참고로 암반은 오를 때 보다 내려갈 때가 훨씬 위험하고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여, 하산시에는 가급적이면 A코스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바람직함을 여기에 특별히 언급해 둔다. 특히 초심자는 더욱 그러하다.

어제 워크샵에서 술을 많이 먹는 바람에, 아침 늦게 일어나 부랴부랴 배낭을 챙겨 나섰으나 지갑을 두고 온 것이 기억나서 되돌아가는 등 허둥지둥하다 보니 종로 1가로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지에 도착하니까 벌써 07 : 15이나 되어 있었다. 벌써 고려관광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버스가 2대나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분들도 많이 보인다. 역시 창립기념 산행답게 많은 분들이 호응하여 산행에 참여하여 대단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수지맥을 산행한 후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가 서울에 나타난 나를 보고 의아해 하는, 이미 나온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두 대의 고려관광버스 중 앞에 있는 차에 오른다. 일일이 현지에서의 합류계획의 변경 사유를 설명하느라고 다소 성가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모두 관심이 있어서였을 것이리라, 그저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버스 안은 오랜만에 만난 분들끼리 나누는 대화로 시끌벅적하였으며 정겨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고, 아울러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구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약장수님, 문대장, 정상윤, 임영택, 고래씨 가족 4분, 오승렬, 김재국, 도치님/멋진넘 부부, 늘근소님, 복남씨, 큰형님, 김재중님과 그 산행동료님, 이영주 사장님 부인, matroos님, 동순갑씨, 마음만산사람, 송민정씨, 짜총과 정대현씨, 가물치, 포천 사장님 부부, 연실낭자 군단 3분, 조약돌, 도토리, 이미경, 한혜숙, 송영칠선생님, 기타 이름을 모르는 여러 분들이 나와 계시다. 특히 matroos님은 오늘도 늦게까지 영업을 하시고 거의 주무시지도 못한 채 산행에 참가하신 저력을 보이시어, 서울산사람들과 산에 대해 가지신 심심한 애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은영씨, 재준이와 그 군단, 양인호씨, 김병훈씨, 쩡애씨, 뫼오름님 기타 많은 분들이 안 보여 아쉽다. 기념산행인데도 참여하지 못한 걸 보면 나름대로 꽤나 큰 일이 있거나 성의나 관심이 없어 그런 모양이다. 은영씨는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라고 하던가...

그런데 송민정씨가 제일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드디어 07 : 34가 되어서야 버스가 출발한다. 그 분은 오늘따라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이 보이는데도, 참석하는 걸 보니 정성이 대단해 보인다.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동안의 감회를 나누면서 정신이 없는 듯하다. 한참 후에 남산 1호 터널과 제3한강교 다리를 건너 양재 구민회관 근처에 이르니 아이비님, 동순갑씨, 박경하씨가 합류하고, 마지막으로 신갈에서 정상덕씨 외 2명이 합류한다. 참가인원은 총 69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참 대단한 숫자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버스 안은 활기찬 모습이다. 리더들의 산행 안내도가 배부된다. 이어 문대장님의 자세한 산행 설명이 오늘따라 기운차 보인다. 산행에 참여한 사람이 많아 북적이어서 기분도 좋고 감회가 새로워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말 솜씨가 많이 는 것일까? 하기야 창립후 2년이나 지났으니.... 여하튼간에 언제나처럼 오늘도 매우 듬직해 보인다. 특히 인사말에서 “서울산사람들을 그동안 거쳐 간 사람이 무려 200여명 이상이나 된다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이는 듯하기도 하였다. 문대장이 기념품으로 Aguamax sports towel을 준비하고, 늘근소님, 약장수님, 멋진넘씨 등이 가래떡을, matroos님이 비디오테이프를 선물로 찬조하였다. 모두들 고맙게 생각하고 챙긴다. 나는 우리 그룹 창업투자회사가 투자한 바 있는 ‘YMCA 야구단’ 테이프를 선택하였다. 정상윤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슨 시럽 용기같이 생긴 앙증맞은 용기에 담긴 ‘산사춘’ 술을 주어 기발한 아이디어에 놀라기도 하였다.

버스는 9시 00분 경 천안휴게소에 들른다. 아침 식사 및 산행 준비 시간을 준다. 끼리끼리 대화하면서 식사를 나누는 측도 있고, 커피를 나누는 분들도 있다. 정상덕씨가 준비한 귤 1박스가 개봉되어 골고루 나누어 준다. 복남씨가 배낭에 많이 숨기다가 정상윤씨가 큰소리로 폭로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김재중씨가 깎아서 도시락에 싸온 단감을 나누어 주어 맛있게 먹었다. 이어 9시 25분 경 천안휴게소를 출발한다. 이후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저 지독한 겨울 바람을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잠에 빠졌는데, 꽤나 깊이 잤나 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깨어나 보니 ‘영국사 입구’라는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간다. 민박집, 토종닭집 등이 보이는 등 정겨운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감의 고장답게 감나무에 홍수가 그대로 달려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러한 시골 풍경에 나도 모르게 도취되어 가가보니 어느덧 주차장에 도착한다. 모두들 하차하여 산행을 준비한다.

혹시 야속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오늘 산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늘근소님, 가물치님, 연실낭자군단 중 일부 등임을 여기에 분명히 밝혀 둔다.

(1) 주차장(1.1km) - 영국사

주차장은 옛날에 올 때와는 달리 넓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꽤나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어 천태산이 유명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차장 가장자리에는 주막집, 한잔집, 홍진집 등 음식점이 보인다. 저기 가면 맛있는 구기자 막걸 리가 있을 터인데... 천태산 등산안내도가 큼직하게 서 있다. 등산안내도에는 천태산 정상과 정상을 오르는 코스인 A, B, C, D코스와 능선들, 각 지점들이 잘 표시되어 있고, 등산소요시간(B코스는 폐쇄, A-C코스는 3시간 정도, A-D코스는 3시간 30분)와 주변관광지(송호관광지 7km, 옥계폭포 24km, 한천팔경[월류동] 46km, 물한계곡 69km)이 잘 소개되어 있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 주차장 주변 산에는 바위들과 푸른 소나무들이 어울려 환상적인 하모니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는 매표소를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 ‘대인 1,000원, 중고생/군경 500원, 소인 300원, 65세 이상 5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입산통제안내문이 있다. 날씨는 비교적 쌀쌀한 편이나, 쾌청하고 햇빛도 제법 따사하여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이다. 여기서부터 '충북의 설악 천태산 계곡‘이라는 석비가 있는 곳까지는 잘 정비된 넓은 도로가 나 있다. 잠시 시멘트포장길을 지나니 비포장 넓은 길이다. 약장수님이 앙상한 나무들을 대상으로 연달아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다. 참 대단한 열정의 사나이다. 이어 다리를 건넌다. 그 아래로 천태동천의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어 온다. 비록 수량이 적지만 한참동안 이 개울을 따라 오르게 된다.

이어 큰 공터를 지난다. 자연석에다가 ‘충북의 설악 천태산 계곡’이라고 쓰여 있는 석비가 있어 마음이 설레이게 한다. 우측으로 이제부터 산길이 시작된다. ‘영국사 700m, 천태산 정상 2,200m'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길 양쪽으로 웅장한 바위들이 보기 좋다. 우측 천태동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처럼 영국사로 오르는 길은 세속이 아니라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나무숲과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비록 여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풍경에 취할 만하다. 완만하게 오름길이 이어진다. 이어 3거리에 이른다. 우측 길은 영국사(0.6km), 삼단폭포(0.2km)로 이어지고, 좌측 길은 남고개(0.9km), 진주폭포(0.2km)로 이어진다. 우리는 남고개 가는 길을 버리고, 우측 길로 진행한다. 이어 좌우로 우람하게도 서 있는 바위들을 감상하며 진행한다. 그 이름조차 기묘한 ’삼신바위‘의 형상이 기이하다. 이어 둔덕에 이르니 바위지대로 되어 있다. 이정표도 있는데, “ 영국사 0.4km, 정상 1.9km, 주차장 0.7km"라고 되어 있다. 잠시 내려간다.

이내 삼단폭포에 이른다. 옛날에는 용이 승천한 곳이라고 하여 용추폭포라고 한 것 같은데, 아마도 이름을 다시 지은 것 같다. 물이 세 번에 걸쳐 떨어지므로 그 형상을 따서 지은 것이다. 적절하며 명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침 겨울철이 수량이 적어서 별로 위용을 보이지 않고 있어 아쉽다. 그렇다고 전혀 폭포다운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 수량이 많을 땐 우렁찬 물줄기를 토해내면서 멋지고 대단할 경관을 이룰 것이라는 뜻일 뿐이다. 나아가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몰릴 것 같은 곳이다. 그런데 어떤 여자 분들은 볼품없는 폭포가 멋있다며 감탄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폭포 위로 망탑봉 3층석탑으로 가는 다리가 보인다. 여기서 김재국 리더가 표주박으로 막걸리를 권한다. 짐짓 모른 체하며 “ 이게 뭐에요“ 하고 물었더니, ”제가 권하는 게 뭐 따로 있겠습니까?“ 한다. 언제 보아도 믿음직한 사나이다. 이제 한 아들을 낳아 어엿이 아버지가 된 모습이 늠름하다. 여느 때처럼 막걸리는 입에 맞다. 이어 우측으로 오른다. 개암나무, 때죽나무, 버드나무, 느릅나무, 고로쇠나무, 검팽나무 등으로 에워싸인 울창한 숲이 나온다. 영국사 일대의 단풍은 영국사 주차장에서 산사로 이어지는 1㎞남짓한 오솔길에도 이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특히 5월에 여기에 오면 온 계곡을 진동시키는 때죽나무 향기에 마음껏 취해 볼 수 있는데, 세상의 어떤 향기도 이 때죽나무 꽂 향기에는 비하지 못한다. 무어라 표현이 어려우니 상상에 맡길 뿐이다. 실제로 한번 가서 맡아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5월 하순이면 꽂이 지니 찔레꽃 피는 때와 거의 같으므로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옛날 어른들도 때죽나무 꽂필 때 그 그늘에서 잠자면 무병장수한다고 했었다. 만약 찔레꽂 가수 장사익씨가 때죽나무 향기를 직접 맡아 보았더라면 아마 때죽나무로 노래 제목이 빠뀌었을 것도 같다. 이윽고 철도 침목으로 만든 계단을 따라 잠시 오르는데, 가파른 편이라 땀이 난다. 그래서 하나 둘 회원들이 옷을 벗어 배낭에 걸거나 집어 넣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어디선가 아스라이 열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이윽고 고개마루에 이른다. 갑자기 전망이 트이면서 좌측 편으로 난데없이 논과 밭이 펼쳐지고 느닷없는 평지의 출현에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바로 전방으로는 그 유명한 은행나무와 영국사 그리고 그 뒤로 우뚝 솟은 천태산, 여러 채의 민가가 드디어 눈에 들어온다. 영국사에서 울려 퍼지는 염불소리는 마음에 평화로이 와 닿는다. 이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분위기이다. 이 고개마루는 능선안부에 해당하는데, 좌측(남)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는데, 그 소능선 상에 망탑봉 3층석탑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고개마루에는 한 아주머니가 음료수랑, 오뎅 기타 요기가 될 만한 것을 팔고 있는 간이천막으로 된 매점이 있다. 그 매점 뒤 우측 길목 철조망 울타리에는 전국에서 왔다간 아마도 수백개는 넘어 보이는 표지기들이 마치 서당낭의 금줄처럼 한 줄로 매달려 있다. 마치 전시하여 둔 것 같은데, 구경거리가 될 만할 뿐 아니라 장관이었고, 놀라게하기조차 하였다. 그 무수한 표지기들이 이 천태산을 찾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아울러 인기가 있는 것임을 묵시적으로 대변하여 주고 있었다. 전에 왔을 때는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참 이채롭고 경이롭기까지 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서울산사람들 표지기도 하나 매달았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문대장에게 그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않은 모양이다. 또한 고개마루에는 “망탑 250m"라고 쓴 팻말이 서 있다. 이를 보고도 아무도 망탑에 가 보려고 하지 않는다. 꼭 산행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다가 문화재가 있으면 보고, 명승고적이나, 천연기념물도 답사하는 게 나의 산행관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고개마루에서 좌측으로 잠시 오른다. 봉우리에 올라선 후 내려가는데 잔솔밭이 나와서 좋다. 이어 큰 암반을 내려서니 삼단폭포에서 올려다 보이던 다리에 이른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삼단 폭포는 색다른 광경이다. 수량만 풍부하였다면 멋진 광경을 보는 건데... 수량이 적어 조금은 아쉽다. 다리를 건너 오른다. 흙에는 서릿발이 서 있고, 갈비가 많이 쌓여 있다. 오름길 주변은 소나무숲인데, 청솔모란 놈이 잔뜩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호젓한 길이고 웬지 고향에 온 것 같이 정겹게 느껴진다. 한참 후에 넓은 화강암 암반으로 된 봉우리에 이른다. 그 입구에 예사롭지 않게 흔들바위가 있다. 힘껏 흔들어 보았지만 흔들리는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망탑봉 3층석탑 안내문에 소개되어 있다. 그 옆으로 200여 명 이상이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주위는 소나무숲이고 바위들이 다수 있다. 노간주나무 1그루가 이채롭다. 망탑봉 3층 석탑은 한 바위 위에 절묘하게도 얹혀 서 있다. 이렇게 탑을 만든 석공의 솜씨에 탄복할 따름이다. 세월을 말해 주듯 풍상에 깎이고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인다. 이곳을 구경하지 못하고 그냥 등산한 사람들은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바위 앞에는 안내석비와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에는 “ 영국사 망탑봉 3층석탑 : 보물 제535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소재, 영국사에서 500m 되는 곳에 일명 망탑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화감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자연암을 그대로 이용하여 암석을 평평하게 다듬어서 기단을 만들었다. 탑몸돌은 괴임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세웠고, 지붕돌은 다른 돌로 만들었다. 고려시대 중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2.43m이다. 이 탑에서 서북쪽으로 약 20m 쯤 되는 지점에 흔들바위가 있다. 크기가 6m, 높이 8m, 무게 10여t이다. 마치 고래가 헤엄을 치며 바다 위를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혼자 흔들어도 흔들려서 ‘흔들바위’라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 탑은 영국사가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서 각면에는 우주(隅柱)를 조각하고 중앙에 탱주(撑柱)를 하나 두어 양쪽에 眼象 하나씩을 음각하였다. 탑신은 屋身과 옥개(屋蓋)가 별도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옥신에는 우주가 정연하게 조각되었고 옥개받침은 4단이나 1층만은 5단이다. 3층 개석 중앙에는 지름 4.5cm의 擦(찰)柱孔이 있고 相輪 부분에는 寶珠 하나만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부도는 절 밖에 두고, 탑은 대웅전 앞 마당에 세우는게 일반적인데 왜 이 탑은 절 밖에 있는 것일까가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지금은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탑신에 사천왕 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탑은 보통의 절에서 마치 일주문 안에 사천왕상이 있듯이 영동 쪽을 향해 영국사 절 입구에 배치되어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깨어져 나간 부분을 보수한다고 시멘트를 마구 발라놓은 흉한 자국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심각하게 손상하고 있어 우리의 무신경과 무감각을 질타하고 싶을 뿐이다.
여기서 S자 코스로 살짝 돌아 나가면 진주폭포에 이른다. 왜 이름을 그렇게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름 자체로도 친근감이 와 닿는다. 암벽에 놓여 있는 쇠밧줄을 타고 내려서면 된다. 그리 크고 높지는 않다. 빙폭이라도 달고 있다면 볼 만 할 것 같다.

다시 고개마루로 되돌아와서 은행나무 쪽을 향하여 잠시 내려간다. 큰 공터에 이른다. 쉬기에 좋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가까이에 식수를 준비하라는 글과 식수대도 있다. 다리를 건너 永同 寧國寺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銀杏나무 고목에 이른다. 마침 우측 논에서 지게차가 소음을 내며 농지정리를 하고 있어 산사의 고요를 집어삼키고 있어 다소 불쾌하였다. 이 은행나무는 1970년 4월 24일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7,851m2. 수량 1그루. 추정 수령 약 550년. 지정사유 노거수. 국가 및 개인 소유. 나무높이 31m, 가슴높이 줄기둘레 11m, 가지퍼짐은 동쪽 7m, 서쪽 7m, 남쪽 13m, 북쪽 6m이다. 영국사 문에서 동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이 나무가 서 있고 앞은 논밭이다. 지상 2m 정도 되는 곳에서 줄기가 2갈래로 갈라졌으며, 동서 방향으로 35m, 남북 방향으로 32m로 퍼져 있다. 서쪽 가지 중 하나는 밑으로 자라서 끝이 땅에 닿아서 여기서 새로운 뿌리를 내린 후 나뭇가지가 자라 그 높이가 5m 이상이나 되고 가슴 높이의 지름이 0.2m가 넘는 것이 기이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은행나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전국 사찰에 있는 은행나무 중 최고령에 속한다고 한다. 은행나무 위는 바로 영국사 입구이니 바로 이 은행나무가 영국사의 수문장인 것처럼 굳건히 지키면서 버티고 있는 듯한 형세이다. 여기서 등산로는 4가지로 갈린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은행나무의 수령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하다. 600년 설이 있는가 하면 1,300년 설도 있는데,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은행나무는 국가에 큰 난이 있을 때에는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며, 이 나무 우측 바로 옆에는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고 있다. 가을이면 샛노랗게 물이 들어 주변의 경관과 하나로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며, 고즈넉한 절집 분위기를 한층 화려하게 가꿔 놓을 것 같다. 그리고 격년마다 많은 양의 은행이 열린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에 대한 얘기는 은행나무 밑에 웬 마을 주민인 듯한 노인들이 계시면서 사람에게 어디서 왔느냐며 말을 걸으면서 이 은행나무의 안내판은 잘못된 게 많다고 하며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과 안내판의 내용을 선별하여 정리해 놓은 것이다. 위의 부분이 10여m 잘려 나가고 북쪽으로 뻗은 가지가 부러져 나갔다. 1991년에 외과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보다 더 오래 되었고 더 굵다는 대목을 특히 강조하시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은행나무는 절의 창건 연대와 대체로 같으며, 절 앞에 은행나무를 심는 것은 절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화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인 화재예방과 관련하여 은행나무를 심는다고 설명한다. 풍경에 물고기를 매달아 놓은 것도 거기까지 물이 찬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며, 살아 있는 은행은 절대 불타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불이 나면 탄산가스를 내뿜어 불을 끈다고 한단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던 마을 주민들의 향토애에 고개가 숙여지고, 아울러 감사를 드린다. 한참동안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쳐다보고 하면서 생각이 난 것은 단지 수령 및 둘레가 얼마고 하는 것은 진부하다고 느껴지고, 다른 곳의 은행나무에서 볼 수 없는 사실로서 이 은행나무 큰 가지 하나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땅에 닿은 부분에서 다시 새순이 솟아 은행나무가 자라는데 그것이 가지냐, 아니면 다른 나무냐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러면 어떠냐 싶다. 은행나무 새줄기가 웅장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이 은행나무의 만세 십만세를 기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의 눈에는 은행나무 위에 무심한 까치가 지어 놓은 까치집이 들어왔다.
여기 은행나무 뒤로 조금 올라가면 영국사 입구이다.

(2) 寧國寺(1.5km) - 천태산 정상

양산팔경(강선대, 여의정, 용담, 함벽정, 봉황대, 구선대, 채하정, 영국사)의 제1경인 영국사는 천태산 동쪽의 자궁혈을 이루는 산록, 산세의 수려함이 빼어난 곳에 위치한다. 아늑하고 평화스런 분위기가 넘치는 것을 보니 명당임이 분명하다.


영국사가 위치한 영국동은 분지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산행의 기점인 주차장에서 협소한 계곡을 따라 올라서다 보면 계곡의 끝에 평지가 나올 것이라라고는 아무도 꿈에서조차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인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그런데 왜 鄭鑑錄秘訣은 이곳을 왜 十勝之地(풍기 예천, 안동의 화곡, 개령의 용궁, 가야, 단춘, 공주의 안산 심미곡, 진목, 봉화, 운봉의 두류산, 풍기의 대소백산)에 넣지 않았을까? 나의 소박한 견해에는 충분히 그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영국사 입구에는 ‘영국사 대웅전’ 안내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 2층 누각이 보인다. 옛날에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오늘은 메모를 해야 하기에 절을 미리 다시 관람하고 싶지만, 현재 가장 후미에 나홀로 떨어져 있어 시간이 없다. 앞에 간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할 수 없이 나중으로 미루어야겠다. ‘영국사 대웅전’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충북 유형문화재 제61호.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소재, 이 사찰은 신라 文武王 8(668)년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가 이름을 국청사라 일컬었고, 고려 고종 때에는 금당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내습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였으므로 이름을 영국사라 고쳤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집인데, 공포는 내, 외 3출목으로 쇠서 위에 연화를 조각한 조선 후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창방 위에 놓이는 평방은 건물의 측면 앞쪽에만 짧게 놓여 이 지방의 특징인 다포계 맞배집을 꾸미는데 흔히 볼 수 있는 구조형식을 취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다.

여하튼 영국사는 분명치는 않으나 신라 제30대 文武王 8(668)년에 圓覺國師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제32대 孝昭王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제23대 高宗 때 監役 安鍾弼이 왕명으로 탑 · 부도 · 金堂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國淸寺라고 하였다고도 하고,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창건한 절로 원래 이름은 국청사였다고도 하는데,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에 元나라의 홍건적(紅巾賊)이 개성까지 쳐들어와 공민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몽진(蒙塵)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무찌르고 開京을 수복하게 되자 공민왕이 기뻐하며 부처에게 감사드리고 떠나면서 이곳에서 국난을 극복했다 하여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었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洗師國師가 산명을 지륵, 절 이름을 영국이라 명명하였다고도 전한다. 창건자와 절 명칭에 대하여 이토록 혼란한 설들이 분분하고 있는 바, 몹시 헷갈린다. 조속히 정비하였으면 한다.
영국사에는 수령이 약 550년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보리수 아래 이끼낀 영국사 3층석탑(보물 제533호), 영국사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 망탑봉 3층석탑(보물 제535호), 영국사부도(보물 제532호) 등 문화재가 많다. 절집을 대숲이 둘러싸고 있어 이채롭다.
본래 天台山은 중국 浙(절)江省의 동부를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있는 구릉형의 천태산맥의 주봉으로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華頂山이라고 하며, 國淸寺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이 있어 중국 불교의 일대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天台宗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고, 隋나라 때 지의(538~597 자는 德安 속성은 陳, 천태산에서 10여년간 수행하고 수나라 陽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智者大師의 호를 받았으며 저서로 摩하止觀을 남김)선사가 천태종을 연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나는 이곳 영동의 천태산과 영국사의 옛이름 국청사는 중국 천태산과 그 산에 있는 국청사의 이름을 빌려 와서 명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사 입구 ‘영국사 대웅전’ 안내판에서 우측 비포장 도로로 진행한다. 소위 말하는 미륵길인 A코스를 타기 위해서이다. 저 멀리 정상의 전위봉이 나를 부르는 듯하다. 선두는 아마 벌써 75m 암벽 코스 부근에 가 있는 듯하다. 서둘러야 한다. 좌우측으로 논과 밭이 나온다. 조금 오르니 시멘트 포장이 된 도로가 나온다. 좌측으로 민가가 보인다. 양지바른 곳에 일단의 사람들이 쉬면서 먹으며 담소하고 있다. 새끼를 낳아 아직 젖을 떼지 않는 암캐 한 마리가 젖을 축 늘어뜨리고 양지에서 햇빛을 즐기면서 하품을 해대며 잔뜩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참으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조금 후에 간이 화장실에 이른다. 도로는 계속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여기서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오른다. 몇 개의 계단이 잘 정돈되어 있다. 이제부터 정식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천태산 등산로 A코스 안내판이 있다. 정상까지는 1,370m라고 되어 있다. 제대로 오르면 1시간이면 족한 것이나, 이것저것 보면서 가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좌측 민가 뒤에는 왕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침목으로 된 계단을 오른다. 소나무 숲이 아주 울창하여 시원하다. ‘산불조심’, ‘자연환경보호’라고 쓴 현수막이 보인다. 좌측에 묘지가 3개 있는데, 잘 관리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넓어 쉬기에 좋다. 그리로 출입금지 팻말이 서 있다. 어느 안내도에 보니 이 묘들이 송판서 묘라고 하는데, 판서의 묘 치고는 초라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내 3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가는 길은 누교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누교당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좌측(서)으로 오른다. 이내 등산로 개설자의 인사말 안내판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매우 정겹게 느껴진다. “이곳을 찾아오신 등산객 여러분 환영합니다. 안전등산하시어 좋은 추억 간직하시고 즐거운 하루를 등산으로 마음껏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등산로를 힘들여 가며 개설한 것만 해도 감사할 진대 , 이렇게 인사말까지 하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런 분이 없었다면 천태산은 이렇게 유명해지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참으로 사람 한 분의 희생과 봉사 정신이 이렇게 큰 일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경이롭지 않다. 바로 그것은 첫 고개마루에 올라섰을 때 눈에 보이던 표지기의 전시물을 보면 미루어 알 수 있으리라.

가까이에는 또 등산코스 휴지통을 개조해 만든 안내도 보관함(옛날에는 전자밥통을 놓아 두기도 했음)도 있다. 필요한 사람이 꺼내어 갈 수 있도록 비치되어 있었다.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친절함이 배어 있는 일이다. 감동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참 대단한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가 그분에게 임하기를 기원한다. 금호약방, 천태산악회라고 적혀 있다. 모두가 산행에 유용하게 사용할 터이리라. 세상의 모든 길마다 이렇게 뜨끈뜨끈한 밥통에 밥이 가득 담겨 있거나, 험하고 어두운 세상을 헤쳐 나갈 나침반과 지도를 비치하여 지나는 길손을 기다린다면, 그야말로 이 땅의 민초들이 오매불망 염원해 오는 미륵의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라고 제언하는 분도 계시다. 아주 동감이 가는 지적이다. 이어 긴급구조연락말뚝이 있다. “천태산 - 1”. 연락전화는 043-119이다. 우측으로 민가가 보인다. 이어 바로 울창한 소나무숲이 된다. 너무 기분이 좋다. 잠시 완만히 오른다. 이어 조금 가팔라진다. 뿌리가 드러난 소나무 숲 아래 황토흙길을 밟으며 오르니 무척 상쾌하다. 이어 이정표가 나온다. “정상 1,200m, 주차장 1,400m." 잠시 후에 작은 공터에 이른다.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을 듯하다. 직벽바위까지의 등산로는 보편적인 산길 같았고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어 좌측으로 오른다. 조그마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앙증맞기도 하려니와 그 정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윽고 큰 바위 앞에 이르니 “정상 1,100m”라는 이정표가 있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오른다. 암반이 나오면서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공터가 조금 있는 곳에 이른다. 노간주나무가 이채롭다. 부부가 정겹게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같이 산행하는 것을 보니 무척 부럽다. 나는 지금 홀로 산을 오르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 나혼자 뒤처져 오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좌측으로 오른다. 암반이 나온다. 로프를 타고 오른다. 신이 난다. 로프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우회해도 되지만 바위를 타고 그대로 직진하여 진행했다. 이어 넓은 공터가 나온다. 소나무숲이다. 주위로 보이는 바위 모습들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질서 정연하다. 내려다 보이는 전망도 눈아래로 펼저지는 파노라마는 영국사와 은행나무, 비포장도로, 영국사 경내로 들어오는 산행객과 그 아래 주차장, 앞산 암봉과 옥쇠봉 산기슭 등 장관이었다.

이어 우측으로 오른다. 점점 길이 가팔라진다. “정상 900m”라는 이정표를 지난다. 우측은 암벽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어 3갈림길에 이른다. 이원로타리클럽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위험, 노약자나 어린이는 좌측으로 돌아가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그 설치한 정성이 고마운 일이다. 이어 직진하여 오른다. 가파르다. 이어 굉장한 암반지대가 나온다. 경사가 급하다. 긴 줄의 로프가 연달아 네 개나 튼튼하게 설치되어 있다. 스릴을 만끽한다. 다 오르고 나니 “정상 800m”라는 이정표가 있다. 공터가 있는데 쉴 만하다. 주변은 소나무 숲이고 바위가 있다. 뒤돌아 조망을 즐긴다. 영국사 일대와 은행나무, 민가들 등이 그림같다. 멀리 옥쇠봉도 눈에 들어온다. 이어 긴급구조연락말뚝이 있다. “천태산 -2. ” 좌측(북서)으로 오르면 드디어 그 유명한 75m 직벽 암벽 코스 앞에 이른다. 팔 힘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기회로서는 아주 좋으며, 또한 한바탕 땀을 흘릴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전문 산꾼은 아니더라도 두둑한 배짱과 어지간한 경력이 없으면 오르기 힘든 위험한 지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겨울이나 비가 와서 미끄러울 때는 특별히 주의를 요할 것 같다.

직벽코스 앞에는 공터가 조금 있고,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느라고 길게 줄을 서 있다. 초보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올라가 보려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너무나 지루한 느낌이 든다. 앞서 있는 사람들이 좀 양보해 주기를 바랐으나 꿈도 꾸지 말라는 투다. 정상윤 리더가 1차 로프가 끝난 지점에서 회원들의 등반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공터에는 “ 암벽 코스 정상 620m, 안전코스(우측) 정상 720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앞에서 한참을 갈등하다가 우측으로 우회해서 안전하게 등산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영동군수가 세워 놓은 경고문이 재미있다. “ 이곳은 대단히 위험한 75m 암벽 등산로입니다. 급경사이므로 노약자, 부녀자, 초보자는 우측 안전 등산로를 이용하시기 바라며, 암벽 등산시에는 안전시설물(로프, 철주)를 확인하고, 안전사고 예방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위험! 로프는 1명씩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어찌보면 친절한 것 같고, 어찌보면 유치한 것 같다. 그리고 이원로타리크럽의 우측으로 돌아가라는 안내문도 보인다. 좌측 아래로 공터가 보이는데, 거기에는 바위에 청색 휘장을 치고 끈을 묶어 두었다. 무엇인가 궁금하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어 1단계 로프를 잡고 수직 암벽을 오른다. 군대 시절의 유격 훈련이 생각난다. 시간이 너무 걸려 안타까웠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이 이용해서인지 철심이 바위를 갉아 낸 모습이 대단하다. 자주 안전점검을 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처음 발딛기가 힘들지 그 다음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이어 로프 끝 지점에 있는 작은 공터에 이른다. 우측에도 바위가 있다. 이어 좌측으로 이동하여 2단계 로프를 타고 오른다. 경사가 약 70도나 되는 듯한 가파른 암반이고 긴 편이다. 그러나 길이 분명하고 좋기 때문에 오늘같이 맑은 날에는 굳이 로프에 의지하지 않아도 오를 수 있었다. 이에 나는 앞사람들이 걸리적거려 원래의 루트를 벗어나 바위를 타고 그대로 올랐다. 마냥 스릴이 있어 좋다. 그러나 실수를 하여 실족이라도 하는 날에는 최소한 중상일 것 같다.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시커먼스님이 여기서 힘이 빠져 우리 회원이 거꾸로 타고 내려와 구조하였다는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힘이 많이 없어진 모양이다. 빨리 회복하기를 기원드린다. 로프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좌측은 폐쇄등산로이고, 우측은 정상 등산로이라는 팻말이 있다. 좌측으로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통제되어 있길래 마음을 억누르며 이를 참아낸 다음 우측으로 진행한다. 우측 아래로 은행나무 멀리 산들이 지나온 그리움처럼 펼쳐지고 있다.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면 이내 큰 바위를 우회하게 된다. 이어 오르막이 된다.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응달이라 서릿발이 서 있다. 로프는 잘 설치되어 있는 편이다. 이어 3갈림길에 이른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안전등산로/하산로와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오른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표지기들이 많이 보인다. 잠시 흙길이 나오더니 이어 암반이 나온다. 로프를 잡고 오른다. 이어 넓은 암반이 나온다. “정상 500m”라는 이정표와 긴급구조연락말뚝이 있다. “천태산 - 3.”.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우측으로 정상이 보이고, 뒤로는 영국사와 그 일대의 조망이 좋다.

여기서 우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곧 가파르게 변한다. 이어 잡목들이 뭉쳐 있는 바위지대를 통과하게 된다. 이어 좌측으로 평탄지대를 지난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서원대학교에서 설치한 산불조심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강산에씨의 표지기가 보여 무척 반가웠다. 다시 가파르게 오른다. 바위지대이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잡석으로 뭉쳐져 있다. 로프가 끝나니 바위길이 이어진다. 주위는 신갈나무숲이다. 이어 3갈림길에 이른다. 좌측 길로 가면 공터가 있는데, 거기에는 언제 올라온 사람들인지 인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우측길로 오른다. 잠시 뒤에 공터에 이른다. 주위는 신갈나무숲이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정상 200m”라는 이정표와 “천태산 정상 0.2km, 남고개 1.6km[C, D코스 하산로]”라는 이정표가 있다. 내가 올라온 코스가 A코스 하산로이다. 바로 좌측 아래 공터에는 조금 전에 보았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있다.

여기서 정상으로 가려면 우측으로 진행해야 한다. 우측으로 잠시 내려간다. 완만하다. 이내 오름길이 되는데, 참나무 및 신갈나무 숲이 멋지다. 낙엽들이 떡가루가 되다시피 되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많았던 증거이다. 하도 밟으니 가루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마주친다. 그래서 허전하지 않아서는 좋으나 서로 비켜 가노라니 매우 성가신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 진로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얌체족들도 있어서 때로는 짜증이 쌓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있어 활기를 느끼니 좋다. 이어 길은 좀더 가팔라진다. 한참 후에 돌탑에 이르고 이내 정상에 도달한다.

(3) 천태산 정상(1.8km) - 남고개

해발 714.7m. 우측(동쪽)의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와 좌측(서쪽)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의 경계에 걸쳐 있어 도경계선을 이루니 의의가 자못 깊은 산이다. 주변에 유서깊은 고찰인 寧國寺를 비롯하여 양산 8경의 대부분이 있을 만큼 산세가 빼어나 충청북도의 설악산이라 불리는데 손색이 없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비록 자그마한 산이나, 635m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지능선은 기암으로 이어나간 암릉 길에, 조망이 매우 좋다. 대둔산, 천등산, 모악산, 말의 귀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마이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서대산,남쪽으로 성주산과 멀리 대덕산, 민주지산, 덕유산, 설천봉 아래 스키장 슬로우프, 남덕유도 아스라이 보이고, 계룡산·속리산까지 보인다. 백운산에서 황학산까지 길게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도 우람하게 서 있는 것이 잘 보인다. 정말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산의 바다들, 구름 한점 없는 검푸른 하늘을 본다. 수목 사이로 이제 막 올라왔던 A코스의 능선 상에 있는 바위 절벽들이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망을 실컷 즐겼다. 눈이 시리도록 말이다. 비록 짧은 계곡인데도 삼단폭포와 진주폭포가 있으며, 봄이면 진달래, 벚꽃이 온 산을 장식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좋은 산이라서 좋은 산이다. 나는 햇볕이 밝게 비치는 이곳 정상에서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마음 속에 있던 잔시름을 훨~ 훨~ 새처럼 떨쳐 버렸다.
정상은 북동 - 남서 방향으로 길쭉하게 생겼는데 비교적 평탄하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삼각점이 있는데 ‘ 302 복구, 건설부 1974. 9. 복구“라고 적혀 있다. 깃대와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은 잡목숲이다. 억새들이 무성하고 돌이 많이 박혀 있다.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나무들을 잘라낸 것이 다소 안타깝다. 정상 끝지점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금산군 연합 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다. ”천태산 해발 714.7m. 충청북도 금산군“이라고 되어 있다. 그 옆에는 화살 모양으로 생긴 알루미늄으로 정상표지석이 있다. 1997. 11. 6. 재구미영동군민회가 세운 것이다. 그 모두 수고를 하였다고 찬사를 드리고 싶다. 그 무거운 것을 운반하여 세우려면 여간 정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 여겨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있다. 무심코 보면 그 흔적마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 너머로 돌탑이 또 있다. 정상에는 또 이채롭게도 방명록이 있다. 밑부분에 서랍 부분에 보관해 두는 모양으로서 필요한 사람은 꺼내서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게 되어 있었는데, 산을 사랑하는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다. 사람들이 무슨 공명심에서인지는 모르나 서로 쓰느라고 야단들이다. 유치해 보인다. 그리고 산에 와서 기본적인 예절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나를 슬프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 옆면에는 노산 이은상이 지었다는 산악인의 선서가 적혀 있다. 그 내용은 “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천태산악회.”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나옹선사가 지었다는 ‘바람같이 물같이“라는 시도 적혀 있다. 그 내용은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은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라는 내용인데, 정말 그 숨어 있는 뜻이 너무 좋지 아니한가! 전에 왔을 때는 방명록 옆에 "산은 詩, 시는 人生" 높은 곳에 오를수록 깊은 마음, 깨끗한 마음은 우리들의 마음이란 글귀가 있어 몹시 마음에 와 닿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방명록이 있는 좌측에 "대성산 종주코스 소요시간 5시간" 이정표도 보인다.
정상에 막 도착하니 우리 회원들 중에서는 이미 내려가는 분이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분들은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여념이 없다. 맨 후미로 내가 올라왔는지, 혹은 없어졌는지, 사고나 나지 않았는지는 아무런 안중에도 없는 듯하였다. 그렇게 무심한 마음이 흘러나 가는가 보다. 그럴 것이다. 사람이 너무 자기 주위의 사람에만 몰두하거나 자기 영역에만 열중하다 보면 타인에게는 조금 유치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조금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영주 사장님의 부인과 포천 사장님 내외도 거뜬하게 정상을 올라오신 것이다. 그분들은 연세에 비해 산을 잘 올라오시는 편인데, 그래서 그분들을 보노라니,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며, '나이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산에 오르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나게 한다.
본래 정상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으나 바람도 불고, 사람도 많이 붐비어서 그런지 모두들 하산을 하는 분위기다. 내려가다가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여 점심을 먹을 모양이다. 아마도 이 정상에서 다른 이들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짜낸 문대장님의 아이디어인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이 참 깊다.

이곳 정상에서 북쪽으로 대성산 및 장용산까지 종주(약 7시간이 걸린다고 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이 길은 이미 대전에 사시는 산악인인 강산에씨가 2002. 4. 5. 종주한 바 있다. 천태산(2.68km) - 서대산 갈림길(2.5km) - 709m봉(2.36km) - 대성산(2.01km) - 매봉(2.85km) - 574.0m봉(1.16km) - 장용산(2.40km) - 휴양림 관리사무소의 코스이다. 참조할 지형도는 2만 5천분의 1 및 5만분의 1 공히 “이원”이다. 그러나 오늘은 부득이하므로 이것 또한 숙제로 남겨 두기로 하고 정상에서 되돌아서서 아쉬운 발길을 내딛으며 내려간다. 초입은 가파르다. 여전히 정상을 향하여 올라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질 줄을 모른다. 이어 완만하게 진행하여 조금 전 정상 200m 전인 공터에 이른다. 이어 우측(남)으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에 이른다.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다. 정상에서 여의치 않으면, 2차로 여기를 점심 먹는 장소로 계획했으나, 여기도 사람들이 너무 많고 혼잡하여 포기하고, 다시 더 진행하다가 공터를 잡아 식사를 할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있다. 오로지 먹는 게 목적이나 되는 듯하다. 나는 공터를 지나 우측으로 잠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좌측으로 오르니얕은 봉우리에 이른다. 다시 내려가다가 오른다. 다시 봉우리에 이르러 잠시 내려간다.

이어 엄청나게 넓은 공터가 나온다. 정상에서 약 390m 정도 되는 지점이다. 소나무들과 잡목이 무성한 가운데, 억새들이 무성하여 분위기를 돋우는 곳이다. 여기서 우리들의 식사 파티가 벌어진다.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무거운 것을 용케도 짊어지고들 왔다. 집집마다의 음식 솜씨가 다 드러난다. 나는 일부러 싸오지 않았다. 너무 과식하는 것 같아서이다. 무리지어 끼리끼리 둘러앉아 웃고, 이야기하며, 먹고 마신다. 아침이 부실해서 시장해서 그런지 모두들 잘도 드신다. 대현씨가 준 삼지구엽초로 담근 술이 이채롭다. 설악산 암벽 등반시 바위 틈에 자라는 귀중한 약초로서 약간 쓴 맛이 나면서도 독특하다. 처음 맛을 보는 것이라 신기하다. 이어 아이비님의 Mr Theron 포도주도 일미였다. 복남씨가 가져온 매실 짱아치도 구미를 돋우었으며, matroos님의 커피는 맛있는 점심의 마무리를 잘 하게 해 주었다. 여기서 나는 눈은 즐겁고, 입은 맛나고, 다리는 튼튼해지고, 그리고 경제적인 취미라면 등산 외에는 없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여기서 동순갑씨가 옥쇠봉까지 산행하자고 나에게 권하였으나, 내가 메모를 하여야 하므로 시간이 여의치 않다고 하니, 그는 혼자 먼저 출발하였다. 박경화씨 등도 따라 내려가는 것 같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 시간도 어김없이 흐르는 법인가 보다. 이윽고 우리는 자리를 정돈하고 배낭을 챙긴다.

여기 공터에서 내려간다. ‘정상 400m“라고 쓴 팻말을 지나 돌이 박힌 길을 내려간다. 남고개가 저 아래로 빤히 보이고, 옥쇠산 정상도 눈에 들어온다. 우측 아래 계곡에는 석산을 개발한답시고 돌을 마구 캐어내어 산을 엉망으로 뭉개 놓는 바람에 능선이 잠식되어 있어 보기에 불쾌하다. 이어 로프가 설치된 곳이 나온다. ”사고 발생구역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다. 우측으로는 가파른 암반이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가파른 지역이다. 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다. 로프를 잡고 내려가니 잠시 평탄한 곳이 나온다. 이어 완만하게 내려가다 보니 ”정상 600m“란 팻말을 지난다.

이어 헬기장이 나온다. 넓은 공터에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다. 옛날에 왔을 때는 여기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도 많았었다. 주변은 잡목 및 소나무숲이다. 조망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완만한 바위능선 길과 바위 자락에 터잡은 소나무숲을 만나는데 거의가 절경이었다. 여기서 완만히 내려간다. 등산로는 아주 좋은 편이다. 마사토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이어 안부에 이른다. B코스(폐쇄 하산로), 남고개 1,018m, 영국사 1,912m, 주차장 3,118m, 천태산 정상 등산로 782m 등의 이정표가 있고, B코스는 자연훼손이 심해서 다년간 휴식차 폐쇄했다는 안내가 되어 있는데, 전에는 철조망도 쳐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이어 오른다. 긴급구조연락말뚝이 있다. “천태산 - 8.”. 좌측에 원각국사비와 부도로 이어지는 C코스 하산로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 D코스 하산로 방향으로 오른다. 이어 암봉에 이른다. 다시 우측으로 내려가니 잠시 후 평탄한 지역이 나온다. 잡목숲이다. 이어 내려간다. 소나무숲이다. 이어 큰 바위가 있는 평탄한 곳에 이르니 “정상 1,000m, 영국사 1,700m, 주차장 2,900m"라고 적힌 이정표가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또 이정표가 나오는데, “정상 900m, 영국사 1,800m, 주차장 3,000m"라고 적혀 있다. 중키의 소나무 숲을 기분좋게 진행한다. 길이 좋다. 이어 암릉길이 되면서 좌측은 가파른 바위 절벽이 아찔하게 한다. 아기자기하고 절경이 일품이다. 이어 전망이 좋은 암반에 이른다. 좌측으로는 영국사와 주차장이 보이고, 전방으로는 금산방향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과 옥쇠봉이 우뚝 보이고, 우측으로는 계곡이 보인다. 이어서 당분간 암반길이 계속된다. 위험한 길이라 조심하느라 다소 지체가 된다. 바위들은 분홍빛을 약간 띄고 있어 솔잎의 싱그러움과 어우러져 여러 폭 겹친 병풍이나 그림 같이 아름답다. 긴 허리가 보이도록 누운 부드러운 나신과 같은 바위도 있었다. 바위 틈을 비집고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소나무들이 경이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어 암릉길이 끝나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남동 방향이다. 길은 암반으로 되어 있다. 이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암반지역이 나온다. 위험한 지역이라 실족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쓴다. 자연히 속도는 느려진다. 조금 후에 긴급구조연락말뚝에 이른다. “천태산 - 9.” . 여기서 우측 바위 밑 넓은 바위에 연실낭자 외 1명, 늘근소, 가물치, 큰형님이 마중나와 있다. 모두 땡땡이를 치면서 산행을 하지 않은 분들이다. 그중에서 늘근소님은 지난 번 문대장이 답사 산행할 때 참여하여 이미 산행을 한 바 있다고 치지만, 나머지 분들은 정말 의리가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가물치는 산에 못 오르니 봐 준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은 1.8리터 들이 큰 페트병에 참이슬 소주를 가지고 와서 내려오는 사람을 불러 한 잔씩 주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도 합류하여 술잔을 나누었다. 나도 안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나무 젓가락이 이채롭다. 오늘 처음 나온 도토리님도 합류하고, 이어 많은 사람이 모인다. 조금 있으니 김재국 리더가 여자애인 송예진을 업고 합류한다. 항상 아이들을 주로 많이 업어주는 그는 힘이 장사이긴 하지만, 마음씨는 너무나 착하다. 주변은 온통 큰 암반으로 되어 있어 신기하다. 옛날에 왔을 때는 정상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는 길에 담배꽁초가 무척 많이 버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와 보니 등산로가 깨끗하여 무척 기분이 좋다.

나는 조금 일찍 일어선다. 곧 건너편의 전망석 바위(잠시 쉼터)에 이른다. 틈새로 소나무들이 생존하고 있어 생명의 존귀함과 끈질김을 생각나게 해 준다. 푸른 빛이 바위의 무채색과 어울려 경이로운 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가히 30여 명은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암반이 계속된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돌이 박힌 길이 나온다. 이어 소나무숲이 되면서 비로소 흙길이 된다. 이어 “정상 1,500m, 주차장 2,400m" 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온다. 이어 ”온양 K2-3040 산악회“의 ‘산불조심’ 현수막을 지난다. 소나무숲이 마냥 좋다. 이내 ”정상 1,600m, 영국사 1,100m"라고 쓰인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북동)으로 내려간다. 조그만 계단을 지난다. 잡목 숲에 소나무 숲이다. 이어 우측으로 잠시 내려간다. 잔디가 없는 묵묘가 나온다. 보기에 몹시 쓸쓸해 보인다. 이어 “영국사 1km, 주차장 2km"라고 쓴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북동)으로 오른다. 남고개 방향이다. 길은 무척 좋다. 조금 후에 남고개에 이른다.

(4) 남고개(0.9km) - 寧國寺

남고개는 십자로 안부이다. 직진은 영국사, 좌측은 정상, 우측은 옥쇠봉/육조골로 이어진다. 이정표에는 ”정상 1,8km, 영국사 0.9km, 육조골(동남동 방향)"이라고 적혀 있다. 또 우측에는 옥새봉 등산로라는 팻말이 있는데, 소요시간은 50분이란다. 참고로 지도에는 옥쇠봉이라 되어 있는데 여기 이정표에는 옥쇄봉이라 되어 있어 혼란스럽다. 옥쇠봉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옛날에 간 것으로 갈음한다. 아직 영국사 문화재에 대한 메모사항이 많아서이다. 옥쇠봉 오르는 길은 솔향기 그윽한 소나무숲의 오름길이 연속되고, 바위봉 하나를 넘어 옥쇠봉이 보이면 그 능선길로 올랐었다. 오르면서 바위 위에서 천태산 정상을 올려다 보면 색다른 맛을 느꼈었지... 이어 가파른 바위길을 오르면 중간에는 바위굴을 통과하여 비스듬히 옆으로 돌아나간 후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나고 조금 더 오르면 옥쇠봉 정상에 올라섰었다. 뾰족한 암봉 서너 개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그중 제일 큰 바위가 옥새와 모양이 같다고 해서 옥쇠봉이라고 불렸던 것 같다. 거기서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보면 새삼 천태산이 왜 등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지가 생각나게 하였었다. 옥새봉 정상 주변 산기슭도 대부분 소나무숲이라서 보기에 좋았었다.

남고개에서 부득이 직진하여 영국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북동 방향이다. 능선을 넘어 내려가다가 오른 후 또 능선을 넘어 내려간다. 연인끼리 가기에 안성맞춤인 호젓한 산길이다. 길도 푹신한 흙길이 나온다. 자꾸 보고 싶은 사람 생각이 난다. 이어 묘 1기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넓어서 쉬기에 좋을 듯하다.
이어 얕은 개울이 나온다. 이정표가 있는데, “정상 2,200m, 영국사 500m"라고 되어 있다. 이제는 우측으로 사면길을 진행한다. 능선에 이르러 좌측으로 평탄하게 나아가다가 우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이어 십자로 안부에 이른다. 영국사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오는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게 한다. 다시 직진해 내려간다. 낙엽이 많이 쌓여 있다. 이내 좌측으로 평탄지역이 나온다. 버드나무 군락과 억새들이 무성하고, 잡목 및 잡초도 엄청 많다. 이어 산사면길을 따라 내려간다. 이어 좌측에 충청대 박물관에서 2003. 9. 8.부터 2004. 2. 4. 까지 대대적으로 벌이는 ”영국사 주변 시,발굴 조사“차 온통 땅을 파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겉으로 보기에도 대단한 발굴조사인 것 같았다. 부디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고찰이며 명찰인 영국사의 비밀을 밝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전제일’이라고 쓰여 있는 적색과 백색이 번갈아 나 있는 넓은 비닐테이프가 둘러쳐져 있다. 건너편에 C코스 등산로 입구에 원각국사비와 부도들이 보인다.

테이프가 쳐진 지역이 끝나는 3갈림길에서 좌측 길로 잠시 오른다. 이 길은 바로 C코스 등산로인 것이다. 먼저 넓은 공터 부분이 나오는 곳에 안내문이 서 있고, 그 뒤에 원각국사비가 있다. 전각에 둘러쌓여 잘 관리되어 있다. 주변에는 공터에는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을 듯하다.
원각국사비의 안내문에는 “ 寧國寺圓覺國師碑 :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소재, 보물 제534호. 고려 의종(1154) 禪師(선종의 법리에 통달한 스님)가 되었고, 명종 1년(1171. 9. 12) 王師(임금의 스승)가 된 원각국사비이다. 원각국사는 대선사 교웅의 밑에 들어가 9살에 중이 되었다. 선사의 유골은 영국사에 모셔졌으며, 고려 명종 10(1180)년 韓文俊이 비문을 지어 원각국사비를 건립하였다고 朝鮮金石總覽 상권에 그 전문이 소개되어 있다. 미몸돌(碑身)은 점판암 1매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비문은 총알을 맞아 손상된 곳이 많아 그 내용을 전부 알 수는 없다.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비머리(碑首 : 비의 갓으로 용모양을 새긴 것)에 있는 4마리 용은 매우 특이하며 각 부분의 조각은 그 제작연대가 뚜렷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비석은 영국사가 소장하고 있는 고려 중기의 석비로서 전체높이 371m, 비신높이 165m, 너비 78cm, 두께 13cm이란다. 현 사찰 내 남쪽으로 약 150m 떨어진 낮은 언덕 위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세워져 있다. (이)首와 龜趺(귀부)를 갖추었고, 상단에 돌기가 마련되어 이수를 얹게 하였다. 표면 중앙에 직사각형의 전액(篆額)을 양각하여 3행 6자로 ‘圓覺國師碑銘’이라고 題하고 있는 것이다.

圓覺國師碑 뒤로 천태산 등산로 C코스가 이러진다. 윈각국사비 뒤편에 원구형 부도와 석종형 부도가 있어 또 눈길을 끈다.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탑을 부도라고 한다. 부도의 앞에 1180년(명종 10)에 건립된 영국사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의 위치나 형태를 보아 이 부도도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역학적으로는 넘어질 것 같은 데 오랜 세월 그대로 굳건히도 서 있는 것이다. 뭇새들의 울음소리와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든 이름 모를 그 스님들은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園球形 浮屠는 충북 유형문화재 제185호이고,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소재한다. 정확한 주인공은 알 수 없다. 둥근 모양이며 다른 부도에서는 볼 수 없는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또 아래위의 연꽃잎이 한 잎인 점으로 보아 조선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둥근형의 탑몸돌과 8각형의 지붕돌(옥개석)을 서로 결합하여 만든 구조물이다. 지붕돌의 기와골과 합각마루(박공 위에 있는 마루)의 장식은 비교적 무디어졌다. 지붕돌 위에 정교한 보주가 있어, 각 부분의 형식이 완전하게 존재하는 부도탑이지만, 탑몸돌이 원구형인 점과 상대석에 새겨진 연꽃잎이 그림 양식으로 된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184cm이다.
영국사 石鐘形 浮屠는 충북 유형문화재 제184호이고, 역시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에 소재한다. 원각국사비의 뒤에 위치하나, 주인공은 알 수 없다. 부도의 양식이 石鐘形(돌로 된 종 모양)인데, 다른 부도에서는 볼 수 없는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또 아래위의 연꽃잎이 한 잎인 점으로 보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석의 연꽃 잎과 연꽃 잎 사이에는 작은 間葉을 만들었으며, 탑몸돌 위에는 보주(탑의 꼭대기에 얹는 장식)가 있다. 6매의 석재로 되어 있다. 전체 높이 190cm이다.

이 부도의 주위에는 어디서 왔는지 젊은 남녀들의 일단들이 무식하게 떠들고 있어 태도가 몹시도 얄밉다. 경건이란 건 찾아볼 수 없다. 이 부도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조상일 지도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조상들이 남긴 문화재나 공공장소를 관람시에는 조용하게 다른 사람들도 배려해서 행동하는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서둘러 되돌아 내려온다. 이미 모든 사람들은 주차장에 도착하여 한바탕 뒤풀이를 할 것인데, 혼자서 뒤쳐져서 이게 무슨 청승이란 말인가! 3갈림길에 내려와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어 넓은 마당에 이른다. 좌측 암반 위에 조그만 부처들이 배열되어 있어 이채롭다. 좌측 위에는 참선정진도량 계월암이 있다. 입구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 우측에는 화장실이 보인다. 마당에는 차량과 자판기가 있어 고찰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나타낸다. 기와 시주를 받고 있는 간이 시설이 있다.

이내 대웅전 앞 경내 마당에 이른다. 우측으로 2층의 누각인 만세루가 보인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이 고찰에는 참배객도 없고, 스님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녹음된 염불 소리만 들리는데,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절의 규모는 적으나 아담하고 고요하여 신비감에 젖어 있다. 대웅전 뒤로는 울창한 대숲들이 울창한데, 고찰의 역사를 웅변하는 듯도 하다. 대웅전 주련은 일중의 글씨 같은데, 80년 대에 다시 손 본 듯하다. 오서산 정암사에서 본 칼라 헤어 스타일을 여기서도 또 본다. 아마 유행인가 보다. 대웅전 앞에 있는 높이 3.15m의 3층 석탑은 보물 제533호로 지정된 것으로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일반형 석탑이다. 2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만든 몸돌을 세운 것이 특징이고,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같은 돌로 이루어졌다. 초층 탑신부에 문비(門扉)가 조각되었고 자물통과 원형 문고리도 나타나 있었었다. 상륜부의 각 구조물에 쓰인 재료는 모두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통일신라 말기의 탑 중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이 탑은 옛 절터에 넘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1942년 주봉조사가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고, 현재의 대웅전 건물이 향하고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었다. 옮겨 세울 때 잘못 복원하여 최근까지도 2중 기단의 面石과 첫층 屋身이 거꾸로 놓여 바뀌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지금 그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해체되어, 보이지 않고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사기간은 2003. 8. 13.에서 11. 10.까지이다. 비록 예전에 본 적이 있지만 다시 한 번 더 보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이끼가 끼어 있던 그 탑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어린다.

3층 석탑이 있던 자리 앞에는 보리수나무가 있는데, 비교적 큰 편이다.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도금양목 보리수나무과의 낙엽관목으로서, 覺樹, 思惟樹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聖樹라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외의 모든 과거, 미래의 모든 부처님에도 각각 다른 보리수가 있다고 한다. 미륵불의 그것은 龍華樹라 하고, 또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기도와 수행에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보리는 범어 bodhi의 音譯으로 覺, 智, 道라고 번역한다. 부처님께서 얻은 깨달음의 지혜를 말한다.
보리수나무는 산비탈의 풀밭에서 자란다. 높이 3∼4m이고 가지는 은백색 또는 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너비 l∼2.5cm의 긴 타원형의 바소꼴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은백색의 비늘털[鱗毛]로 덮이지만 앞면의 것은 떨어진다. 꽃은 5∼6월에 피고 처음에는 흰색이다가 연한 노란색으로 변하며 l∼7개가 산형(傘形)꽃차례로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화관은 통형이며 끝이 4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 암술은 1개이며 암술대에 비늘털이 있다. 열매는 둥글고 10월에 붉게 익으며 잼 ·파이의 원료로 이용하고 생식도 한다. 또한 자양 ·진해 ·지혈 등에 사용한다. 한국(평남 이남) ·일본에 분포한다. 잎 표면과 암술대의 털이 떨어지고 표면에 비늘털이 없는 것을 민보리수(var. parvifolia), 잎이 거꾸로 선 바소꼴이고 어릴 때 잎 표면에 성모(星毛)가 있는 것을 왕보리수(var. coreana), 열매가 길이 7∼8mm, 지름 5mm인 것을 긴보리수(var. longicarpa)라고 한다.

영동 영국사 대웅전은 충북 유형문화재 제61호로서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소재한다. 주존불로 석가여래좌상을 모신 불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집이다. 현재의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의 것으로 고종 30(1893)년과 1934년에 중수하였다. 1980년에 해체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원각국사가 신라 법흥왕 14(527)년 또는 문무왕 8(668)년에 창건하였다고도 하지만 모두 믿기 어렵다. 고려 문종 때 大覺國師가 國淸寺라 하였으나 恭愍王이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였으므로 영국사라 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보물 제 534호로 지정된 원각국사비가 있다(이상은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안내문에서 발췌). 그러나 원각국사비는 천태산 등산로 상에 따로 있었다.

대웅전 뒤에는 산신각이 조그마하게 위치하고 있고, 그 뒤로는 엄청난 충청대 박물관에서 영국사 주변 시,발굴조사 작업이 진행 중에 있었다. 바위와 주춧돌, 절터 등이 엄청 넓게 드러나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영국사의 규모 등을 소상히 밝혀 주었으면 충청대 박물관 팀에 부탁드린다. 고요한 고찰 뒤의 왕대숲이 보기에 좋고, 거기에 깃들어 사는 새들의 노래 소리도 즐겁게 들린다. 불경 소리도 이제 듣기에 좋다. 이어 누각 밑으로 나와 좌측으로 나아가니 영국사 입구 대웅전 안내문 앞에 이른다. 바로 아까 정상을 오르던 길과 만난 것이다.

(5) 寧國寺(1.1km) - 주차장

너무 뒤쳐져서 늦었기에 혹시나 나 때문에 차량 출발시간이 늦어져서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마구 뛰다시피하여 내려간다. 드디어 15시 50분이 되어 주차장에 도착한다. 우리 버스는 주차장 우측 끝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이다. 그 버스 뒤 산쪽으로 연하여 자리들을 마련하고 끼리끼리 둘러앉아 이미 뒤풀이 파티는 시작되고 있었다. 삼겹살이 구워지고, 떡국과 만두국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큰형님 등이 수고하여 주신다. 날씨가 약간 쌀쌀한 편이라 뜨거운 것이 그리운 것이다. 소주와 막걸리등이 난무한다. 이미 제법 술이 된 분들도 있었다. 뒤늦게 내려온 나를 문대장, 도치님, 김재국님, 송민정씨 등이 챙기며 신경을 써 준다. 참 친근스런 분들이라 감사함을 전한다. 그래서 나중에 주차장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구기자 술 4리터를 사서 그 중 한 분에게 감사를 표했다.

제법 먹을만큼 먹고 나서인지 이제 자리를 정돈한다. 그리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는데 약장수님이 자신의 멋진 카메라로 찍어 주신다. 그런데 사진사를 바꾸어 약장수님이 들어간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조금 춥다는 핑계로 모두들 흩어져 버린다. 그리하여 약장수님이 들어간 사진이 찍히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지 못한 나도 몰염치한 것 같아서 오히려 약장수님에게 미안하다. 달공 대장도 이 사실을 매우 아쉬워한다. 물론 나도 산 정상에서는 끼이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드디어 16시 40분 경 출발한다. 차 안에서 복남씨가 매실 엑기스를 주는데 너무 진하고 맛이 좋아 아껴 먹었다. 참 솜씨가 좋은 분인데, 그것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 안타까와 보인다. 그리고 나는 잠을 좀 잔 것 같다.

한참 후인 17 : 38 신탄진 휴게소 도착. 17 : 55 출발.
19 : 38 입장 휴게소 도착. 19 : 53 출발.
20 : 50 신갈에서 정상덕씨외 2명 하차.
21 : 01 서울요금소 톨게이트 통과, 차가 많이 막히는 편이다.
21 : 16 양재에서 자갈치, 아이비씨 하차.
21 : 20 강남역에서 박경화외 다수 하차.
21 : 25 동순갑. 포천 사장님 부부 하차
21 : 37 종로 3가 국일관 앞 하차.
나는 뒤풀이에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김재국 리더등과 마주쳤다. 도망간다고 하면서 막 잡으려는 시늉을 하길래 또 꼼짝없이 잡히는 줄 알았으나, 오늘은 이만 가겠다고 하니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생각이 바뀌어 나를 다시 잡기 전에 서둘러 걸음을 옮겨 차를 잡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웬지 모르게 오늘은 이성부 시인의 “되풀이”가 생각나며 쓸쓸하고 우울한 날이다.
시를 쓸 때는 언제나 굶주림으로/ 술이 깬 다음날 새벽의 목마름으로 / 저 혼자 억울한 자유로 / 그렇게 나는 내 예술을 키워 왔다 / 내 시는 무디어 칼을 무찌르지 못하지만/ 어리석게 어리석게 나를 이겨낸다.//


교통:


갈 때는 서울에서 경부선 열차 또는 고속버스 이용, 영동이나 옥천에서 하차.여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누교리 영국사 입구 팻말이 있는 곳에서 하차. 승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 옥천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이원을 거쳐 501번 지방도에 올라 누교리로 향하면 됨.옥천I.C - (10분) - 이원 - (15분) - 양산면 누교리(천태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