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년 1월4일
목적산 ;전남 강진군 병영면 수인인산[561.2M]
산행코스 ; 박영회 공적비-홈골 저수지-홈골-홈골재-수인산정상-홈골재-병풍바위-남능-478봉-275봉-성락산-연화사-병영마을[4시간소요]
동참산악회; 새한솔산악회
참석인원; 29명

새한솔산악회 회원29명은 봄이 어디쯤 오나하고 남해를 관망하기위해 천혜의요새를 지닌 수인산을 찾아 부산 교대앞을 08시 출발 했다

조선후기 강진땅을 여행한 학자 이하곤[1677-1724]이 남유록에 남긴글을 잠시 생각해보자

"하늘이 천혜의 병영지세를 열어
탁 트인 들과 잔잔한 내 흐르며 사방에 산이 감사
기암 괴석 솟은 봉우리 바로 수인산 이네
병영성 밖 기이한 장관은 요망대 일세"

이렇게 강진과 장흥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수인산은 남유록에 나와 있듯 그 높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웅장하고 오묘한 산세를 지니고 있지 않는가 기대를 하면서 찾아 나섰다.
찾아가는 길은 3일후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라 대부분 직장이 근무하고 일요일마다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던 사람들도 이번 일요일은 설날가서 몇일 푹쉬고 가족들과 같이 지내기 위해서 인지 도로는 한산했다. 경상도 땅을 지나 전라도 지방으로 찾아가니 먼 산에는 흰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지형적으로 전라도 지방은 눈과 비가 많이 오는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11시 55분, 산행의 들머리인 박영회공적비 앞에 도착해보니 날씨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맑았고, 눈앞에 보이는 수인산은 흰눈이 쌓여 하얗게 보였다. 인원확인후,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해발50m) 눈앞에 보이는 홈골저수지로 올랐다. 홈골저수지 물은 가득차 있었고 시원하고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고, 산위에 온 눈과는 관계없이 얼지 않았다. 홈골저수지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수인사절이 있고 주등산로 이지만 우리는 홈골저수지 좌측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약15분 가다보니 도둑골로 향하여 한바위재로 오르는 길과 홈골을 향해 홈골재로 오르는 갈림길이 있었는데 그래도 수인산에 와서 홈골을 보지 않을 수 없어 홈골을 선택했다. 계곡을 건너 골짜기를 쫓아 오르니 홈을 파놓은듯 협곡을 이루고 있는 홈골 하단에는 가을철에 따먹지 않은 어름이 나무에 그냥 얼어 있었다. 추측컨데 이곳이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 날것 같고, 가을철에는 머루, 다래, 어름, 산밤 등 먹을것이 지천에 널려 풍부한 골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홈골도 겨울철이라 앙상한 나뭇가지에 계곡에는 물이 약간씩 흘러 내리고 있었다.

홈골로 들어서면서부터 갑자기 너덜지대가 나오고 날씨는 흐리기 시작했다. 너덜지대에는 몇일전 온 눈이 녹지않아 미끄러웠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사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는 달랐다. 사락눈이 좁쌀만한 크기의 둥근 얼음눈 이였다. 눈을 맞으며 눈을 밟으며 미끄러운 홈골을 오르니 눈앞에 보이는 수인산과 병풍바위의 철옹성다운 모습이 양옆으로 절벽 자연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수인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홈골재에 올라서는 수인산은 아래서 받았던 느낌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홈골재 너머는 평원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넓은 억새밭이였고, 정상인 노적봉은 마치 거대한 왕릉처럼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12시50분 홈골재(북문)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 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간단히 식사후 배낭을 홈골재에 그냥두고 정상인 노적봉으로 올랐다.

오르는 길은 330m밖에 안되지만 제법 가파르고 눈으로 미끄러웠다. 그러나 오늘은 아이젠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13시30분 정상인 노적봉에 도착하니 내리는 눈도 잠시 멈췄고 흐린 날씨도 맑게 개였다. 노적봉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경관은 일품이었다. 서쪽으로는 기암괴봉이 들쭉날쭉 이어지는 월출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 제암산, 사자산 능선이 병풍을 두른듯 우뚝솟아 잇었고 남쪽경관도 만만찮았다. 괴바위산에서 부용산을 거쳐 천관산으로 뻗은 산줄기는 남으로 힘차게 내리닫고 연이어 남해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있었으나 아직 봄은 멀었는지 멀리있는 남해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는 발아래 우리가 올라온 홈골 저수지와 병영마을과 넓은 벌판이 평화롭게 열려 있었다. 정상의 동사면 수십 미터 낭떠러지라 내려다 보기 힘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배낭이 있는 홈골재(북문)으로 와서 수인산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라는 병풍바위로 향했다. 정상에서 능선 날등을 타고 남쪽 병풍바위쪽으로 향하는 동안 갑자기 날씨가 흐려 앞이 보일뿐 먼곳은 볼 수가 없다. 날씨가 맑았다 했다. 수인산에서 북문을 거쳐 수인사로 하산하는 서문을 거쳐 병풍바위까지는 한번 온 눈은 다음해 봄까지 녹지않는다는 이야기와 같이 눈이 많이 와 있었다. 14시, 병풍바위에 도착했다. 과연 웅장한 자연 성벽이었다. 월악산의 영봉동생이라도 되듯 정해진 길이 아니고는 오를 수 없는 웅장한 모습으로 늠름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래서 여기가 봉수대가 있고 수인산성이 잇어 왜구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요충지였구나 하는 느낌이 가슴에 와 닿았다.

백제 때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수인산성은 왜구의 침범이 극심할 때 피난처로 이용하던 산성이다. 동문터가 위치한 계곡을 제외하면 사방이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잇는 이 산성은 자연석을 이용해 높이 5m. 너비4m 규모로 쌓은 석성으로 내성과 외성의 총연장이 6Km에 이른다. 한일합방 이후 함평 출신의 심남일과 장흥 출신의 이교민 등의 의병장들이 의병을 일으켜 분전하다 1908년 일제의 의병토벌작전에 의해 전사하고 또한 빨치산의 유격 거점이기도 했던 수인산성 안에 솟아 있는 노적봉에는 봉화대가 설치돼 남해로부터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데, 현재는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을묘왜란 때까지 두 차례에 걸쳐 수축한 것으로<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지만, 임진란 후에는 보수했다는 기록이 없다. 수인산성지는 현재 전남 지방기념물 제59호로 지정돼 있다. 병풍바위를 뒤로하고 계속 남릉을 따라 478봉까지 275봉까지가는 등산로 대체로 잘열려있다. 내린눈이 큰눈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봄철 피어나는 매화나무와 흰배꽃이 피는 느낌으로 너무나 화사하고 우아했다. 눈꽃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478봉과 275봉의 남동쪽에는 장흥땅 부산면이라 흰눈이 하나도 보이지않고 밭이 심어놓은 보리가 새파랗게 피어나고 있었다. 14시45분 275봉에 도착했다.

275봉에서 수인사로 하산하는 길이 열려 잇었으나 우리는 성락산을 거쳐 연화사로 하산하게 되어 있어 길이 열려있지 않는 개척의 산행을 시작했다. 눈은 곳은 눈으로 낮은곳에는 비로인해 바위가 무척 미끄러웠다. 지난 여름 태풍 매미의 피해로 길도 잘열려잇지 않고 사람들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등산로 희미하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곳이 우리가 처음 등산을 시작한 곳 보다 남쪽으로 와서 인지 이제는 홈골저수지는 보이지 않고 남쪽으로 도룡저수지가 보이고 멀리 서남쪽으로 만덕산을 거쳐 주작산, 덕용산을 거쳐 두륜산이 눈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개척 산행중에는 만개열매는 붉고 탐스럽게 열려잇지만 그 줄기는 옷을 찢고 손등에 가벼운 상처를 주기도 했다. 자연보호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이보다 더 좋은 자연보호가 없을것 같았다. 이렇게 개척을 끝내고 낮은 능선에 도착하니 등산로가 잘열려 있었고 등산로의 이정표도 잘되어있었는데 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지 길이 희미한지 잘 모르겠다. 잘난 등산로를 따라 하산하다보니 체육공원이 있었고 우리는 연화사 쪽으로 하산하여 사찰 연화사를 구경하고 16시 병영마을에 도착하여 4시간동안의 산행을 마쳤다.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도록 산행에 동참하여 협조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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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산 - 먼 길을 다녀 가셨군요. `하멜`의 흔적은 구경하셨는지요. 2002년 송년 산행지라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