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해타고 풍악 울리며 북한산 의상봉에서

산머루 따먹으며 북한산 주능선 산행[사진]

 
                                           
 
 

 

三角山(백운대,인수봉,만경대)

 

 

 

지도:운해님 카페에서 발췌

 

 산행일시: 2004년 9월 4일 [토요일]

 산행지: 북한산 의상봉외

 산행코스: 흥국사비 와 백화사 사잇길 = 의상봉 = 가사당암문 = 용출봉 = 용화봉 = 증취봉 = 부왕동암문 = 나한봉 = 청수동암문 = 문수봉 = 대남문 = 어영청 유영지 = 금위영유영지 = 상화지 = 중흥사지 = 선정비 = 중성문 = 위락시설 = 북한산계곡 = 대서문 = 북한산 매표소 = 흥국사비

 산행인원 : 6명

 산행시간 : 8시간 반(점심시간 산행후 한잔시간 포함)

 

  산  행  기 

 

 

한 때는 한국의 산하 산행기 게시판에서 댓글문화의 견해 차이로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않고 지내오던 네티즌이었는데 어느결에 서로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자연스럽게 형님 아우 문화로 발전이 되더니 지리산 종주길에서 우연치않게 서로 엇갈려 지나치며 첫 만남이 이루어진후 태풍 매미가 남부지방을 휩쓸고 지나갈때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관악산에서 몇몇 사람이 새한솔 산악회 관악산 등산과 함께 동반산행을 하고난후

 

남덕유 종주로... 그리고 제주도 한라산 종주로... 또 북한산 비봉능선 합동 산행으로 동반 산행의 맛을 알게되더니 이제는 서로 몇일만 만나지 못하면 마치 어린애들 칭얼대듯 형님 우리 또 언제 만나느냐고 침을 질질 흘리며 칭얼대듯 독촉을 한다 또 어디 그뿐이랴 이제는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로라도 목소리를 들어야 속이 편할 정도로 우리들의 山 友情은 깊어만 가는데...

 

이런일을 두고 잘된것이라도 하여야 하는건지 아니면 잘못되 가는거라 하여야 하는건지...? 이건 9월 3일 금요일 오후 느닷없이 형님 내일(9월 4일 토요일)북한산 의상봉 산행을 하자는 것이다 지들이야 대부분 師字를 가진 고급두뇌들이 되어 직업적으로 나 보다는 몇단계 누리는 생활들을 하는 사람들이니 토요휴무제가 실행되고서 부터 연 2틀을 연장으로 쉴 수 가 있으니 맘대로 일 수 있지만

 

나로서야 일년 350일 정도는 휴일없이 매일같이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하는 직종의 직업에 종사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시간이 金이고 아까운 사람인데 뻑하면 형님 떠나자고 목을 메는 이 山親友들을 정말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일단은 내가 자리를 비우고 산행길을 떠나려면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 작은 아들아이와 스케쥴 조정을 하여야 가능성 여부가 판결이나서 산으로가던 말던 하는것인데... 아들아인 학교에 가서 없는데... 

 

느닷없이 금요일 의상봉 산행을 가자고 목을 매는 대야 정말 난감하기 짝이없다 아무래도 아들아이와 스케쥴 조종이 안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은 답변을 미루고 아들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대 이젠 한 수 더 떠서 만약 형님이 함께 가지를 안으면 형님의 개인비리를 폭로하여 버리고 말겠다고 수법까지 동원을 하여 나의 목을 조른다 나 참 기가막힌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비리가 있기나 한것처럼 하는 짓거리들이 정말 가소롭기 짝이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나로서 정말 괘씸하고 분개하지를 않고 나 또한 이러한 그들의 술 수에 이미 젓어들고 말았는지 언제 한번 딱부러지게 거절한번 못하고 마치 장으로 팔려가는 송아지 새끼 모양 질질 끌려 다니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산 의상봉 산행길은 9월 3일 밤 11시경이나 되어서 아들아이와 스케쥴 조정을 하여 그길로 전화 멧세지로 내일 아침 8시까지 부평역에서 만나자고 콜을 보내놓고 ,

 

드디어 9월 4일 아침 아내에게 등산간다는 소리가 염치가 없어서 일찍 출근하여 사무실 정리좀 하여놓고 북한산에 다녀온다고 말을 하고 아침도 먹지 못하고 집을 나서 대충 사무실 정리를 하여놓고 아파트앞 단골 김밥 아주머니에게 김밥 주문을 하여 배낭에 넣고 서둘러 부평역으로 향하는데 드디어 전화 통에서 불이나기 시작을 한다 형님 왜 아직 안나와요 형님 어디오셔요 하고 말이다

 

남들은 출근 시간으로 붐비는데 검정색 등산복 차림에 모두들 주황색 스카프(한산협)을 머리와 목에 두르고 나만 빼고 농구선수 못지않게 키가크고 떡댕이가 좋은 5명의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전철을 타니 마치 사람들이 우리들을 무슨 전문 산꾼으로 보는지 시선이 집중이된다 일차 집결지 3호선 구파발 1번 창구를 나서니 이곳엔 산행길에 필요한 무엇이던지 없는게 없다

 

족발 샥힌 홍어회 냉막걸리 김밥 과일은 물론 등산장구 등등 돈만 가지고 그냥 나와도 이곳에서 손쉽게 배낭을 꾸릴 수 가 있다 우리들도 일단은 공동회비 일만원씩을 각출하여 산행에 필요한 막걸리 안주 등등을 준비하여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라산 산행때 우연히 알게된 산머루님을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되어 버스를 타려 줄을서서 기다리던 대열에서 이탈하여 산머루님의 승용차로 이동을 한다 - 옛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세상에 한라산에서 만난 산님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원님덕에 나발분다고 생각지도 않게 산머루님의 승용차로 편하게 이동을 하여 흥국사 입구 도로변에 차를 주차를 시켜놓고 매표소로 향하려 하였더니 산머루님 완전히 북한산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읽고있는듯 흥국사와 백화사 중간지점 야산 진입로로 들머리를 잡더니 기냥 따라오란다 얼떨결에 따라붙고 보니 이건 매표소가 없어서 입장료도 무사통과에 의상봉을 오르는 직선길이 시작이된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곳에서 나에게 문제가 생긴다 다름아닌 새로 바꾼 500만화소 디카가 아직 작동상태 숙지가 덜된 관계로 촬영이 용이롭지않다 이렇게 되고보니 산행이고 지랄이고 둘째이고 신경이 온통 디카에 쏠리다보니 열방맹이가 나며 산행의 의미가 감소된다 하는 수 없이 앞서가는 일행들을 불러세워 놓고 사정을 이야기 하니 디카의 거장 豊岳아우가 뭘 알고 주물럭 거리는 것인지 모르고 주물럭 거리는 것인지 일단 한참을 디카를 주물럭 거리더니

 

형님 오토에 놓고 찍으면 가능하다고 하여 그대로 사진을 찍긴 찍는데 썩 맘에 내키지를 않는다

그러면서 일제 소니라면 눈감고도 알겠는데 국산이 되어 잘 모르겠다고 둘러대는대야 나 참! 그럼 저는  國産아니고 日製란 말인가? 저도 국산인 주제에 국산품을 무시하는 豊岳아우의 소행이 그러고 보니 조금은 일본놈 냄새가 나는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혹시 일본인 아부지...? 아니다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하여간 일단 조금은 이국적인 향기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사람은 정말 매너좋고 인간성 하나는 나무랄대 없이 끝내준다

 

 

오른쪽에 뾰족하게 보이는 산이 이날 우리가 오르기로 목표한

의상봉이고 좌측으로 멀리 백운대와 노적봉 원효봉이 보인다

 

 

들머리 구간을 통과하여 산행길 초입

 

 

 

들머리 구간을 통과하니 의외로 생각보다는 할만한 코스라는 자부심도 생기고...

 

 

한라산에서 만난 산머루님과 우연히 북한산 입구에 만나 동행 산행길이 시작이되고...

 

 

가볍게 연습하듯 릿지 구간이 시작이되고...

 

 

가는곳 마다 주황색 사나이 산님들이 티를 낸다

 

 

기암 1

 

 

 

가볍게 릿지구간을 통과하는 어떤 산님의 모습

 

 

 

난 그렇게 북한산엘 올랐어도 산이름을 일일히 알지를 못하는데...

운해님은 하나하나 가르치며 산봉우리 이름을 줏어댄다 (상하)

 

 

 

원효봉과 용출봉의 모습

 

 

언제나 튀는 풍악님의 사진찍는 폼

 

 

대학생인듯한 세 아가씨들이 의사봉 정상엘 올랐다 대견하고 바람직한 모습이다

 

 

10분간 휴식

 

 

사찰이름은 모름 그런데 황동 좌불상의 모습이 국내 최대라는 풍문이...

 

 

 

청수동암문을 통과하여 일단은 시원한 막걸리에 홍탁을 안주로 두어잔씩 마시고 나니

풍악님의 배낭에서 모락모락 풍겨나오는 더덕주까지 바닥을 내고서야...

 

 

 

한잔을 하려고 자리를 편곳에 뜻밖에도 산머루가 새까맣게 익어있어서 따먹으며 지금까지 닉네임이 없어서 이름을 부르기가 조금은 어색한 제주에서 만난 산님에게는 [산머루]라는 닉을 그리고 홍승윤님에게는 [靑松]이라는 닉을 만들어 주니 일단은 본인들도 그리고 함께한 일행들이 모두다 좋다고 건배를 든다

 

 

도장나무 같은데 열매가 오디와 맛이 비슷하다

 

 

전날 사모님과 발렌타인 독주를 두어병이나 마시어 아직도 속이 미슥거린다면서도

바위만 만나면 딴사람이 된다 운해님의 릿지산행 모습은 멋과 일가견이 있다

 

 

인천의 명물 산님들(豊岳님과 雲海님)모습 내 산행기의 제목들...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을 건너다 보며...

 

 

북한산 주능선 1

 

 

북한산 주능선 2

 

 

 

 

기암 2

 

 

북한산 주능선 3와 豊岳님

 

 

북한산 주능선길 4

 

 

김암 4 [해골 바위]

 

 

똥꼬 바위라는데... 나참! 바위이름을 누가 좀 유치하게 작명했네 [홍문]이라고 하지...

 

 

 

 

운해님 이건 무슨봉인 또 잊어버렸어요

 

 

저렇게나 좋을까 청송 홍승윤님

 

 

바둑이 바위라는데 잘보셔요 정말 바둑이같죠? 1

 

 

좀더 정확하게 보이죠 바둑이얼굴 2

 

 

조그맣게 보이는 바둑이 얼굴 앞에 바위에 꼭지는 유두인가?

 

 

 

 

 

인천이 낳은 명물 독수리 오형제[청송 홍승윤님 그리고 나 운해님 고은 최종환님 그리고 풍악님]

 

 

무엇에 저렇게 정신을 빼앗기고 주시하는 것일까??

 

 

이성은 원래 백제가 하남위래성에 도읍을 정하였을때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쌓았던 성이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이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11세기 초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는 이곳에 고려 태조의 관을 옮겨 온 일도 있었으며 고려 고종 19년 [1232]에는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외침을 다한 뒤 도성 외곽의 축성론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에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여 7,620보의 석성이 만들어 졋다

 

영조 21년[1745]에 스님 성능이 지은 [북한지]에는 이성의 축조 과정이 기록이 되어있다 당시 성의 길이는 21리 60보이며 시설로는 14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와 북장대 행군 군창이 있었으며 성내에는 승군이 주둔하였던 중흥사등 사찰 12개  우물 99개소 저수기 26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성의 둘래는 12.7km이며 성안의 면적은 6,611.600평방미터로 훼손된 대남문 대동문 보국문과 일부 성곽들은 보수.복원되었다

 

 

릿찌 산행로는 이어지고...

 

 

 

이 바위에서 다시 내려서야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말하며 턴을 하여 내려 오라고 하여도

궂이 매달리면 내려오는 모습이 믿음직 스럽다 청송님

 

 

어느 한 구간도 맘편히 걷는곳이 드물게 암릉구간 릿지구간으로 ...

 

 

 

 

멀리 백운대 인수봉 만장대의 모습이 보인다 이를 보고 삼각산이라 한다는데...

 

 

이곳에 유난히 정상에 나무가 우거져 있다

 

 

북한산 주능선길...

 

 

운해님과 나

 

 

가을을 연상케 하는 야생화의 보라빛이 더욱 아름다워라

 

 

북한산 주능선길...

 

 

 

지난 8월 29일 한산협 산행때 문수봉을 코앞에 두고 승가사로 하산하는

바람에 영 뒤보고 씻지않은 기분이더니 오늘에서야 문수봉 정상을 밟는다

 

 

 

북한산 주능선길...

 

 

드디어 대남문이 코앞에 바라보인다

 

 

 

 

대남문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님들의 모습

 

이곳 대남문에서 더이상 주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고싶은 생각은 굴뚝 같은데 우리 일행은 산성매표소 방면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이미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으니 어느새 어둑어둑 어둠이 깔리고 있다

 

 

노란꽃이 더 아름다워 한컷을 찍었는데 그만...실패작

 

 

 

약수터와 이정표

 

 

 

부도전을 지나니 유영지를 살펴보고 있는 유적지 조사단인듯한 사람들이 ...

 

 

그런데 하산길은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고 녹음이 우거져 우리 일행은 거의 뛰다시피하면서 하산을 서두른데 좌측으로 오늘 우리들이 산행을 한 산들의 모습이 보인다 대단하다 저산들을 모두다 통과를 하였다니 스스로 생각을 하여보아도 자랑스럽고 자부심이 생긴다

 

 

 

그러니까 1978년도 그때 우리 큰아들 아이가 3살되던 여름에 날씨는 하도덥고 괴 딱지만한 단칸 전세방에 살때 어느 일요일 어렵사리 소고기 한근을 사서 조리를 하여 북한산 계곡을 찿아 물에 발을 담그고 아이를 돌보고 있을때 우리가족 옆에 당시에도 어떤 가족들은 등산용 버너에 닭 백숙을 끓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제 아이들 데리고 저런 호화스런 시절을 보내는 날이 있을까 생각을 하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락모락 끓어 넘치는 닭 백숙 냄새를 맡으며 차디찬 소고기 한점이 목으로 넘어가지를 안어 공연히 위화감만 생각을 하며 돌아와 가슴앓이를 하며 눈 코뜰 사이없이 쉬지않고 일을 하였었는데 ...

 

오늘 그길을 배낭을 메고 하산을 하면서 기억을 하고보니 어느덧 흘러간 26년 전의 일을 생각 기억을 하니 새삼 감정이 복받치며 목이메이고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들며 한많고 설음많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그길 북한산 계곡길을 걷는 마음이  새삼스럽다

 

 

휴! 이제야 평지길을 만날 수 있다니...

 

 

수목 사이로 지는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선정비와 용학사 입구

 

 

중성문을 지나서...

 

 

북한산엔 이렇게 잘 정리된 산행로 안내판이 있어서 큰 도움이된다

 

 

북한산 계곡의 위락시설 업소들...

 

전국의 스님들은 전국 각지에 산에있는 사찰밑으로 터널을 뚫는것은 결사 반대를 하며 이렇게 난립된 위락시설들에 대하여서는 왜 유구문언일까 ? 위락시설 손님들이 산님들로서 사찰 입장료 돈을 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부상조 누이좋고 매부좋은 이해득실 때문일까?? 스님들은 말이없네...

 

 

 

 

잠시 흘러가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생각을 하며 목이 메이다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갈 수 가있나 일행들이 모여앉아 서울 냉막걸리에 파전한장 시켜놓고 사기그릇으로된 잔 한탕기 그득히 막걸리를 부어 꿀꺽꿀꺽 들여마시는 소리는 마치 북한산 계곡물 흘러내리는 소리보다도 더 세차고 시원 스럽다 본래는 내가 이렇게 애주가가 아닌데

 

어느결에 젊은 산친구님들과 어울리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내가 먼저 쌍수를 들어 한잔을 외칠 정도로 변하고 말았다 시대도 변하고 인간의 마음도 변하고 그리고 사람들의 사람사는 모습도 변하고 과거 그 상태로 서 있는것이 이상하게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이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를 하고있다 좋은일인지 나쁜일인지...

 

 

북한산 계곡 목로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한가지 편한것은 인원 숫자 따지지않고 어느집에서나 매표소 입구 버스 정류장까지 운행을하여준다 우리들은 흥국사옆 노상에 차를 주차를 시켜놓아 그곳에서 하차를 하여 일행들중 4명은 또 다시 내일이 일요일이라고 하며 대구의 팔공산으로 산행길을 떠나며 나를 강제로 끓고 가려고 형님이 가야 재미가 있다고 끓어서 차에 태우려 하지만

 

난 일요일도 없는 직업에 충실하여야 하고보면 아쉽지만 살짝 빠져서 인천으로 내려와 우리들끼리 또 한잔에 노래방까지 일주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밤 11시를 지나고있다 정말 면목없는 가장의 모습으로 조심조심 사무실에 도착을 하니 하루종일 아버지 대신 업무를 보아온 아들아이가 아버지 가셔서 쉬시라고 마음을 베푼다 이래저래 면목없는 애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