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홀로 한 덕유산 종주 (삼공리-->영각사)

 

 

 

                         2004. 8. 29. (일요일)

 

                         승용차 이동 후 혼자산행

 

                         삼공리 매표소-백련사-향적봉-남덕유산-영각사

 

 

 

 

 

 

 

 

삼공리-영각사 구간 26.7 Km는 500 m 마다 세워둔 표지목이 54번까지 차례로 이어지는 구

간이다. 보통 13시간 전후로 주행시간대가 기록되는데, 내 경우 하루에 26.7 Km를 완주한다

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수도산-가야산 땡볕 종주(26.8 Km)시에 바닥을 보였던 체력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

을 보충하고, 체력안배를 잘하면 15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으로 덕유산을 즐길 수 있으리라 판

단했다.

 

사실, 느닷없는 결정이었다. 여름이 가기 전에 덕유산에 한번 가야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단

산의 즐거움을 이어온지라 종일토록 걷는 산행은 꿈도 꾸지 않았다.

 

안 그래도 요즘 달빛이 푸른 밤하늘에 교교하여, 산 친구와 함께 영남 알프스 가지산릉에서

야영을 하며 그 달빛이나 녹여 마시자고 약조를 하였는데 느닷없는 태풍소식에 취소를 해버

린 터다. 그런데 하룻만에 태풍이 비켜간다는 예보수정에 주말이 공허해졌고, 그 틈으로 묻어

두었던 덕유능선의 그리움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든 것이다.

 

 

<삼공리 매표소-백련사 : 1시간 10분 >

 

삼공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요일 새벽4시 경. 누리를 비추던 은색 보름달은 3시를 넘기 전에

져버리니 혹시나 하던 달빛 산행 대신 희미한 별빛으로 캄캄한 사위를 홀로 걷게 된다.

 

백련사 쪽 야간산행은 세 번째고, 대낮에 오고간 횟수가 더 많아 두렵지 않다. 옛날에는 야광

등을 이리 비쳤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저리 비쳤다가 불안해하기도 하였지만 이젠 그런 망념

을 짓지 않는다.

 

얼마 전에 산하식구가 야간산행을 하면서 이곳 화장실에서 귀신을 느낀 듯 공포에 떨었던 글

이 생각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전에는 송어양식장과 백련교에서 헉헉거리며 쉬게 되

는데 오늘은 쉬임 없이 백련사에 도착한다.

 

왼쪽 허벅지가 아팠지만 일단 출발이 좋다. 백련사 요사채 아래서 신발을 고쳐 신고 몇 가지

점검을 하였는데, 여분의 헤드랜턴이 불 이 저절로 켜진 채 건전지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건

전지를 미리 장착한 주인의 잘못도 있다. 혹 하산시간이 늦어질 때를 대비해야하는 건전지인

데.. (대피소에서 다시구입)

 

 

  

 

 

<백련사-향적봉 정상 : 2시간 5분>

 

오르는 동안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추월당하지 않는 경험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새벽 산

행하는 사람이 없나보다.(종주산행이 끝날 때 까지 마주오는 몇 팀은 있었지만, 진행방향으로

는 마지막에 만난 한 팀 밖에 없었다.)

 

중턱에서 6시경 일출을 보고, 정상에 도착하니 7시 정각. 몇몇 사진애호가가 대피소 위 능선

에 산재해 있고 향적봉 정상은 나를 위해 온전히 비어있었다. 향적봉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운무경험이 더 많아 작년에 처음으로 근사한 일출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여름철에는 특히나 운

무가 낀 날이 많으니 오늘 같이 운해가 걸쳐진 좋은 전망은 행복이다.

 

이모저모 사진도 찍고, 대피소에 내려서서 간식도 하고, 충분한 휴식을 하였다.

 

 

 

 

 

 

<중봉에서>

 

7시 55분에 중봉에 도착. 언제 봐도 육감적인 매력의 주능선. 능선을 보며 느끼는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연의 그 무엇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가쁜 숨결과 고된 발걸음, 더

하여 보람과 성취 그리고 산 속의 분위기와 조망을 아우르는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고

독하고 고난한 행군이 능선 위로 펼쳐질 것이다. 아름다움의 이름으로!

 

 

 

 

 

 

<중봉-송계삼거리 : 25분>

 

중봉의 사면을 내려서니 아무도 없는 덕유평전의 한가운데 선 셈이다. 양 팔을 새처럼 펴고

빙 한바퀴 춤사위로 돌아보았다. “~이렇게 왔습니다.” 고승(高僧)이나 덕유평전이 나더러 어

떻게 왔냐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혼자서 선문선답을 따라 해보았다. 송계삼거리에서 만난 백

두대간 길에 예의를 갖추고 뒤돌아 중봉과 향적봉을 보니 중봉의 온유함이 오늘따라 돋보인

다.

 

 

 

 

<송계3거리-동엽령 : 50분>

 

이 구간은 몇 년 전,  여름날 집사람과 "삼공리-향적봉-동엽령-칠연계곡" 산행을 할 때도 무

척 지겨워했던 구간이고 겨울 역방향 종주 시에도 헉헉거렸던 코스. 오늘도 왠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늠하면서 걸어보니 백암봉에서 세 번째 봉우리를 지나서야 동엽령 둔덕이 나온다.

 

이곳에서 늦은 아침식사. 9시 15분. (밥은 두끼니를 세트로 준비하였는데 결국 이 한끼만 먹

고 만다. 나머지 끼니 세트는 끝까지 버리지도 못한 짐이 되었다.) 반대방향의 산객 두세 팀들

이 나뭇잎 사이로 스쳐가는 산바람 같은 왁자함을 남기고 사라지니 그 텅 빔이 스산하기만 하

다. 동엽령의 저 쓸쓸한 나무판때기 이정표가 한층 분위기를 돋운다. 9시 50분 출발.

 

 

 

  

 

 

<동엽령-무룡산 : 3시간 10분>

 

이 구간을 3시간에서 크게 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제1과제였다. 오르내림에 지쳐갈 즈음 우

뚝 선 봉우리가 앞을 가린다. 무룡산 앞의 돌탑봉이다. 여기서 한 시간 더 진행해야한다. 체력

안배를 잘 되고 있고 물도 충분히 먹고 있다.

 

무룡산 마지막 오름이 급경사로 보였으나 완만한 경사에 마지막 짧은 급경사 밖에 없었다. 지

난 겨울에 내려서면서 미끄러졌던 구간이다. 정상에 오르니 한시 정각. 체력과 시간 둘다 무

난하다.

 

 

 

 

<무룡산-삿갓재 대피소 : 1시간>

 

운무가 오락가락 시야를 가렸으나 걷는 즐거움으로 대신할 수 있는 완경사. 능선의 아기자기

함이 암봉들과 어울리고, 사면의 억새풀들은 이어질 계절의 찬란함을 준비한다. 여름의 끝이

다. 고산의 경사면에서부터 여름은 저렇게 씻겨져 내려간다.

 

 

 

 

 

<삿갓재 대피소-삿갓봉 : 30분 >

 

삿갓재에 2시 도착. 요기와 시원한 생수 2000 cc 보충.(최종적 합계, 물 4500 cc 이상 소비를

하니 거의 물거북이다. 아내의 표현을 빌면 물먹는 시간과 사진 찍는데 시간의 절반을 보냈겠

다나....지금도 물을 마시면서 적는다.^^)

 

15분 휴식 방금 먹은 간식에 배가 아프지 않도록 느린 걸음으로 오름질. 겨울에 빠뜨린 삿갓

봉에 도착하여 생수 한병을 거뜬히 비운다. 크으~ 이렇게 시원할 수가(대피소 태양열로 냉장

고가 가동하는 모양이다).

 

 

 

 

 

종주는 거의 안전하게 성공했다는 확신을 하고 삿갓봉에 올랐는데...... 남덕유까지의 고단한

여정이 한편 걱정스러위진다. 삿갓봉에서 보는 능선은 지난 겨울의 역경을 되살리기에 충분

하다.

 

아직...... 너무 많이 남았구나.....!! (장탄식이 이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오른쪽 무릎이 아파왔던 것이 다시금 느껴진다.

 

  

 

 

 

 

 

 

<삿갓봉-월성재 : 1시간 45분>

 

 운무도 오락가락.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월성치에 도착한 것이 4시 정각. 거의

퍼졌다. 여기서 황점 마을로 길게 내려서느니 남덕유로 올라야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산행한지 12시간을 넘어서니 늘 그랬던대로 기진맥진이다. 아직 나의 한계는 속도와 관계없

이 12시간 기점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이다. 야간산행을 피할려면 7시-7시 반까지 하산을

완료해야하는데 월성치에서 영각사까지 남은 시간적 여유는 3시간-3시간 반. 피로를 감안하

면 약간 빡빡하지만 무리는 없겠다고 판단하고 되도록 천천히 오르기로 하였다.

 

 

 

 

<월성재-남덕유산 정상 : 1시간 15분>

 

월성치에서 오늘 처음으로 같은 방향의 종주산객들을 만났다. 대구분들인데 6시반경에 삼공

리에서 출발, 여기서 만났으니 같은 거리를 나보다 두시간 반을 빨리 온 셈이다. 내가 평균에

서 그만큼 벗어난 것이리라.

 

그래도 혼자다니는 것이 대단하다며 괜스레 치사를 건네는가 하며 육십령까지 갈 예정이냐고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그랬다간 조난당할 거라고 했지만^^) 남덕유 정상까지 힘들었지

만 시간과 거리를 맞추어가며 진행하였다.

 

빠르신 분들은 이 구간의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을 의아히 여기실 줄 모르나 혼자 산행하는 나

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탈진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하며 부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

고다!라는 안전주의다.

 

그래서 항상 체력은 남아 있어야하고 시간적 여유도 확보되어야한다. 시간 충분한가를 자문

하면서 되도록 천천히 천천히를 생각하며 한발한발 올라간다. 운무가 짙어져 얼마 앞이 보이

지 않는다.

 

이윽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대구분들에 이어서 남덕유 정상에 도착하였다. 하이고~ 이

래서 여름철 덕유종주가 정점을 맺는다. 5시 15분. 하산 5시 30분.

 

 

  

 

 

<남덕유산-영각사 : 1시간 30분>

 

대구분들이 내려간 후 운무 속의 지루한 하산을 홀로 하였다. 이렇게 지독한 운무는 처음이

다. 남덕유를 계절을 가리지 않고 다닌 경험이 없었다면 자칫 두려울 수도 있는 농무다.

 

산행의 출발은 흑색 어두움으로 시작하였고 종점은 백색 어두움으로 끝내누나. 백색 어두움

이라.... 아무도 없는 저녁의 산길에는 농무도 적당히 두려움을 준다.

 

등산로에 가장 가까이 있어 자주 애용하는 계곡수에서 15시간의 피로를 씻고, 30분을 더하여

내려서니 정확히 7시 01분에 영각사 매표소를 통과한다.

 

덕유능선에서 여름과 헤어지고..... 이젠 가을이 와도 마음이 편하겠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