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된 지리종주 연습 산행 (모산,악견,금성산)


지난밤 온국민을 열광시킨 올림픽 축구 본선 멕시코와의 한판은 8.15광복과 함께
지긋 지긋한 대멕시코 전의 해방이라는 점에서도 그 기쁨이 몇배나 배가되는
가슴 썬한 국민적 청량제가 되었다.
고물가 시대의 서민 경제와 이전투구의 정치권에 찌들고 식상한 무기력감을 김정우
의 짜릿한 슛 한방으로 털어주니 올림픽 축구팀 만세 만세 만만세다.


곁의 체력이 어느정도 회복 된겄 같아 천왕봉 산행이후 홀애비 과부 꾀이디기 등치고
배문지르며 곁을 꼬드겼으나 곁은 아무래도 편치않은 무릎과 연로하신 장모님을 들어
난색을 표한다.
혼자 발가락에 낀때 후미며 산가지를 놓으니 쏟아지는 빗속을 어름거려 봐야 장마철
소금장수 소금짐 줄듯 득보다는 실이 많을겄 같고 무엇보다 멧시코와의 일전에 사뭇
정신이 팔려 선심 쓰듯 향골 산행으로 노정을 고쳐 잡는다.


축구탓에 개잠으로 두어시간 엎치락 뒤치락 했으나 몸은 전혀 피곤하지가 않아 앞마당을
어슬렁거리며 하늘을 살피니 오락가락 하는 비는 주모의 저고리 섶 사이로 보이는
흐벅진 쇠유통 마냥 사람 애간장을 달군다.
장모님 진지 챙겨 드리고 식사 대용으로 삶은 고구마 몇낱과 얼음물 두어병 그리고
약간의 커피만 챙겨 먼저 모산재로 동풍에 스님 머리칼 휘날리듯 달겨든다.


곁은 종시 흩날리는 비가 개운치가 않은지 말없이 앞만 쳐다보고 있다.
모산재 주차장에 로시난테 고삐를 매어놓고 과하다 싶을만큼 잘 지어놓은 화장실에
문안을 드리니 두예삐의 머리통 만한 말벌집이 간담을 서늘케한다.
두번씩이나 저놈의 말벌에게 혼찌검이 난탓에 보는 순간 고슴도치에 놀란 개호주
밤송이에 놀라디끼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는다.


꼴에 가당찮은 호기를 부린답시고 오늘 오를 산들은 모두 정상까지 쉬지않고 오르는
깡다구 산행을 할참이니 알아서 기라며 으름장을 놓으나 곁의 눈엔 잔잔한 흔들림조차
없어 되려 객이 무색해진다.


                              ^^^^모산재^^^^


초입의 포장로를 오르려니 그저께 좀 과한 하체 운동 탓인지 똥마련 상노마냥 영 걸음
에 매무새가 나지 않는다.
제출물로 코큰 소리를 지껄여 놓았으니 오줄없는 핑계도 난당인지라 마음이 심히 불안
한데 주리참듯 하는 중에 소견없는 진땀만 염치없이 철대방죽으로 흐른다.
연신 횟배 앓는놈 소리를 끙끙거리며 은근히 쉬어가자는 곁의 훈수를 바랬으나 강건너
사공인양 꿈쩍도 않고 뒤만 따라온다.


혼자 궁시렁 거리는 길이 그래도 황포 돛대에 이르 조금 숨통이 트인다.
먼저온 선객들이 바위마루에 걸터앉아 빛깔 좋은 능금을 아삭 거리는데 신침이 절로
목젖을 타고 넘는다.   어디 한입 주면 덧나나...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만 가득한 정상엔 우리가 일착인듯 깨끗하고 한적하다.
언제봐도 좋은 황매 일주 능선을 흐뭇이 담고는 왔던길을 되짚어 내려선다.


순결바우 쪽은 관절이 약한 곁에게 아무래도 부담으로 꺼려질 길이기에 황포 돛대길을
다시 잇는 까닭이다.
객이 천천히 내려서노라 하건마는 무릎이 약한 곁의 걸음은 자꾸만 뒤로 쳐진다.
간밤의 비탓인지 다내려가도록 겨우 두어팀만 만났을뿐 모산재는 온통 매미들의 천국
이다.   단골집인 모산재 식당에 들러 콜라병 궁둥이를 꺼꾸로 쳐들고는 갈증에 본때를
보인다.         "어어...  시원타."


                          ^^^^악견산^^^^


가노라 모산재야 다시보자 황매산아
덕만고갯길을 떠나고쟈 하랴만은
날씨가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삼전도의 치욕을 겪고 머나먼 청의 심양으로 병약한 몸을 수레에 뉘어 끌려 가면서도
그 약골의 몸 어디에서 나온지도 모를 어기찬 호통으로 적장 용골대를 개 꾸짖듯 했다는
우리 조선의 기개 김상헌 선생의 애국시를 망령되이 모칭하며 악견산 그리운 품으로
발길을 놓는다.


이젠 웬만히 몸이 풀렷으려니 생각하고 곁에게 정상까지 또 논스톱이라며 강다짐으로
딴죽을 거니 그저 가만히 고개만 끄덕인다.
오냐 , 이번엔 항복을 개어 내리다 싶어 조금 빠른 속도로 기를 쓰고 오른다.
바로 한칸 앞에 60객으로 뵈는 부부 산꾼이 걸찍한 외담을 내뱉으며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대단한 내공이다 싶어 감탄을 연발하며 따르는데 불과 일각이 채안되어 황소 영각켜는
소리를 낭자히 흐트리며 두양반은 길옆 바위턱에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두분이 민망해 할까봐 소리없이 내처오르니 갈짓자로 꺾이는 삼거리에 역시 초로의 산꾼
대여섯분이 또 능금을 깎아 들고는 메어오는 조갈증을 더욱 더 기승을 부리게 한다.
아무리 없이 사는 살림 두량이지만 내려서면 저놈의 능금을 바리째 사서 포원을 풀리라
맹세를 한다.
악견산 최난 코스인 철계단 서넛을 올라서고 그늘이 좋은 안부가 이내 나타난다.


근디 이눔의 다리가 갑자기 실성을 했나 땅에 박힌듯 꼼짝을 않을려네.
곁을 욕(?)보일 생각으로 지나치게 오버 했던게 빌미가 되어 탈이난듯 도대체가 요지부동이네 .
좀 쉬어가고 싶었으나 자존심 때문에 얼음물 한잔 마시고 곧장 올라선다.
부치는 기운탓에 땀으로 범벅된 윗옷 자락엔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사려물은 어금니는
진즉에 방석니가 되었더라.


곁을 힐끗 돌아보니 얼굴에 땀 서너푼이 배여 있을뿐 일매진 걸음새는 얄미울만치 착착 
달라붙는다.
이거 누가 연습생이고 교관인지 주객이 전도되어 어안이 벙벙한데 아무래도 똥끝이 타기야
객일 수 밖에 없어 이래저래 첩첩 산중이다.
예같으면 향골호의 풍취와 산세에 입이 침이없이 주절거리겠지만 우선은 벌벌 거리며 기진 맥진
한 두다리의 건사가 지난이였다.


다행히 산성터에 닿을 즈음 기력이 회복되어 걷기가 조금  수월했으나 체면에 똥칠갑은 도리
없이 뒤집어 쓰고 말았다.
솔남기 좋은 쉼터엔 정분이 난 꽃뱀(화사) 두마리가 인기척에 화돌짝 놀라 급급히 떨어진다.
심통이 난 탓에 죄없는 그들에게 발길질로 화풀이를 한다.   
성난김에 장독 깬다고 정상까지 뛰어서 올라가니 곁도 종종 걸음으로 잘도 따라온다.
하불실 술담배를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냉큼든다.


정상아래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는 마지막  금성산을 바라 하산길을 서두른다.

돌굽이 돌아선길 호국산성 어드메뇨 .
향골호에 이는바람 천리를 퍼져가네 .
뉘있어 여기서면 금강인가 여기소서.

                       

                                ^^^^금성산^^^^


악견에서 고구마 몇개로 얼요기를 했으나 허기를 끄기에는 역부족인지라 댐휴게소 누님댁에
들러 풋고추 팡팡 썰은 맵짜한 라면으로 입맛을 돋운다.
반넘어 덜어준 곁의 라면까지 개죽사발로 핥아 놓으니 곁의 동그란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그저 서방이란 저렇듯 잘먹어야 힘을 써는 법인께로 ...


대원사 노둣돌에 로시난테를 세워두고 딸랑거리는 풍경소리를 친구삼아 금성을 오른다.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던지 임도 초입엔 잡초가 무성하고 비에젖은 황톳길은 한량없이 미끄럽다.
부실한 뱀띠 지아비를 둔 곁이건만 뱀이라면 진저리를 치기에 잡초 우거진 길을 숨조차 크게
못쉬며 내딛는다.
계곡으로 시원히 감아도는 길은 그러나 자심한 가뭄탓에 간밤의 비로도 물기하나 없이 말라
있다.


좁다란 등로에 개암나무 가지가 휘어져 있어 개암 두어개를 훍어 속을 깨어주니 처음 먹어본다며
고소한 맛에 반색을 한다.
언젠가 황점에서 삿갓재 대피소로 오른던 길에서 만난 거대한 개암나무가 떠오른다.
지금쯤 한창 여물고 있을텐데 ....
급경사를 올려치는 길에 여전히 객만 이앓는 소리가 걸판지지만 곁은 거친 숨소리 한번 없이 잘도
따라온다.


괜시리 논스톱 산행 어쩌구 설레발을 쳐 화근을 자초했으니 누굴 원망하랴.
아마 남은 허굴산까지 가쟀더라면 객의 꼬락서니가 어찌 되었을꼬 ?...
안부 능선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오르는 길은 철계단 두어개를 지나 옛봉수대 터인 정상으로 수월히
닿는다.
정상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삼신할미의 약탕기 바위쪽에서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들린다.


빼꼼 들여보니 아줌마 두분이 아예 자리깔고 청풍을 이불삼아 망중한을 즐긴다.
거주지 상달하니 자기도 향골이라며 안면이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람기 시원한 정상은 거칠겄없이 통쾌하지만 어서 가자는 곁의 채근에 오래 머물지를 못한다.
때마침 진주의 증이솟은 전화가 몸살을 한다.
"엄마는 3시에 온대 놓고 뭐하는데..."


대원사 풍경소리 개암은 절로익고
벽계수 끊어지니 선녀옷은 간곳없네.
봉수대 불오르니 나랏님아 저기보소 .


                 2004년 8월 25일 끝


#각구간 산행시간.

*산행시작 09시 50분.
*산행종료 15시 24분.

**모산재
^등산  40분.
^하산  35분.

**악견산
^등산  52분
^하산  40분.

**금성산
 ^등산  39분
 ^하산  2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