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출발인데
03시 30분에 일어나 자명종 시계를 손보고 잠이 들었다.

근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정해놓은 시각에 벨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눈을 떠보니 05시 45분 이다.

 

안절부절이다.
배낭은 특별히 꾸릴 게 없었으나...

주섬주섬 집어넣고 달렸다.

 

그런데 점심을 준비하지 못하고 말았다.
김밥을 준비하기로 했었는데...

 

~~~~~~~~~~~~~~

 

우리가 중산리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20분.
이곳은 전국에서 몰리는 등산 애호가들 때문에
유명한 곳이 되어서인지 관광지 냄새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엊그제 많이 내린 비 때문인지 인접 水路엔 시원하고 힘이 있어보이는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 내려간다.

 

이번 산행은 당일치기 산행으로서 체력단련 의미가 강해서
주위 경관을 살피고 음미하면서 오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거리로는 천왕봉까지 5.4km로 원거리는 아니지만 워낙 경사가 급해
실제로 오르는데는 3-4시간이 걸리는 심히 어려운 코스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날씨가 쾌청하여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지난 해 설악산 대청봉 산행때는 후미에 쳐져서 고생을 많이 하였었는데
이번에는 선두 그룹에 들어가기로 작정을 하고 맘을 단단히 묵었다. ^^

내 친구보다도 더 앞서 나가려고 애를 썼으니...ㅎㅎㅎ
마치 오래달리기 계주를 하는 것처럼...

 

뒤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산을 올랐다. 
1시간 쯤 올랐을까...  마침내 法界寺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천왕봉의 안내표지판이  있었다.

 

묵묵히 오를 뿐... 누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오를 수도 없다.
이마에서는 쉬임없이 땀방울이 맺히고
입은 침이 마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들 산을 오르는 것일까.
 
요즘 국립공원엔 왠만하면 시설을 잘 갖춰놓은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무로 만든 계단들... 옛날엔 철제 계단이 많았으나 안전에는 나무가 더 좋은 가 보다.

 

어디쯤 올라갔을까.  외국인 한명이 나타난다. 그대로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또 작은 5-6세 정도의 남자아이가 나타난다.
그 아이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You are smart.' '.....'  그런데 반응이 없다.  수줍음을 타는지 아니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모양이다.

또 하나 꼬마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 Hello !  You're wonderful." 이라고 했더니...  그녀가 말한다.  잘은 못알아듣었으나 대충  'great view' 라고 하는 것 같았다.  'How old are you ?' 라고 물으니  'nine'이라고 짧게 말하고 내려간다. 참 귀여운 녀석들이다.  그동안 등산 하면서 이방인을 몇명 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어린 꼬마들을 데리고 산행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아빠는 물론 애들도 모두 날씬하였다. ^^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야말로 파란 하늘이다.   흰구름만이 살짝 생크림처럼 얇게 묻어있고...  손을 길게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만 같은 께끗한 하늘과 구름이었다.


이윽고 천왕봉이 0.8km 남았단다. 위를 쳐다보니 아무것도 없다. 정상이 가까워오니 위에 보이는 것은 하늘과 바위뿐...
꼭 옛날 신혼여행때 한라산 정상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이제 위 보다는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아래 주변 경관을 조망하였다.  수없이 펼쳐진 능선과 골짜기들...
내가 언제 이렇게 높이 올라왔을까...

저 아래 저 멀리 남쪽을 바라보니 바다가 보인다. 그만큼 날씨가 청명하였다.
그리고 서서히 내륙 안으로 눈길을 돌리니  바로 진주시내가 보인다.  아파트촌이 아주 자그맣게 들어온다.

축적 얼마쯤 될까...  아파트가 꼭 모델하우스내 작은 성냥곽 크기만하게 보인다.

 

보아라 ! 대한민국에 남쪽나라 최정상에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내 눈 안에 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리사욕과 애욕에 물들어 부질없는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갖는다.

여기 이런 곳에 올라와 보면 그야말로 마음이 넓어지고 시야 또한 넓어지는 것을...

 

다시 눈을 옆으로, 위로 돌려보니 정상 주변 경관이 서서히 발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단풍은 이렇게 정상으로부터 내려가는 것이다.

 

이윽고 천왕봉에 당도하니
친구 수현이가 나를 부른다.

그동안 얼마나 심심했을꼬...
이 친구는 나이는 나보다 한살 더 많은데도 체력은 아직도 30대와 같다.

그래서 같이 산에 오르면 항상 먼저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차이가 날 정도로...

 

그런데 그 친구 가로 曰,  나더러 이번 산행을 지켜보니 옛날보다 훨씬 체력이 좋아진 거 같다고 덕담을 내놓는다.

 

사실 그동안 운동을 한 것은 따로 없지만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장거리 달리기를 하였다.

이른바 웰빙 건강마라톤으로 적게는 4km ~ 8 km를 꾸준히 달렸기 때문일까. 

그런데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왜이리 힘이 드는지...내 몸은 참 고통 덩어리 그 자체였다.

 

육신은 고달파도 정신, 정수리에 꽂히는 그 이름모를... 천지신명이 내려주시는 그 『氣』때문에 우리는 산에 그것도 좀 더 높은 산에 사력을 다해 오르는 지 모른다.

 

이제 준비해간 일회용 카메라로 흔적을 포착해야지...
선명하지 않아도 좋으니 ... 굳이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져오진 않는다.

아직 사진 현상을 하지 않았으니.. 잘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두번 째 천왕봉 답사다.  지난 해에도 지리산을 찾았지만  무릎 통증으로 그만  『 고지가 바로 저긴데 ...』를 연발하며 아쉽게 백무동으로 하산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이 내려주신 은총으로 아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웅장하고 광활한 첩첩히 둘러싸인 능선과 멀리 멀리 아주 멀리 저 삼천포 앞바다까지 볼 수 있었으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정상에서 남들은 도시락으로 맛잇는 점심을 춤(침) 넘어가게 먹었지만
우리는 떡 몇조각과 고구마 한 개로 허기를 달랬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밥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 그거 바로 그거... 소주 한 팩은 준비하였으니
먼저 한잔을 따라 천왕봉 산신령께 인사를 드리고  다음에 수현이 한 잔 주고
나머지는 밥대신 그걸로 서운한 배를 달랬습니다. ㅎㅎㅎ

 

이제 일정상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하여야만 했지요.

『 한국인의 기상 , 여기에서 발원되다.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 』석상을 끌어안고 이별의 입맞춤을 하였지요.

언제 다시 찾을 지 기약은 없지만은  불현듯 또 다시 천왕봉을 찾을 날이 있겠지...

하산하면서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발걸음이 무겁고 무릎에 충격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통천문을 지나고 제석봉을 지나고   장터목 산장까지 내려오는데  별로 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2001.8 우리 한라하고 제석봉을 내려오면서 느꼈던 그 기분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역시 그 때  그 위치에 따라 기분(?) 분위기는 있나 보는데....

 

아마 제석봉은 늦가을 석양이 내려갈 때 쯤  음울한 빛이 돌 때, 왠지 무섭기도 하면서 나무의 형체만 남은 그 모습이 참모습이 아닐까.  

아니면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50년전으로 돌아가 여기 명명하고 있는 안내 표지판처럼 짙푸른 청년의 수림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의미있는 상상이 아닐까...

 

그런데  왠일인지 작년에 보았던 그 구상나무만은 하루종일 볼 수 없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지리산 산행은
길게 뻗은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듣고 이에 화답하며
그리고 또 더덕냄새에 취하기도 하면서  천년 이끼 낀 고목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리고 또 한켠 바위 사이에 부끄럼 가득안고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과 대화하면서 걷는 것이 진짜 지리산을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것이리라.

 

이게 이른바 「萬行」일 것이다.

 

<font color=brown>※ 끝으로 智異山의 유래에 대해 옮겨봅니다.

①불교적 용어로 「대지문수사리보살」의 '智'자와 '異'자를  따와서 지리산으로 불리우고
②지리산이 크고 웅장해 '지루하다'의 남녘 사투리 '지리하다'에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말이라고도 한다.
③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달라진다(異)해서 지리산으로 불리우기도 한단다.  

 

지리산은 날카롭고 빼어남은 부족하나 웅장하고 두리뭉실한 기운이 돋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三神山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상징하며 민족의 영산으로 우리 정서에 깊이 새겨진 자연유산이다.

 

경남 산청군 중산리 산 208번지에 소재한 남한 제2고봉 '천왕봉'을 주봉으로 반야봉, 노고단이 대표적이며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잇는 100리 능선에는 1,500m가 넘는 고봉이 10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나 있을 정도로 높고 넓고 크다.(전라남북도, 경상남도 등 3개도 5개군 15개 면에 걸쳐있으며 면적은 1억 3천만평에 이른다)
세석평전처럼 평평한 고원지대에도 야생화나 철쭉 등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지리산은 아무 수식이 필요없는 그야말로 어머니를 닮은 진짜 『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