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이지만

육백지맥할때의 경험으로 보아

능선이나 봉우리에서 특별한 전망터는 없을 터이고

폭포 구경이라면 비와 상관 없지 않은가?

 

수중전 준비를 다부지게 하고선 기차에 오른다.

 

(누르면 확대됨)

 

-07;30 도계역

-07;45~50 소재말,현불사 입구

-08;13 국시재

-08;47 큰말,용소 폭포 삼거리

-08;56~09;44 성황골 폭포 탐방

-09;56 큰말,용소 폭포 삼거리

-10;01 성황당

-11;14 지능선 마루금

-11;45 육백지맥 만남. 내려가다 빽.

-12;00 1120.0 봉의 서쪽 봉우리. 현 위치 확인.

-12;23 능선분기봉(1130m)

-12;29~45 1106봉 밑에서 점심.

-12;50 삼거리. 좌측에서 뚜렷한 길 올라온다.육백산 이졍표 나옴.

-13;15 삼거리. 우측으로 우회로 갈라짐. 직진길 막아놓음.

-13;21 1123봉.서쪽 사면으로 내려가 우회길 만남.

-13;37 호랑장터 안부

-13;42 1057봉

-13;46 삿갓봉 팻말

-13;57 1006봉

-14;00 돌탑 안부 삼거리. 우측 무시터 하산로.

-14;18 1061봉. 탕건봉 갈림길 삼거리.

-14;27~33 탕건봉

-15;09 도화산

-15;23 안부 삼거리. 좌측 장원초교 쪽 하산로.

-15;49~16;15 620봉 근처 무덤.

-16;52 도계 우회로 2길.

-16;56 옛 우시장터.

 

  

 

 

도계역은 맞이방 시설이 좋다.

도서관처럼 대합실과는 따로 분리된 방인데

누워 쉴 의자도 있고 읽어볼 책도 풍부하다.

우동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역을 나오니 밤에 오던 비는 멈췄다.  

택시를 타고 무건리로 향한다.

 

(석회석 광산)

 

 

(소재말,현불 사입구 삼거리)

 

민가 한채만 있는 소재말에 도착하여(현불사 입구 삼거리)

행장을 갖추는데 아주머니와 백구 한마리가 다가와 입산 금지라고 알려준다.

8시부터 단속원이 나온다기에 서둘러 출발한다.

 

(국시재까지는 포장도로이다.) 

(뭣에 쓰던 물건인고?)

 

(국시재) 

 

국시재에 올라가니 외지인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던 아주머니의 태도가 이해 되었다.

빨간줄로 입산 금지를 표시해 놨는데, '개조심'은 아까 보았던 순딩이 백구를 애기하는 걸까? 

국시재부턴 비포장 길인데 차가 다닌 흔적이 뚜렷하다.

 

 

(홀로 떨어진 민가)

 

(큰말에 도착하니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또 입산금지 삼거리이다.) 

(가파르게 계곡으로 내려가면 또 출입금지 팻말과 용소 폭포가 나온다)

 

(용소 폭포)

 

용소폭포에서 성황골을 따라 잠시 내려가본다.

 

(암반/협곡으로 된  성황골) 

(작은 와폭을 지나) 

(가파른 수직 사면을 어렵게 내려가면) 

(아래 이끼 폭포의 소가 보인다.) 

 

 

(아래 이끼폭포)(누르면 확대됨)

 

성황골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다닌듯 리본이 간간히 보이고

이끼가 벗겨진 바닥엔 족적이 뚜렷하다.

무분별한 입산금지가 절실한데 무작정 출입금지를 할 것이 아니라

폭포 일대만 철책이나 목책으로 정리하여 통제하면 어떨가 생각해본다.

  

다시 용소 폭포로 돌아와  이끼 폭포를 가려하는데

전에 있던 줄사다리를 잘라놔 인왕산님 혼자  수직 밧줄 등반을 한다.

 

 

(다시 돌아온 용소폭포)(누르면 확대됨) 

 

 

 

 

(이끼 폭포)(누르면 확대됨) 

 

 

(폭포 옆엔 동굴이 있는데 용소굴일까?).

 

다시 큰말쪽으로 빽하는데 길이 가팔라 거의 땅에 코를 대고 올라간다.

현수막이 걸린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진행하니 윗 삼거리에서 갈라진 임도와 만나고

무건리 분교 폐교 안내문과 성황당이 나온다. 성황골 이름은 이 성황당에서 유래되었으리라.

 

(큰말 전경) 

(쑥부쟁이 밭)

 

(무건리 분교 폐교 안내문)

 

 

(성황당)

 

(성황골 건너편의 덕항산쪽 백두대간) 

 

 

삼거리 갈림길 마다 좌측 사면의 오르막길을 택한다.

계곡에서 멀어짐에 따라 간간히 리본이 나오던 넓은 길은

어느새 바닥이 잘 안보이는 흐릿한 사면 길로 바뀌고.. 

콧노래를 부르다가 어느새 악을 쓰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혀를 빼물고 무대뽀로 능선에 올라갔으나 현위치 파악이 안되어 헤매다가

육백 지맥의 1112.0 봉 서쪽 봉우리에 올라가 감을 잡는다.

 

(1112.0 봉 서쪽 봉우리)

 

육백지맥에 오르기까지 너무 시간을 잡아먹은 듯하여 서두른다.

리본과 길이 뚜렷한 지맥을 따라 분기봉(1130m)까지 가서 

방향을 잡고 서쪽으로 풀을 헤치며  진행하면

육백산 이정표와 뚜렷한 길이 올라오는 삼거리이다.

 

(육백산 이정표)

 

낮은 봉우리로 된 능선이라 순한 길이 이어지지만 전망 또한 별로이다.

 

1108봉 근처에서 떡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1085.7봉쪽 봉우리를 우회하여 923봉 밑에 도달하니

능선길은 막아놓고 우측사면으로  길이 갈라진다.

 

직진하여 펑퍼짐한 923봉에 올라가 사면을 헤치며 서쪽으로 내려가니

갈라졌던 우회길을 다시 나온다.

안부에는 호랑장터 팻말이 있는데 좌우로 뚜렷한 길은 안보인다. 

 

 

1057봉 역시 우회하여 지나가니 그 다음 봉우리에 삿갓봉이란 팻말이 나오지만

그냥 평범한 봉우리이다.

 

 

1006봉을 지나니 돌무덤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 마교리 무시터로 길이 갈라진다.

 

 

능선 가운데 있는 묘 한기를 지나 올라가면 탕건봉 삼거리 1051봉이다.

베낭을 벗어 놓고 탕건봉으로 향한다.

 

 

(정위치에 탕건봉 팻말을 옮겨 놓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도화산) 

 

(육백산 자락에는) 

(삼척대학이 자리잡았다)

 

삼각점 10여m 직전 둔덕에 잘못 걸려있던 탕건봉 팻말을 정위치로 옮기고

다시 분기봉(1051m)으로 빽하여  도화산으로 향한다.

내려가는 능선에는 벌목한 나무가 어지럽다.

 

 

도화산 직전의 안부에서 100m 오르막을 10여분 올라가면 정상이다.

 

 

(도화산.지도에 안나오는 삼각점이 있다.)

 

도화산에서 서쪽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면

안부에서 좌측 장원초교 쪽으로 길이 갈라진다.

직진하는 길은 흐린데..봉우리를 하나 넘으니

아예 바닥이 안보이는 흐린 잡목 숲길이다.

마리를 땅에 대고 길을 찾아 겨우 내려간다.

 

(?)

 

620봉으로 추정 되는 봉우리를 내려서니

양지 바른 곳에 묘가 한기 나오며 남쪽 전망이 잠시 터진다.

안개속 전망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휴식.

 

(남쪽 전망)(누르면 확대됨) 

(백병산 방향) 

(오봉산) 

(연화봉 방향)

 

하산 방향을 집사람이 국민학생 시절 살던 집이 있는 옛 도계 우시장 터로  잡는다.

 

(도계읍 전경) 

(강원 대학교 아파트) 

 

(눈에 익은 건널목-전엔 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집사람 살던 집) 

(고인이 되신 장인 어른의 가게터-마을 회관으로 바꼈다)

 

택시를 타고 도계역으로 이동하여

역/기차안에서 뒷풀이와 식사를 한다.

 

 

(다시 도계역 맞이방에서 고량주+오뎅)

 

 

(기차 탈때마다 놀던 화장실 앞)  

 

 

 

(역에서 라면을 끓여가지고 승차하여 계란을 추가함)

 

(스넥 칸에가서 확인 사살 당하여  혼절함)

 

(더덕 꽃)

 

2010.10.3 개천절. 흐림, 인왕산 님과 같이 다녀옴.

갈때; 22;50  청량리 역 도계행 무궁화호.

올때; 17;30  도계역 청량리행 무궁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