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들이 걷던 길.... 조계산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걸었네

 

● 산 행 지 : 조계산 천년불심길(굴목재길) (전남 순천)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4일 (日)

● 누 구 랑 : 지인들과

● 산행코스 : 선암사매표소 - 승선교 - 강선루 - 삼인당 - 선암사 - 선암사골 - 선엄사굴목재 - 보리밥집 - 송광굴목재 - 홍골 - 송광사 - 송광사매표소

● 사진은 ? : 따스한마음, 노루귀, 본인

 

 

전남 순천(順天).

말 그대로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 땅이다.

그곳에 가면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과 함께 ‘호남 3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조계산(887m)이 있다.

산이름에서 느끼듯이 조계산은 한국불교의 양대 가람인 천년고찰 송광사와 선암사에게 그 품을 내주고 있는 산이다.

서쪽 기슭의 ‘승보사찰’ 송광사는 ‘법’의 해인사, ‘불’의 통도사와 함께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16국사(國師)를 배출하고 국보 3점과 보물 12점을 비롯하여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절집이다.

동쪽 기슭의 태고총림(太古叢林)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으로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과 600살 넘은 선암매(仙巖梅)와 와송, 달마전 석정, 뒤간 등이 명물로 알려진 절집이다.

송광사와 선암사에 품을 내준 조계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만만해 보이는 산이다.

조계산 중턱으로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고갯길이 있으니 사람들은 그 길을 ‘굴목재’라 부른다.

이 길을 전남 순천시는 남도 삼백리길 중 하나로 ‘천년불심길’이라 별칭을 붙였다.

 

 

2012년 임진년의 달력도 이제 두장을 남겨놓고 있다.

며칠뒤가 입동이라고 하니 계절은 늦가을이라고 해야 할지 초겨울이라 해야할지 망설여 질 정도로 스산하다.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고즈녁한 곳이 없을까 하고 있는데 노루귀님으로부터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아름다운 고갯길 ‘굴목재’를 몇몇이 걷자기에 설레임으로 따라 나선다.

굴목재길은 조계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숲길 6.5km이다.

 

 

 

선암사 입구부터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이곳을 찾은게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지난주 설악에서는 떠나가는 단풍을 보았는데, 남쪽은 단풍이 제법이다.

그 길을 오랜 산우님들과 함께 걸으니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승선교에서 바라 본 강선루)

 

(승선교에서 일행들과 신선이 될 채비를 한다...)

 

아름다운 단풍 숲길을 조금 오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로 평가 받고있는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와 2층 누각인 강선루와 조우한다.

아늑한 정취가 단풍과 어울려 한폭의 풍경화를 연출한다.

하긴 선암사(仙巖寺)는 신선이 내린 바위가 있던 자리이고, 강선루(降 仙樓)는 신선이 내려온 곳이요, 승선교(昇仙橋)는 신선이 하늘로 오르는 곳이니 바로 이곳이 선계(仙界)이다.

 

 

(선계에 들어서니 나 또한 반신선이 되어 삶의 번뇌를 씻어 본다)

 

 

잠시 속세의 온갖 욕심과 번뇌를 내려놓고 신선흉내를 내 볼 좋은 기회이다.

걸음조차 저절로 느릿느릿 팔자걸음이 된다.

 

(삼인당)

 

아름다운 단풍세상 속을 신선이 되어 세월아 네월아 걷다보니 아름다운 연못 선암사 삼인당(三印塘)이다.

신라 경문왕 2년(862년)에 도선국사가 만든 연못이란다.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교의(敎義)인 무상인(無常印), 무아인(無我印), 열반인(涅槃印)을 뜻하는 삼법인(三法印)을 배경으로 만든 연못 안에 조그마한 섬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그리고 들어선 절집 선암사!

정말 곱게 늙은 아늑하고 정갈한 절집이다.

고즈녁하고 고요하다.

하긴 그 옛날 고려시대 입만 열면 시가 되고 문장이 되었다는 문장가 김극기도 선암사에 대해 글을 남겼으니 <동국여지승람> 권40에 실려있다.

 

寂寂洞中寺 (적적동중사) 적적한 산골속 절이요,

蕭蕭林下僧 (소소임하승) 쓸쓸한 숲 아래 스님일세,

情塵渾擺落 (정진혼요락) 마음속 티끌은 온통씻어 떨어뜨렸고,

智水正澄凝 (지수정징응) 지혜의 물은 맑고 용하기도하네,

殷禮八千聖 (은예팔천성) 팔천성인에게 예배하고,

淡交三要朋 (담교삼요붕) 담담한 사귐은 삼요의 벗일세,

我來消熱惱 (아래소열뇌) 내 와서 뜨거운 번뇌 식히니,

如對玉壺水 (여대혹호수) 마치 옥병속 얼음 대하듯 하네....

 

 

(선암사)

 

그 절집을 이리저리 둘러 본다.

대웅전(보물 제1311호)와 대웅전 양 옆에 나란히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395호)도 아늑하고 정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선암사 해우소... 번뇌 망상을 버리라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떠나기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그 유명한 선암사의 ‘뒤간’과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고 멋들어진 해우소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T자형 목조건물로 깊이 또한 무척 깊다.

송광사 스님이 자기 절 솥이 크다고 자랑하니까 선암사 스님이 자기 절 뒷간이 얼마나 깊은지 어제 눈 거시기가 아직도 떨어지는 중이라고 허풍을 떨었다는 옛날이야기가 전해 질 정도로 선암사 뒤간은 크고 깊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선암사’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한다.

해우소 앞 설명에는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 망상을 미련없이 버리자’라고 적어 놓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볼일’이 없어도 꼭 들려야 직성이 풀린단다.

속물인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별로 급한 ‘볼일’이 없는데도 억지로 ‘작은 볼일(?)’을 만들어 그예나 해우소 안으로 들어가 본다.

일행중 한명이 해우소 앞에서 간판을 좌에서 우로 읽자니 ‘ㅅ간뒤’을 ‘싼뒤’로 읽어야 할지, ‘깐뒤’로 읽어야 할지 고민한다.

내가 나서 ‘까고나서 싼뒤’라고 간단명료하게 정리를 해주니 모두들 박장대소다.

 

 

(마애여래입상)

 

(야생 녹차밭에는 꽃이 피어 은은한 향기를 전한다)

 

그렇게 선암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조금 걷자니 마애여래입상을 만나고 조금 더 걸으니 야생녹차밭에 녹차꽃이 한창이다.

 

 

(선암사 뒤편 편백나무숲)

 

너무 오랜 시간 선암사에서 지체한데다가, 날씨까지 꾸물꾸물하기에 발걸음을 조금 빨리하며 걷고 있는데 다시 편백나무숲이 나그네 발걸음을 붙잡는다.

촘촘하게 심어져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편백나무 숲이다.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코끝을 스친다.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 수종이 편백나무라 하던데 오래 오래 머물고 싶지만, 갈길이 머니 또다시 떠난다.

 

 

 

 

 

(선암사 굴목재를 오르는 길의 단풍나무 군락지)

 

선암사에서 선암사굴목재에 이르는 ‘천년불심길’은 단풍이 울긋불긋 수놓은 아름다운 길이다.

단풍나무 군락지를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바람에 낙엽 날리는 소리에 취해 걷는다.

선암사 승선교, 강선루, 해우재에서도 미쳐 다 내려놓치 못하고 남아있는 번뇌와 망상이 낙엽과 함께 바람에 날려간다.

 

 

(보리밥집에서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

 

쉼터에서 간단히 간식을 취하고 걷다보니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이다.

가을비를 맞으며 단풍으로 뒤덮힌 산길을 걷는 맛 또한 일품이다.

낙엽 또한 적당히 산길을 덮고 있으니 운치로 따져도 이만한 호사가 없다.

그렇게 걷다보니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밥집이다.

빗속에서도 사람들이 어찌 많은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 다음에야 보리밥과 막걸리 한 대접씩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송광굴목재에서 송광사로 향하는 길)

 

그리고 다시 걷는다.

누구는 우산을 쓴 채로, 누구는 우비를 입은채로 걷는다.

다행히 비는 부슬비여서 가을 단풍과 낙엽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준다.

그렇게 걷다보니 송광굴목재에 이른다.

마음 같아서는 천자암에 들려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쌍향수를 보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송광사로 향한다.

 

 

 

 

 

 

다시 단풍나무군락지를 맞는다.

나의 조강지처이자 종교라 일컫는 광교산도 단풍이 절정이고, 오고가는 도로변의 많은 나무들도 제각기 단풍을 뽐내지만, 이곳 ‘천년불심길’에서 우측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오케스트라 연주삼아 걷다보니 눈과 귀가 즐겁다.

바람소리, 물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낙엽 밟는 소리가 더해지니 교향악단의 연주가 따로 없다.

계곡 물에 떠내려가는 단풍잎과 그 물 속에 비치는 단풍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을비를 맞으며 하늘을 가린 단풍터널을 걷다보니 조용히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선암사 승선교를 지나왔으니 반신선은 되었음이 분명하다.

 

 

 

(천년 고찰의 향기를 머금은 송광사)

 

 

다시 편백숲과 대숲을 지나고 나니 송광사에 이른다.

수많은 국보와 보물등이 널려있다고 하니 대가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선암사가 고즈녁하고 고요했다면, 송광사는 화려하면서도 웅장함이 묻어난다.

 

 

(능허교와 우화각)

 

절집입구의 우화각(羽化閣) 주변의 단풍은 곱디 곱다.

우화(羽:날개 우, 化)는 번데기가 성충으로 변하는 걸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우화각은 ‘깃털과 같이 몸이 가벼워진다’는 의미로 송광사 건축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우화각을 받치고 있는 무지개 돌다리는 능허교(凌虛橋)인데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다리’라고 하니 이 또한 멋들어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와 누각이 맑은 수면 위에 투영된 우화각과 능허교 주변의 풍광이 압권이다.

어찌 신선이 아니고서야 건너 볼 염두를 내 보랴?

 

(임경당)

 

능허교 왼쪽으로 두 다리를 물에 담그고 있는 건물이 있으니 임경당(臨鏡堂)이다.

임경당은 ‘거울 같은 물가에 임한 집’이라고 하니 계곡을 따라 지어진 이름이 주변의 풍광과 함께 더욱 더 빛난다.

 

 

(침계루)

 

다시 눈을 돌려 능허교 오른쪽을 보면 길다란 건물이 있는데, 침계루(枕溪樓)로 '계곡을 베고 누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니 더없이 운치있는 이름이다.

 

 

 

 

 

 

 

 

 

조계산은 선암사와 송광사가 지어진 다음에는 불국(佛國)이요, 아마도 불교가 이땅에 전래되기 전에는 선계(仙界)였음이 분명하다.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서 천년불심길을 넘어 송광사 능허교위 우화각을 지나왔으니 이제 제법 신선티가 나야 하건만 아직도 속세의 번뇌와 망상이 한쪽 머리 속을 채우고 있다.

하기에 일행들과 내년 4월 선암사에 600살 나이먹은 홍매화 청매화가 만발하는 날 다시 한번 이곳에 들려 이번에 못 다 버린 번뇌와 망상을 버려야겠노라고 약속한다.

 

원문보러가기  http://blog.daum.net/yooyh54/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