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일자 : 2004. 2. 2(월)
2. 소요시간 : 11:37 ~ 18:20
3. 날씨 : 흐림
4. 산행코스 : 천문사입구(11:37) – 배넘이재(12:04) – 계류사거리(12:25) – 학심이골7번구조지점(13:50) - 폭포(13:56) – 북능입구능선(14:48) – 암능(15:33) – 정상(15:56) – 갈림길1(16:32) – 갈림길2(16:42) – 아랫재(16:53) – 계류사거리(17:37) – 배넘이재(18:22) – 천문사입구(18:20)

오기 발동… 지난주 하산중 배넘이재(재넘이재) 길을 놓쳐 운문사까지 직행해서 곤욕을 치르고 나서 꼭 한번 확인하고픈 오기도 있었고 또 가지산의 북릉을 오르고 싶었던 욕망도 함께 발동한 탓으로 2주 연속으로 가지산 주변에서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천문사입구에서 출발한 시간은 11시 37분. 산행시 마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도 여지없이 시간에 쫓길 것 같다. 전번과는 달리 사찰 입구에서 우측으로 난 임도를 따른다. 스님의 독경소리를 따라 흥얼거리며 출발은 여유롭다. 일정을 정하여 하는 산행도 아니기도 하지만 혼자 다니는데 익숙하다 보니 이젠 동무가 있으면 사실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내 의도대로 움직이기도 힘들고 상대의 보조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배넘이재로 가는 임도는 중간에서 끊어지고 돌길로 바뀐다. 매미의 흔적인지 온통 돌이 삐죽 삐죽 튀어 나온 길을 따르자 길가 곳곳에 전기줄인 듯한 케이블 선들이 보인다. 왠 전기줄이 산속에 길을 가로막고 있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배넘이재가 눈앞이다. 그런데 나무 군데군데에서 호스들이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그건 고로쇠 나무다. 수액을 채취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부터 의아해 했던 것이 케이블이 아니고 호스구나. 하지만 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박아 놓고 있는 것을 보니 다소 인간의 탐욕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생계를 위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삶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는 나무에 깊숙한 생채기를 내고 인간의 탐욕을 채우다니…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자 배넘이재의 표지판이 보인다.(좌 : 상운산, 우 : 지룡산, 직진 : 큰골, 사리암) 재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군들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하늘에 맞닿아 보이는 정상이 비스듬이 흘러내리자 또 다른 산의 정상으로 급하게 솟구치고 하나의 산을 비켜 보자 또 다른 산이 희미하게 뒤를 받치고 섰다. 심산유곡에 단 한 사람만이 자연이 그린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흥겹다.

재를 넘는 길은 급한 내리막이다. 지그재그로 내려다 보이는 길이 정겨워 보인다. 내리막 끝부분에서 계곡을 만난다. 지금부터는 데이트 코스로나 어울릴 평지길이 펼쳐진다. 왼쪽으로 계곡의 물소리가 아름답고 하늘끝으로 솟은 나무들은 혹시나 하여 주위를 가려준다. 넓은 계류가 눈에 익다. 그렇다 전번에 학심이골을 내려 오면서 지나쳤던 길이다. 이제사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확실해진다. 하지만 잃었을 만한 길이다. 나 자신에게 다소 위로가 된다. 계류를 건너면 사거리다. 좌로는 학심이골 상류, 우로는 : 사리암,운문사, 직진은 아마 북릉 입구가 열리나 보다.

조그만 언덕길을 지나 계곡을 끼고 나 있는 길은 평탄하여 걸음이 빨라진다. 지도에 따르면 곧 북릉초입이 열리기를 고대하면서… 하지만 20여분을 가도 북릉으로 진입하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계곡건너는 길에서 대구에서 온 산행객 둘을 만난다. 오늘 처음으로 보는 사람인 것이다. 반갑다. 길을 묻자 전혀 모르는 눈치다. 나보다도 초보자인 모양이다. 할 수 없지. 조금 더 전진해 보기로 한다. 10분쯤 더 나아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지나쳤나 보다. 더 늦기 전에 되돌아 갈 수 밖에. 계곡건널목에 아직 대구 산행군이 있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밀감 한 개를 얻어 목을 축이고 같이 일어선다. 나란히 길을 따라 오던 길을 되돌아 나오지만 역시 들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계류 사거리까지 돌아오고 만다. 시간을 보니 꼭 1시간을 허비한 꼴이다. 아까운 시간을… 이러다간 북릉의 모양만 보고 갈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불안하다. 학심이골을 오르기로 한다. 하산하면서 북릉으로 내려오리라 마음먹으며….

얼마를 올랐을까. 전번에 내려 오던 계곡합수점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급한 산사면 쪽으로 오르기로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학심이골에 비해 경관이 다소 떨어진다. 폭포에 다다른다. 얼음으로 뒤덮힌 폭포는 나름대로 웅장함을 지닌 채 버티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서둘러 일어선다.

가파른 산사면을 따라 이리저리 리본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길을 잃고 만다. 난감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리본도 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위로 보이는 능선까지 길을 헤쳐 나가기로 작정한다. 산사면을 따라 나뭇가지를 헤치고 나아가자 내 키를 넘는 산죽군이 나타난다. 두손으로 헤치고 용감하게 나아간다. 까짓것 이정도쯤이야. 몰짱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중심을 잃는 순간 오른쪽 무릎에서 뜨끔함을 느낀다. 미끄러지면서 돌모서리에 부딪힌 것이다. 순간적으로 아픔보다는 무릎이 과연 성한지가 걱정된다. 성하지 않다면 여기서 조난(?)당할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찍혀서 피는 나지만 걷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제기랄.. 오늘 일진이 안 좋은 건가. 길도 못 찾질 않나. 무릎을 깨먹질 않나. 혼자서 미친놈처럼 시부렁거리며 계속 산죽숲을 헤치고 위로 위로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능선에 올라 리본을 보는 순간 눈물까지 왈칵 쏟아질 것 같다. 거의 40여분 산속을 헤메다 이제 길을 찾았으니 집나간 자식 애까지 만들어 들어 오면 이런 기분일까. 주위를 둘러 보자 이런 변이 있나. 그렇게나 소원하던 북릉이 바로 눈앞에 떡 버티고 있지 않은가. 하눌님이 소자를 불쌍히 여기시어 여기로 인도하셨구나. 겨우 한 사람이 지날 만큼의 작은 소로를 따라 힘들게 봉우리에 오른다. 서쪽으로는 길을 찾아 왔다 갔다 했던 계곡길이 펼쳐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에서부터 초입이 시작되는지는 알수 없다. 급한 경사길은 숨을 턱에 차게 하고 바쁜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한다. 암릉 중간에서 잠시 배낭을 푼다. 계속 가파른 암릉길이다. 자일과 나뭇가지에 의지하며 암릉 정상에 선다. 운문산과 지룡산 가는 능선들과 사리암, 운문사가 멀리 보인다. 가는 방향으로 가지산의 정상이 제법 가까운 거리에 우뚝 서 있다. 암릉을 내려서 다소 완만한 길을 따라 정상에 서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온 천하가 내 것 인양 참으로 행복감이 밀려든다. 바람은 세차고 귀는 얼고 손은 뻣뻣하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계를 보니 4시를 가리킨다. 이젠 어떡하냐.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하다. 당초의 계획은 아랫재를 경유해서 심심이골로 내려가는 것이었는데… 표지판을 보니 운문산 까지가 5K가 넘는다. 아랫재까지는 어느 정도 걸릴지 가늠이 안된다. 학심이골로 가더라도 쌀바위를 경유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상 문제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은 법. 이왕 나선 길 계획대로 밀어부치자. 가다 못가면 중간에서 사리암으로 빠지지라. 야간산행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기 때문.

내달리듯 운문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능선길은 역시나 아름답다. 좌우로 펼쳐지는 산군의 절경은 가히 잊기 힘들 것이다. 물론 가지산은 처음은 아니지만 이 쪽 코스는 어느 코스보다도 아름답다. 영남알프스의 조망이 막히는 곳이 없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천천히 감상하며 뇌리 깊숙히 새기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쉬움이 크다. 첫 표지판을 만난다. 아랫재 1.29K, 왼쪽으로는 제일관광농원 2.5K, 온 길은 2.5K다. 두번째 표지판은 10여분만에 나타난다. 왼쪽으로 남명리행이다. 저 아래쪽에 아랫재가 보인다. 쉼터도 하나. 금방 닿을 수 있을 길이다. 하지만 보기완 다르게 급한 내리막을 따라 10여분이 지나서야 아랫재에 도달한다.(직진 : 운문산 1.2K, 좌 : 남명초교, 우 : 운문사 7K, 온길은 3.87K) 시간을 보니 5시. 쉼터는 굳게 닫혀 있고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나지만 갈 길이 멀다.

생각보다 길은 평탄하다. 예상대로라면 배넘이재에 6시까지 도착하면 어렵지 않게 천문사에 도달할 것 같다. 돌길이 이어지고 해는 높은 산 정상에만 비추고 있다. 곧 어둠이 엄습하리라. 마음이 다급해지고 아까 깨진 무릎은 다소 욱신거리고… 오늘따라 배는 왜 고픈지… 하기사 종일 초코파이 하나, 밀감 하나 밖에 먹은 것이 없으니 배 안고프다면 사람 아니재. 하지만 시간이 아까워 배낭 풀기를 미룬다. 학심이골 계류사거리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5시 37분이다. 이미 땅거미는 주위를 완전히 감싸고 있다. 서두르면 배넘이까지는 예상대로 가능할 것 같다. 도저히 허기를 참기 힘들어 배낭을 풀고 남은 초코파이와 사탕 몇 개를 꺼내어 주머니에 담는다. 가면서 먹기 위해서다. 오던 길에도 가지북릉의 초입을 찾기 위해 유심히 살폈으나 결국 찾지 못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산을 오르는 자의 방심이 크다는 것이고 자만이라는 것이다. 좀더 준비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자신을 반성해 본다. 다음엔 이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며.

평탄한 길이 끝나고 지그재그 오르막이 눈앞에 다가 온다. 여기가 오늘 최고의 고비가 될 것 같다. 헉헉거리며 오르는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몇 번을 쉬어 가며 단내나는 입속을 잠시나마 찬 공기로 갈아 채운다. 그 때 갑자기 뒤쪽에서 짐승소리가 끄르르하며 들린다. 순식간에 머리가 삐죽하게 서는 느낌이다. 주위에는 나무둥치를 갉아놓은 것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멧돼지 소리가 아닌지… 그 놈은 허기가 지면 사람도 공격한다던데… 단내나는 입을 쉬게 할수도 없다. 쫒기듯 겨우 배넘이재에 올라서고서야 비로소 가쁜 호흡을 가다듬는다. 멀리 천문사와 마을의 불빛이 찬란하게 보인다. 남은 길은 내리막이자 어느 정도 익숙한 길이라 안심이 된다.

멀리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 청명한 소리가 구성지기도 하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스님 부디 성불하소서.


산입문 초보자로서 많은 객기를 부렸나 봅니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서 후기를 쓰는 중에도 북릉 들머리가 과연 어딘지 궁금하여 잠이 잘 올 것 같지 않습니다. 아시는 선배님들 댓글 달아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 가지산 - (산행기중에)계류를 넘어 조그만 언덕길이 있었죠. 언덕길오르면서 왼쪽으로 북릉길이 열렸습니다.
▣ 걸산이 - 배넘이제 아래 학심이 계곡을 건너자 마자 좌우 넓은 길로 가지 마시고 직진하시면 오솔길이 나옵니다.
▣ 푸르뫼 - 가지산님,걸산이님 관심주시어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가보렵니다. 항상 즐거운 산행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