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토끼봉(빗점골~왼골~토끼봉능선)

1:25,000지형도=대성. 덕동

2004년 11월7일 일요일 맑음(2~19도)   일출몰06:57~17:29

코스:의신마을11:30<3.5km>빗점골합수지점13:00<3.2km>토끼봉1534m14:30<1.8km>1293m봉15:00<2.7km>뒷당재16:00<4.2km>신흥교18:30         

 [도상15.4km/7시간 소요]

지형도   지형도
 

개요:지리산 주능선상의 토끼봉(1534m)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선상에 놓여져, 북으론 뱀사골이란 장대한 계곡을 잉태하고, 남쪽으로 내리뻗은 토끼봉능선의 서쪽으론 목통골(연동골)을, 동쪽으론 빗점골을 품고 있다.

빗점골은 명선봉 남릉과 덕평봉까지의 상류수인 왼골과 산태골, 절골과 오리정골,덕평골물의 합류수를 일컫는다.

토끼봉에서 내려다 본 왼골    토끼봉에서 내려다 본 왼골
 

이번에 찾아드는 빗점골 상류 합수지점은,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를 좇아 북에서조차 외면당하면서도 고립무원속에서 끝까지 버티던,  남부군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이 1953년 9월18일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유명하다.

빗점골 상류 왼골을 따라 천왕봉까지 바라보이는 토끼봉에 서면 도상3.3km 거리의 반야봉(1732m)이 마주하고 있는데, 토끼봉이란 지명은 반야봉의 동쪽(卯方)에 위치해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난여름 묘향대서 본 토끼봉   지난여름 묘향대서 본 토끼봉
 

토끼봉능선길은 뚜렷하게 잘 나 있고 민박집이 있는 범왕리까진 도상거리 4km뿐이어서 종주산행시 악천후를 대비한 비상탈출로로 용이하다.

범왕리에서 승용차 진입이 가능한 칠불암은 가락국시조 김수로왕의 열왕자중에서 일곱왕자가 여기서 모두 성불했대서 붙여진 이름으로 1982년에 복원한아자방(亞字房)의 온돌 선원이 유명하긴 하지만 고찰다운 품격은 사라졌다.

정상 아래서 본 토끼봉능선의 전반부    정상 아래서 본 토끼봉능선의 전반부
 

빗점골의 이현상아지트를  둘러본 뒤, 비경의 왼골을 타고 올라 토끼봉능선을 타고 내리는 이번 코스에선, 1293m봉 직전의 칠불암 갈레길 이후의 인적없는 토끼봉능선 후반부가 가장 매력있는 코스라 하겠다.

이번에 가는길의 북쪽 뱀사골물은 임천강~경호강~진양호~낙동강 따라서 부산 앞바다로 흘러든다. 그리고 남쪽의 하동군쪽 계곡수는 화개천 따라 섬진강이 되어 광양만으로 빠져든다.

 헬기장에서 본 토끼봉능선의 후반부   헬기장에서 본 토끼봉능선의 후반부
 

가는길: 하동 쌍계사를 지나서 의신마을에 도착하면 더 이상의 버스 진입은 어렵다. 그러나 짧은 해에 합수지점까지의 3.5km를 도보로 이동하기엔 너무 먼 거리임으로 현지 차량을 이용하면 편리하다.(의신정류소 맞은편의 정병걸씨: 핸드폰 011-556-4888, 자택 055-883-3076)

삼정마을에서 벽소령까지의 옛 작전도로는 펜스로 가로 막았지만 산불진화, 혹은 조난사고 구조를 대비한 열쇠를 현지인들은 갖고 있어 더욱 편리하다.

삼정마을에서 합수점 가는길   삼정마을에서 합수점 가는길
 

이정표가 있는 벽소령 갈림길에 도착해서, 합수점 오른쪽의 절골 초입에 있는 [이현상최후격전지170m/이현상아지트570m→]안내문 따라 거슬러 오르면, 이현상이 사살된 현장과 빨치산들의 막영터, 그리고 이현상 아지트를 둘러볼 수 있다.

다시 합수지점으로 되 내려온 왼골 오름길에선, 자칫하면 산태골로 진입하기 쉬우므로 독도에 세심한 주의를 해야한다.

벽소령길과 왼골 갈림길 초입   벽소령길과 왼골 갈림길 초입
 

왼골 오름길엔 계곡따라 오른쪽 숲길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가끔씩 끊어지는가 하면 한참을 우회하는 지역이 더러 있어, 갈수기엔 그냥 계속해서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편이 훨씬 수월하지만, 젖은 등산화로 이끼낀 바위에서의 미끄럼을 조심해야 한다.

그러다가 해발 870m지점의 지계곡 합수점에서 북북서 방향의 등로를 따르면 계곡수는 계속 흘러 내린다.

초입에서 본 왼골    초입에서 본 왼골
 

작은 폭포를 이룬 마지막 물줄기를 끝으로 너덜길 된비알은 계속되다가 해발 1400m를 넘기면서부턴 낙락장송의 잎푸른 분비나무가 무성한가하면, 어느듯 관목지대가 주능선을 장악한 토끼봉 헬기장으로 올라서게 된다.

토끼봉 정상 암봉에서의 조망은 거침이 없어 반야봉 왼쪽의 노고단은 물론, 동북방향 저 멀리의 천왕봉까지 일목요연하다.

토끼봉에서의 천왕봉   토끼봉에서의 천왕봉
 

토끼봉능선길 초입은 올라선 그 자리 헬기장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려선다. 영신봉에서 남진하는 남부능선을 계속 바라보면서 하산하는 이 길엔 구조목[16-09]를 지나서 이정표[범왕교3.9km/토끼봉1.0km]를 지나치면 긴장해야 한다.

0.8km만 더 가면 아무런 표시가 없는 1293m봉 직전의 삼거리에 닿게 되는데, 여기서 오른쪽(서남)의 칠불암 가는길은 빤질빤질한 반면에 왼쪽(동남)의 토끼봉능선 중반부 산길은 희미하기 때문이다.

토끼봉에서 본 남부능선   토끼봉에서 본 남부능선
 

1293m봉에서 뒷당재까지의 하산길은 그런대로 순탄한 편이다. 7m정도 높이의 짧은절벽지대가 있기는 해도 물푸레나무 가지잡고 내려서면 별탈없고, 뒷당재 내려서는 산죽정글이 급경사이긴 해도 낙엽속의 잔돌만 조심하면 수월하게 내려설 수 있다.  

지금껏 내림길만 내닫던 다리근육이 959m봉을 치오르기란 무척 버겁다. 그러나 정작 고스락에 오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삼정마을서 본 뒷당재   삼정마을서 본 뒷당재
 

정상 주변으론 군부대가 없는데도 세멘트 구조물의 견고한 참호가 가로 세로 연결됐는가 하면, 용도 폐기된 탄약고도 있어, 한 때는 이곳에서의 전투가 치열했음을 보여 주는데, 정상 아래의 널찍한 헬기장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오죽 했으면 바로 아래에 또 다른 보조 헬기장이 필요했을까!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정상주변엔 수림이 낮아서 좀처럼 보여주질 않던 지리 주능선의 파노라마가, 여기선 남부능선과 함께 멋진 실루엣을 그리고 있다.

헬기장  헬기장 
 

토끼봉능선 후반부에 속하는 뒷당재에서 신흥교까지의 4.2km구간은 산길도 투박할 뿐 아니라 날등길 양쪽 사면이 워낙 급준해서, 어느 장정도 밑에서 위로 치오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암릉구간이 아님에도 두시간 반이나 소요된 이 구간에, 어느 친절한 선답자의 고마운 안내리번이 내걸려 조심할 것을 당부하지만, 그냥 날등개념으로 진행해 나아가면 별 무리가 없다. 마지막 삼거리에선 서쪽방향의 오른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석양에 밫나는 반야봉과 토끼봉능선 전반부   석양에 밫나는 반야봉과 토끼봉능선 전반부
  

산행후기: 의신에서 선발차량에 먼저 올라 몇분과 함께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를 찾아가는 발길은 사뭇 흥분스럽기조차 하다.

절골 초입에 자리잡은 축대로 쌓은 지휘본부는 커다란 의자를 연상케 하는데, 저 곳에 올라 불호령을 내리던 빨치산 총사령관의 모습이 오버 랩 된다.

이현상 최후의 장면이 연상되는 약간은 경사지면서도 시야가 좋은 바위를 만났다. 엎드려 쏴 자세론 아주 걸맞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휘본부   지휘본부
 

좀 더 올라가자 막영터인 듯한 축대위의 넓은 공간 옆으론 석간수가 흘러내리고 있어 취사장소로도 활용했던 듯 한데, 막상 [이현상 아지트]안내문이 내 걸린 곳은 낮잠자기 좋게 생겼다.

비운의 현장을 떠나려는데 운동화 차림의 젊은이들이 산길을 묻기에 목적지가 어디냐니까 그냥 경치좋은 곳이면 된다고 한다. 이 일대가 최고로 좋지요^^*

왼골의 청정수   왼골의 청정수
 

합수지점으로 되내려오자 준족 두분이 산태골로 향하는 모습이 보여 호각 불어댔지만 그냥 사라지고 없다. 하기야 나보다는 지리산을 훨씬 꿰뚫고 계시니 관여할 반 못되지만 그래도 은근히 걱정스러운데, 나중에 봤더니 그들은 남보다 먼저 하산지점에 안착해 있었다.

예상밖으로 왼골 오름길은 잘 나 있었다. 지름길이랍시고 계곡 너덜을 이리저리 건너 뛰다가 이끼에 한번 미끄러져 풍덩하고는, 그래도 계속 진행해서 정코스로 접어들었다.   

작살나무 열매   작살나무 열매
 

완만하던 경사길이 해발 1100m를 넘기자 급경사 너덜로 변한다. 마지막 작은폭포아래 암반수로 수통갈아 치우자, 그 무거운 걸 예까지 메고온 게 후회스러울 정도다.  

처음보는 부부 한팀의 어부인이 다리통증을 호소하기에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주면서 거꾸로 누이고 힘껏 주물러주라고 했다. 남편이 주물러 주는데도 부인의 비명은 처절에 가깝다. 경험 안해본 사람은 모르지...^^!

마지막 물줄기 왼골 마지막 물줄기
 

후미대장께 그들을 잘 돌봐드리게 하곤, 마지막 카드로 쓰라며 일회용 침을 넘겨주고는 사진을 핑계로 그들을 지나친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결국은 피를 빼고서야 칠불암이 있는 단축코스로 하산했다고 한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낮게 깔린 산죽 위로 수백년 묵은 분비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잎 향기가 무척 싱그럽다. 심호흡을 하면서 지리산에서만의 독특한 향취를 맘껏 음미해본다.

잘못걸린 안내문   잘못걸린 안내문(반대편으로 표기)
 

산토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토끼봉 헬기장에서 앞선이들이 중식을 권유하지만 사실상의 정상 암봉에 올라 천왕봉, 반야봉, 토끼봉능선을 촬영하기에 바쁘다.

다시 헬기장으로 내려오자 다들 잘못 그려진 안내문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하기야 올바르지 않게 기재된 내용을 다 지적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 그저 그러려니 할 뿐이다.

키작은 분비나무   키작은 분비나무
 

이삼년새에 토끼봉능선길은 너무 넓어져서 토끼 아니라 곰 두 마리가 껴안고 뒹굴어도 구경꾼들 설 자리는 있겠다. 그러나, 칠불암 갈레길이 멀어지면서부터 그제서야 산 탈 맛이 난다.

낙엽이 두텁게 깔린 능선길을 내달려 삼정마을에서 범왕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의 뒷당재 사거리로 내려서자, 봉분 한 기 크게 터 잡아 의아스럽다. 하필이면 왜 이 곳에 묻혔을까?

탄약고    탄약고
 

잠시 쉬었다가 959m봉으로 올라서자 여러군데에 내전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여기서 사라졌을 수많은 원혼들을 생각하며 자그마한 탄약창고를 들여다 보니까 잔가지들이 가지런히 깔렸다. 지금도 밖에서 잠글 수 있도록 튼튼한 쇠문이 달려있다.

그 아래 널찍한 헬기장에서 바라본 칠선봉의 봉우리는 정확하게 일곱 개로 하늘금을 그리고 있어 새삼스럽기조차 하다.

칠선봉   칠선봉
 

헬기장에서의 조망은 너무 화려하다. 황혼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반야봉 곁의 토끼봉능선이 이곳까지 줄달음치고 있고, 그 옆으로 뻗어나간 칠선봉, 영신봉..., 천왕봉! 그리고 어둠의 장막처럼 길게 늘어져서 그 뒷모습을 감추고 있는 남부능선...! 황금빛에 하늘거리는 억새!

지리삼매경에 빠져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단축팀을 내려보낸 후미대장이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걱정도 좀 하란다.

황혼의 후반부  황혼의 후반부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는 후반부 내림길을 시야도 없이 땅만보고 내닫는다. 하늘이고, 땅이고, 숲이고간에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 길도 점차 희미해지더니 어느 산악인의 안내문을 읽어내려가는 도중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큰짐승 잡기위한 함정위로 내 디뎠지만 잠시 울렁거릴 뿐 내려앉지는 않아서 한 숨 돌리고, 마지막 삼거리에선 선두팀에 무전날려 제길 찾아 내려갔더니 랜턴불빛 아래로 등로는 비교적 뚜렷했다.

어느 산악인의 안내문    어느 산악인의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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