默言山行(연동골과 불무장등)
언제:06-06-13

누구와:나 홀로
어디를: 연동골과 불무장등
 
*삼도봉 불무장등 그리고 통꼭봉을 바라보며/화개재에서*

칠선으로 갈까?

불무장등으로 갈까?

지구촌 온 세상이 축구열기로 가득 찼고 아내는 거실에서 일본축구를 보는 사이 자신은 내일의

산행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새벽에 잠자리에 일어나서도 방향감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그랬듯이 저녁에 싸놓은 도시락을 챙겨 들고 현관문을 나선다. 자동차 키를 돌리면서 생각 해보고

시계를 쳐다 본다. 그렇다 그냥 발길 따라 어디로 갈지 몰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날라리봉 오름 길에서*

 

구례 가는 기차에 승차한 것을 보니 마음 속으로 불무장등을 염려 해둔 것 같았다.

6시 40분 피아골 향하는 시골버스에 몸을 맡긴다.

당치마을 입구에 시작되는 산행은 마을까지 올라가는 힘겨운 아스팔트 길이 고역이로다.

벌써부터 포크레인을 실어 나르는 대형트럭을 보면서 아직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지리산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을 오늘 이곳에서도 봐야 할 것 같다.

 
 


히치로 마을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그냥 걷고 싶다.

마을 어귀를 들어 왔을 때 벌써 땀으로 적셔있었고 마을 뒤 당재로 향하는 도로가 파 헤쳐져

도로포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당재까지는 연결은 안됐지만 머지않아 당재로 이어져

목통마을까지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당재 사거리/목통마을 가는 길에서 내당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곳 당재(왜당재)에서 불무장등의 코스를 버리고 목통마을로 내려 간다.

잠시 후 목통마을이 보이고 저 산 능선에 삼정으로 향하는 내당재가 나를 유혹한다.

내친김에 삼정까지 갈까? 언제 한번쯤 생각 해본 코스이기도 한데……

연동골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4년 전에 이곳을 내려왔기에 오늘은 올라가는

산행을 하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연동골에서*

 

기도처 아래 계곡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지난날 이곳을 내려 오면서 급히 내려 오는 사이

연동골의 비경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남는 게 시간이고 보니 여유롭게 산행 하기로 한다.

산 길을 따르는 동안 주변 곳곳에 감나무 접목을 쉽게 볼 수 있었고 계곡 속으로 들어가니

연동골의 아기자기한 풍광과 널따란 반석으로 흐르는 청류의 싱그러운 분위기가 세속의 때를

벗길 것 같은 유혹에 濯足(탁족)을 하고 만다.

그때는 왜 이런 비경을 보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계곡을 빠져 나온다.

 

 
 

*연동골에서

 

잠시 파란 천막으로 쳐져 있는 시설물 2개를 지나 고도 630에서 처음으로 계곡을 건너면서

(우측에서 좌측으로) 잠시 후 고도 720 연동마을 옛 터에 닿는다.

196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이 살았다는 이곳에 마을이 사라진 배경은 1967년 무장공비의 침투로

9명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이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다가 모두 사살된 뒤로 연동마을이 없어졌다는

내용이고 보면 지금은 축대로 쌓아 올린 집터 위에 풀밭과 잡목지대로 변해 있었고 과실수의

흔적이 그대로 잔존해 있었다.

아마 그래서 연동골로 불리다가 지금은 목통마을을 두고 목통 골로도 불린 것 같다.

 

 

*연동마을에서

 

이곳에서 길은 우측으로 꺾이면서 잠시 사면을 타고 가다가 이윽고 계곡과 다시 만난다.

고도 880까지 계곡을 우측에 끼고 산죽 밭을 지나면서 890에서 계곡을 다시 건넌다(좌에서 우측으로)

고도 960에서 계곡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다시 건너고 너덜 길의 지류를 건너고 1000고지에 들어서는

우측으로 꺾이는 이제 본격적인 화개재를 향한 산행길의 오름이 되고 있다.

1060고지 좌측의 계곡을 따라 희미한 길이 있는데 아마 불무장등으로 향할 듯싶다. 가끔씩 산죽 밭에

자신의 은신처를 닦아 놓은 멧돼지의 서식처를 지날 때면 내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 든다.

 

 
 

*화개재와 공포의 계단에서*

 

<화개재에서>

40여분의 빡센 오름 길을 올라 드디어 화개재에 닿는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주변의 조망을 즐기며 그 옛날 장터를 연상 해 본다.

연동골의 해안지방과 뱀사골의 내륙산간 지방을 잇는 최단거리 역할을 하고 있는 이곳이

지리산 능선 어느 곳 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 보니 물물교환의 루트였는지 모른다.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을 이곳이 화개장터만큼이나 번성 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삼도봉에서 노고단을/연동골을/그리고 반야를*

 

<삼도봉에서>

연동골의 조용한 산행이 이어지다가 주 능선에 오르니 사람들 소리가 들려 온다.

아무리 묵언 산행이라지만 오고 가는 사람 인사를 받아주지 않을 수 없어 눈 인사로 대신하고

때로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평일이라 다행히 사람들은 많지는 않았고 이윽고 공포의

계단을 향해 오름 짓을 한다. 하나 둘 세어 가다가 누군가 계단 옆에 10개 단위로 표기를 해 놓은

바람에 셈을 포기한다. 삼도봉에서 조망은 좋았지만 사진만 몇 컷을 하고 잠시 내려와

나 혼자 점심상을 차린다.


 
 

*삼도봉 아래에서*

 

<3년 전 삼도봉의 追憶>

정성 들여 챙겨준 도시락이다.

항상 그랬듯이 남편이 쉬는 날이면 당연히 지리산에 가겠지 하면서도……

오늘은 또 도시락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 해 진다.

밥 먹다가 불현듯 3년 전 아내와 함께한 용수골 산행을 생각 한다.

어떻게 용수골로 올라왔다가 다리 아픈 아내를 업고 직전마을로 내려갔던 기억들……

그날 삼도봉에서 슬비아빠(취운)를 만났는데 묘향대 들머리를 물었지

위 아래로 나를 쳐다보는 취운선사께서 가리켜 주지를 않더구먼.

그런 아내가 슬비아빠가 아니냐고 하는 사이 원 세상이 좁기도 하더구만.

그 뒤로 먹지 못한 송화주며 뱀사골에서 가져온 고로쇠가 자동으로 나오더군.


 

 
 

*자신이 지나 온 연동골/삼도봉 아래의 등로/반야를 뒤로 하며*


잠시 후 주 능선 소금장수 묘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고 바로 안부의 우측으로 빠지는 용수암골 길을

스쳐 지나고 계속 편안한 길은 이어진다. 고도는 1440~50 사이를 유지 해 가며 삼거리를 지나고

(우측은 직전마을) 7~8분 지나고 나니 또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의 희미한 길은 아마도

연동골 어디로 빠지는 듯싶다. 이어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면서 묘지를 발견한다.

아~하 결국 오늘도 불무장등을 놓치고 말았구나.

 

 

*고도 1230의 전망바위에서*

 

잠시 후 전망바위에서 내가 가야 할 통꼭봉을 바라본다. 고도는 지금부터 갑자기 낮아지기 시작 하더니

묘지 2기를 지나고 나서 사거리에서 길을 멈추고 왼쪽의 사면을 타고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그 동안 불무장등 능선 길도 4년 전의 모습과도 많이 변해 있었다. 그때 당시 당재에서 올라온 나는

고도를 높이는 전망바위 코스에 얼마나 많은 잡목이 우거졌던지……


 

*통꼭봉에서 바라본 왕시루봉/농평마을/칠불사와 목통마을 그리고 내당재*

 

<통꼭봉에서>

통꼭봉 바로 못 미쳐 전망바위를 지나니 예전에 없던 이동통신탑 기지국이 설치되어 있다.

전망바위에 올라 사방으로 터진 조망을 즐긴다. 당재에서 남(南)으로 달리다가 섬진강자락으로 몸을

담그는 마루금 황장산능선이 시야로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저 멀리 지리의 주능선과 가깝게는 칠불사와

목통마을이 시야에 들어오고 우측의 농평마을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이윽고 고도를 낮추면서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올라온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는 농평마을에 도착하면서

8시간의 묵언산행을 마감한다.

 

 

*화개재에서 자신을 쎌프로*
 

<에필로그>

지금 월드컵 열기가 온 세상을 뒤 엎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오늘만은 혼자이고 싶어 조용히 지리 속으로 몸을 숨긴다.

다만 혼자이고 싶었다. 누구나 한번쯤 그러하듯이……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사람이 혼자일 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고독은 自我에 대한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라고

그러나 대부분 우리 인간은 혼자이기를 두려워한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널려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되고

서로간에 信義를 지키자고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事務的인 관계로 돌변하는 세상에

수없이 스쳐간 가슴속에 맺힌 일들을 망각의 늪에 묻어버리고 싶다.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지리능선에서……

 

                         2006. 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