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여성봉

언제 : 2005년 8월 25일

어디로 : 송추에서 여성봉으로

누구랑 : 나와 그림자


 

일요일 아침 아무도 모르게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토요일 날 숨은벽 빨레판까지만 산행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작용했으리라.

배낭속에 약간의 물품을 챙겨들고 그림자와 같이 길을 나섰다.

짙게 드리운 구름이 염려는 되었지만 해가 뜨면 맑은 날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며 행주대교를 넘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하늘색은 점점더 짙어져만 갔다. 비가 오면 어쩌나

여름내내 넣고 다니던 우의마져 놓고 온 터라 염려가 되었는데, 급기야는 무정한 하늘이 되고 말앗다.

화정역을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끔 들리는 청둥소리에 무서움 마져 든다.

지은 죄가 많은 지라 혹시나 하늘이 벌이라도 내리면 어쩌나 하고......

저멀리 서쪽에서 몰려오는 검은 먹구름.....

나는 줄곳 앞으로만 비구름의 반대 방향으로 내달았다.

구파발을 지나고 북한 산성입구를 지날 때 까지 그쳤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송추입구에서 간의 우의를 장만해서 올라갈려고 했지만 이른 아침이라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서 공단 직원에게 물으니 오늘은 날씨가 맑다고 했는데 이변이라고 말을 한다.

주차장에서 준비를 하는데 천둥소리는 계속 들려 온다.

 

한바탕 호통을 칠듯한데 고작 작은 우산 하나에 의지를 해야했다.

천천히 길을 따라 오르는데 빗줄기에 잎이 떠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배낭의 커버를 씌우고는 쉬엄쉬엄 오른다.

날씨 탓인지 땀이 비오듯 흐른다.

빗물인지, 땀방울인지 모를 물기가 얼굴을 타고흐른다.

 

한참을 오르는데 전화가 울린다.

“아빠 어디야”

“산”

“어제 가서”

“너 잘 때”

“여기 비가 억수로 오는데 그기는 비안와”

“응 조금 갈 만해”

“아빠 비 많이 오면 잡으로와”

전화중에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펼쳐들고 이제 오를까말까를 걱정해야 했다.

빗속에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었다.

내 주위 어디에선가 나를 따라 서 있을텐데.

손을 뻗어 어디 있는지 확인을 해본다. 빗물에 촉촉이 젖은 그림자가 내 손등에 와 안긴다.

 

우산속의 나와 그림자.

빗줄기는 굵어지고 금새 땅이 젖었다.

“현재 상태로는 등산 불가, 그림자는 하산을 축구했다”

스스로에게 또 물어본다.

‘비를 맞고 오를 거니’

맘마져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얼마되지 않은 거리의 여성봉은 구름에 가리운체 형체조차 알 수 없다“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산행하기에는 빗줄기가 너무 굵다.

 

하산결정

말없이 그림자도 나를 따라 나선다.

우산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진다.

300여 미터쯤 내려와 소나무아래서 혹시나 하는 맘에 기다렸다.

제발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하늘은 나의 바램을 비웃기라도 하는지 빗줄기는 더 굵어 졌다.

부쩍 잦아진 이상기후 현상.

하늘이 인간에게 내리는 경종인데.....답을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한참 기다리니 빗줄기가 가늘어 진다.

우산을 펴고 한발 한발 여성봉을 향해 조심스런 발걸음을 옮겨본다.

한 두사람 보이던 산꾼들이 어디로 갔는지 텅빈 등산로에 나와 그림자만 길을 걷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쯤 지났을까?

운무에 휩싸인 비밀의 문앞에 섯다.

 

여성봉!

주말이면 수많은 산꾼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텐데. 오늘은 외로운 소나무 한그루 벗 삼아 비를 맞고 있다.

“저게 여성봉이야”

나는 그림자에게 말을 했다.

“별 말없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 그림자”

끝내 웃고 만다.

누구나 처음보면 고개를 끄떡이며 희죽 웃고 마는 것을.....

비를 맞고 있는 여성봉을 처음 보았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옷을 벗어던지고 비를 맞고있는 여성봉,

오늘따라 무척 이니 외로워 보인다.

그래도 밟아보고는 가야지.

힘껏 뛰어 봉우리에 올라선다.

 

텅빈 자궁위.

오늘만은 나의 것이 된듯하다.....

여러번 이곳을 와 보았지만 이렇게 나와 그림자 셋이 서기는 첨이다.

주위를 아름답게 치장하던 오봉도 운무에 가려 있다. 신비한 모습이다.

주위는 온통 빗속에 묻혀 버리고, 운무에 휩싸이고.

난 그림자와 함께 빗물에 젖어 가고 있었다. 몸도 젖고 마음도 젖고.

자궁을 따라 빗물이 흘렀다. 늘 젖어야 할 곳에  물이 흐르는 것은 처음 본다.

풀이 돋아났던 자리에도 생명의 물줄기가 흐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산꾼이 입구에서 구경만 하고 지난다.

텅비어 있지만 흐르는 물기에 미끄러운 바위가 산꾼들이 접근 막는 듯했다.

비오는 날 여성봉에 올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와 그림자 그리고 여성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담은 행운의 날이었다.

여성봉은 비가 오는 날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그것은 홀로선 소나무가 가지를 뻗어 비를 가려주고, 솔잎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운무에 휩싸여 신비로움을 더하기 때문아닐까?


 

후기: 산을 다니면서 비를 만나기가 쉽지만 않은 일이다.

오늘 따라 여성봉가는 길이 미끄럽고 힘들었지만 운무에 쌓인 오봉과 여성봉을 보기는 첨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