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치봉(이동-광덕고개-백운산-도마치봉
-향적봉-절골-흥룡사-백운동)

1. 산행 한마디 : 눈에 범벅되다.

2. 산행일시 : 2003.01.18(일)

3. 날씨 : 눈,눈,눈

4. 운행구간
수유리-이동-광덕고개-백운산-도마치봉-국망봉 가다가
-다시 도마치봉으로 back-향적봉-절골-흥룡사-백운교-백운동

5. 산행특징
ㅇ 눈이 무쟈게 많다.

ㅇ 그에 따라 많은 교훈을 얻는다.

ㅇ 도마치봉에서 흥룡사 가는 길이 꽤 멀고(눈이 와서 그런지)
경사가 엄청나다.

ㅇ 흥룡사에 이르는 백운계곡이 꽤 넓다.

6. 산행기
새벽이다. 눈을 뜬다.
06:40분이다. 허걱~ 클났다!

05:40분에 일어나도 될까말까인데 6시40분이라니..
어제 사무실에서 일땜에 밤을 새운 여파다.

밤을 안새우면 일요일도 사무실에 가야 한다.
그러면 일요 산행이 펑크난다.
그래 그 밤새운 대가를 오늘 새벽에 늦은 잠으로 치루는구나...

원래는 가평의 구나무산이랑 칼봉산을 갈려했다.
대원사에서 구나무산- 장수고개- 장수능선-연인산

-연인능선- 여기서 용추구곡으로 빠지던가(칼봉산은 포기하고)
아님 우정고개로 내려와서 매봉-회목고개-칼봉산 이던가

둘중에 하나를 할려고 여기 저기 귀동냥 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다 잠에 들었건만... 에구 에구...

경기 30봉중 남은 것이 구나무산, 칼봉산, 유명산,
각흘산, 봉미산등 5개다.

경기산에 익숙해질려는 초보분들께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경기 1~30봉 주파..

높은 산이 명산이 될리 없지만 적어도 명산에는 높은 산이
많다는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경기 30봉중 한수이남에는 단 1봉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가평,이동에 95%가 집결되어 있다. 그중 특히 가평.
가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가평산들은 새벽 5시대에 일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갈 수 없다.
물론 내차를 가져가면 가능하겠지만 전에 차가지고가서
고생한 적이 있어 엄두가 안난다.

차를 가져가면 원점회귀를 고집해야하고 돌아올 때 피곤하며
뒤풀이를 못즐긴다. 온통 단점뿐이다.

순간적으로 각흘산이 생각났다.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각흘산..
그래 가자. 수유리 시외버스 정류장이 집과 가까운 이유도 있으며
남은 5봉중 그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각흘산..

각흘산은 이동에서 와수리 가는 길로 가다가
자등현에서 내려 들머리가 시작되고 있다.

"또 갈거예요?" 와이프다.
"가야지..."
"늦었다메?"
"딴데 가야지 머.. 집에 그냥 있을 수는 없자너.."
눈도 오는데..."
도대체 무슨 힘이 나를 인도하는걸까?

컵라면에 김밥 한줄 챙겨 수유리에서 버스를 탄다.
08:30분이다. 가평갈때보다 2시간이나 늦게 간다.

졸다보니 포천 근처다. 눈이 하얗다.
서울과는 다른 모습이다.
점점 북으로 갈수록 눈의 질과 양이 소금처럼 소복하다.

2시간 걸려 이동에 내린다. 눈이 펄펄이다.
눈이 많이 내린다. 이 날씨에 첨 가보는 각흘산?

특정하지 않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럼 여기서 몰 어떡하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잠재해 있는 나약한 수호본능이 기지개를 켠다.

여기서 광덕고개도 있지 않은가.. 백운산-국망봉 라인..
아.. 그렇구나..

그 쪽 라인은 전에 광덕고개에서 도성고개까지 한적이
있기 때문에 각흘산처럼 아주 섧지는 않은 터이다.

그래.. 그럼 먼저 오는 버스를 타자.
와수리행이 먼저 오면 각흘산,

사창리행이 먼저 오면 백운산..
이러고 나니 맘이 편해졌다.

운명의 장난인가.
강원고속 사창리행이 눈발을 헤치며 달려오고 있다.

(10:44) 버스에 오르니 사람들로 웅성하다.
일요일 사창리 군부대 면회객들인가 보다.

젊은 처자가 가면 애인일 것이고
나이 지긋하신 분이면 부모님이다.

백운동 계곡을 지나 광덕고개를 꾸불꾸불 뱀처럼 오른다 .
눈이 더 퍼붓는다. 광덕고개 주변 산이 흑백 필름이다.
야~ 기가막히네. ...탁월선택이다. 백운산...

(11:05) 광덕고개 정상에 내리니 등산객으로 번잡하다.
지체없이 정면 철계단으로 오른다. 1,000원이다

솔직히 광덕고개로 오르면 무임승차다.
광덕고개가 600m대에 백운산 900m대.

단지 300m를 오르는 폭이다.
근데 300m 산이 왜 이리 끈쩍되는 것인가.
오르고 내림이 쉼없이 반복된다.

눈은 쌓여 있지만 등산로는 빼꼼하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 놓았다.

솔직히 집에 나오면서 4발 아이젠 단 하나 챙겨왔다.
스패츠도 없이.. 이유는 머 어차피 러셀 할거 아닌 바에
머 귀찮게... 이 예측은 나중에 정확히 틀린다.

뒤에 바짝 따라오는 분이 신경쓰인다.
띄어 놀려고 좀 오버한다. 그래도 붙는다. 오버는 힘들다.

여기저기 무리지어 올라가는 등산객이 많다.
조망은 애저녁에 없다. 볼 수 있는건 단지 가시거리의
눈쌓인 나무와 내 발 밑의 눈덩이 뿐..

백운산으로 가면서도 마주치는 떼(?)등산객들이 여럿있다.
저렇게 소풍가듯이 무리지어 가면 재미있을까..

전에 백운산쪽으로 가면서 저쪽 화악쪽으로 조망이
괜찮은 기억인데 오늘은 영이다.

(12:23) 1시간15분 걸려 백운산 정상이다. 역시 헬기장이다.
눈으로 힘든 운행을 벌컥벌컥 물과 빵과 귤로 허기를 채운다.

정상은그야말로 인으로 산과 해를 이룬다.
시산제를 지내는 듯 빽빽히 정렬되어 있는 2팀이 의례를

치루며 "다음은 회장님 말씀이 있겠습니다" 등등으로
시끌법적하다. ...난 저런 산악회 안들 것이네...

광덕고개에서 백운산을 올라오면서 직진은 흥룡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도마치가는 길이 있다.

일단 백운산부터의 종주는 방향의 포커스를 남으로 맞춰야 한다.

전에 광덕고개에서 국망봉간다는 어떤 분이 있었는데
"백운산에서 길따라 갔는데 도마치는 안나오고 하산 하던데요"
그러신다.

느낌으로만 보면 좌측으로 가면 영 딴 길 같다.
그러나 그게 남쪽 방향이다.

도마치로 가는 길부터는 사람들이 뜸해졌다.
대개 백운산을 목적지로 삼은 듯하다.

슬슬 스패츠 안 챙긴게 후회가 되는 순간이다.

길은 나있지만 계속 내리는 눈으로 눈이 발목까지 덮힌다.
내등산화는 고어도 아닌데..

흡사 스튜디오 촬영 같다. 먼 곳의 조망이 안되고
내 주위의 곳만 보면 가니까 주위 경치가 흡사
스튜디오 세트처럼 짜여져 있는 거 같다.

길 한모퉁이에서 밥을 먹는 두 젊은 사람들을 지난다.
"어디까지 가요?"
"도마치까지 갈건데요"

아니 이 시간에 도마치까지라니.. ...넘 짧은 거 아닌가...

(13:33) 1시간여 걸려 도마치봉에 당도한다. 여기 또한 헬기장.
한사람도 없다. 백운산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눈이 더 거세졌다.

점심을 먹어야지. 어디 한군데 앉을 자리 없다.
눈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간신히 컵라면이랑 김밥만 꺼낸다.

딱딱한 김밥. 뜨끈한 컵라면 국물이 위안이 된다.
다 먹을 즈음 아까 그 친구들이 올라온다.

"아저씬 어디까지 가세요?"
"국망봉까지 갈려하는데요.."
"7k가 넘는데.. 중간에 탈출로도 마땅치 않고..."

그 말이 맞다. 전에 날 좋은 날 여길 오를 때도
국망봉까지는 지리한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 시간은 2시가 안됐다. 이 시간에 하산?
우측으로 표지기가 펄럭인다. 흥룡사 가는 길이다.

젊은이들이 아이젠을 챙기고 그 쪽으로 하산 할 채비를 한다.
...아니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간거야...

국망봉 가는 길목에 살살 다가선다.
"아저씨 갈거예요?~~~~~~~~"
"........"

(13:58)불현듯 가고 싶어졌다. 눈길이지만 길이 갑자기
아늑해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대답도 없이 발을 옮긴다.

발자국이 있긴 있다. ...발자국만 보고 가는거야...
눈이 큰 함박눈도 아니고 밀가루 흣날리는 듯한 눈인데도
엄청 쌓인다. 거의 러셀 수준이다.

30분을 가니 또 헬기장이 나온다.
이정표도 있다. "국망봉 6km, 도마치봉 1.67km"

눈 내리는 수준이 윈드스토퍼로 안되겠다.
하드 쉘을 꺼낸다. 사고서 첨 입어 보는 고어자켓이다.

...그래 오늘은 이놈 휠드 테스트다... 흐흐흐..
내 수준으로는 거금을 들여 장만한 옷이다.

이정표를 지나 어느 정도 가니 갑자기 길이 푹 꺼진다.
그리고 내리막 저쪽은 퍼붓는 눈으로 앞이 안보인다.

갑자기 무엇이 보이는 듯했다.
그건 다름 아닌 산의 유혹인듯 했다.

산을 경시하는 자를 골로 보내는 악마같은 산의 홀림..
저쪽으로 들어서면 퍼붓는 눈마냥 나도 흩날리는 눈이되어
국망봉 어느 구석에 쳐박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급습했다.

...가자... ...온길이 더 멀어지기 전에 돌아가자...
back한 시간은 2시40분이다.

돌아 오는 길에 아까 나의 발자국 자취가 눈에 점점 묻힌다.
...국망봉 갔다면 발자국은 한번도 못봤으리라...

아까는 올때 내리막이라 편했는데 올라가는 길은
계속 미끄러진다. 4발 아이젠은 있으나 마나다.

구멍 깊은 곳에 문전만 깔딱거려야 바닥이 닿겠는가..(?!@#)

(15:20) 겨우 다시 도마치봉에 올랐다. 아직까지는 비고어 등산화,
스패츠없는 맨 바지가 잘 버텨준다.

이 바지는 길바닥 수준에서 산 듀폰사 썸머라이트 소재 바지인데
여태까지 그 잡목등에 올하나 뜯긴데 없이 넘넘 맘에 드는 바지다.

오늘도 바지 하단이 등산화를 가려줘 별로 눈도 신발속으로 안들어온다.
...기특한 놈...

그 청년들은 떠났다. 인적은 끊겼다.
이 눈보라에 나홀로 도마치봉에 서있다.

(15:28) 도마치봉을 떠난다.
거의 전등자 발자국이 내린 눈으로 소멸 직전이다.
...서두르자... 길을 모르면 진짜 대책 없다.

방향을 알고 지도가 있으면 몰하나.
구비구비 돌아가는 등산로에 이 능선으로 갈지
저 계곡으로 갈지 눈이 덮혀 모르면 끝장이다.

겨우 겨우 흔적을 찾아 나간다.
근데 웬 하산 길에 또 웬 봉우리? 바빠 죽겠구먼..

(16:19)올라서니 774m, 향적봉이라한다.
이근처에 흥룡봉도 있다 한다. 물 한모금 먹고
다시 길을 나서니 흥룡사 이정표가 보인다.

죄측은 3.6k, 우측은 3.0k. 당연히 우측.
짧은 길 만큼 댓가를 치룬다.

"여기는 위험한 길이오니...." 119 위험 표지다. 애고..
도저히 걸어 내려갈 길이 아니다.

미끄러진다. 버티면 힘들다. 아예 미끄럼을 타고 내려간다.
눈 밑에 낙옆까지 같이 쓸린다. 묘한 쾌락이 전해온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좀 평평해진다.
점점 눈으로 범벅되는 나를 본다. 내가 눈인지 눈이 나인지..

슬슬 신발속으로 눈이 들어오고 축축해진다.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으니 그게 어디냐..

계곡을 요리저리 건너기 수차례. 어둠이 밀려온다.
다행히 밑에서부턴 발자국이 뚜렸하다. 밤이 두렵지 않다.

(18:10) 절골을 지나고 헤드렌턴을 켠다.
눈에 비치는 랜턴 빛이 푸르스름하게 빛난다.

(18:26) 저어기 둥그런 휴게소 같은 것이 보인다.
...이제 끝이구나... 난 왜 한계상황 등산만 할까..
왜 여유있게 느긋히 즐기지를 못하고 맨날 시간에 쫓겨..

백운 2교를 건넌다. 저기 불빛이 보인다.

(18:33) 흥룡사다. 흥룡사 산사의 찻집에서 음악이 흐른다.
신발은 완전히 젖었고 막강하다는 장갑도 축축해서 손이 시렵다.

마침 양말은 여벌이 있어 버스에서 갈아 신는다.
스패어 개념의 중요성이 이 대목에 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겨울 눈산행에서 스패어로 챙길건
양말, 장갑, 수건, 가능하면 바지,셔츠,

꼭 준비할건
스패츠, 쓸만한 아이젠, 고어등산화, 배낭커버,

완벽하게 한다면 침낭까지(유사시 길 잃었을때 비박용도)
이 정도의 고생으로 체득한건 너무나도 값싸게 얻은 교훈이다.

절입구 앞에 커피자판기가 있다. 엥? 아니.. 저런 것두 있나
급히 동전을 털어서 다가간다. 판매중지란다.. 이론..

흥룡사 쪽에서 저쪽 넘어온 백운2교쪽을 바라본다.
깜깜하지만 눈으로 덮힌 산속 나무들이 어둠속에서
야광처럼 히끗히끗하다.

아.. 이쪽은 피안의 세계, 다리 너머 저 쪽은 사바의 세계..
그래도 그 사바의 세계랑 헤어지는 것이 못내 씁쓸했다.

흥룡사에서 몇발자국 안나가니깐 백운동 갈비집이다.
정류장에서 오돌오돌 떤다. 떠는게 안되보였던지
가던 차가 다시 백을 해서 타란다. 넘 고맙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나하고 그 8시간을 씨름했던
그 눈들이 눈에 선하다.


▣ 산초스 - 눈속의 산행은 정말 느낌은 좋은데 현실은 영 아니올씨다 이지요. 앞도 안보이지요,눈은 눈도 못뜨게 달라붙지요. 국망봉까지 안가신것은 정말 잘하셨습니다. 우리팀 개털도사 말씀대로 고스톱치러 갈 일없어야지요. 치악산은 그래도 산행중에는 눈이 조금씩 내려 산행에는 거의 지장이 없었지요.수고했습니다.
▣ SOLO - 치악산 다녀오셨군요 산초스님 거기도 볼만하셨겠어요..전 아직 위수지역 이탈(?) 원정산행은 자신이 없어서요..나중에 한수 배우겠습니다..하하..
▣ 최병국 - 수고하셨습니다.저도 각흘산과 박달동 연계산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빠뜨리고 지나와서 한번 가야되는데...먼저 가셨으면 정보좀 얻을려고 했는데...한북정맥 종주중인데 길매봉에서 멈추었습니다. 운악산구간은 암릉구간을 통과해야 하므로 눈 녹은 다음에 통과예정...눈속에 고생하셨습니다. 건강하시고 즐산하시길 기원합니다.
▣ 김용진 - 엄청 고생했습니다..흥룡봉에서 흥룡사 내려오는 길은 정말 가파르고 보통이 아닌데 너무 고생많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 SOLO - 눈오고나서 맑은 날 그러니깐 오늘같은 날이 산행엔 최적 같습니다..산에 가고파라~
▣ 웃자 - 흥룡봉 가기직전...직진은 흥룡봉가는 길이고, 좌측은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여기서 좌측으로 내려오신듯한데요..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겨울산..준비물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했구요..^^
▣ manuel - 오랜만에 뵙는군요. 아 ! 바로 그 길, 도마치~향적~흥룡~옥류담으로 이어지는 그 길, 지난 봄 날 어느 노인(도사님?)께서 상해봉서 일러준대로 내려선 참 아름다운 산하 !!! 좌측 도마치계곡의 비경은 그 어느 곳의 것과 비교할 수 없지요. 고생많으셨습니다. 강건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