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종주기

 

                                               *산행일자:2004년 10월 3일
                                               *소재지  :충북 보은/괴산/경북 상주
                                               *산높이  :1,058 미터
                                              *산행코스:갈령-천황봉-문수봉-법주사-버스터미널(18키로)
                                              *산행시간:10시28분-18시25분(7시간 57분)

 

어제는 북적대는 인파를 피해 아직도 초록의 엽록소가 나뭇잎을 지배하는 속리산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 다녀온 설악산과는 달리 여름의 초록이 가을에 자리물림을 하지 못한 속리산에는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지 않아서인지 산을

오른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머지 않아 온 몸을 불살라 치러내는 나뭇잎의 마지막 제전인 단풍 세레머니를 지켜 볼 저는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는 구르몽의 잔인한 물음에 아니라고 답하고자 합니다.

 

저는 올 들어 "70년대의 명산"을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당시는 도로가 제대로 나있지 않아 손쉽게 오를 수 있는 명산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천 미터를 넘는 고산 중 이름이 나있던

명산을 들라면 한라산을 필두로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오대산, 소백산, 가야산과  속리산 등인데 다행히도 저는 1970년대에 이

산들을 모두 올랐고 빠짐없이 산행기도 남겼습니다. 제가 70년대의 명산을 다시 찾는 것은 그때에 비하여 제 주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점검해 보고 싶고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후 강산과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산행기로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작년

10월 한라산을 시작으로 지난 6-9월에는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과 소백산을 종주했으며, 어제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속리산을

다녀왔습니다.

 

10시 28분 속리산 남단의 갈령고개에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 10분을 조금 넘어 잠실역을 출발한 버스는 충북 괴산에서 안개 속의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칠보산 입구인 쌍곡휴게소를

거쳐 경북 상주의 갈령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여기 갈령고개에서 문수봉까지는 백두대간의 능선으로 알고 보니 이번 산행은 그 안내

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프로그램의 하나였습니다. 덕분에 이번 산행이 제게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오르고자 하는 백두대간의  맛보기

산행 격이 되었습니다.

 

11시 18분 해발 804미터의 형제봉을 지났습니다.
형제봉에 오르기까지 오름 새가 급해 숨을 헐떡여야 했습니다. 해발 400미터대의 갈령고개를 출발하여 30여분 후 구병산-형제봉의

주능선인 갈령삼거리로 올라서 오른 쪽으로 길을 틀어 전진, 얼마 후 형제봉 바로 밑의 고개마루에 다다랐는데 좁은 곳에 많은 분들이

쉬고 있어 10여분을 더 걸어 다다른 803봉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천황봉에 올라야 문수봉코스를 탈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학소대를 거쳐 상환암으로 하산해야 한다는 회장분의 안내말슴에 신경이 쓰여 여기 803봉에 오르기까지

속리산 남단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완상하거나 사진으로 옮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12시 25분 667봉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천황봉까지 5.8키로가 남은 피앗재를 12시가 다되어 통과하고 나니 한시간에 2키로 정도 걷는

제 주력으로는 14시안에 천황봉에 다다르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이 빠져 자연 발걸음이 둔해졌습니다만 능선길이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비교적 편안한 길이어서 힘들이지 않고 667봉에 도착했습니다. 803봉부터 동행한 송파에서 오셨다는 남자

분이 토마토를 건네줘 맛있게 들은 후 나무사이로 보이는 형제봉과 능선 길을 카메라에 처음으로 담았습니다.

 

13시 11분 703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703봉에 다다르기 10분 가까이 계속된 길 양옆의 산죽이 싱그럽게 느껴진 것은 단풍을 얼마 앞둔 다른 활엽수들보다 오래 계속될

푸르름 때문입니다. 김밥과 떡, 그리고 사과가 점심메뉴였는데 저 혼자 산행시보다 식탁이 풍성했습니다. 산에서는 소찬도 성찬처럼

맛있게 들 수 있는데 이번에도 동행한 송파 분 덕분에 그 맛이 더해졌습니다.

 

13시 28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천황봉으로 향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동행한 그분과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청년실업문제를 같이 걱정했습니다. 뼈 골 빠지게 일해 대학을 졸업시킨

자식들이 집에서 빈둥대는 꼴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취직이 곧 효도일 수밖에 없겠지만, 일을 못하고 기약 없이 쉬어야 하는

자식들의 고민을 실업자생활을 몇 개월 해본 저는 이해할 수 있기에 그들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저희 세대의 무능력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14시 48분 형제봉에서 7.4키로를 걸어 해발 1,058미터의 천황봉에 올라섰습니다.
능선을 오르내려 다다른 안부에서 저희들에 배를 건네준 분이 저희 일행들이 12시경부터 여기를 통과하기 시작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지구력에 비해 주력이 달리는 제게는 빨리 걷는 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백두대간 길을 손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은 주력이 달려 다른 분들에 뒤쳐지기에 민폐를 끼칠까봐 걱정되어서입니다. 지리산에서는 15시간 종주코스를 16시간40분에

 뛰었고, 설악에서는 12시간 코스를 14시간 반이나 걸려 완주했기에 저를 기다리는 다른 분들에 미안해 산악회에 먼저 출발하라고

요청하고 시내로 나가 심야버스를 이용해 귀경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고 바위 길을 20분간 힘들게 올라 다다른 천황봉에서 둘러본 산봉우리들과 그들을 이어주는 능선이 만들어낸 실루엣은 하나의 파노라마였습니다. 형제봉까지 남동쪽으로 뻗은 막 걸어온 능선이 분명하게 보였고, 북쪽으로 연결되는 문장대까지의 암릉 길은 몇 번을 밟은 터라 반가웠습니다. 남쪽으로는 형제봉까지 육봉으로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문장대까지 암봉으로 이어져 천황봉을 경계로 극명하게 대비되어 신비로웠습니다. 저는 주로 혼자 산행을 하기에 정상에 올랐음을 증명하고자 표지석에 배낭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 왔는데 이번에는 송파 분 덕분에 배낭대신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14시 55분 천황봉을 출발했습니다.
오후 2시가 넘었으니 의당 상환암으로 하산해야 하는 데 그리해서는 목적한 산행기를 제대로 쓸 수 없기에 시간이 늦으면 저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출발하라는 전언을 송파 분에 부탁하고 저는 문수봉으로 내달렸습니다.


15시 38분 임경업 장군이 7년간 수도 끝에 세웠다는 입석대를 지났습니다.
천황봉에서 문장대까지 거리가 3.5 키로인데 그 중 1.6 키로를 걸어 입석대에 다다랐습니다. 7년간 수도를 할만큼의 여유가 부러웠고

그리해서 세운 바위가 뭇 사람들이 사진으로 남기기를 원할 만큼 주변 정경과 잘 어울리는 곳에 세운 장군의 혜안에 감탄하며, 저도

입석대의 전신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신선대로 이어지는 암릉 들을 우회하는 길이 산죽의 숲을 가르고 나있어 걷기에

상쾌했습니다.

 

16시 정각 신선대휴게소에 다다라 짐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습니다.
콜라로 타는 목을 달래고 천황봉을 카메라에 담은 후 서둘러  문수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지막 가파른 오름 길이 제

지구력을 테스트하는 듯 싶었습니다. 문장대를 들러 경업대로 하산하는 몇 가족이 제게 길을 물어와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길을 물을

수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면 나 홀로 산행도 그리 겁낼 일이 아니지만 지난 여름 한북정맥을 종주하던 중에는 산에서 거의 다른

분들을 만나지 못해 길을 잃을 까 더욱 노심초사했습니다.

 

16시 37분 문장대 바로 밑의 정상휴게소 앞에서 마지막 쉼을 가졌습니다.
평평한 바위에 등을 눕히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니 가을 하늘이 높기는 높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잠시 망 중한에 빠져들자

빠르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움직임도 한가롭게 보였습니다. 두 주 후 다시 찾을  밤재가는 백두대간 길을 일별한 후 사과와 남은

떡을 들어 하산 길에 대비했습니다.

 

16시 46분 휴게소를 출발 , 5.8키로 떨어진 법주사로 온 힘을 다해 뛰어 내려갔습니다.
시간을 잡아먹는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넣고 오로지 하산에만 열중했습니다. 17시 28분 산길이 끝나고 넓은 길을 조금 걸어 내려와

이뭣고다리를 지났습니다. 하도 다리 이름이 신기해  서 새겨 놓은 한자를 들여다보았지만 실력부족으로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휴게소를 출발한지 1시간 14분 후인 18시에 법주사를 지났습니다.
시속 4.7키로의 속력으로 내달렸으니 제게는 앞으로도 내기 힘든 새로운 기록으로 달린 셈입니다. 휴대폰이 터져 산악회의 회장 분에

전화를 걸었더니 기다리고 있다며 빨리 오라는 답을 듣고 서둘러 내려가던 중 산악회의 회원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안심했습니다.

18시 25분 버스터미널에 도착, 8시간 동안 약 18키로(산악회기준 23키로)를 걸어 속리산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순두부와 묵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나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번은 전 코스를 끝까지 강행하다 시간 안에 대지 못해

버스를  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먼저 3대를 보내고 마지막 1대가 끝가지 기다려 주어 고마웠습니다.

 

귀로의 버스에서 옆자리의 어느 분으로부터 이 산악회가 어떻게 해서 한 대도 힘들다는 비 인기코스에 4대를 운행할 수 있는가를

배웠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고객만족이었습니다. 산행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안전산행을 위해 여러모로 회원들을 배려하고 끝까지

기다려 한사람도 떼어놓고 떠나는 일이 없다는 그분의 자랑을 듣고 나서  충성고객의 구전효과를 실감했습니다. 산행은 힘들었어도

기업경영에 절대 필요한 한 수를 배워간다는 기쁨을 간직하고  산행기를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