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같은 지리산 서북능선..(성삼재-바래봉)

 

산행지 : 지리산 서북능선(성삼재-바래봉)

일   시 : 2004. 10. 10 (일)흐리고 맑음

산행자 : 꼭지(아내)와 산그림자님부부 넷이서

교   통 : 대구역(무궁화) 21:00-대전도착 22:52 요금:8,800원(입석7,500원)

           대전-서대전(택시 2,500원 소요시간=15분)

           서대전 23:47-구례구도착 02:19 요금 11,000원

           구례구 - 성삼재(택시 25,000원 정상요금 30,000원)

           운봉읍-남원(시내버스 10-20분 간격 자주 있음)

           남원출발 시외버스 16:40(막차는18:10)-대구착(18:50 8,500원)


 

03:10 성삼재(산행시작)

04:25 작은고리봉

06:10 만복대

07:10-07:30 정령치

08:00 고리봉

10:00-10:10 세걸산

10:15 세동치(청소년교육원 하산길)

11:25 부운치

11:35-12:10 부운치 무명봉

12:35 팔랑치

13:20 바래봉

14:30 운지사

15:20 운봉읍 버스승강장

 

총 산행시간 : 12시간 약 22km

        성삼재←6.5→ 만복대←2→정령치←0.8→고리봉

         ←3→세걸산←5.6→바래봉←4.5→운봉읍


 

지리산 서북능선(성삼재-덕두산)은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지리의 주능선을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밝은 햇살이 골골이 타고 넘는 장쾌한 지리의 북사면

그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어서

하루 종일을 걸어도 싫증나지 않는 장장 20여km의 아름다운 코스입니다.

 

또한 요즘은 대간 꾼 외엔 일반 산행객은 거의 없는 호젓한 길이라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맛볼 수 있고 등산로는 동네뒷산의 낙엽 깔린

오솔길과 흡사해 걷기도 편하니 걸음이 느린 꼭지에겐 안성맞춤이고

세월없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코스이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병대 아저씨에게

지리산 서북능선 종주를 기차타고 무박으로 같이 가자고 하니

해병대아저씨 왈,

“가게를 밤부터 비울 수 없으니 못 간다.” 일언지하 거절입니다.

어쩝니까. 그렇다고 사랑방이 해병대 생계까지 책임질 수는 없으니..

 

지난 주 영남알프스에서 죽을 고생을 해 식겁을 해서 그런지

아님 진짜 가게일 때문인지..

또 “종주”라는 단어(생고생으로 각인되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늘 죽을 고생을 해도 함께해주는 든든한 꼭지(아내)가 있어서 예정대로

대전역에 내리니 산그림자님 부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호남선을 타기위해 택시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이동합니다.

 

지난번 설악에서 산행 후 이번이 두 번째 인 셈인데 진정한 산 꾼이라

소문난 저 부부를 느림보인 우리가 어찌 따라갈까 걱정이 앞서

무궁화호(?)에서 자다 말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뜨니 벌써 구례구역입니다.

 

4시30분 첫차 버스요금(3천원)이 어떻고 입장료가 어떻고..

택시 타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둥..

열변(?)을 토하시는 택시기사님이 2만5천에 태워주겠다는 말에

겨우 잠이 깨어 성삼재까지 못이기는 척 택시를 탑니다.

 

구례구역을 빠져나오니

도로 양쪽으로 살짝 단풍이 들고 있는 가로수와

활짝 핀 코스모스가 자동차 불빛사이로 아름답게 꽃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성삼재 오르는 길..

급커브에 급경사 길을

자동차는 꺼억 꺼억 소리를 내면서도 힘차게 오릅니다.

능숙한 기사아저씨의 운전솜씨로 30여분 만에 성삼재에 도착합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는 몇 대의 관광버스가 많은 산객들을 어둠속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산객들이 웅성대는 노고단방향이 아닌

한적한 서북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성삼재를 100m쯤 내려가니 좌측 철책사이로 작은 철문이 빠끔히 열려있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실낱같은 달빛과 총총한 별빛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며

머리위로 부셔져 내리고 있습니다.

 

▼성삼재를 지나 초입에 만난 <만복대 6km>의 이정표


 

좁은 등산로는 낙엽 깔린 전형적이 육산이라 가을의 정취가 물신 묻어나고

지리의 주능선에서는 도저히 밟아볼 수 없는 편안한 길

또 다른 지리의 멋을 느끼게 해줍니다.

 

비록 어둠속이라 하늘과 땅의 선명한 마루금 외엔 아무런 조망도 없지만

노고단과 반야봉 토끼봉을 거쳐 천왕을 향한 지리의 몸부림이 서북능선 내내

시야를 떠나지 않고 가슴을 파고듭니다.

 

풀숲에 이는 새벽이슬..

산죽과 억새와 싸리나무..

단풍이 들다말다 시들어 떨어지고 있는 상수리나무잎..

 

온통 등로를 덮고 있는 낙엽 깔린 숲길로 오름과 내림의 땀을 닦으며

작은 고리봉과 헬기장을 지나니 산그림자님 부부와 차츰 걸음이 멀어지는 지라            

헉헉대며 그 분들 뒤를 따릅니다.

 

만복대 오름길에 서니

생생 불어오는 바람..

하늘을 향한 사자의 포효소리인가.. 용의 꿈틀거림인가..

만복대는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만복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면의 가냘픈 억새는 하얀 깃을 움츠리며 거센 바람에 온몸을 떱니다.

천왕 또한 구름을 젖히며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여명의 시간.. 선명한 하늘금에 닿아있는 만복대를 향해

오름에 지친 꼭지는 자꾸만 통나무 펜스에 매달리다 오르다를 반복합니다.

휘몰아치는 지리의 입김이 온 몸을 핱으며 억새군락지의 경사면을 뒤 흔듭니다.

부르르 떨고 있는 그 억새의 몸부림..


 

만복대..

멀리 천왕에서 서서히 열리는 동녘하늘..

지나온 능선의 선명한 마루금과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거대한 반야봉의 위용

그 너머 천왕을 향한 지리의 꿈틀거림..

 

▼고기리 방향의 만복대 사면의 단풍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 아직 일출시간도 이른지라

정령치를 향해 내려섭니다.

그렇게 20여분 내려왔을까 만복대에서 정령치 가는 길..

 

천왕봉위로 구름을 뚫고 서서히 일출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눈부신 햇살이 만복대사면의 단풍을 더욱 곱게 물들이고

은빛억새는 더욱 깊은 춤사위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천왕봉에서 솟아오르는 일출


 

▼정령치 방향의 조망과 그 넘어 고리봉


 

▼화사한 가을 햇살이 억새 사이를 비집으며 파고듭니다.



1시간여 그렇게 천왕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정령치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텅빈 주차장과 굳게 닫혀져있는 휴게소..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적막감마저 감도는 정령치 휴게소입니다.


 

적막강산의 정령치 휴게소..

계획은 이곳에서 따뜻한 우동으로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는데

휴게소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꼭지가 준비해온 초밥으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코펠을 준비해와 따뜻한 라면이나 끊여먹을 걸..

추운 날씨라 따뜻한 국물이 절로 생각납니다. 쩝~~@ 

 

▼한적한 정령치.. 휴게소문은 굳게 닫혀있고..


 

갑자기 휴게소가 시끌벌쩍하더니 일단의 산 꾼들이 내려옵니다.

무서운(?) 대간꾼들입니다. 꼭지와 사랑방은 괜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대간 꾼만 보면 주눅이 들어 얼른 고리봉으로 올라섭니다.

 

남녀모두 죽죽 뻗은 롱 다리로 스카프 휘날리며 쏜살같이 다가오는 대간꾼들..

느림보인 우리에겐 선망의 산꾼들이지요. 산그림자님 부부도 오늘은

우리에게 보조를 맞추느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주건만

 

그래도 꼭지는 따라가기가 힘이 드는지 혼자 중얼거립니다.

“어찌하면 저렇게 잘 걸을 수 있을까~~?” 이룰 수 없는 소망?

하지만 꼭지의 중얼거림은 고리봉 오름길에 가쁜 호흡 속으로 묻혀 갑니다.

 

억새 숲을 지나 30여분 가파른 오름 길에 올라서며 뒤를 돌아봅니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햇살이 가득한 만복대 사면의 아름다움..

그와는 대조적으로 대간 길의 능선을 무 설듯이 잘라놓은 정령치오르는 도로가

흉물스럽게 다가오지만 그것은 우리의 눈(?)에서만 그렇게 보이겠지요.

 

▼정령치를 올라서 고리봉 가는 길


 

▼뒤돌아 본 정령치와 저 멀리 만복대


 

▼고리봉(대간 갈림길)에서 또 만난 늠늠한 대간 꾼들..



 

고리봉입니다.

좌측은 대간길인 고기리방향이고 우리는 세걸산을 향해 바로 내려섭니다.

고만고만한 능선의 오름과 내림의 반복속에서 연신 힘들어하는 꼭지는

 

가볍게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잘 걸어 나가는 산그림자님 부부에게

또 부러움의 눈길을 보냅니다.

"햐~ 잘 간다~~@@,“

 

그래도 오늘은 꼭지가 낙엽 깔린 오솔길인데다 너덜구간이 없어

아직(?)은 크게 힘들어하지도 않고 잘 가고 있습니다.

지루함을 덜어주는 등로 내내 무리지어 피어있는 억새를 어루만지며

쌓여만 가는 낙엽들을 밟으며 편안한 길을 걸어갑니다.

 

어쩌다 마주치는 붉디붉은 단풍나무..

그 잎사귀 사이로 높아만 가는 가을 하늘을 쳐다봅니다.

진정 이곳이 지리산인가..

 

▼안부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리봉과 만복대


 

▼사랑방이 제일 좋아하는 산죽길.. 유난히도 붉은 단풍터널을 올라서며..


 

▼세걸산 가는 길


 

 

세걸산..

8부능선위로 점점이 물들어가는 단풍의 색깔들..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 가파른 오름에 땀을 적시며

세걸산을 올라 잠시 지나온 능선과 가야할 바래봉을 조망합니다.

 

▼세걸산에서 바라 본 바래봉까지의 주 능선


 

▼세걸산에서 바라본 반야봉을 이어주는 심마니 능선.. 그 웅장함.. 


 

맞은편의 반야봉과

반야봉 아래로 그 능선 줄줄이 이어져내리는 심마니 능선..

저 멀리 천왕봉까지 끝없이 펼쳐진 지리의 장엄함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지리의 주능선을 한눈에 조망하니 또 종주의 유혹이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10분여 휴식을 취하고 바로 아래 세동치로 내려서니

좌측으로는 교육원 하산길입니다.

 

▼바래봉 가는 길


 

이곳부터는 등로 주위의 거미줄을 걷어내며 지나야 하니

오늘은 아무도 이곳을 지나지 않았는가 봅니다.

이제는 전혀 때 묻지 않은 서북 능의 낙엽길입니다.

 

부운치를 지나 10여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망좋은 둔덕에 오르니

봄에 철쭉이 한창일 때 이곳에 오른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는 바래봉까지의 온 사면이 붉은 철쭉으로 물들었었는데..

 

하지만 오늘은 꽃보다 고운 붉은 단풍이

눈부신 햇살에 은빛으로 일렁이는 억새와 더불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넓은 풀숲에 앉아 지리의 주능선을 한눈에 바라보며

때 이른 점심을 먹고 잠시 쉬어갑니다. 이곳부터 바래봉가는 길은

철쭉군락지의 좋은 길이라 이곳저곳 구경하며 느긋하게 진행합니다.

 

▼철쭉대신 억새와 단풍이 그 자리를..


 

▼바래봉가는 길의 단풍과 억새와 야생화.. 산그림자님은 이미 보이지 않고 꼭지만 뒤에서 어정어정~@ 


 

▼바래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풍경


 

철쭉나무가 온 사면을 덮고 있는 팔랑치를 지나

바래봉아래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샘터에서 목을 축이며

식수를 보충하고 바래봉의 경사면을 오릅니다.

오늘 최대의 인내를 요구하는 구간, 마지막 힘을 다합니다.

 

▼바래봉 오름 길..   "어휴~~ 힘들어~~@@@@"


 

 

바래봉..

원래 계획은 성삼재에서 덕두산까지 종주하기로 하였으나

꼭지도 힘들어하고 교통편도 여의치 않아 더 이상 무리하지 않기로 합니다.

여기서 지름길인 운지사를 거쳐 운봉읍내로 하산합니다.

 

▼바래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아~! 역시 지리산입니다. 


 

▼운봉 하산길..


 

▼ 재잘재잘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서로 얘기꽃을 피우며 내려옵니다. 


 

▼바래봉 사면의 단풍


 

운지사에서 운봉읍내까지 지루한 차도를 40여분 걸어

남원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남원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서울로 대구로.. 산그림자님 부부와 아쉬운 작별의 악수를 나누며

오늘의 지리산 서북능선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