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31일 토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났으니 너무일러 누워 뜸을 들이다 4시에 밥짓고 밖에나와 조할머니네 수퍼냉장고에 맏긴 물과
반찬을 찾아야 되는데 젊은 주인이 차를 몰고 어딘가엘 가고 없으니 난사라.

나는 유리창이라도 깨자고 처는 어디 안 잠긴곳 찾는중이고 아들은 기다리자고 안달이 나는중에 4시반에
주인이 돌아와 곤경은 해소되고 아들 말 듣길 잘했네.
100 m 떨어진 전라북도 표지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안개.

처는 자기 걸음이 늦으니 5시에 먼저 출발. 전라북도 표지판 밑에서 아들 기다렸더니 수건을 수퍼 평상에 두고
왔다고 다시 가져오느라 우린 5시 20분에 육십령을 출발.곤히 자는 풀벌렐 화나게 했는지 오른팔 옛날 장티프스
예방주사 맞던자리가 따끔하다. (다음날 아침까지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어릴때 북한산에 더러 데려간 적은 있어도 삼십세가 된 지금 같이산행 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할미봉으로 가는도중 처음 만난 바위에서 물과 토마토를 먹고 언덕에 오르니 안개와 구름을 헤치고 해가 솟았다.
문득 국민학교때 유성기에서 들은  떴다떴다 해가떴다 둥근해다 밝은해다 잠꾸러긴 못보는 막 돋은 아침해다

를 흥얼거렸더니 처가 그런 노래도 있냐고 묻는다. 4살 차이지만 세대 차이가 난다고요.
처의 말에 의하면 남편은 현세의 애인이요 아들은 전생의 애인이란다.
오늘은 전생과 현세의 애인둘을 대동하니 뿌듯 하시겠오.  나도 휑하니 앞서 치고 나가길 잘 하는데 전생의

애인이 오늘은 잘 보살필 터이니 한시름 놓겠다.할미봉 가는 길에 강릉출신 남지심작가의 책 내용을 말해주는데
어느스님이 미륵불을 보려고 굴에서 3년 수도 하고 나왔으나 보이지않아 실망인데 낙수물 자리가 패인걸 보고
다시수도 이러구러 여러차례 마지막엔 죽어가는개의 몸에서 구더기 다칠세라 입으로 물어 자기 허벅지에

여러차례 옮겨 놓고 구더기 굶어 죽을가보아 칼로 자기허벅지를 베려 할때 미륵불이 나타나 칭찬하며
나는 항상 네곁에 있었노라 라는 내용의 얘길 들으며 할미봉으로 간다.전생의 애인 덕에 내 발걸음은 자유롭고
여섯시 이십육분에 먼저 할미봉에 올라 전광판 같은 사진 안내 그림 보고 이산 저산 둘러보는데 가야할 교육원 방향에

구름이 피어 산을 감싼것이 노고 운해못지 않을것 같다.처와 아들을 기다려 할미봉 밧줄구간을 내려 처음 만난
바위에서 아침밥 먹는데 처가 할미봉에서 대포바위를 보았냐고 묻는다 앞서 빨리가기만 좋아하다보니 보일리가 있나.
쩝! 제대로 좀 보려면 처 뒤나 따라 다녀얄텐데 그게 잘 안되니... 빨리 간다고 누가 상주나.

교육원 삼거리로 향한다. 구조표지 11-8 부근을 무심히 지나는데 끽끽하는 고성의 비명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비명의 주인은 매미. 세상에나 매미가 그렇게 큰소릴 낼수도 있다니.
교육원 삼거리에서 아들에게 전화하니 7,8분 거리인것 같아 서봉 방향으로 밨줄을 당겨 가며 오른다

땀빼고 오르니 헬기장이고 아랠 향하여 소리치니 처의 대답이들리고 계속 오르니 시야가 트이며 서봉이보이는
바위에 올라 냉커피 만들어 먹으며 땀을들이며 사주를 두루 조망하고 지나온 길과 봉우리도 보며 서봉으로
서봉아래에 약수터가 100 미터로 표기되어 처와 아들이 오기전에 물을 뜨러 갔으나 건너편 봉우리로 가다

되돌아와 희미한 우측길로 가야하는데 헤매다 되 올라오고 말았는데 남덕유의 참샘을믿고...
이실수가 나중에 한시간 이상 고생 하게 될 줄이야. 물도 못뜨고 시간만 낭비하고 목만 더마르고.
서봉은 장수덕유라고도 한다는데 대체로 고추잠자리가 어제 운장산과오늘 덕유산에 참으로많다.

서봉은 제법 높아 지금껏 온길과 봉우리들을 돌아보니 조망도 좋고 등산 잘 하고 있다는 마음이다.
나는 왜정때 태어났고 가난한 교육공무원의 7남매중 맏이라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으나 아들은 누나 하나에
아비가 약국하니 나보단 여유롭게 살아그런지 마음씀씀이도 크고 만만디로 매사 즐기며 살며 급할것도 별로없고

조급한 아비가 볼땐 답답하나 그녀석은 되려 날보고 좀 여유롭게 밥도 천천히 먹고 운전도 양보해가며살라니
어떨땐 그녀석이 부럽기도 하니.서봉에서 내려오는데 철계단을 다 내려와 올려다보아도 내려올 기미가 안보여
철계단 끝에서 왼편으로 가면 보이지도 않는데 나같으면 일행이 떠나면 부지런히 따라 가거나 앞장서는데

도착지 알겠다 아버지야 가거나 말거나 자기대로 유유자적 더운데 쉬엄 쉬엄 오려나보다.
혼자 먼저 남덕유로 오르는데 얼마나 힘이 들던지 자꾸만 서봉을 돌아보며 칠부쯤 올랐다 또가다가 되돌아보며
한 팔부쯤 되나 하면서 게으른 농부 밭이랑 헤이듯이 처가 덕유산 혼자 다녀오라 했으면 헤어지자 하고말지 하는생각하며

또뒤돌아 서봉(1492미터)을보니 거의 꼭대기라 아이구 남덕유(1507미터)도 거의다 올라온갑다.
열한시이십분에 남덕유오르고 30분후에 처가 오르고 아직 아들은 감감 가족의 식수 해결해야하는 사명감에
누군가 참샘이 20분이면 된다고 하여 나섰는데 그게아니다 영각사방향으로 철계단 420개나 내려가고 800 미터나가서

우측으로 200 미터 더가야 참샘 물은 좋터구만 돌아오는길은 내려갔던 철계단 420개를 치올라야 하는데 지어사경이라
이후 산님들 영각사로 하산 하려면 모를까 절대로 참샘으로 물뜨러 가시진 마시오 월성치로는 가는 길이고 월성치에도
샘이있으니 그곳을 이용 하시길

계단을 다오르니 아들이 마중을와 배낭 벗어주니 살것같아. 라면 끓여 밥말아먹고 두시에 월성치로 두시 사십분에 도착
처와 아들은 3시에와서 그늘에서 쉬다가자고 에라 그래 쉬자 사십분을 더쉬니 난 사십분 하산에 육십분을 쉬네
삿갓봉으로 가는중 처가 곰취와 참나물을 한줌 뜯었으니 저녁 찬은 되겠다.

대피소 갈림길에서 모두 삿갓봉에 오르자 하여 삿갓봉에 오르니 산청에서 오신 산님 세분이 반갑게 맞아주고
인근 산과 지역을 잘 설명 해주었으나 들을때 뿐이고 지금은 별로 기억이 없다 청문회 나온 고관대작도 아닌데 왜이럴까?
수박과 빵을 나누어주어서 참으로 맛있는 수박을 맛보았고

삿갓재 대피소에오니 오후 다섯시라 아들덕에 거북이 산행을 잘 한 셈이다.
춘천의 호반 산악회 대간종주팀을 만나 산 소주 한병을 얻어 아들과 그분과 같이 잘 마셨고 피로도 가시는것 같은데
그이들은 달이밝은 보름이라 새벽 세시에 출발한다고 일찍 자야되고 우리때문에 초저녁엔 그들이 잠을설쳤겠고

새벽 두시부터 술렁거려 밤중엔 우리가 잠을 설쳤으니 피장 파장인지.
지리산은 물이 여러군데 있어 좋으나 덕유산엔 물이 별로 없어 물 많이 지고 다녀야 하는게 고역이다
처는 보름달 보더니 우리도 언젠가 보름되거든 야간 산행 한번 하자는데 글쎄다 처가 결심하면 이몸은 따라야 되겠지.

관악산에서 카메랄 잃고 사진도 없고 검지 둘로 하는 타이핑이라 시간이 여간 많이 걸리는게 아닙니다.
오타나 틀린 문장 고쳐 이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