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푸른 초원의 영남 알프스에서

영남알프스의 푸른 초원을 이불삼아,
싱그러운 바람과 깜깜한 밤하늘의 별과 달, 지는 해와 뜨는 해를 맞이하며
하루만이라도 이 곳에서 벗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먹은 지 몇 달!

금요일 오후에 급히 산행을 결심하고 아내에게 메일로 산행 계획을 보낸다.

♡ 때 : 2004. 07. 17 ~ 18(1박 2일)
♡ 곳 : 배내고개 - 배내봉 - 간월산 - 신불산 - 영축산 - 청수우골 - 배내고개
♡ 누가 : 아내와 나
♡ 날씨 : 장마권의 영향으로 17일 오후 많은 비, 18일 흐린 후 갬

일기 예보에 비가 온다고 해서 인지
배내고개에는 몇 대의 차들밖에 없다.
오늘 같은 날이면 주차 전쟁이 났을 법한 날인데...

배내고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배내봉 초입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시작부터 오르막이라 숨이 찬다.
하늘을 보니 금방은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시커먼 구름은 쉽게 걷힐 것 같지가 않다.

40분여의 거리를 한시간만에 배내봉에 올랐다.
탁 트인 조망과 푸르른 초원이 땀흘림을 보상 받는듯하다.

이제부터 간월산 아래까지는 능선길이다.
푸른 억새가 강풍으로 이불처럼 누웠다가 일어나는 모양이 너무 장관이라
카메라가 몹시 바쁘다.

푸르른 능선길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예쁜 야생화가 보이면 야생화도 찍고...
무거운 베낭(65리터)을 메고 야생화를 찍기 위해 앉았다 일어 나기를 수십번 했더니
무릎이 아프다.
그렇다고 매번 배낭을 벗자니 그렇고
예쁜 꽃들이 유혹하는데 가만 있자니 또 그렇고...

아내는 왜 예쁜 꽃만 찍느냐고 한다.
예쁜 꽃은 남들도 다 찍으니 다른 꽃들도 찍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말이다.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예쁜 꽃들만 보인다.

그 때까지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는데
간월산 오르기 전 안부에서 등산객을 만났다.

간월산 오름길에는 노란 원추리, 솔나리, 참나리, 털중나리 등의
여름꼴 무리들이 산객을 반가히 맞이한다.
여름 산행의 보너스는 꽃 길 산행이다.

간월산 정상(1083m)!

정상석이 두 개다.
워낙 거센 바람으로 인해 정상에서의 증명 사진은 포기하고
정상석만 한 장 찍고 바로 간월재로 향한다.

간월재에는 보이지 않던 간월재 표시석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신불산을 오르는 길은 언제나 힘이 든다.
한시간이 안 되는 거리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조금 가다가 쉬고 하기를 여러 차례.

정상 바로 직전 원추리 군락을 만났다.
작년 지리산 종주때 원추리를 처음 봤기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이 새롭다.
정확한 표현은 처음 본게 아니라 처음 알 게 된 것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본다 는 말이 있지 않은가.
특히, 야생화는 외우고 또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다.
꽃들이 비슷한 탓도 있겠지만...
그래서 아는게 없고 봐도 무언지 알기가 힘들다.
그저 예쁜 꽃으로 밖에...

그리고 보니, 지금 이 산의 풍경이 지리산과 흡사한 것 같다.
운무가 가득하고,
산 군들이 빽빽하고,
원추리와 비비추가 길 섶에서 하늘거리고,
갈 길이 구만리처럼 남았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마음이 그득하니 지리산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신불산 정상(1209m)!

신불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푸른 억새 평원.
간월산이 가까이 보이고,
영축산이 희미하다. 앞으로는 재약산과 천왕산이 구름에 가려있다.

지금부터 영축산까지는 전국에서 유명한 신불 억새 평원이다.
10월말경이 억새가 한창이지만,
지금의 푸른 억새가 오히려 운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바람에 이리 저리 흩날릴 때마다 초록의 색깔이 달라진다.
누울때는 짙은 초록인데 서 있을 때는 연초록을 뽑낸다.
햇 살의 영향이다.

신불재 아래 신불산 대피소 앞 나뭇밑에서 배낭을 푼다.
철철 넘치는 물로 땀을 씻고, 점심을 먹는다.
산의 정기를 가득 받은 상추며 음식들은 그저 꿀맛이다.

오늘 오면서 제발 점심 먹을 때만은 비가 오지 말았으면 했다.
지난번 오대산 노인봉에서 비를 홀딱 맞고 밥도 다 먹지 못하고
보따리를 쌋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직 하늘이 많이 도와 주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억새 평원의 산책이 시작된다.
이리 저리 사진을 찍으면서...

신불 평원의 한그루의 소나무 얘기도 하면서
이런 산에 있다는 행복에 젖어 ....

오늘의 일정은 영축산에서 야영하는 것인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것 같다.
4시 안 되었지...

가보지 못했던 단조늪에도 가보고 미니 삼각대를 세워 둘 만의 포즈도 취해 보는
여유를 부린다.

영축산 정상(1079m)!

정상에서 증명 사진 찍기가 무섭게
그 때까지 잘 참아왔던 폭우가 쏟아진다.
비 옷 꺼내 입을 겨를도 없이 비를 흠뻑 맞았다.
삽시간에 배낭이며 옷이 모두 젖었고 우린 영락없이 비 맞은 생쥐꼴이다.

어떡하나...
원래는 이곳에서 야영 할 계획이었는데 비가 멈출 줄 모르고 계속오니,
내려가서 신불산휴양림에서 1박 하는 방법도 좋을 듯 하고...

이런 저런 생각끝에 이 곳에서 자기로 한다.
통도사로 내려기는 길목 샘터가 가까이 있는 곳에 둥지를 틀었다.
텐트를 치니 서글픈 마음이 사라진다.
비가 오고 바람이 장난이 아니지만 우리의 안식처가 있으니...
지나가는 산객들이 한마디씩 한다.
"멋지겠다."
"우리도 언제 한번..."
주로 이런 말인 것 같다.
텐트 안에 쪼그리고 앉아서 저녁을 해 먹는다.
그래도 있을건 다 있다.

밤 새 아내는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바람이 많이 부니 텐트가 날아 갈까 봐 걱정,
비가 많이 오니 비가 스며들지 않을까 걱정,
씰데 없는 걱정 잡아메라고 딱 잘라 얘기했지만 은근히 나도 걱정은 된다.
태풍에 가옥이 날아 가고 하는 뉴스가 생각이 났기 때문에...

다음날,
일출을 보려는 기대는 비는 안 오지만 사방이 분간이 안 되는 날씨로 허사다.
좀 더 누웠다가 아침을 해 먹고 다시 오늘 산행 시작이다.

시살등 방향으로 코스를 잡는다.
물 먹은 암벽들이 즐비한 길을 조심스럽게 스틱을 의지하며 한걸음 한걸음 떼 놓는다.
어제 비가 왔을 때 아침 일출이 장관일 거라는 기대로 부풀었는데
아직도 주위 조망이 어렵다.

한참을 가다가 두 갈래길에서 근교산 리본을 보고 아랫길로 길을 잡았다.
그런데 왠지 이길이 아닌 것 같다.
청수우골이 나와야 하는데...
가다보니 길도 희미하고 너덜길에 보통 힘든길이 아니다.
돌아 서자니 너무 많이 왔고,
차라리 잘 됐다, 이 길도 한번 가 보자는 마음에 계속 앞으로 간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청수 좌골과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진 맥진일 때 쯤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저기가 청수좌골인 모양이다 하며 달려 갔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이 곳은 인적이 드문 만큼 계곡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한 오지이다.
잘 못 왔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만이 아는 비경을 개척한 셈이다.
이곳에서 알탕을 하며 원기 회복을 하고 ,
가시덤풀을 헤치고 비먹은 바위를 타면서 거의 두시간을 헤멘 끝에 청수좌골과 만났다.

이제, 신불평원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하나 둘 보인다.
헤메다 보니 점심때가 다 된 것 같다.
지금쯤이면, 재약산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 이곳이니 오늘 일정 소화는 무리인 것 같다.
오늘은 청수좌골 하산으로 마무리 하기로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계곡에서 이런 저런 포즈로 사진도 찍고, 폭포도 찍으면서 1박 2일의 산행을 끝낸다.

비록, 계획대로 산행은 못 했지만 푸른 초원을 이불 삼아 산에서의 하룻밤은
언제든 다시 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겐 그림같은 일이였다.
비가 오면 오는데로...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모두가 자연인 것을,



 

 

 









旭金印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