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2005. 9. 20(화)
누구와: 미세스 리랑 둘이서
산행코스: 양산 다방리 - 장군봉 - 고당봉 - 북문 - 범어사

어느 산님의 글에서 다방(多芳)리가 향기많은 마을 뜻이란
진실로 향기 솔솔 나는 설명을 접한 적이 있다.
명절뒤라 미세스 리와 둘 만의 조촐한 산행을 결정짓고선,
늘 마음에 두었던 코스인 양산 다방리에서 올라
고당봉을 거쳐 범어사로 하산키로 하였다.
미세스 리는 산은 엄청 좋아하나, 나이에 비해 건강이 여의치 못한고로
그야말로 으뜸 거북이 산행주자이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도 할 수 있다!를 외치는 심성이 단아한, 사랑많은 친구이다.
다방리(계석마을)는 금정산 끝자락이라 산행초입부터 오름이 이어지지만
쭉쭉 뻗은 소나무들의 도열에다 향그러운 자연향에 금새 코끝이 즐거워진다.
매미아닌 가을 풀벌레들의 소리도 분명,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를 대변하듯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산은 한여름인양, 금새 온 몸은 땀에 푹 젖어오고......

자주 쉬어야 하고, 또 자주 먹어줌으로 에너지 보충을 해야하는 미세스 리는
언제 부터인가 산행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 오늘도 씩씩히 잘 걸어주고 있다.
막 벌초한 듯한 묘지 1기를 지나 계속 진행하니, 임도가 나오지만 외면하고선
곧장 가로질러 급경사로 치고 오르노라니, 무리지은 산객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제법 거치른 오밀조밀 암릉구간을 로프를 잡고 통과하며
난 스릴을 즐기지만 친구는 바짝 긴장이 되나보다.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산길은 변화무쌍하여 힘든 가운데서도 산행의 묘미를 더해가고
흙먼지 폴폴 일으키며 사시사철 인파들로 왁자한 주능선 너른 길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우리가 벌써 이 만큼이나 올라왔어!”
친구가 발아래 풍경들에 취해선 스스로도 대견한 듯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렇다!
모든산은 힘들다는 평범한 화두를 마음밭에 담고선,
자신과의 싸움, 인내심으로 종국엔 목적지에 오르고야마는
이 한 걸음, 한 걸음은 참으로 보배로운 행보인 것을!

억새평원에 다다르니 확 트이는 시야에 황홀경에 빠져선 연신
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가을햇살받아 반짝이는 억새사이로 잠자리떼는 자유의 몸짓 바쁘고
저만치 고당봉이 지척인양 눈에 잡힌다.
이어지는 녹음짙은 산자락은 멀잖아 만산홍엽으로 변신할 터이고
쇠락하는 뭇자연들의 시름이 뭉근히 피어 오르는 계절 한 켠에서
우린 또다시 삶의 편린들을 돌아볼 터이지......
“담엔 신랑이랑 같이 와!”
내가 친구더러 주문을 하니
“말을 도통 안들어...살아오면서 더러는 비우게 되고 서로 맞추게 되더라구.”
옆지기와의 더불어 산행을 체념한 듯, 친구가 말끝을 흐린다.
눈부신 억새사이로 그녀를 떠다밀고선 요리조리 폼잡아주며 셔터를 눌렀지만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아마도 몇 컷은 눈을 쓰~윽 감고 있을 거다!...ㅋㅋ
멋드러진 소나무 그늘아래 점심을 먹는데, 나의 배낭에선 한 살림(?)이 쏟아져 나온다.
가능한 짐무게를 줄이라고 해놓고선 난 보온병만 두 개에다 뜨끈뜨끈한 미역국까지!
배낭 무게 줄이는 노하우는 언제쯤 터득할런지 모르겠다.

친구가 자꾸만 졸립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다리는 오히려 가벼워졌다며 원래 계획대로 고당봉을 향하였다.
뙤약볕을 피해 이어진 철탑이 흠인 능선길아닌 사잇길로 진행하는데
주옥같은 자연 그 자체라 평소 걸었던 그 어떤 코스보다도 대만족이었다.
이어지는 습기머금은 솔잎길은 융탄자를 깔아 놓은 듯 폭신폭신 부드러워,
사뿐히 즈려밟듯 즐거이 나아가다 길옆으로 도열한 산죽의 등장에 내가 하는 말,
“도대체 여기가 금정산 맞는감?...지리산 아녀?”
다리가 풀린 친구도 흡족한 미소가 떠나질 않고, 숲을 완전히 벗어나니
고당봉을 주축으로 즐비한 암봉들의 위용이 우릴 압도한다.
로프를 부여잡고선 지나가는 산객들의 도움을 받으며 1, 2차 관문을 통과하고선
드디어 정상석(801.5m)에 다다르니 와글바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조심조심 이어지는 바위무리들을 지나 북문을 향하다 보니,
잡목 사이로 금샘 갈림길이다.
군에 가 있는 장남이랑 공주를 대동하고선,
숨은 보물찾기하듯 찾다찾다 결국은 포기한 금샘이었다.
오늘도 금샘은 그냥 지나쳐 세심정을 거쳐 북문에 이르니
이 곳은 마치 자갈치 시장바닥마냥 왁자한 분위기다.
언젠간 모처럼 단정히 정비된 모습이더니 다시 장사치들과 산객들로
시끌벅적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다.

널부러진 돌계단길을 가뿐히 내려가며 뒤돌아본 금정산 능선 자락엔
짧아진 가을해가 마지막 빛을 발산하며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