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사일..

 

올 일월 심설산행후 가는 지리산은 그저 무덤덤하다

어디로 갈까나..

가긴 인월서 서북능을 타고오르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터미널에 도착해선 운봉표를 끊는다

차는 달리고 달려.. 앗 이놈이 진주서 함양서 두차례 쉬어가자한다 ^^;

오전 열시경 난 터미널일줄 알았던?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인월지나 남원으로 가던중 다소 허허벌판스러운곳에 나를 떨군다

훔.. 여게가 어데고?

두리번 거려봤자.. 지나는 사람 코빼기도 안보인다

흙먼지 날린 버스가 달려온길을 잠시 되걸어보니 맘착한 아줌씨가 집앞뜰 잔일을 하신다

"아지메~~~ 바래봉갈라카먼 어데로 가넝교?"

저짝으로 이짝으로 우회전케서 어째서 가라칸다.

잘 못알아 먹었지만 알았다고 하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가다보니 바래봉 이정표를 찾고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햇볕에 달구어진 아스팔트엔 아지랭이가 일렁거리고 메꺼운 냄시 피우며 가끔은 네바퀴가 쒱하니 굴러간다

걷고 싶지 않은길을 걷고 또 걸어 운봉초입에 도착하니

스틱소리에 놀란 발아래 비암녀석이 어여 오라하며 수풀속으로 꼬리치며 길을 내어준다

날도 푹푹찌고 간만에 산행이라 어깨눌림도 버겁다

힘겹다는 사실은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과 가슴까지 차오르는 숨소리에서 느낄수가 있다

바윗돌에 긁히듯.. 칼칼한 스틱소리나는 운봉오름길은 참으로 지겹기도 하다.

가다쉬다를 반복하다 탁트인 고지에 이르러서야 맘이 트이듯 산아래 바람도 정겹게 볼을 적셔준다

그리고 바래봉 샘터.....

 

 

난 이곳이 참 좋다

이곳의 물은 한여름 땡볕에도 너무나 찹다.

아마 이곳에 굴을 파면 최첨단 에어컨바람이 시샘하듯 살에는 바람이 나올것이다

설렁설렁 라면끊일물을 얹고서 주위를 싸돌아 다녀본다

가야할 저 먼길을 바라보니 하늘에 먹구름의 색이 짙어짐에 한차례 소나기라도 내릴듯하다

맘같아서는 옆 감시초소에서 하루밤 유하고 싶다

그렇게 한시간반을 흘러 한시반에 아쉽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선다

 

 

부운치쯤이련가...

어이구.. 뭉개구름 짙어지는 색만큼 그 무게가 힘에 겨웠는지

땅을 보며 나 가진것을 나누자한다.

너희는 살가운 정나눔일지 몰라도 난 싫단다

판초의 팔 부분을 묽어 망또를 맹글어본다

서북능을 날으는 나는 슈퍼맨이련가.. ^^;

 

 

작고 큰 서북능의 한고개를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어개쯤 넘어섰을적에 아래 안부에 등진 홀로 산객은 나 오는지도 모른다

쳐진 어깨를 보아하니 ...

'안녕하세요 ^^'

샘이 어디쯤 있냐 물어본다

태극 마지막날이라는데 서북능이 초행이라한다

요 언덕넘어 한시간가량만 가면 있다 말한다

샘터위로 바래봉오름길도 있다하며 구인월내림길도 설명하고

미숫가루 타 놓은것을 나누며 맘속으로 종주완주를 축하하며 내 길을 찾아간다

 

 

맞다 세동치샘이 있는데 그 산객은 몰랐는갑다

나도 그쯤을 지나며 샘 내려서는길만 확인하고 이내 길을 재촉한다

또 다시 무뚝뚝 힘겨운 오르막을 오르니 "독사주의" 라는 경고팻말이 보인다

맞다 작년에 저 바위 옆 틈새에 꾸물대는것들을 보았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 바위위에 서 있었으니.. ^^;;

누가 찔렀는지 그래도 경고팻말을 붙혀놓았으니 다행이지만,

서북능 봉정상 바위틈에는 항시 뱀들이 유영을 하고 있으니 조심하길 바란다

가파르게 오르고 바위에 털푸덕 하다가는 엉덩이에 뱀이빨자욱 생길지도 모른다 ^^


 

작년 생각이 난다

초행길에 600미리 생수통 하나에 물을 채워 세동치부터 갈증에 헐레벌덕이며

고리봉탈환작전하던 그 악몽같은 시간들이..

그러나 이번엔 라멘도 한그릇했다.

물도 가득히 실었다

미숫가루도 가져왔다

기다려라 고리봉아~~~~~~~~

 

 

여섯시.....

여기는 정령치!

산바람에 피서들 나왔는지 시끌벅쩍하다

아.. 여기서 자야하는데 웬 잉간들이 이 곳까지 몰려왔는가?

일곱시경 대여섯명의 젊은 산객들은 만복대를 오른다

나도 가고 싶지만 안가련다.

작년에 죽도록 고생한 기억이 난다.

갈증과 어둠과 배고픔들이..

 

 

더군다나 지금까지 오는길도 잠시 내린 소나기에 흠뻑 젖은 상태다

비에 젖은것이 아니라 빗물을 머금은 수풀과 잡목에 ...

저녁은 우동으로 한그릇먹고 아홉시쯤 휴게소 옆 마루바닥에 양해를 얻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신발을 벗어보니 발은 퉁퉁 불어있다

하늘엔 비가 내릴듯하여 침낭을 비닐에 넣는다

맥주 한캔으로 하루를 정리해본다

자다보니 침낭이 젖어있다

비닐을 벗겨봐야 내리는 이슬에 감당키 어렵다

그냥 잔다 zzz.....

 

 

세시반........

눈을 뜬다

밥을 하고 밥을 먹고.. 찬은 젓갈하나 ^^;

널은 옷가지랑 양말은 마르질않고

어차피 저 길을 오르면 열걸음 못가 다시 젖을텐데..

 

 

만복대 전 전망이 트인곳에서 숨을 몰아쉰다

동쪽하늘 여명이 붉그스레하다

산모의 진통처럼 곧 불쑥나올것 같아..

삼십여분을 그 하늘을 응시하며 기다린다

깔끔치 못했지만 해는 어김없이 떠오른다

나름대로 홀로 한적한곳에서 바라보는 해오름도 제 맛이다

 

 

만복대다

앗 서쪽의 운해가 장난이 아니다

노고단운해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만복대 이곳에 홀로 내려보는 운해바다는 나를 강태공으로 만들어 버린다

또 하염없이 마음으로 낚시대를 드리운다

엥~~~~~~

땡벌들이 지들집이라 불청객은 가라한다

알았다. 갈테니 다음에 올땐 반겨주거라 ^^

 

 

걷는게 이만저만 어려운게 아니다

이것도 고어텍스라고 싼맛에 한짝 마련해서 신었더만

물이 빠지질 않는다

고어거시기가 맞긴 맞나 보다

바지는 또 어떻고..

착 달라붙어서 물이 줄줄 흐른다

그래도 내가 가야할길..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고개넘어 저 아래 웬 산객무리들이 형형색색을 이루고 잇다

보아하니 어지 노고단에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젊은 산객들이다

지나치며 입가에 웃음으로 아침인사를 대신한다

 

 

당동마을 갈림길이다

지난 한명의 산객이 겨울산행시 이곳으로 빠져 조난을 당할뻔했다는 산행기가 떠오른다

캄캄한 어둠속에 팻말마저 눈에 묻혀 이 길이 성삼재 내림길인줄 알았단다

아니란것을 알아차리고 온길을 되짚어볼땐 이미 그 흔적도 희미해서

조난이 이런것이구나.. 를 알았다는 ......

 

 

성삼재다

차도많고 사람도 많다

허기진다

그리고 사타구니가 쓰리고 아프다

걷는게 영.. 잼뱅이다

작년 탈진에 저체온증까지 겹쳐 노고단을 오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 짝 비스무리 하다

내색않고 그래도 전망대까지 간다

그리고 작년에도 그랬듯이..

한쪽 구석에 매트리스 피고 양말벗고 자빠진다 ^^;

 

 

잠시 곤하니 자고...

노고단이다

라면을 하나 끊여먹고 아침에 남긴밥은 생각이 없어 그냥 버린다.

원래는 반야봉에 올라 또 하염없이 서쪽을 바라보며 잘가라며 해를 마중할 참이였다

근데 날이 영 꾸물꾸물한것이 아니다

작전변경이다

반야야 다음에 보자꾸나...

 

 

다섯시쯤 연하천이다

엥? 앞마당에 사람들이 장난이 아니다

복날 장터가 따로 없는것 같다

물만 채우고 Go~~

벽소령...

여기도 사람이 많기는 매 마찬가지다

근데 취사장 옆터는 자리가 비어있다

잽싸게 지붕을 만든다

오다 만난 세사람과 그렇게 한잔술에 삼겹살 익는줄 모르다 잠이 든다

 

 

세사람은 엉덩이만 깔고 자라는 유혹에 넘어가 대피소에 들어갔다

나혼자다

넓직하니 조오~~~~타!

그대로 곤히 자는데...

비가온다

후라이 지붕이 쳐저 얼굴에 물이 떨어진다

성가시게 자꾸만 떨어진다

고개를 돌려본다

귓구멍으로 정확히 들어온다

항복이다

무듭꾾고 새우폼으로 머리위치를 한단계 내려니 잘만하다 ^^;

 

 

여섯시...

빗물과 씨름한 어젯밤이 아직도 꿈결같지만

정리하며 지친 어깨를 추스린다

앞마당엔 만원짜리 사람이다. (말이 바꼈다^^;)

그대로 간다.

 

 

영신봉..

영신대길을 확인하러 오십마우넌의 금줄을 넘어 살포시 내려서본다

길이 있다

확인만하고 돌아나온다

 

 

한시 ..... 장터목이다

내려갈까..

사실 노고단서부터 헐은상태로 여까지 온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였다

중간쯤 반바지로 갈아입고서 조금 괜찮았는데..

이번에 뒷발꿈치들이 부어 발목에 힘을 주어 걷기가 어렵다

쩝. 그냥 하룻밤 더 묵기로 한다.

처마밑에 자리를 잡고 또 오다가다 만난 옆자리 산객과 저녁을 같이한다

그러고 보니 산행3일째인데 밥을 한건 정령치서 딱 한번이다

도대체 뭘 먹고 여기까지 왔는지..

그러나 앗뿔싸.. 드뎌 쌀에선 쉰내가 풍기며 유통기한 지났음을 알린다

덕분에 햇반하나 얻어먹는다

그리고 한번도 써 먹어보지 못한 카레랑 짜장이랑 내어 놓는다 ^^;

 

 

술을 못하는데..

마신다.

아까 옆 아자씨들 대원사에서 열세시간만에 올라오셨다던 분들의 고기만찬에 한점 얻어먹을 요량으로 소주를 한잔 넙죽한것이 발단이 된다

비박 앞자리 덩치큰 산객한분도 합석한다

그렇게 장터목 식탁의 술분위기는 무르익어

비박터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난 겨우 몇잔에 침낭속으로 항복을 외치며 숨어든다

사실 산에올라 술취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시에 도착해서 점심먹고 저녁까지 먹으면서 사람구경해 보기도 처음이다

 

 

새삼 천왕봉에 올라볼거라 서둘러 본다

사실 분위기가 잠잘수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옆 산객친구는 운동화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할수없이 쓰레빠? 신고 오른다 ^^;

얼마나 마셨는지 술냄새가 아직도 난다

팔월칠일의 천왕봉엔 사람들이 무진장 많타

언제들 올라왔는지 ....

나도 한켠 비집고 앉아 침낭으로 추위를 달래본다

남쪽과 서쪽.. 북쪽으로 이어지는 운해가 참으로 멋지다

게다가 멋진 일출까지..

복받은 사람들이 많은갑다

 

 

술객친구는 보이질않고 할수없이 그냥 대원사 이정표를 따라 내려선다

중봉샘내림길 위에도 콘테이너 박스가 있다

여기서도 할일이 있는갑다^^;

동부능선을 바라보며 다음엔 남몰래 가긴가야겠다 생각하며 역시 지나친다

치밭목이 깔끔?해졌다

매점이란 창넘어로 민선생님의 얼굴은 내 말이 멋쩍었는지 미소를 보인다 ^^

투박한 손으로 물을 부어주는 컵라면을 받아들고 먹구서 바로 내려선다

무재치기전망대에 올라 낭떠러지 절벽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본다

 

 

회색빛세상에 발을 딛였다

저 산에 서늘함은 온데간데없이 뿌연 색깔속에 분주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내가 앞으로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인것이다

난 그동안 나만의 착각속에서 몇칠을 보냈던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

산에선 그렇게 쓰지말라는 치약,비누,세재들을 쓰니 사람사는 꼴이 되어가는 내 모습에 쓴웃음이 나온다

무엇을 그렇게 씻어 내야할 책임이라도 느끼듯

산에선 금기시하는 짓거리를 여기 회색세상에서는 해야만 하는 것이다.

 

 

산에서 씻어버린것이 무엇이며

여기서 씻어버린것이 무엇인지..

웬지 머리속에 맴돌고만 있다